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가연합’ 주창한 문성근의 親北ㆍ反국가성
‘민통당’ 2인자로 부상한 문성근은 누구?

趙成豪(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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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 때 김정일에게 미소짓는
문성근 (左에서 두 번째)
反헌법적 통일방안인 ‘남북국가연합’을 主唱(주창)한 문성근은 2003년 비밀리에 訪北(방북)하고, ‘百萬民亂(백만민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 文 씨는 2011년 12월2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黨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政見(정견)발표에서 “내년 총선 이후 민통당(민주통합당) 대표단을 꾸려서 訪北(방북)을 신청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절단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다음 민주정부 5년 동안 남북간 국가연합까지 성취해내겠다”고 강조했다.

文 씨의 ‘남북한국가연합’ 주장은 反헌법적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본다. 북한은 헌법 제3조(‘영토조항’)에 의해 대한민국 영토이다. 헌법은 평화적 자유통일(헌법 제4조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원칙) 이외의 어떤 방안도 不許(불허)하고 있다. 그는 反국가단체(북한)를 국가로 인정하고 北과 연합해야 한다는 反헌법적 주장을 한 셈이다.


2003년ㆍ2007년 두 차례 訪北

■ 文 씨는, 2003년 노무현의 親書(친서)를 가지고 비밀리에 訪北했던 사실도 공개했었다.

2011년 6월16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2003년 가을 訪北했던 사실을 전하며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과 의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친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訪北 배경에 대해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는데 초기에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하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文 씨는 방북 후 북한의 대남정책 책임자였던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2003년 10월 사망)에게 노 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김용순은 文 씨에게 “親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잘 전달됐다”고 전했다. (2011년 6월16일 <오마이뉴스> 보도 인용) 그는 2007년 10월엔, ‘노무현-김정일’ 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또 다시 訪北했었다.


김정일 죽자 트위터에 弔意(조의) 표명

■ 文 씨는 김정일이 사망하자 앞장서 弔意(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오후 12시 30분 대한문에서 민통당 당 대표 출마선언에 앞서 다음과 같이 조의를 표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어 “김 위원장(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상호번영을 위해 6ㆍ15선언과 10ㆍ4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신은 이후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라며 김정일의 죽음을 추모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에선 文 씨의 행태를 비판했다. 한 네티즌들은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만행엔 침묵했던 文 씨가 김정일 죽음엔 조의를 표한 것은 그의 국가관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도, 지난 1월3일 열린 ‘2012년 한나라당 부산시당 신년교례회’에서 文 씨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그(문성근)는 자신이 개설한 ‘민란’ 사이트에 ‘남북관계의 파탄을 불러온 한나라당 정권을 2012년에 끝장내 다시 민주정부를 세우자’고 선전·선동하며, 국가보안법 철폐 연설을 하고, 김정일의 죽음에 弔意(조의)를 표하고, 천안함 사태를 北風(북풍)이라며 親北(친북) 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민란가’ 작사ㆍ작곡자는 ‘김일성 찬양노래’ 작곡한 국보법 위반자

■ 그는 2010년 8월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란 단체를 만들어 ‘백만민란 운동’을 주도했다.

‘야권통합’을 명목으로 기획된 이 운동은 反이명박, 反한나라당 성향을 띤 사실상 反정부 운동이다. 현재 ‘백만민란’에 참여한 회원은 약 18만 5000명 정도이며, 유료 회원은 약 7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文 씨는 ‘100만 민란 프로젝트 제안서’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暴擧(폭거)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ㆍ진보진영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내자”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서민경제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南北관계의 파탄을 불러온 한나라당 정권을 2012년에 끝장내 다시 민주정부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백만민란’의 민란가 ‘하나가 되라, 유쾌한 100만 민란의 승리를 위하여’도 논란이 됐다. 이 노래의 작사ㆍ작곡가인 윤민석은 공안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 윤 씨는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 김일성 찬양노래를 작곡한 적이 있으며, 국보법 위반으로 4차례나 구속된 前歷도 있다.

같은 해 10월6일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로 밝혀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 노동당 서열 22위인 이선실(2000년 사망)과 김낙중 등이 1995년에 共産(공산)통일을 목표로 계획한 대표적인 간첩사건 중 하나이다.


“‘民亂(민란)’은 사회 질서 어지럽힌다는 뜻의 단어”

■ 애국진영에서는 文 씨의 ‘백만민란’을 ‘內亂(내란)’으로 규정했다. 2011년 4월11일,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는 2011년 4월5일 <코나스>에 기고한 글에서 “실제 상황에서 횃불과 죽창을 들고 ‘민란’을 외치는 것은 촛불은 비교할 바가 아닌 폭력 선동이요, 내란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국민의 명령’ 앞에 백만송이를, ‘민란’ 앞에는 ‘유쾌한’이란 수식어를 붙여 ‘민란’이 마치 국민이 명령하는 꽃처럼 아름다운 ‘민주화 운동’이라도 되는 양 좋은 의미로 포장해 폭동과 소요를 美化시켰다”고 했다. 일종의 용어혼란 戰術(전술)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1월28일, 라이트코리아와 녹색전국연합, 미래청년연합은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성근 씨를 공직선거법 254조ㆍ형법 90조를 근거로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被고발인은 선관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2012년 바꿉시다. 유쾌한 100만 민란’이라는 대형 문구가 부착된 차량을 운행하면서 집회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관위의 경고도 아랑곳 않는 被고발인은 범법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며 법 질서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被고발인이 단체명에 사용하는 ‘民亂(민란)’이라는 단어는 법률적으로도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규정한 단어이며 ‘민란 프로젝트’는 ‘내란 음모’, ‘내란 선동’과 그 의미가 같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대로 그의 부친은 1989년 密入北(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난 적이 있는 문익환 목사(1994년 사망)이다. 文 목사 역시 김일성을 만나고 온 직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문익환은 1989년 (밀입북)해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대한민국 대표자가 아니었음에도 김일성과 ‘통일3단계방안 원칙’에 합의했다. 그는 ‘反국가단체잠입죄’의 혐의로 투옥됐었으며, 利敵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갑제닷컴)

[ 2012-01-17, 13: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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