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당, 남민전 사건 연루자 '이학영 전략공천'
'땅벌작전' 가담, 최원식 前동아건설 회장 집 털고 달아났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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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당이 1970년대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연루자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멘토로 알려진 이학영(사진)을 경기도 군포시 국회의원 후보로 전략 공천했다.

신경민 민통당 대변인은 최근 19대 총선에 출마할 전략공천 지역 후보들의 명단을 발표하며 김부겸 최고위원의 대구출마로 비어있던 군포시 민통당 국회의원 후보로 李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李씨는 주지하다시피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5년 징역형을 받은 국보법 위반 전과자다.

공안당국이 1979년 공개한 ‘남민전’ 사건의 검거경위와 사건개요에 따르면 1964년 인혁당 사건으로 복역한 이재문은 교도소 출감 후 세 차례에 걸쳐 경북대 학생데모를 선동했으며,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 주모자 여정남(死刑)을 배후 조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문은 이후 지하에서 활동하다 1976년 2월 수배된 김병권, 이만성(假名) 등과 함께 조직을 결성, 위원장 자리에 앉아 총무, 조직, 교양, 선전, 출판, 통일전선, 무력, 대외연락, 정보, 재정부와 검열위원회, 서기, 지역책 등 중앙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산하에 ‘민주투쟁국민위원회’(民鬪)라는 전위(前衛)조직을 두고, 그 밑에 다시금 청년, 학생, 농민, 노동, 연합교양 221조 등의 하부조직을 구성했다. 이들은 조직을 만든 뒤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김일성에게 보냈으며 ▲학원과 민중봉기를 통해 정권을 타도, 2차적으로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문화혁신, 인민해방군 창설준비 등을 모의했다.

이와 함께 ▲戰士의 권리의무, 조직부서 등을 정했으며 ▲김일성 主體思想의 확립, 민중포섭, 조직수호, 자기비판 및 학습강화, 심신단련 활동 등을 펼쳤다.

이들은 또 ‘10대 생활규범’, ‘4대 임무’, ‘3대 의무’ 등을 규정 ▲통일전선 운동의 확대 심화와 정치, 무력투쟁, 주체사상의 이론무장 강화 등의 활동계획 ▲大小규모 삐라살포, 대중시위선동, 무력투쟁실행, 각계각층 대표를 망라한 민족해방전선 결성집회 소집 등의 투쟁 계획도 마련했다.

이들은 특히 공산당식 조직위장 방식을 적용, 1대1 추천제에 따라 제적학생, 긴급조치 위반 수형자 등을 위주로 불평분자들을 포섭했다.

조직에 가입한 자들에 대해서는 주모자 이재문이 고안한 ‘남조선해방 전선기(戰線旗)’를 걸어놓고 “나는 투철한 혁명투사로서 남조선 해방전선의 잠정 강령과 규약에 적극찬동하고 민족해방 전사로서 온갖 노력과 재산, 생명을 바쳐 멸사헌신 할 것'이라는 서약 등을 하게 했다.

이들은 조직가입자에게는 위장을 위해 假名을 붙여주었고, 조직 구성원 상호간에도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점조직 활동을 전개하도록 했다.

이들은 또 자금조달을 위해 78년 12월5일 동대문구 휘경동 G모 사장 집을 급습, 현금 등을 강탈하고 이를 소위 ‘봉화산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79년 4월27일에는 서울 강남구 반포동 590의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 집을 차성환, 박석률 등 8명(이학영 가담)이 급습, 경비원 김영철 씨(당시 25세)를 칼로 찔러 중태에 빠트리고 달아나면서 이를 ‘땅벌작전’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 앞서 79년 3월25일에는 서울 종로구 종로1가 보금장 금방 강도 사건(이학영 가담)을 모의하면서 사제폭탄과 총기 등을 제조하면서 각종 흉기를 모으기도 했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발행한 《좌익사건실록》에 따르면 이학영은 전남대 재학 중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 복역 후 무직자로 전전하다, 1978년 남민전 산하 ‘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로 부터 XX택이라는 조직 假名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공안당국은 남민전 사건을 과거 인혁당, 민청학련 조직 간부로 활동한 공산불순분자가 '민주수호' 反체제 활동에 편승, 적화혁명 조직을 구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주모자 이재문은 인혁당 당수로 사형된 도예종과 함께 1961년 10월 남파간첩 김상한의 권유로 인혁당 조직에 가담해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경북도지부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이 때 그는 조직원들에게 북한의 '평화통일5대원칙'을 가르쳤으며, 민청학련 사건 사형자 여정남에게 공산당지하조직원리를 교양, 활동자금까지 지원했다.

이들은 폭약-총탄 등을 불법 입수, 사제 무기류를 제작해 청년 학생층을 포섭한 도시게릴라 활동으로 이른바 '인민해방군'으로의 발전을 기도했다. 이들은 또 1978년 김일성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김일성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안으로 안기는 영광” 등의 문구를 넣어 김일성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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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이학영 등 남민전 연루자 ‘민주화 인사’로 인정

노무현 정권 들어 발족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 이하 민보상위)는 2006년 3월 남민전 관련자 29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민보상위는 신청자 33명 가운데 이학영, 김남주(시인, 1994년 사망)와 그의 부인 박광숙, 이수일(前전교조 위원장), 임준열(現민족문제연구소장), 권오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 후원회 회장) 등의 행위를 유신체제에 항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결정을 내렸다.

민보상위는 이들이 고위 공직자 집에 침입해 금도끼와 패물을 훔친 ‘봉화산 작전’과 최원식 前동아건설 회장 집을 털려다 붙잡힌 ‘땅벌사건(작전)’, 중앙정보부의 자금줄로 생각한 금은방 보금장을 털려고 했던 ‘GS작전’,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소총 1정을 화장실 창을 통해 軍부대 밖으로 빼돌린 총기밀반출사건도 모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남민전 사건 관련자 중 홍세화(現진보신당 대표)와 이재오 의원 등은 신청을 하지 않아 심의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보상위는 2006년 9월 추가로 여타의 남민전 관련자 42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박석률, 윤관덕, 임규영 등에 대해서는 각각 5천만 원씩을, 최석진(崔錫鎭,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승려 法輪의 親兄)에 대해서는 상이보상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 2012-03-01, 12: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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