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능아란 자백들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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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나는 머리가 나쁩니다'라고 고백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들이 주로 그런 자백을 하고 있다. 서해 도발의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북한으로부터 확실하게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공격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논법은 '나는 저능아'라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북한한테 책임을 추궁하면 북한정권이 전쟁으로 나올 것이라는 뜻인 모양인데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철없는 이야기이다. 전쟁을 하려는 쪽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자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정권이 그런 체면 문제로 韓美동맹에 대해 전쟁을 걸어온다는 것은 자살의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김정일 일당은 골발바닥 요리를 먹고 벤츠를 타면서 수단 수박과 파리의 아이스크림을 비행기로 날라와 꼬냑을 마시면서 하루 하루를 즐긴다. 피자 요리사를 이탈리아에서 초청하여 오고 우스개 잘 하는 일본 여자 코메디언을 데리고 와서 노는 그들이다. 이런 김정일 집단이 왜 전쟁을 선택하여 자멸의 길로 나아간단 말인가.
  전쟁을 준비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키면 북한이 곧 전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막말을 하는 사람은 전쟁이 주먹질 같은 즉석 불고기인 줄 착각한 문외한들이다.
  개미를 잡기 위해서 꼭 화염방사기를 사용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고속정이 침몰했다고 해서 원자폭탄을 써서 보복할 필요는 없다. 국가는 수많은 응징 수단을 갖고 있다. 경제제재, 금강산 관광 중지, 도발한 경비정 추적 격침, 책임자 처벌 관철 등이 여러 응징 수단 중 전쟁으로 갈 위험이 전혀 없는 몇 가지 방법이다.
  북한정권에 대해서 재발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전쟁하자는 말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햇볕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전쟁하자는 사람들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論法을 구사하고 있다. 이 말은 '굴욕이냐 전쟁이냐'의 양자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수십개의 선택 방도가 있는데 두 개만 지정하여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햇볕정책 이외엔 代案이 없다란 말도 그런 수준의 헛 소리이다. 모든 정책에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실패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후보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는 외통수는 저능아들이 만든 정책이다. 代案이 없는 정책이 햇볕정책이라면 이를 입안하고 집행한 사람은 조국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로서 문책대상이 된다.
  金大中 대통령은 북한정권의 차관보급 관리가 한 '유감'이란 말을 '사과'라고 해석했다. 일본측이 한 '유감'은 '사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우리 정부가 아닌가. 그 며칠 뒤 북한정권은 '한국의 강경파들이 미국의 對北정책에 따라 서해 도발을 일으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도 '사과'인가.
  대통령은 국가원수 및 국군통수권자로서 대한민국의 권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金대통령이 金正日에게 보여준 굴욕적 태도로 해서 많은 한국인들은 자존심이 상해 있다. 북한의 1년 GNP(국민총생산)는 인구 50만인 제주도와 거의 비슷하다. 그런 북한정권에게 金大中대통령은 왜 그렇게 약한가. '무슨 약점이라도 잡혀 있단 말인가'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금명간 쌀 30만톤을 또 북한정권에 공짜로 줄 모양인데 왜 이런 조건을 달지 못하는가 말이다. '1952년 이승만 정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8만 명이 납북되었다. 그 명단도 여기 있다. 이분들에 대해 생사 확인을 해주면 30만톤을 주겠다'
  북한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주고 안받으면 안주는 것이다. 金大中 정권은 그러나 이런 조건을 달 용기와 원칙을 포기한 지 오래이다. 남북 頂上 회담 이후 63명의 남파간첩과 빨치산들을 북송할 때 金大中 정권은 일본인 납치범 辛光洙도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그가 납치했다고 자백한 일본인 하라타다아키의 생사 여부도 묻지 않았다. 이는 김대중 정권이 북한의 납치범죄에 대해 증거 인멸을 대신 해준 셈이다. 신광수야말로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었던 것이다.
  
  
출처 :
[ 2002-07-31, 18: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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