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교수의 과거 행적 총정리
"한나라당 대신할 정당 만들 준비해야"... 2007년 보수단체 세미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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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
[2012년 3월2일자 기사 再錄]

“애국 진영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다시 세우거나, 도저히 불가능하면 한나라당을 대신할 정당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나와, 그나마 조금 남아 있을 한나라당의 애국 세력과 연대해서 정치판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이상돈 前 새누리당 비대위원, 2007년 5월4일 「4.25재보선 평가세미나」(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 발언>

그러다가...

[1] 이상돈 '촛불시위, 배후 없는 것 같아(?)' 
'촛불시위 10대~30대 바다, 여학생 파워 대단' 극찬
(2008년 6월12일자 보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상돈(前 조선일보 논설위원) 중대 법대 교수가 “(촛불시위의) 확실한 ‘배후’가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촛불시위 반대 운동을 펼쳐온 애국 단체와 논객들을 겨냥, “보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서 이회창 총재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이 교수는 11일 자신의 홈페이지(www.leesangdon.com)에 게재한 칼럼에서 “보수성향의 어르신들은 류근일 선생의 칼럼, 조갑제 선생과 김성욱 기자의 책을 사서 탐독한다. 문제는 이런 분들은 류근일·조갑제·김성욱 씨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보수는 완전히 실패했다. 보수의 완전한 패배는 교보 문고에 가보면 안다. 진보 좌파 책 일색이기 때문”이라며 “보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파는데,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적 자위행위’라고나 할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촛불시위를 보면 그야말로 ‘10대~30대의 바다’이다. 특히 여학생 파워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중략) 이들과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면 ‘배후’를 척결한다고? 그런 확실한 ‘배후’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2008년 6월,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나는 곤혹스러울 뿐이다..(중략) 보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칼럼에서 지난 10일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등 애국단체들이 주도한 ‘국민대회’를 취재한 동아일보 기사를 언급하며 “이회창 총재에 대한 (국회 등원) 기사와 보수단체 집회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다. 조선일보에는 없는 일”이라면서 “동아일보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나를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며칠 전 동아일보에 실린 김순덕 칼럼이 생각났다. ‘시위는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대립이며 시위참여자는 반세계화 세력’이라는 내용의 칼럼이었다”며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 점포를 부셨다면 반세계화 시위일 것이지만, 이 점포들이 시위 때마다 매출이 서너 배 오른다면 그런 시위대가 오히려 세계화 세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한편, 촛불집회에 ‘배후는 없다’는 이 교수의 주장과 달리 정통우파 진영 시민단체 및 조갑제·김성욱 기자 등의 우파 언론인들은 ‘촛불집회’의 주동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래 친북반미(親北反美) 소요를 주도해온 인물 및 조직이라고 일관되게 지적하며, 대(對)좌파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관련, 좌익추적 전문기자인 김성욱 기자는 최근 <프리존> 칼럼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라는 단체는 170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했다고 하지만 핵심은 좌파단체 회의체에 해당하는 ‘한국진보연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우병대책회의 대표 급으로 활동하는 오종렬·한상렬·강기갑·천영세·이석행 등은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라며 “오종렬·한상렬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이며, 강기갑·천영세 의원은 한국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노당 소속이고, 이석행 역시 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 민노총 대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실무진도 마찬가지다. 5월15일 광우병대책회의가 작성한 내부 회의문건에 따르면, 상황실 상근자 12명 중 운영위원장, 사무처장, 대변인 등 핵심간부 6명이 모두 한국진보연대 소속”이며 “나머지는 참여연대가 4명, 다함께 1명(半상근), 나눔 문화 1명(半상근)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김 기자는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달 6일 광우병대책회의 출범식장에서 당시 행사의 사회를 맡아 분위기를 이끌었던 박석운은 한국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었고, 기자회견장 맨 앞자리에는 있던 강기갑·천영세·오종렬·이석행·한상렬 등의 인물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다.
 
 한편, 한국진보연대는 지난 해 9월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 3개 단체를 계승해 출범했고, 이들 단체 역시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한미동맹파기·615선언실천’을 강령상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2] 이상돈, 천안함 어뢰 피격 부정한 사람
李교수의 천안함 사태 분석능력
(2011년 11월28일자 보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당시 우리 軍의 은폐 가능성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해군장교 출신의 李교수는 천안함 폭침 발생(2010년 3월26일) 이후인 지난 해 4월4일 <천안함에 대한 MBC보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4월3일자 MBC 9시 뉴스 보도를 인용, “(천안함이 침몰한) 3월26일 밤 9시15분에 천안함에 어떤 일이 벌어져서 긴급하게 육지(백령도) 방향으로 향하다가 함정이 두 쪽으로 절단되어서 침몰했다”고 주장했었다. 

李교수는 특히 “MBC가 밝혀낸 사실은 ‘건전한 상식’에 부합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MBC 뉴스는 9시15분에 어떤 상황이 있었다는 데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고 생각된다. 그 상황이 어뢰 피격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함장 등 함정의 지휘부가 아무리 작은 어뢰라도 어뢰에 피격된 것을 모른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군은 적의 공격을 가상해서 대비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 잠수정이 귀신처럼 침투해서, 항해 중인 아군 함정의 하부에 귀신처럼 어뢰를 발사해서, 귀신처럼 수중 폭발을 일으켜서, 함정을 칼로 자르듯이 두 동강 냈다는 주장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좀 그렇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李교수는 천안함의 구체적인 제원을 언급하며 ‘선체피로 가능성’, ‘정비 문제’ 등을 제기하며 함정 침몰과 관련,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특히 천안함이 과잉무장으로 피로파괴 됐다는 식의 분석에서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李교수는 문제의 칼럼 어디에도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폭침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고 후 천안함의 제원을 훑어보았는데, 1000톤급 군함에 폭뢰, 어뢰, 하푼 미사일까지 갖추고 있어서 놀랐다. 그 정도 무장이면 2000톤급 프리게이트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함미 쪽에 무장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설계 기준을 넘는 무장을 해서 선체에 피로가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 당국은 이 같은 ‘건전한 상식’에서 제기하는 의문에 대해 무조건 ‘정비를 잘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생존한 천안함 대원들과 2함대의 정비 책임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해야 할 것이다.”

李교수는 문제의 칼럼에서 말미에서 “MBC 보도에 의하면, 누군가 진실을 호도(糊塗)한 것이 분명하다. ‘진실’을 또다시 자유언론과 집단지성이 밝혀낸다면 정부의 신뢰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정부와 軍의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李교수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1주기인 지난 3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이상돈-김호기의 대화, 천안함 1년, 대북정책’이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李교수는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李교수가 줄곧 주장해온 ‘건전한 상식(?)’의 한계이다. 문제는 이 같은 수준의 분석 능력 밖에 없는 인물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됐다는 점이다.

[3] 이상돈 교수의 계속되는 '천안함 폭침(爆沈) 부정'
(2011년 11월29일자 보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며, 우리 정부와 軍의 사건 은폐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해군장교 출신의 李교수는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인 지난 해 4월4일 MBC뉴스 보도를 인용, 천안함이 선체피로로 파괴됐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그는 또 문제의 칼럼을 쓴 다음날(4월5일)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북한 해군이 발사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자, 이에 대한 적극적인 反論 칼럼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당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북한의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이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떠받치는 정황이 많다”면서 “배의 침몰 양태, 북한 해군의 능력, 그리고 북한 정권의 의도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었다.

아래는 당시 金논설위원이 작성한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1999년 6월 호주 해군은 어뢰 발사를 시험했다. 퇴역을 앞둔 2700t급 구축함을 향해 잠수함이 어뢰를 쐈다. 어뢰는 배 중앙 밑바닥 수중에서 터졌다. 거대한 구축함은 중앙 부분이 위로 들어 올려지면서 바로 쪼개졌다. 이어 버블 제트(bubble jet·물기둥을 만드는 가스 분출) 공격으로 배가 완전히 두 동강 났다. 함미(艦尾)는 곧바로, 함수(艦首)는 수 시간 후에 침몰했다. 여러 양태가 천안함과 너무나 비슷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은 몸이 붕 떴다고 증언한다. 천안함도 거의 배 중앙이 쪼개졌고 함수·함미가 호주 군함처럼 가라앉았다. 호주 잠수함은 TNT 300㎏ 어뢰로 2700t 함정을 부쉈다. 천안함은 1200t이니 TNT 130㎏ 이상이면 된다.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의 충격은 TNT 180㎏이었다.

사고 지점은 NLL(북방한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수심이 얕으며 조류가 거세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잠수정 부대에 이런 것쯤은 장난 같은 얘기다. 98년 12월 북한 반잠수정은 여수 앞바다에 등장해 통영 앞바다를 휘젓다가 거제도 바다에서 한국 초계함의 포탄에 맞았다. 96년 6월 북한 잠수정은 강릉 앞바다까지 들어왔다가 꽁치그물에 걸렸다. 이처럼 북한 잠수정의 활동 영역은 한반도 전체다. 강릉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 요원들은 증거를 없애려 다수 동료를 쏴 죽이고 남은 이들이 도주하는 작전을 폈다. 북한 잠수정 부대원은 테러집단 같은 극렬함과 야만성으로 무장돼 있다. 조류나 풍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에서 경비정이 반파되는 패전(敗戰)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수차례 “도발에는 응징이 따르며 남한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지금 같은 미묘한 시기에 도발할 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6자회담 재개와 김정일 방중을 앞두고 대남 도발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모한 북한은 어뢰 공격 정도는 비밀리에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수 있다. 87년 KAL기 폭파도, 96년 강릉 잠수정 침투도 북한은 들키지 않으리라 믿었다. 이번에도 어뢰 파편은 거세고 혼탁한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니 잠수정만 잡히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을 수 있다. 그러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면 이런 일을 당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상황을 종합해볼 때 어뢰가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 1위’로 떠오르고 있다. 내부폭발·암초·피로파괴로는 TNT 180㎏ 정도 되는 충격파가 생기지 않고 승조원의 몸이 붕 뜨지도 않는다는 게 전문가의 거의 공통된 견해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金논설위원의 주장은 매우 정확하고 예리한 분석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金논설위원의 분석에 대해 이상돈 교수는 같은 날 작성한 칼럼에서 金논설위원이 ‘콜프 해협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 어뢰 파편을 바다를 뒤져서라도 찾자고 한데 대해 “콜프 해협 사건이 사실과 너무 다르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金논설위원은 콜프 해협 사건 당시 “46년 영국은 알바니아 영해에서 자국 함정이 침몰하자 바다를 뒤져 독일제 기뢰의 파편 2개를 찾아냈다”면서 쌍글이 저인망 어선을 동원해서 북한 어뢰의 파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李교수는 “1946년 콜프 해협에서 영국 함정은 결코 침몰하지 않았고, 영국 함대가 바다를 뒤져 기뢰 파편 2개를 찾아낸 적도 없다. 구축함 2척이 파손되는 손실을 입은 영국 함대는 알바니아 영해에 들어가서 기뢰를 제거했을 뿐”이라면서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았다. 
 
그러면서 李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북한 해군에 의한 천안함 폭침 가능성을 일관되게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배운 무식자’(Learned Ignoramus)의 전형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 李교수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폭침됐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다음날(2010년 6월6일) 또 다시 칼럼을 작성했다.

그는 천안함이 선체 피로로 인해 침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 자신이 이틀 전(6월4일) 칼럼 내용에 대해 “그 자체가 경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MBC 보도가 진실일 경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가설’이기 때문”이라면서 논조를 이틀 만에 바꾸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천안함이 북한 해군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폭침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李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MBC 보도에 대해서 군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데 비해, 청와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도 의아하다. 나는 혹시 이른바 ‘Wag the Dog’, 즉 내정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대통령이 대외적 위기를 조장해서 국내 정치위기를 탈피하려고 하는 현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오히려 반대되는 현상이 있는 셈이다. MBC 보도가 진실이라면 정부와 군은 중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MBC가 인용한 정부 자료가 진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청와대는 그 사이에서 ‘진실’이 ‘미궁’에 빠지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MBC가 입수한 자료가 ‘사실’이 아니라면 평소에 MBC에 대해 적대적이던 청와대가 발끈해야 하는 데, 지금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천안함 폭침 문제와 관련해 ‘진실’이 ‘미궁’에 빠지는 것을 선호한 쪽은 정부와 軍이 아니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쇄신이라는 미명하에 영입한 이상돈 교수였다. 

[4] 이상돈이 본 이정희: '딱 부러진 자세 인상적'
憲法 '영토조항' 개정론자 심상정에겐 '한 표 찍을까 생각 했었다' 밝혀
(2012년 1월2일자 보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민노당 출신 정치인인 이정희와 심상정에 대해 각각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인 변호사”, “한 표 찍을 생각을 했었다”면서 從北-左派 세력의 대명사인 두 인사를 극찬했던 인물이다.

이정희(민노당 대표)와 심상정(前민노당 의원)은 현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국보법 폐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 주한미군철수, 한미동맹체제 해체를 직접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韓美FTA반대 국회 최루탄 테러의 주역인 김선동 의원이 통합진보당의 원내 부대표이다. 원내대표는 강기갑 의원이다.

■ 천안함 침몰 당시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을 부정했던 이상돈 교수는 2008년 총선 이후인 4월9일 ‘총선 결과 소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정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민노당 비례 3번으로 입성한 이정희 변호사가 눈에 띤다. 국방부 회의 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이정희 씨는 비록 나와 노선은 다르지만 소신 있고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인 젊은 변호사다. 그런 ‘투사’가 진보 쪽에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누구 말대로 한쪽은 ‘명사’가 많고, 다른 쪽은 ‘투사’가 많은 것이다.”

이정희는 서울대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원임용양성평등위원회 위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감사 등을 지내다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이다.

이정희는 韓美FTA국회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린 데 대해 2011년 11월2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김선동 의원, 오늘 하신 일에 대해서 저는 같은 민주노동당 의원이고, 또 당 대표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윤봉길 의사였다, 안중근 의사였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었다.

■ 이상돈 교수는 <경향신문> 2011년 6월14일자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7)/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에서 심상정과 대담을 나눈 뒤,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후기를 남겼다.

李교수는 후기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협상에 반대했던 활동으로 기억되었던 심 대표는 2008년 초에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물론 노회찬 대표와 함게 민노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만든 사건이다. 당시 ‘보수의 승리’에 도취된 이른바 보수 매체는 진보신당의 ‘종북주의 탈피’를 극구 찬양하고 나섰지만, 나는 노조의 뒷받침이 없는 진보 정당이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2008년 총선결과는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는 광우병 파동 때 TV토론에서였다. 나는 정부 측 패널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심 대표를 포함한 야권 측 패널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작년 지방선거 때 심 대표에게 한 표 찍을 생각을 했었는데, 아쉽게도 막판에 사퇴를 했다.”

李교수는 심상정과의 “대화가 끝나고 근처의 커피숍에서 심 대표와 못다 나눈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 沈씨가 李교수에 대해 평가한 발언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심 대표는 ‘교수님 글을 자주 보는데, 다른 것은 모두 진보인데 시장을 중시하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했다. 작별인사를 하고 차를 운전하면서 집으로 오는 동안 ‘한국에서 보수를 하려면 4대강 파헤치는데 찬성하고, 검찰권 남용도 지지하고, 병역기피하고 모피 코트 거치고 살아야 하는 판이니, 이게 도무지 뭔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심상정은 자신과 李교수의 차이가 ‘시장’을 중시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다른 것은 모두 ‘진보’라고 평가했다. 참고로 제17대 대선 당시 민노당 후보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던 심상정(前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영토조항 변경, 南北정상회담 개최, 국보법 폐지, NLL(북방한계선) 폐지, 韓美전시증원훈련 중단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從北정당 민노당 대표 출신의 이정희를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민노당 후보로 대선까지 출마했던 심상정을 총선에서 찍을 생각까지 했다는 이상돈 교수.

李교수는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이정희와 심상정이 공동대표로 있는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해야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았다.

[5] 박근혜 非對委 이상돈: 國軍의 아프간 파병 반대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최후 승자는 이란'(?)
(2012년 1월3일자 보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국군의 아프간 파병에 반대(反對)입장을 표명했던 인물이다.

李교수는 2009년 10월27일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칼럼(제목: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최후 승자는 이란)에서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낸다면 얼마 전 많은 사상자를 낸 이태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고 했었다.

李교수는 “우리는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지만 쿠르드 지역이라서 아무런 탈이 없이 지냈다. 하지만 공수 특전단을 보내고 아무 일이 없었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보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며 국군의 아프간 파병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지 전황(戰況)과 관련해서도 “아프가니스탄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파키스탄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서부 지역에는 아프가니스탄 다수 인종인 파슈튠 족이 살고 있는데, 이 지역은 탈레반의 영향에 들어 있다고 한다”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같은 해 11월2일 KBS ‘이규원의 라디오 정보센터’와의 인터뷰에서도 李교수는 ‘정부의 아프간 파병 확대 방침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성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소수 병력을 보낸 나라들은 면피용으로 보낸 것”이라며 “전투는 미군과 영국군, 캐나다 군이 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나 국제적 위상 같은 체면을 먼저 고려할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李교수는 또 ‘한미관계를 고려해 파병해야 한다는 데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미국이 어려운 지경에 있으니까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면서 ‘줄기차게’ 국군의 아프간 파병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6] 이상돈, 4대강 사업 반대 '분신(焚身) 승려' 옹호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주장
(2012년 1월3일자 보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교수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며 분신자살(焚身自殺)한 승려를 베트남 전쟁 당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던 승려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비구니(比丘尼) 문수(文殊)는 2010년 5월31일 경북 군위군 사직리 유천잠수교 제방에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온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焚身自殺)했다.

당시 승려 文殊의 이른바 소신공양(燒身供養: 부처에게 공양하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위) 소식이 알려지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퇴휴,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등의 인물들이 현장으로 급파되어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사건에 대한 李교수의 해석이다. 그는 2010년 6월1일자 칼럼(제목: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 소식을 접하며)에서 文殊 승려를 언급하며 “스님의 소신공양은 1960년대 초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당시 월남 스님들의 연속 분신은 세계적 뉴스였고, 그것은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분신 사태가 일어나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고딘디엠 대통령의 동생인 실력자 고딘 누의 부인인 마담 누는 승려 분신을 '바베큐'라고 부르면서 악담을 했다. (고딘디엠은 독신이어서 제수인 미모의 마담 누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마담 누는 “바베큐에 쓴 휘발유가 미제라서 완전한 국산이 아니다” “다른 승려가 분신을 하겠다면 자기가 휘발유를 공급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독설을 퍼부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런 형제 집권자를 두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은 월남 군부를 조종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승려 분신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결국 실패했음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참고로 승려 文殊는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범종추(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범종추는 1994년 3월23일 실천불교승가회, 동국대석림동문회, 선우도량 등 8개 승가단체가 결성한 소위 ‘불교계 진보(進步)단체의 집합체’로 알려져 왔다.

범종추는 조계종단 개혁과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운동을 벌여 1994년 4월 조계사 폭력사태를 계기로 일반신도와 조계종 원로들의 지지를 얻어 徐총무원장 퇴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 2012-12-06, 10: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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