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前歷 한명숙의 피냄새 나는 선동연설
이는 명백한 계급혁명 선동이다. 국민을 자의적으로 1%의 특권층과 99%의 서민 중산층으로 분열시켜 적대감을 부추긴 것이 전형적인 좌익 행태이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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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북한정권에 충성하는 지하 공산당 통혁당에 참여, 實刑을 살았고 전향 선언을 한 적이 없는 한명숙 민통당 대표는 오늘 라디오 연설에서, "2012년은 99% 서민과 중산층이 1% 특권층을 이기는 해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1% 재벌과 특권층만을 위한 정권, 탐욕과 무책임으로 붕괴된 시장 질서를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연합뉴스 인용).
  
  


  2011년 5월23일, 덕수궁 앞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식에서 태극기를 밟고 선 한명숙


  
  
  이는 명백한 계급혁명 선동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재벌과 특권층을 위하여 복무하는 계급정권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자의적으로 1%의 특권층과 99%의 서민 중산층으로 분열시켜 적대감을 부추긴 것이 전형적인 좌익 행태이다. 좌익적 계급투쟁 시각에 따라 국민국가를 착취계층과 피착취계층으로 나눈 것이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우리 헌법은 계급적 특권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다. 0.00001%의 소수라도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그들이 기업인이든 장애인이든 관계 없이. 정치적 단위로선 '국민'이 있을 뿐이다.
  
  소득 상위 1%가 소득세의 45%를 내고 소득 발생자의 40%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데 한명숙식으로 1%를 괴롭히면 결국은 서민과 중산층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1%가 돈벌이 의욕을 잃는 순간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부닥치고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세금 부담은 는다. 광우병 폭란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정당, 간첩사건 연루자가 작사 작곡한 黨歌를 부르는 정당, 권력형 부패 혐의로 재판중인 대표와 총장이 있는 정당이 국민분열과 적대감을 선동한다. 피냄새가 난다. 태극기를 밟고 선 사진으로 유명해진 한명숙씨는 자신이 공산주의자인지, 자유민주주의자인지부터 국민들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저렇게 대한민국 건설세력을 저주하는 한명숙의 증오심은 민족반역의 북한 金家집단 앞에선 눈 녹듯 사라진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는 탈무드의 말이 생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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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1일 라디오 연설 全文
  
  
  제목 : '더 큰 기회,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삶'을 위한 경제민주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민이 선택한 첫 번째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한명숙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설 명절 잘 지내셨는지요. 온 가족이 함께 정성스럽게 음식도 장만하시고 어르신들께 세배도 드리며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 하시기 바랍니다.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에 지방을 돌면서 참 많은 국민들을 만났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만나 뵙고,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축산농가에서 소를 키우는 농민도 만났고, 저축은행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분들로부터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들었습니다. 살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씀에 저는 억장이 무너지곤 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국민들이 왜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국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의 절망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 취직 뒷바라지를 위해서 새벽 장사를 놓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부자(富者) 부모가 아닌 것이 가장 미안하다고 자기 탓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무조건 국민 편에서 서서 일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99% 대한민국을 위한 변화와 희망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가폭등, 전셋값 상승, 치솟는 교육비, 가계부채는 이미 그 위험 수위를 벌써 넘어버렸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국민의 삶은 날로 날로 더욱 피폐해 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탓이 아닙니다. 젊은 청년들의 탓도 아닙니다. 물론 어르신들의 탓도 아닙니다. 그 어떤 국민의 탓도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1% 특권층을 위한 MB 노믹스 때문입니다.
  
  MB정부 4년 동안 99%의 서민층을 무시한 경제정책 때문입니다. 성장만능주의에 입각해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그리고 재벌 규제완화는 낙수효과는커녕 재벌의 경제력 집중만 키웠습니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30대 재벌 계열사가 359개나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150개로 증가했습니다.
  
  반면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재벌의 먹잇감이 되고 대기업 간판을 단 대형마트들이 골목상권 곳곳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불안한 고용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취업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청년들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마저 받고 있습니다.
  
  등록금 걱정에 도서관을 찾아야할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대학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청년 수난시대입니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 4년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줄푸세를 타고 747 국민 성공시대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4년이 지난 MB정부는 국민성공시대가 아닌 재벌만 성공 시대를 열고야 말았습니다.
  
  재벌의 독점, 독식, 독주를 열어준 MB 노믹스, 근본적으로 바꿔야합니다. 1% 특권층에게 장악된 국민경제를 99%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MB 노믹스의 우산아래 재벌과 특권층이 장악한 국민경제, 경제민주화를 통해 구해내야 합니다.
  
  경제민주화는 지금 세계적인 시대정신입니다. 1% 특권층의 탐욕을 규탄하는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시장독재와 탐욕이 낳은 금융위기와 소득불평등에 저항해서 젊은이들이 경제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도사였던 다보스포럼도 그들 스스로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탐욕과 불평등과 위기를 조장한 신자유주의의 수정을 스스로가 외치고 있습니다.
  
  영국 노동당은 불평등이라는 시대상황에 직면해서 새롭고 책임성 있는 경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공정한 기회, 공정한 책임분담, 공정한 규칙준수를 역설했습니다.
  
  전 세계가 낡은 경제 시스템, 1% 특권층에 의한 불평등한 경제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나서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민주통합당도 경제민주화란 시대정신을 받들겠습니다. 99% 중산층과 서민에게 더 큰 기회, 더 많은 일자리, 그리고 더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해 ‘헌법 119조’가 명령하는 경제민주화를 이뤄내겠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자감세와 재벌 프렌들리로 대표되는 MB 노믹스의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해왔습니다.
  
  또한 이미 작년 7월 당내에 외부전문가를 중심으로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특위’, ‘보편적 복지특위’를 발족시켜 정책대안을 마련해 왔습니다. 올해 1월에는 한국판 버핏세인 1% 슈퍼부자증세를 논의하기 위해 ‘조세개혁특위’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첫 신호탄으로 재벌개혁을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고,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 보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국민경제를 독점, 독식, 독주하는 3가지 ‘독’을 풀기 위한 첫 번째 해법입니다.
  
  앞으로도 민주통합당은 99% 서민과 중산층이 활짝 웃는 국민경제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 할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정책을 넘어, 국민의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이 눈물 흘리고 좌절하는 독점, 독식, 독주의 ‘3독 경제’는 멈춰야합니다.
  
  이제 재벌과 중소기업, 재벌과 노동자, 재벌과 서민이 함께 잘 사는 공생, 공정, 공존의 ‘3공 경제’로 나아갈 것입니다.
  
  2012년은 99% 서민과 중산층이 1% 특권층을 이기는 해가 될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이 국민과 함께 1% 재벌과 특권층만을 위한 정권, 탐욕과 무책임으로 붕괴된 시장 질서를 반드시 바로잡아 내겠습니다.
  
  영하 10도의 엄동설한의 이른 아침,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망을 안고 힘찬 하루를 시작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민주화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십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이 국민여러분 편에 서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언제나 국민 여러분의 편에 서서 여러분의 행복을 이끌어 내겠습니다.
  
  국민여러분!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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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숙, 통혁당, 中央黨과 地下黨에 대한 小考
   "통혁당은 北지령받는 지하당이 분명" 주범 김질락의 自認
  金成昱
  
  
   <앞에 이어> 한명숙 前총리의 사상과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韓 前총리는 1968년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 朴聖焌(박성준)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당시 朴聖焌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刑(형)이 확정됐다. 韓 前총리는 징역 1년, 집행유예1년, 자격정지1년 형을 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金瓆洛(김질락)·申榮福(신영복) 주도의「민족해방애국전선」과 李文奎(이문규)·李在學(이재학) 주도의「조국해방전선」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非합법, 폭력·非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共産政權(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A4 용지 1000여 쪽에 달하는 통혁당 관련 판결문은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통일혁명당이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 잡지 반포, 당소조의 조직, 당원에의 적색사상 교양, 데모 조정, 해안선 답사, 유격전술요원 입북, 간부진의 빈번한 入北(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
  
   <『北지령받는 지하당이 분명』주범 김질락의 自認>
  
   통혁당의 기본성격은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地下黨(지하당)이었다.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越北(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黨員(당원)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越北(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에 머물렀다.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 金鍾泰(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미화) 7만 달러, 韓貨(한화) 3천만 원, 日貨(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간첩지령형식인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揚陸(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
  
   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金鍾泰(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북한 753부대 소속 武裝工作船(무장공작선)은 68년 8월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李承卓(이승탁), 金一龍(김일룡)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북한정권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주범 중 한 명인 金瓆洛(김질락)은 옥중유고 「주암산」에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비밀 地下黨(지하당) 조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 없고 통혁당의 조직상황과 활동상황이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 됐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쓴 바 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월북 당시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에게 『우리 통혁당은 남조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地下黨(지하당)임을 자처하고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각계각층에 대한 군중공작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적고 있다.
  
   康仁德(강인덕) 前 통일부장관은 자신의 저서「공산주의와 통일전선」에서 조선로동당과 통혁당은 지령을 내리고 받는 中央黨(중앙당)과 地下黨(지하당) 관계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통일혁명당은 출발부터 북한 中央黨(중앙당)의 하부조직으로 발생한 것이다. 통일혁명당 창건의 필요성, 그리고 조직적 사상적 준비는 모두 북한 조선로동당이 계획한 것이다...당원은 제각기 독립된 인자로서 핵심을 유지하며 평양에서 발신하는 지령에 따라 단독으로 활동하면서 그 경과를 중앙당 대남사업 담당부서에 보고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남한 내 地下黨(지하당)은 「남조선혁명의 참모부」가 아니며 한낱 「말단초소」에 불과하다》
  
   <黨 소조책과 黨 소조>
  
   당시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韓 前총리의 남편 朴聖焌씨(당시 서울대경제학과 4년. 25세)는 1967년 6월 申榮福(신영복)에게 포섭된「黨(당) 小組責(소조책)」으로서 妻(처) 한명숙 및 朴OO, 金OO 등을 小組(소조)로 포섭했다. 그는 『서울 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資本主義(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는 것이다.
  
   공안전문가 A씨는 黨小組責(당소조책)과 小組(소조)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지하당에서 입당한 당원 중 최소 조직을 細胞(세포)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3명의 당원이 1개 세포를 이루며, 3개 세포가 1개 小組를 이룬다. 小組와 細胞는 지하당 활동의 최소 조직을 가리킨다. 지하당의 小組와 細胞,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간부인 黨小組責이었다는 것은 당연히 地下黨(지하당)에 입당한 黨員(당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朴聖焌씨와 같은 黨小組責(당소조책)을 「통혁당 幹部(간부)」로 판단했고,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여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朴聖焌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당시 韓 前총리의 통혁당 사건 관련 판결문은 이러했다.
  
   《북괴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反국가단체로서, 북괴가 간행하는 표현물이나 기타 사회주의 서적을 반포하는 행위는 북괴가 시도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피고인 한명숙 등은 박성준으로부터 북괴 간행 「청춘의 노래」를 빌려 받고, 박성준의 부탁으로 엥겔스가 쓴 「사회사상총설」 1권을 받아 그 책에 있는 「공산당 선언」을 노트에 필기하고, 박성준의 지시로 이○○, 최○○와 같이 읽고 反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한편 찬양-고무하는 표현물을 취득 복사, 보관, 반포하여 북괴를 이롭게 했다》
  
   <中情, 『地下黨(지하당) 입당은 中央黨(중앙당)에 등록』>
  
   조선로동당과 통혁당은 中央黨(중앙당)과 地下黨(지하당) 관계이며, 통혁당 주범인 김종태 등은 물론 朴聖焌씨 역시 地下黨인 통혁당에 入黨한 것으로 판단됐다. 그렇다면 이 地下黨 入黨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중앙정보부가 1973년 펴 낸「북한대남공작사」에 따르면, 『地下黨(지하당) 입당은 혁명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맹세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며, 비준은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으로부터 당원비준의 권한을 위임받은 공작원만이 할 수 있고, 최종결정은 역시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에 보고했을 때 이뤄진다. 지하당은 보안상 당증을 발급하지 않지만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에 등록돼 있는 일정한 番號(번호)를 수여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地下黨(지하당)인 통혁당에 입당했던 이들은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 담당부서에 기록이 남겨 있을 것이란 뜻이 된다.
  
   黃長燁(황장엽) 前 조선로동당 비서와 함께 97년 탈북한 金德弘(김덕홍) 前 여광무역 대표는 『한번 입당을 하면 영원한 고리가 된다』며 入黨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입당기록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당원등록과에 등록이 됩니다. 특히 남한 내 地下黨(지하당) 입당은 대남공작활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선로동당 비밀문서과·해당 공안부서 담당과 등에도 기록돼 永久(영구)관리되죠. 아마도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이 같은 기록들은 모두 공개될 것입니다』
  
   <평양에 김종태 거리, 北 통혁당 연루자들 영웅화>
  
   통혁당 사건의 주범인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사형을 당했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통혁당 사건 이후 연루자들에 대한 영웅화에 나섰다. 69년 1월25일 김종태와 이문규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김종태와 이문규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
  
   김종태는 69년 7월10일 사형집행을 받은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13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구분대·구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
  
   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제1급」 을 추서하고 평양 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 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 거리」가 생겨났다.
  
   69년 11월6일 이문규가 사형을 당하자 역시 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살아남은 최고위급 통혁당 간부인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1988년 특사로 출감했다. 그는 89년 이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었다.
  
   韓 前총리는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이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아내로서 옥바라지 한 것뿐, 알지도 못하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밝혀왔다.
  
   朴聖焌씨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노동당이나 통혁당 같은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포섭된 적도 없다(2006년 4월3일 동아)』,『사건에 연루된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빌려본 게 전부다(2006년 3월27일 오마이뉴스)』,『나는 통혁당과 관련이 없고, 사건에 연루된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빌려본 게 전부다(2006년 3월27일 조선)』,『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책을 빌려 받은 것이 전부인데 15년형을 받았다(2006년 3월25일 문화)』고 밝혔었다.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에 다시 연루>
  
   韓 前총리는 1979년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처벌받았다. 그는 당시 이우재, 장상환, 황한식, 신인령, 김세균과 만나 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 목소리 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판결문은 전한다.
  
   《써클회원 6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속개하기에 앞서 그 집에 있던 라디오를 조작하여 「어버이 수령 김일성…」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괴방송을 함께 들은 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 되어 있는 곳은 以北(이북)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反국가단체인 북괴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에 동조 또는 찬양하여 이를 이롭게 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고인 한명숙은 다른 피고인들에게 「여성문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니 읽어 보라」면서 「조선여성독본」 복사판을 제공하였다》
  
   韓 前총리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과 관련해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조치는 통혁당 사건과는 무관하다.
  
   <끝>
  
  
  
[ 2012-02-01, 09: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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