內戰的 구도를 가진 한국
더욱 확실해진 민주통합당의 從北性. 선거를 잘못하면 피를 흘리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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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민주통합당의 대표로 뽑힌 한명숙 씨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6·2서울시장 선거 후보로 나서서 비난의 초점을 북한이 아니라 정부에 집중해왔다.

*韓씨는 북한이 핵보유 선언(2005년 2월10일)을 하자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감싸며 ▲“미국에 對北체제보장과 경제 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하자 ▲“핵을 가지고 어느 나라를 전시적인 도발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며 북한을 옹호했다.

*韓씨는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고수해온 인물이다. 그는 ▲“국보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2004년 9월6일)”며 2004년 10월 국보법 폐지안 공동 발의에 나섰고, ▲2006년 3월24일 총리 지명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명숙씨는 과거 공안사건에 연루된 前歷이 있다. 韓씨는 1968년 북한정권과 연계된 지하공산조직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 朴聖焌(박성준)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당시 박성준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韓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선고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金瓆洛(김질락)·申榮福(신영복) 주도의 ‘민족해방애국전선’과 李文奎(이문규)·李在學(이재학) 주도의 ‘조국해방전선’ 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통합당의 黨歌는 간첩사건 연루자 이철우씨가 작사하고, 김일성 찬양 민중가요 작곡자 윤민석이 작곡하였다.

*민주통합당의 강령에 나타난 ‘경제 민주화’라는 美名下의 대기업 개조, 이미 허가된 종편 재검토 공약은 私有(사유) 재산권과 언론자유의 부정 내지 근본적 제약을 뜻한다.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는 말이 되지만 ‘경제 민주화’는 ‘군대 민주화’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私有(사유)재산권의 보장인데 민주당은 ‘경제 민주화’라는 사회주의식 개념을 도입, 이를 본질적으로 제약하려 한다.

*2008년 촛불난동은, 종북좌파 세력이, 多衆(다중)의 폭력과 선동으로 법치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한 사건인데, 민주통합당은 강령에서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였다. 

*한명숙 대표의 민주통합당(민주당)은 18일 현재 정치자금법으로 재판 중인 임종석 전 의원을 黨 사무총장에 임명키로 했다고 뉴데일리가 보도하였다. 임 전 의원은 삼화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심과 대법원에서 1심 刑量이 확정되면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이런 사람을 골라내 중책에 앉히기로 한 것은, 法治를 부정하는 민주당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인사이다.

*결론: 黨 대표의 종북적 이념 성향, 그의 일관된 북한정권 편들기, 黨의 정신을 담는 黨歌 작곡 작사가의 從北性, 黨 강령에 담긴 法治부정과 사회주의적 성향을 종합할 때 민주통합당을 진보나 좌파가 아니라 從北정당으로 규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올해의 두 차례 선거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주한미군철수 주장)의 從北 연합세력 對 대한민국 세력의 정면승부가 될 것이다. 만약 종북세력이 집권하면 이번엔 反共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正體性을 변조하는 일종의 國體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수호 세력은 이에 저항할 것이다. 國體변경이란 반역은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권을 잡은 세력에 의한 이런 反민주적 國體변경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일종의 內亂행위이다. 헌법 제5조는 국토방위뿐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을 국군의 신성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요사이 국군은 從北세력의 정체를 알리는 政訓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 종북세력이 집권, 국군통수권을 장악한다면 從北을 敵으로 보는 국군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국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한국에서 內戰상태가 벌어지면 북한정권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이념대결로 인한 內戰的 구도를 가진 한국의 앞날을 전망하기가 아슬아슬하다. 국민들이 두 차례 선거를 통하여 反국가세력의 집권을 허용할 것인가의 與否는 피를 흘리는 상황을 예방할 것인가의 與否이기도 하다.

한국의 좌경화된 언론은 '사실 보도'의 원칙을 포기, 이념적 가치관에 복무함으로써 민주통합당이 지닌 이런 從北性을 진보라고 포장하여 국민들을 속이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선배들이 쟁취한 언론자유를 從北세력이 추행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의 직무유기로 유권자들이 집단적으로 속으면 반역자를 국회의원으로, 간첩을 대통령으로 뽑고, 從北세력을 집권당으로 만들 수가 있다. 선거를 잘못 하면 피를 흘리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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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구체적인 자료를 첨부한다.  

한명숙 硏究
A4지 10장으로 정리해 보니
金成昱
1.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선거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오늘 민주통합당 대표로 뽑힌 韓明淑(한명숙) 前국무총리의 言動(언동)에서는 대한민국 正統性(정통성)에 대한 인식을 찾기 어렵다. 반미·친북적 주장은 ‘正統’에 대한 오도된 인식이 만들어 낸 필연적 소산이다. 韓씨는 공직에 있을 때는 물론 공직을 물러난 뒤에도 대한민국을 헐뜯고 북한정권을 감싸며 동맹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내 왔다.

韓씨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6·2서울시장 선거 후보로 나서서 비난의 초점을 북한이 아니라 정부에 집중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10년 민주정부가 구축한 평화를 부정하고 있다(···)부정할 뿐 아니라 전쟁불사라는 전쟁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거나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선거방해로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韓씨의 이 같은 주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기간 69억5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대북지원을 하고도 99년 연평1해전, 2002년 연평2해전, 2006년 10월9일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이 끝없이 계속돼 왔다는 사실(fact)을 부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발의 주체인 북한을 감싸는 反인륜적 발언들이다. 그녀의 발언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저기 누워서 지금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지난 정부는 한쪽으로는 평화를 구축하고 한쪽으로는 안보를 튼튼히 했다(…)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전쟁의 먹구름이 우리 앞에 다가오니까 그 때가 얼마나 좋았으며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됐다(…)그 평화가 그립다.(2010년 5월25일, 6.2지방선거 명동 선거유세)”

“저는(서울시장 후보) 이 관권 선거를 한쪽으로는 막아내고 국민과 함께 전쟁의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는 데 안전을 지켜내는 데 최선을 다 하는 그러한 데 노력을 하겠습니다.(2010년 5월2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정부가 지난 10년 민주정부가 구축한 평화를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부정할 뿐 아니라 전쟁불사라는 전쟁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이 정부는 민주주의를 짓밟고, 경제 무능에 평화까지 짓밟고 있다(…)주가는 오르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민생이 파국으로 몰아치고 있다.(2010년 5월26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야5당, 시민사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회의’)”

“이 정부 2년 반 동안 이렇게 전쟁 먹구름이 우리 앞에 돌아오도록 전쟁 위협을 몰고 갈 수 있나(…)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 치욕의 패전을 자랑인양 당당하게 말하면서 선거를 관권선거로, 선거방해로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이용하고 있다.(2010년 5월29일, 6.2지방선거 광화문 선거유세)”


2.
韓씨는 북한이 핵보유 선언(2005년 2월10일)을 하자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감싸며 ▲“미국에게 對北체제보장과 경제 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하자 ▲“핵을 가지고 어느 나라를 전시적인 도발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며 북한을 옹호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은 뒤 핵무기를 만들었음에도 오히려 ▲“김대중 前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넓혀 오신 남북 간 화해협력의 큰 길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장 앞에서 主敵을 감싸고 同盟(동맹)을 욕하며 主敵을 돕자는 주장들이다.

“北은 北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고 미국은 미국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고 보지 않는다(…)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동시 제안이라든지 對北체제보장과 경제지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진전된 안을 내놓도록 우리가 요청한다든지 제안을 강력하게 정부가 해야 한다(2005년 6월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북은 핵실험을 함으로써 핵보유국이라는 국제적인 지위를 획득을 해서 국제사회에서의 협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핵을 가지고 어느 나라를 전시적인 도발을 하려고, 그런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2006년 10월11일, 국회 북핵실험 관련 긴급현안질문)”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보지만 어느 한 나라를 (책임이 있다고) 지명하기는 어렵다(…)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6년 10월11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김대중 前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넓혀 오신 남북 간 화해협력의 큰 길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2006년 11월2일, 김대중 도서관 전시실 개관식 축사)”


3.
韓씨의 ‘김정일 감싸기’는 거짓인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문제를 제기하자, 2006년 2월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미국은 6자회담의 성사 이후 모처럼 마련된 평화정착의 기운에 증거 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僞幣(위폐) 제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韓美정보당국조차 “북한이 지폐를 제조하는 곳에서 100달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韓씨는 미국의 김정일 비판에 대해서도 적대적 반응을 보여 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美국무장관이 2005년 6월 북한을 “暴政(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북한 정권의 성격은 자명하다”고 말하자 같은 달 21일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모처럼 조성된 6자회담 재개의 긍정적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韓美외교채널을 통해 적극적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튿날에도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은 6자회담 복귀 자세를 갖춘 북한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자, 韓美정상 간 합의정신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국내적으로도 장관급회담 북한 대표단이 들어올 때 보수단체가 자극적 플래카드를 붙이고 시위를 했는데, 우리 국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하는 보수단체를 “예의 없다”고 비난했다.

韓씨는 2005년 7월4일에도 “지금 미국은 북측에서 요구하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중단하라는데 대한 답변이 확실히 없는데, 미국은 전 세계 초강대국답게 6자회담 7월 중 개최를 위해 확실한 답변을 해줬으면 한다”고 다시 주장했다.

4.
韓씨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 입장을 고수해온 인물이다. 그는 ▲“국보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2004년 9월6일)”며 2004년 10월 국보법 폐지안 공동 발의에 나섰고, ▲2006년 3월24일 총리 지명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韓씨는 ▲2005년 7월21일 일본 토쿄에서 열린 ‘6·15선언 발표 5주년 기념 남북해외합동강연회’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문화돼 상징성으로 남아 있다”며 “올해 보안법 문제가 수면 위로 뜨면 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또 “통일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이자 국제문제라서 민족공조와 국제공조 모두 필요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민족공조”라며 “일본에서도 민단과 조총련이 함께 만나 서로 양보를 해서 내부 문제가 있다면 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5.
한명숙씨는 과거 공안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많다. 韓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 朴聖焌(박성준)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당시 박성준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韓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金瓆洛(김질락)·申榮福(신영복) 주도의 ‘민족해방애국전선’과 李文奎(이문규)·李在學(이재학) 주도의 ‘조국해방전선’ 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非(비)합법, 폭력·非(비)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共産政權(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A4 용지 1000여 쪽에 달하는 통혁당 관련 판결문은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통일혁명당이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 잡지 반포, 당소조의 조직, 당원에의 적색사상 교양, 데모 조정, 해안선 답사, 유격전술요원 입북, 간부진의 빈번한 入北(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

<“北지령받는 지하당이 분명” 주범 김질락의 自認”>

통혁당의 기본성격은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地下黨(지하당)이었다.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에 머물렀다.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미화) 7만 달러, 韓貨(한화) 3천만 원, 日貨(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간첩지령형식인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揚陸(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

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북한 753부대 소속 武裝工作船(무장공작선)은 68년 8월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이승탁·김일룡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북한정권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주범 중 한 명인 김질락은 옥중遺稿(유고) ‘주암산’에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비밀 地下黨(지하당) 조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 없고 통혁당의 조직상황과 활동상황이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 됐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쓴 바 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월북 당시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에게 “우리 통혁당은 남조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地下黨(지하당)임을 자처하고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각계각층에 대한 군중공작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적고 있다.

강인덕 前 통일부장관은 자신의 저서 ‘공산주의와 통일전선’에서 조선로동당과 통혁당은 지령을 내리고 받는 中央黨(중앙당)과 地下黨(지하당) 관계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통일혁명당은 출발부터 북한 中央黨(중앙당)의 하부조직으로 발생한 것이다. 통일혁명당 창건의 필요성, 그리고 조직적 사상적 준비는 모두 북한 조선로동당이 계획한 것이다...당원은 제각기 독립된 인자로서 핵심을 유지하며 평양에서 발신하는 지령에 따라 단독으로 활동하면서 그 경과를 중앙당 대남사업 담당부서에 보고하는 형태이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韓씨의 남편 박성준씨(당시 서울대경제학과 4년. 25세)는 1967년 6월 申榮福(신영복)에게 포섭된 ‘黨(당) 小組責(소조책)’으로서 妻한명숙 및 朴○○, 金○○ 등을 小組(소조)로 포섭했다. 그는 “서울 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는 것이다.

공안전문가 A씨는 黨 小組責(소조책)과 小組(소조)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지하당에서 입당한 黨員(당원) 중 최소 조직을 細胞(세포)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3명의 黨員(당원)이 1개 세포를 이루며, 3개 세포가 1개 小組(소조)를 이룬다. 小組(소조)와 細胞(세포)는 지하당활동의 최소 조직을 가리킨다. 지하당의 小組(소조)와 細胞(세포),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간부인 黨 小組責(소조책)이었다는 것은 당연히 地下黨(지하당)에 입당한 黨員(당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韓씨 등 小組(소조)를 “통혁당 당원”으로, 박성준씨와 같은 黨 小組責(소조책)을 ‘통혁당 간부’로 판단했고,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여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박성준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당시 韓씨의 통혁당 사건 관련 판결문은 이러했다.

《북괴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反국가단체로서, 북괴가 간행하는 표현물이나 기타 사회주의 서적을 반포하는 행위는 북괴가 시도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피고인 한명숙 등은 박성준으로부터 북괴 간행 ‘청춘의 노래’를 빌려 받고, 박성준의 부탁으로 엥겔스가 쓴 ‘사회사상총설’ 1권을 받아 그 책에 있는 ‘공산당 선언’을 노트에 필기하고, 박성준의 지시로 이○○, 최○○와 같이 읽고 反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한편 찬양-고무하는 표현물을 취득 복사, 보관, 반포하여 북괴를 이롭게 했다》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통제를 받았던 地下黨(지하당) 통혁당은 당연히 共産혁명조직이었다. 김질락의 앞의 수기 中 65년 11월초 통혁당 준비위원회 결성 당시 김종태의 제안 설명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反帝(반제)·反봉건·反식민의 민주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며(···)우리의 당은 비단 이북의 노동당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공산당과도 형제당이 되는 것이며 국제 공산당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 “남반부를 불법강점하고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원수 미제와 그 走狗(주구)들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함에 있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中央黨(중앙당)의 지도 아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통일혁명당 창당을 선언한다”는 요지의 선언문이 낭독됐던 것으로 같은 수기는 기록하고 있다.

김질락은 68년 12월18일 공판정에서도 “그 동안 공산주의를 위해 싸워왔으나 이제는 공산주의자로서 죽고 싶지 않으며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 죽고 싶다”고 후회했다.

<평양에 김종태 거리, 北통혁당 연루자들 영웅화>

통혁당 사건의 주범인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사형을 당했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통혁당 사건 이후 연루자들에 대한 영웅화에 나섰다. 69년 1월25일 김종태와 이문규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김종태와 이문규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

김종태는 69년 7월10일 사형집행을 받은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13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區(구)분대·區(구)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

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 제1급’을 추서하고 평양 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 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 거리’가 생겨났다.

69년 11월6일 이문규가 사형을 당하자 역시 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그러나 죽기 직전 공산주의자였던 것을 뉘우친 김질락은 북한정권에게 변절을 이유로 외면당했다. 살아남은 최고위급 통혁당 간부인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1988년 특사로 출감했다.

韓씨는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이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아내로서 옥바라지 한 것뿐, 알지도 못하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밝혀왔다.

박성준씨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노동당이나 통혁당 같은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포섭된 적도 없다(2006년 4월3일 동아)”, “사건에 연루된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빌려본 게 전부다(2006년 3월27일 오마이뉴스)”, “나는 통혁당과 관련이 없고, 사건에 연루된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빌려본 게 전부다(2006년 3월27일 조선)”,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책을 빌려 받은 것이 전부인데 15년형을 받았다(2006년 3월25일 문화)”고 밝혔었다.

6.
韓씨는 1979년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처벌받았다. 그는 당시 이우재·장상환·황한식·신인령·김세균과 만나 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 목소리 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판결문은 전한다.

《써클회원 6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속개하기에 앞서 그 집에 있던 라디오를 조작하여 ‘어버이 수령 김일성…’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괴방송을 함께 들은 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돼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 돼 있는 곳은 以北(이북)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反국가단체인 북괴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에 동조 또는 찬양하여 이를 이롭게 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한명숙은 다른 피고인들에게 여성문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니 읽어 보라」면서 ‘조선여성독본’ 복사판을 제공하였다》

韓씨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과 관련해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조치는 통혁당 사건과는 무관하다.

韓씨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고문 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2006년 3월24일 당시 총리로 지명된 韓 前총리가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올린 ‘한 총리 지명자의 삶 ④ 고문과 절망’이라는 글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두려움으로 손이 떨린다. 나는 정말, 정말, 정말 그 모멸의 순간이 영원히 내 기억에 지워져 고문이라는 범죄를 알기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만 싶다. 나는 아직도 가끔 하나님께 나를 고문했던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아무리 짓이겨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고문의 기억은 여전히 내 상념의 어두운 한 모서리에 우두커니 숨어 있다.(···)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毆打(구타)를 당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귓전에 울려오는 욍욍거림 속에 나를 고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아스라하게만 들려왔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신을 잃었고 차라리 그 순간이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패배했다. 나의 믿음과 나의 각성과 나의 정의감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간의 믿음은 얼마만큼 우습고 허약한 것인가?》


2006년 4월17일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당시 한명숙 후보자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당시 고문한 당사자들을 근래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개인의 미움이 아니라 민주화과정에서 당한 것”이라며 “이미 다 용서했으며 과거의 일을 되살리지 않고 미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7.
2011년 6월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에 대한 韓씨의 고문 조작 주장을 뒤집는 전직 정보부 수사관의 증언록이 나왔다.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시사문화사 刊)’라는 제목의 전직 중앙정보부 對共수사국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이기동氏의 회고록이다. 李씨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이 당시 판결문에 판시됐듯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했다”고 적었다. 또 고문 논란과 관련, 韓씨의 피해 주장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필자인 이기동氏는 1979년 2월 당시 수사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수석간사 이우재(前마사회 회장), 신인령(前이대총장), 한명숙(前총리) 등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농민·근로자·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중간집단이론’이라는 사회주의 이론 강의를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변혁하게 함으로써 사회주의 실현을 획책한 것으로 보고 용공혐의로 이들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한명숙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이우재·신인령 등과 합류했고 그들 간사 3인은 그곳 숙소 등에서 학원 수강생들에게 사회주의 이념교육 방향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결속했다.”고 적었다.

이기동씨는 고문 조작 논란도 다루고 있다. 필자가 전하는 법정의 모습은 이랬다.

《드디어 내가 담당했던 피고 한명숙의 차례. 그녀는 진술 도중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그때 고문당한 저의 좌측 어깨를 좀 봐 주십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그녀에게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검사 밑에 앉아 있는 내 담당 수사관(필자인 이기동)이 담뱃불로 내 왼쪽 어깨를 지져 상처가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심 박사가 도착했고 심 박사는 법정에서 그녀,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를 들추고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상처를 살피고 어깨를 방청석을 향해 보이며 “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마한 흉터가 최근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 같습니까?” 하고는 다시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 사람이 3~4세 때 종기가 생겨 난 흉터자국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고문이라니! 그것도 내가 담뱃불로 지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나에게 ‘그때 그녀를 고문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차례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라고 답하겠다. 만약 그녀가 당시 거짓말을 했다면 지금이라도 신이여 그녀에게 천벌을 내려주옵소서 하고 빌겠다.(···)》


필자는 “오늘날 시대가 좋아(?)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로까지 출세한 그녀는 꼭 그때의 ‘담뱃불 고문’ 주장이 허위임을 만천하에 밝히고(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회에 정정당당하게) 필자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라며 韓씨의 사과를 촉구했다.

필자는 또 “상호 변호인단을 구성, 확인하고 그 당시 지하 심문실을 완벽하게 녹화한 필름이 있을 것이니 국정원에 요청하여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심문실의 全 과정을 만천하에 공개토록 하자”며 이른바 “좌파·좌익의 허위 고문 주장에 대응키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1-12-08, 01:17 ]

민주통합당의 강령은 사회주의 독재 하겠다는 것
'경제 민주화'란 미명으로 사유재산권 부정, 촛불난동 정신 계승으로 의회민주주의 부정, 무상 복지로 재정파탄.
趙甲濟   
  민주당,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은 오늘 합동회의에서 통합정당의 黨名(당명)과 黨憲(당헌), 강령을 확정했다. 당명은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으로 결정되었다. 정당의 이념과 목표가 들어 있는 강령엔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 내용은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 조세정의 실현, 고용과 교육을 중시하는 혁신적 균형성장 추구,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라 한다. 민주당이 주장해왔던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주거복지, 일자리복지를 강령에 명문화해 복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도 담았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시정의지도 밝혔다고 한다. `법치',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강령에서 뺐다가 논란이 됐던 부분은 `특권 없는 법치', `공정한 시장경제'라는 표현으로 보완해 강령에 담았다.
 
 
 민주당은 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는 거짓선동을 퍼뜨리고, 서울 도심부를 석 달간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2008년 촛불시위 정신도 계승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강령 요지를 읽어 보면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독재 체제로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 '우리는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애족정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정신, 4.19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 민주항쟁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자유·평등 인권·민주의 정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실현한 노동 존중과 연대의 가치, 국민의정부·참여정부가 이룩한 정치·사회·경제 개혁 및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 2008년 이후 촛불민심이 표출한 시민주권의식 및 정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한다.”
 2008년 촛불난동은, 종북좌파 세력이, 多衆(다중)의 폭력과 선동으로 법치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한 사건이다. 이 난동은 허위 정보에 근거한 것임으로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라 불법이고 不義(불의)한 행동이었다. 당시 민주당과 민노당은 국회 문을 닫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법폭력 시위를 함께 하였다. 국민들 앞에 사죄하여야 할 反민주적 행동을 자랑스럽게 계승하겠다고 한다. 폭동정신을 이어 받는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광우병 폭동은 종북좌파 세력이 주동한 것이고, 이들이 통합민주당에도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정권을 잡으면 사회주의 독재로 가지 않을까? 광우병 폭동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2. ‘경제 민주화’라는 美名下의 대기업 개조, 이미 허가된 종편 재검토는 私有(사유) 재산권과 언론자유의 부정 내지 근본적 제약을 뜻한다.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는 말이 되지만 ‘경제 민주화’는 ‘군대 민주화’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私有(사유)재산권의 보장인데 민주당은 ‘경제 민주화’라는 사회주의식 개념을 도입, 이를 본질적으로 제약하려 한다.
 
 3.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는 ‘國費(국비)급식, 국가 보육, 국가의료’라는 말이다. 세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런 데 돈을 쓰게 되면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주의를 닮게 된다. 국가가 보육을 세금으로 책임지면 국가가 어린이 교육에 개입, 사상통제를 할 가능성도 높다. ‘무상의료’는 재정파탄, 국가부도로 가는 지름길이다.
 
 4. 민주당은 강령에 좌파적 역사관과 좌파적 이념과 좌파적 정책을 듬뿍 담았다. 헌법에 반하는 내용들이고 노동자 중심이다. 국가정체성을 변조할 가능성이 높은 내용들이다. 이 강령을 실천할 민주당의 면면들을 보면 좌경 성향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독재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세 기둥은 자유선거, 언론자유, 사유재산권이다. 에 셋중 어느 하나라도 제약을 받으면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 2011-12-16, 22:43 ]


간첩사건 연루자 이철우, 민통당 당가(黨歌) 작사
작곡은 김일성 찬양 민중가요 작곡자 윤민석이 했다.
金泌材(조갑제닷컴)   
 

민통당(민주통합당) 당가(黨歌)의 작사자와 작곡자가 1992년 발생한 대형 간첩사건인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조갑제닷컴> 확인결과 민통당 黨歌 작사자는 이철우 前열린당 의원으로 李씨는 학생1992년 북한 조선로동당을 남한에서 현지입당한 뒤, 당원 부호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여기서 ‘현지(現地)입당’이란 북한의 조선로동당에 가입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남한 현지 간첩을 통해 입당한 후, 북한 조선로동당이 추인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李씨의 경우 북한 조선로동당의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에게 포섭돼 다른 주사파(主思派) 핵심분자들과 함께 북한 조선로동당에 가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李씨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위반 혐의(의정부지방법원 제1형사부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민통당 黨歌의 작곡자 윤민석은 촛불집회 주제가인 ‘헌법 제1조’를 작사·작곡한 인물로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한민전 10대 강령’ 등을 만든 운동권 가요 작곡가다.
 
尹씨는 1992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 김일성 찬양노래를 작곡했으며, 이 같은 좌익 활동으로 인해 국보법 위반으로 4차례에 걸쳐 구속됐다.
 
같은 해 10월6일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밝혀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 노동당 서열 22위인 이선실(2000년 사망)과 함께 현재 ‘통일운동가’로 활동 중인 김낙중 등이 1995년에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아래 펼친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이었다. 민통당의 黨歌는 현재 黨홈페이지(www.minjoo.kr/intro/song.jsp)에서 들어볼 수 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기사본문 이미지

[관련기사] 민통당 당가(黨歌) 작곡자 윤민석의 정체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을 만든 민중가요 작곡가


金泌材
촛불집회 주제가로 알려진 ‘헌법 제1조’를 작사·작곡한 인물은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한민전 10대 강령’ 등을 만든 운동권 가요 작곡가인 윤민석(43·한양대 무역학과 84학번)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단순한 가사와 리듬이 반복되는 촛불집회 주제가 ‘헌법 제1조’는 노무현 탄핵 당시 만들어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금 전면에 등장했었다.

문제의 노래를 작사·작곡한 윤민석은 1992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대한 안기부(국정원 전신)수사백서에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 김일성 찬양노래를 작곡해온 인물로 그동안 국보법 위반으로 4차례에 걸쳐 구속된 바 있다.

같은 해 10월 6일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밝혀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 노동당 서열 22위인 이선실(2000년 사망)과 함께 소위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김낙중 등이 95년에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아래 펼친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이다.

[주: 이선실(북한 권력서열 22위·2000년 사망)은 1980년 3월~1990년 10월까지 10년 이상을 서울·전주·안양 등지에서 숨어 지내면서 남파 공작원 10여명을 수하에 거느리고 대남공작을 총지휘해온 간첩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이선화, 이옥녀 등의 가명을 사용해온 이선실은 1980년 이전에도 1966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남파됐다.

1978년에는 조총련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입국하기도 한 베테랑 공작원 이선실은 80년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입국한 뒤로는 운동권 일각에서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고, 제주 4·3사태 희생자의 유족이며, 아들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실종된 할머니”, “평생 홀로 지내며 삯바느질과 식당 경영으로 모은 재산을 민주화운동에 쓰는 노인네” 등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 가운데 김낙중은 1955년 월북 후 남파, 36년간이나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며 북한에서 총210만 달러(한화 16억원 상당)의 공작금을 받아왔는데, 이 중 쓰고 남은 1백만 달러가 권총, 독총 등 공작 장비와 함께 그의 집 장독대 밑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김낙중은 대남혁명공작의 업적을 인정받아 북한으로부터 91년 10월 ‘김일성 공로훈장’, 91년 12월 ‘민족통일상’을 받았고, 김일성이 특별히 보낸 산삼과 녹용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1993년 3월 안기부가 발간한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수사백서’에 따르면 윤민석은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산하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과 조선로동당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現 반제민전)을 찬양하는 ‘한민전찬가’, ‘한민전10대 강령’이라는 노래 등을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백서에는 윤민석 곡의 사용용도 등과 함께 자필악보가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는 “혁명의 길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오늘의 우리나라 이르기까지 조국의 영광위해 한생을 바쳐 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 라는 1절가사와 “언제라도 이 역사와 함께 하시며 통일의 지상낙원 이루기까지 조국의 영광위해 한생을 바쳐 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라는 2절 가사를 담고 있다.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곡은“조국의 하늘 그 위로 떠오는 붉은 태양은 온 세상 모든 어둠을 깨끗이 씻어주시네. 아 김일성 대원수 인류의 태양이시니 여 만년 대를 이어 이어 충성을 다하리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미래한국신문, 2005년 1월6일자)

윤민석이 만든 이들 노래는 각각 91년 11월 김일성 생일축하(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92년 4월 김일성의 대원수 직위 추대(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로 북한 재일공작거점을 통해 북한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민석은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복역한 이후에도 ‘fucking U. S. A’, ‘또라이 부시’, ‘반미(反美)반전가’, ‘반미(反美)출정가2002’ 등 반미(反美)성향의 운동권 가요를 작곡했다.

그는 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집회에서 탄핵반대집회의 주제가 역할을 해 온 ‘너흰 아니야’를 비롯, ‘탄핵무효가’, ‘헌법 제1조’, ‘격문1’, ‘격문2’ 등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들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은 적이고, 미국은 죽었다 깨도 혈맹이라는 너희들의 망발(너흰 아니야)”, “가자, 가자 싸우자 반역의 무리 몰아내자, 탄핵은 무효, 국회해산(탄핵무효가)”, “친일과 친미로 배불리는 매국노들(격문1), 나가자 싸우자 어깨를 걸고 역적놈 토벌하자(격문2)”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윤민석은 얼만 전 까지 홈페이지(www.songnlife.com, 현재 홈페이지 활동정지 상태)를 통해 자신이 작사·작곡한 반미(反美)·반(反)대한민국 성향의 노래들을 무제한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해놓기도 했다.

자신을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윤민석 홈페이지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놓았다.

“저희 미술선생님께서 미술시간에 ‘헌법 제1조’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노래가 인상 깊어서 이렇게 들리게 되네요..(중략) 인터넷에서 찾아봐 MP3에 노래를 다운받아 자주 듣겠습니다. 방금 뉴스에서 어린아이가 '대한민국은 뒤죽박죽이다'라는 노래를 헌법1조 음에 맞춰 부른다고 들었는데 이 노래가 멀리 퍼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에 대해 윤민석은 “XX님 반갑습니다”라며 미술시간에 촛불집회 주제가를 틀어준 교사에 대해 “멋진 미술선생님이시네요”라고 댓글을 달아놓기도 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황인오, 최호경, 양홍관 2심, 3심 판결문 및 이철우 판결문 요지

■ 주범 황인오에 대한 판결문/
“민족해방애국전선은 北연계 은폐키 위한 조선로동당의 위장명칭”
<서울고등법원 1993. 7. 5 선고, 93노948>

“피고인(황인오)은… 1991.7.30. 위 공소외인들과 함께 이 사건 조선로동당중부지역당(이하 중부지역당이라고 약칭한다. 피고인이 정식명칭이라고 주장하는 민족해방애국전선은 피고인에게 발신된 대남공작지령문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북한과 연계된 사실을 하부구성원이나 외부에 대하여 은폐하기 위하여 만든 조선로동당의 위장명칭이라고 인정된다)을 결성한 사실,

피고인과 위 공소외인들은 중부지역당 강령으로 한국은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이므로 민족해방을 위하여 반미자주화투쟁을 하여야 하며 이를 위 하여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각 당, 각 파, 각계각층의 애국적 역량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전문과 ‘로동계급을 중핵으로 하는 광범위한 민족통일전선에 기초하고 극소수 친미, 친일세력을 제외한 각계각층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며 련방형식의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 등 10개항으로 된 한민전의 강령을 그대로 채택하였고,

피고인이 북에서 가져 온 위 한민전 당헌을 일부 수정하여 ‘위대한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하고(제3조), 당면목적은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와 식민지통치를 청산하고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 민족자주정권’을 세우는 것이고(제4조), 활동원칙은 ‘비밀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합법, 반합법, 비합법활동을 옳게 결합하여 적극적 활동’을 벌이고, ‘각급 조직은 상급지도부의 승인을 받아서 각이한 합법적 명칭으로 위장’하는 것이고(제8조), 조직성원은 ‘한국공민으로서 주체사상으로 의식화’되어야 하고(제9조),

또한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성하는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라는 등의 내용으로 된 맹세문을 채택한 사실,

위 규약에 따라 피고인과 위 공소외인들은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한편 위 중부지역당의 조직원을 새로 가입시키는 가입식도 조선로동당기를 벽에 붙이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앞에 놓고 앞서 본 맹세문내용과 같이 맹세하였고 가입된 조직원에게는 대둔산 몇 호라는 공작번호와 가명을 지어주는 사실이 인정되는 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 주장의 민애전은 그 조직경위와 그 강령, 규약에 나타난 위 지도이념, 당면목적, 조직 및 활동형태와 내용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되는 양심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벗어나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실질적 위해를 줄 위험성이 명백하여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인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대법원 1993. 11. 12 선고, 93도2158>

“상고를 기각한다.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1991. 9. 초순 공수 외 은재형으로부터 충북지역의 정치, 경제실태 등을 보고받아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그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조치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니 수긍이 가고 거기에 논지와 같이 채증법칙을 어긴 위법은 없다.

이에 상고는 이유가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관여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상고를 기각한다)과 같이 판결한다”

■ 강원도 당지도책 최호경에 대한 판결문/
“민족해방애국전선은 北지령 따라 결성한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의 위장명칭”
<대법원 1993. 11. 9 선고, 93도2209>

원심이 ‘‘민족해방애국전선은 공소 외 황인오가 월북하여 조선로동당에 가입한 후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한 지하조직인 이른바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의 위장명칭으로서,

한민전의 강령을 그대로 채택하여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혁명사상을 그 지도이념으로 하여 민족해방과 인민주주의 혁명전략 아래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의 완수를 목표로 하고,

그 아래에 강원도위원회, 충북도위원회, 충남도위원회, 편집국 등을 만들어 그 임무를 부여하고, 조직원을 가입시켜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등 그 조직 목적달성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 온 사실을 인정한 다음… 민족해방애국전선은 그 목적, 조직, 활동형태와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조처를 수긍할 수 있고,

■ 강원도위원회 위원장 양홍관에 대한 판결문/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위장명칭은 민족해방애국전선”
“한민전은 북한 조선로동당의 선전기구임이 명백”

<대법원 1993. 9. 28 선고, 93도2073>

원심은…, 공소외 황인오는… “1991.7.30.경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아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 아래 남한에서 미제의 식민지적 지배와 식민지 통치를 청산하고 군사파쇼정권을 타도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할 것을 당면목표로 삼는 중부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민중전위 혁명조직으로서의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위장명칭은 민족해방애국전선이다. 이하 민애전이라 약칭한다)을 결성하고,

민족자주정권의 수립, 자립적 민족경제건설, 조국의 자주적 펑화의 실현 등 한민전의 강령을 수정 없이 채택하여 그 조직 강령으로 삼는 등 한민전의 노선, 강령, 규약 등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며…,

조직원의 가입식을 거행함에 있어서는 조선로동당기를 벽에 붙이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놓은 다음 그 판시와 같은 맹세를 하고, 공작번호와 가명을 지어주는 등 그 조직목적달성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 온 사실,

피고인 양홍관은 1992.1 초순경 위 최호경의 인도에 따라 민애전에 가입하였고 피고인 최종만은 피고인 양홍관의 권유에 의하여 1992.6.6 민애전에 가입했으며, 피고인 등은 민애전 산하의 강원도위원회인 조국통일애국전선을 결성한 사실을 인정하고,

위 인정사실에 의하여 위 민족해방애국전선은 위 목적, 조직 및 활동형태와 내용에 비추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인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대조 검토하여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피고인이 가입한 민애전은 판시와 같은 조선로동당중부지역당의 위장명칭으로서 이 단체가 반국가단체임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바, 원심 채용증거 및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채용증거들을 기록에 대조 검토하여 볼 때 피고인 최종만은 피고인 양홍관으로부터 위 단체가 그 판시와 같은 반국가단체임을 알면서 가입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같은 취지에서 이 점에 관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시판결은 옳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위법이 없다”

<서울고법 1993. 7. 2 선고, 93노881>

“황인오는 1990.12. 월북하여 조선로동당에 가입한 후 지하당 건설 방법 등을 교육받고 귀국하여 ‘강원도 충청남북도를 망라하는 중부지역에 지하당을 건설하고 그 조직을 확대시켜라’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한민전을 남한 내에 실체화한다는 목표 아래…,

1991.7.30. 경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 아래 남한에서 미제의 식민직적 지배와 식민지 통치를 청산하고 군사파쇼정권을 타도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할 것을 당면목표로 삼는 중부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민중전위 혁명조직으로서의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위장명칭은 민족해방애국전선이다)을 결성하고 민족자주정권의 수립,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조국의 자주적 평화의 실현 등 한민전의 강령을 수정 없이 채택하여 그 조직 강령으로 삼는 등 한민전의 노선, 강령, 규약 등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며…,

위 민족해방애국전선은 위 목적, 조직 및 활동형태와 내용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되는 결사, 표현, 양심의 자유를 벗어나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실질적 위해를 줄 위험성이 명백하여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의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그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을 한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고 따라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원심에서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하여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한민전은 북한 조선로동당의 선전기구임이 명백하고,

피고인들은 민애전에 가입하였으며, 민애전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지침으로 삼고 한민전을 지도대오로 하여 그 노선, 강령, 규약 등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피고인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선서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들이 김일성주의자이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라고 판단한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여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동 피고인은 이철우, 이00, 최00의 사상성향 등을 알아본 뒤 이들을 민애전에 가입시키기로 결심하고 위 최호경의 지시에 따라 동 피고인이 주도하여 민애전 가입식을 거행하였고 또한 동인들과 동 피고인 등 4인으로 구성된 조애전 결성식을 한 사실,

위 결성식에도 조선로동당기를 벽에 붙이고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놓은 다음 그 앞에서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고…위 이철우를 춘천지역의 지도책으로 임명한 사실, 그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을 한 원심의 조처는 모두 정당하므로 동 피고인의 주장들은 모두 이유 없다…,

그와 같은 민애전은 정식명칭은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이고 민애전은 그 위장명칭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
...............................................................................................
■ 이철우 의원 사건 1심 판결문 요지
1. 피고인 이철우는

가. 0. 1992.1. 중순 일자불상 12:00경 서울 종로2가 소재 YMCA 부근 상호불상 2층 다방에서 위 ‘반미청년회’의 전국학생 지도위원이었던 공소외 양홍관(33세, 민족해방 애국전선 강원도위원장)을 만나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하다가 그로부터

- 우리가 반미청년회 활동을 함께 했던 경험으로 보아 지도핵심조직의 전국적인 지도가 없기 때문에 현재운동이 침체되어 있다.

- 과거 반미청년회는 조직이 산만했고 단결력이 부족하여 실패했었다.

- 새로운 대중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반미청년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질적으로 견고한 새로운 사업을 할려고 한다.

- 이형과 같이 일해보고 싶은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말을 듣고

- 지금으로서는 아직 마음의 정리도 안 되어 있고 건강도 안 좋은 상태이니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

고 한 후 헤어지고

0. 같은 해 1. 하순 일자불상 12:00경 종로2가 소재 상호불상 한식당에서 위 양홍관을 만나 같이 점심식사를 한 후 종로3가 방향으로 걸으면서 위 양홍관으로부터

- 오늘 긴히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 사실 나는 한민전의 노선에 따르는 지하당에 입당했다.

- 나와 함께 위 지하당에 입당하여 일해 보자
라고 이야기하여 그에게

- 깜짝 놀랐다. 한민전이 멀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이 한민전 성원이 있을 줄은 몰랐다.

- 입당 결정문제는 중요한 일인만큼 개인적으로 시간적 여유를 가져보고 결정하였다.
라고 대답하고

0. 같은 해 2. 중순 18:00경 동대문구 청량리 소재 2.2.3. 레스토랑에서 위 양홍관을 만나 그로부터

- 지난번 제의한 입당문제를 결심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에게

- 한민전은 운동하는 사람이면 모두 가입하고 싶어하고 한민전 성원이라도 한번 봤으면 하는 조직인데 내가 자격이 있겠느냐
고 묻자 양홍관이

- 이형은 경험도 있고 그동안 이형의 행동을 보면 믿을 수 있다.
고 대답하여 그에게

- 홍관이 형을 믿지만 단지 믿는 것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 홍관이 형이 한민전 성원이라는 것을 확인해 달라.
고 요구한 후 동인으로부터

- 그러면 내가 당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테니 확인하라

- 0월 0일(일자불상)24:00 평양중앙방송에 적기가가 나오고 다음에
ㅤㅉㅗㄲ 평양에 있는 이철봉이가 서울에 있는 박춘호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ㅤㅉㅗㄲ 또는 평양에 있는 이철봉이가 서울에 있는 박춘호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정에 의해 다음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라는 내용이 방송될 것이니 들어보고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 알았다 확인해 보겠다

… (중략) …

0 같은 해 3월 중순 19:00경 신답전철역 부근 상호불상 레스토랑에서 양홍관을 만나 그로부터

- 평양중앙방송을 확인해 보았느냐
는 질문을 받고 그에게

- 방송내용이 잡음이 많아 잘 듣지는 못했지만 그것으로 홍관이 형을 믿겠다

- 능력은 없지만 입당을 결심하였다. 반미청년회의 경험을 살려 열심히 일해보겠다
고 가입결의를 표명하자, 그는

- 입당을 결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이제 한민전의 성원으로서 함께 일해보자

- 한민전은 절대로 모든 사업을 직접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 그렇기 때문에 비서와 연락책을 우선 물색하도록 하라
고 지시하여…”

… (중략) …

-앞으로 이형은 모든 운동관계를 단절하고 철저히 합법적 생활을 하며 입당사실을 누구한테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 (중략) …

라고 지시한 후 피고인에게

-이형의 한민전 가입식은 4월 18일 갖도록 할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날 20:00경 청량리 지하철역 승강장 중간에서 보자.

-그날 나올 때 활동경력과 신념, 사상 등을 포함한 개인신상 명세서를 적어가지고 나와라고 하여 승낙한 후

0. 같은 해 4. 18 약속장소에서 … (중략) …위 양홍관을 만나 동인의 안내로 중랑구 망우동 178의 1 소재 지하층 방에 도착, 위 양홍관이 북한 조선노동당기(60.50cm 크기의 붉은천)를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걸고 그 밑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51cm.58cm)를 각각 전시한 다음 당기와 초상화를 바라보고 우측에 양홍관, 좌측에 피고인이 나란히 서서 양홍관이

- 지금부터 입당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라고 선포한 후 피고인과 양홍관은 함께 오른손을 들고 피고인이

-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조선노동당이 치켜든 찬란한 주체의 햇불을 따라 장엄한 역사적 진군을 시작하는 성스런 이 시각에 조국과 민중 앞에 지난 숭고한 사명을 심장깊이 새기며 영광스런 우리 조선노동당과 수령님 앞에서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1.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1.나는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1.나는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중의 벗이다
1.나는 목숨바쳐 한국민족민주전선과 혁명을 지킨다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실 그날을 가슴 벅차게 그려보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이 땅에서 실현할 우리 한국의 혁명가들은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수령, 조국과 민중앞에 다진 우리의 맹세를 지켜갈 것이다. 우리는 주체의 붉은 깃발을 놓지 않을 것이다.
등의 내용의 맹세문을 낭독한 후, 위 양홍관으로부터

-이 영광된 날 이철우 동지의 입당을 축하하며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지도자 동지를 조국통일의 그날에 모실 것을 끝까지 투쟁으로 쟁취하자.

라는 격려의 말과 가명 ‘강재수’. 당번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고 미리 작성해 온 신원사항, 활동경력 및 신념, 현재의 생활상 등 내용을 적은 개인 신상명세서를 제출한 후, 조직사업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위 양홍관으로부터

-우리는 강원도지역 조직사업을 할 것이므로 앞으로 강원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해보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합법적 신분의 공고화이며 서두르지 말고 사업하라
는 지시를 받고 계속하여

-내가 한 사람을 소개시켜 줄테니 일주일 뒤인 4월말 오후 7시경 청량리시장 부근 투투쓰리(2.2.3)레스토랑에서 스포츠신문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기다리는 여자를 만나보고 잘 교육해서 비서로 활용하라.

-약속장소에 가서 재수씨가 여자에게 먼저 ‘석태’씨 입니까 라고 물어 ‘네’라고 대답을 확인하고, 재수씨는 ‘태석’입니다 라고 하여 만나라.
는 지시를 받는 등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구성된 반국가단체인 민족해방 애국전선에 가입, 그 구성원이 되고

… (중략) …

0. 같은 해 6.6. 11:00 경 서울역 지하철구내 승강장에서 위 양 양홍관과 만나 그에게

- 입당식 장소는 정해 놓았다.

- 오후 1시경 태릉옥사 입구 사거리에 있는 45번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나자.
고 보고한 후 동일 13:30경 약속장소에서 위 양홍관, 공소외 이OO(30세), 동 최OO(30세) 등 3명을 만나 사전 물색해 놓은 위 임OO의 집으로 가서 위 양홍관의 소개로 상호인사를 나눈 후 조국통일 애국전선 결성식 및 위 이OO, 동 최OO의 민족해방 애국전선 입당식을 위해 위 양홍관이 북한 조선노동당기(60·50cm 크기의 붉은 천)를 스카치 테이프로 벽에 걸고 그 밑에 있는 전축 위의 벽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기대어 전시한 다음

- 벽을 바라보고 우측에서부터 이OO, 최OO, 이철우 순으로 일렬횡대로 서라

- 맹세문은 오늘 당 가입하는 두 사람 중 최OO이 혼자 낭독하고 마지막 결의부분은 이OO와 같이 낭독하라

- 입당선서시 모두 오른쪽 팔을 들어라
라고 지시하여 그 지시대로 도열, 입당식 준비를 마치고 동일 14:30경 위 양홍관은 이OO의 오른쪽에 서서

- 지금부터 이OO, 최OO 두 동지의 민족해방 애국전선 입당식 및 조국통일 애국전선 결성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선포를 한 후 이OO, 최OO이 맹세문을 같이 붙잡고 위 ‘1의 가항’기재 맹세문을 낭독한 후 이어
서 위 양홍관이 ‘조국통일 애국전선’ 규약(16절지 모조단면 복사본)

… (중략) …

등 내용을 낭독한 후 위 양홍관으로부터

- 오늘 사용한 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는 재수씨가 보관하고 있어라

- 보관할 때는 플라스틱 용기에 방습제를 넣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땅속에 묻고 약도를 상세히 나에게 달라

는 지시를 받고 피고인은 즉석에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의 액자를 탈거하여 동 초상화와 당기를 서류봉투에 넣고 곧바로 동소를 나와 피고인 소유 경기 2루 2546호 프라이드 승용차를 이용하여 동일 20:00경 경기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 332 소재 피고인의 본가에 도착한 후 플라스틱 반찬통과 비닐랩, 은박지, 포장김 속에 든 방습제(실리카겔)등을 준비하여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북한 조선노동당기(증제1호), 김일성 초상화(증제2호), 김정일 초상화(증제3호)를 성인 손바닥크기로 접어서 포장하여 플라스틱 반찬통 속에 넣은 다음 본가의 농기구 보관창고내에 있는 벼 모판사이에 은닉, 보관” 하였다. (이하 생략)

[ 2012-01-09, 10:50 ]
[ 2012-01-16, 16: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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