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김정일이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
독재자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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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한지도 1개월이 넘었다.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그의 권력은 삼남(三男) 김정은에게 빠르게 이양됐다. 그러나 김정일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 필자(筆者)만은 아닐 것이다.

김정일 망령에 붙들린 김정은

북한의 공식매체는 연일 김정일을 김정은과 동일시하며 선전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신문>은 최근 사설을 통해 김정일의 유훈(遺訓)을 강조하며 김정일과 김정은을 찬양했다. 신문은 김정일의 선군사상의 승계를 주장하며 “선군의 깃발을 높이 들어 국방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군’의 승계가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선군은 대외적으로 어떤 모습을 띄게 될 것인가?

김정일의 사망 직후 일본뿐만 아니라 韓美양국에서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조가 주류를 형성했다. 筆者의 경우에도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한반도의 유동화를 피하고 싶은 중국은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더 많은 경제지원을 제공할 것은 확실하다.

중국의 對北지원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북한은 2005년 중북 국경지대에 위치한 함경북도 무산 철광의 개발-채굴권을 중국에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미 이때부터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북한은 그러나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을 강화하는 한편 ‘선군’을 기치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시키면서 이를 對美외교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무산 광산의 개발-채굴권을 중국에 양도한 다음해인 2006년 북한은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한 뒤, 첫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과 핵과 미사일을 통해 對美 공갈을 하는 행위는 동시에 이뤄졌다.

6자 회담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중국이 북한과의 쌍방관계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면 6자회담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문제를 美北 관계에 기인하는 문제라고 붙잡고 있기 때문에 6자 회담에 미국이 참여한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을 미국과 공유, 美中北 3개국 협의체가 생긴 뒤 이것이 이후 6자 회담의 모체가 되었다. 다시 말해 6자회담은 중국이 미국을 포함시킨 다자간 관계로 북한을 제어하자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국을 자청하고, 북한 핵 개발을 컨트롤 하려했다.

그러나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당시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이 요구하는 朝美협의에 응했다. 이후 6자 회담은 미국과 북한의 협의를 주축으로 전개됐다. 그러다 2009년 북한이 2번째 핵실험을 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6자 회담은 허울에 불과하다.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美北협의없이 6자 회담이 있을 수 없다. 이는 중국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이 북한 문제로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는 순간 북한의 선군 외교는 파탄 나게 되어 있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야 美北협의가 가능하게 된다. 중국이 골머리를 앓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수중으로 들어간 핵과 미사일

김정은이 김일성의 ‘선군’외교를 계승하고 있다는 예조는 공동사설 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5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은 북한이 “이미 당당한 핵보유국”이라고 밝힌 뒤, “핵억지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혁명유산”이라고 했다.

같은 달 20일 북한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은이 “인공위성발사, 핵실험 등 국가의 위력을 최강으로 하는 장대한 작전을 진두지휘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했다. 북한은 지금 핵과 미사일 개발까지 김정은의 업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북한이 혁명유산이라고 밝힌 핵억지력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북한은 미사일 탑재를 위해 핵탄두의 소형화를 진척시키는 한편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연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2009년 4월 발사된 대포동 2호의 경우 美본토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억지력은 아직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에서 ‘버섯구름’을 만들 능력이 안 된다. 그러나 북한이 선군을 내거는 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중국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예견할 수 있는 장래 對美외교에서 기동력(機動力)을 발휘할 것만은 분명하다.

번역/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원제] 北の対米恫喝は息子の代も続く
[필자] 쿠라다 히데야(倉田秀也), 日방위대학교 교수
[출처] 1월30일자 日산케이신문 인터넷리뷰

 

[ 2012-01-30, 1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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