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의 하루(2)/나폴레옹의 치질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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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5년6월18일 세계사의 운명이 달려 있었던 벨기에 브루셀 근교의 작은 마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일어난 것은 새벽 5시쯤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잠이 적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평소에는 하루 8시간씩 충분히 잠을 잤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측근들로부터 정보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명령을 구술하곤 했다. 그는 하루 평균 15통의 명령을 구술했다. 아침에 집중적으로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워털루의 결전 날은 달랐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을 때까지 네 시간 동안 별달리 의미 있는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事後의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이날 심해진 치질과 방광염및 고열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단순히 투병중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부하들로부터 숨기면서 전쟁 지도를 해야 하는 三重苦를 겪고 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그 6월18일에 치질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패전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에도 워털루의 패전은 부하들의 잘못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아침을 먹은 뒤 나폴레옹은 식탁 위에 지도를 펴놓고 부하 장군들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정황이 90이고 불리한 것이 10이다.'
  워털루 전투의 실질적인 야전 지휘관이 되는 네이 원수가 찾아와서 '웰링턴이 철수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보고했을 때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귀관은 오판하고 있어. 웰링턴은 주사위를 던졌어. 그런데 우리에게 유리한 판이 되었어.'
  나폴레옹은 참모장 술 원수가 '프러시아 군대를 추적중인 글로시 원수의 3만3천병력을 불러들이자'고 건의하자 이렇게 잘랐다.
  '귀관은 웰링턴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그를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말해두는데 그는 엉망인 장군이고 영국군은 엉망이며 이번 전투는 그냥 산보 가는 거야.'
  
  다른 장군이 영국 보병은 끈질기고 조준이 정확하기 때문에 정면 공격으로 중앙을 돌파하는 것보다는 측면이나 후방을 치는 우회기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을 때도 나폴레옹은 비웃듯이 감탄사를 내지를 뿐이었다. 이날 나폴레옹은 고통을 참으려고 애쓰면서도 웰링턴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이 찾아와서 또 다른 정보를 전했다. 전날 저녁 제롬은 웰링턴이 식사를 했던 워털루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웨이터가 전날에 엿들은 이야기를 해주더란 것이다. 그 요지는 퇴각중인 블뤼헤의 프러시아 군대와 영국군이 합류하여 프랑스군에 대항하기로 약속을 하더란 것이었다. 나중에 정확한 정보로 밝혀지지만 나폴레옹은 '그건 넌센스야. 두 군대가 합류하려면 이틀은 걸릴 거야'라고 일소에 붙였다.
  
  그런데 이날 나폴레옹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전투를 시작하기를 못내 꺼려한 낌새를 차릴 수 있다. 이날 전투는 나폴레옹군이 공격을 해야 시작되게끔 되어 있었다. 나폴레옹은 오전을 별 다른 이유없이 허송했다. 전투개시를 늦추는 명분이 생기긴 했었다. 포병사령관이 오더니 간밤이 내린 비로 땅이 젖어 포대를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보고했다. 보통 때 같으면 그 정도의 이유로 결전의 시간을 늦출 나폴레옹이 아니었지만 이날 그는 순순히, 혹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격 개시 시간을 연기했던 것이다.
  
  열병식을 마친 나폴레옹은 로솜이라 불리는 여관 앞에 지휘소를 정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는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생각에 잠겼다.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한 사람은 나폴레옹이 갑자기 멍한 상태에 빠져 있는 듯했다고 기억했다. 이때 그는 치질로 인한 고통을 참으면서 전투상황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자리잡은 지휘소도 전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 아니었다.
  
  해는 거의 중천에 떠올랐다. 오전 11시였다. 이때 영국군을 주력으로 하는 연합군 6만7천과 프랑스군 7만2천명이 1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나폴레옹과 웰링턴은 이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兩軍은 다 같이 보병, 기병, 포병으로 구성되었다. 주력은 보병이었다. 보병이 가진 소총은 지난 150년 동안 거의 개량된 적이 없었다. 당시의 소총 총탄은 지름이 2cm, 보병은 종이로 싼 화약을 가지고 다녔다. 입으로 화약봉지를 물어뜯어 화약을 발사 판과 총대속에 부어넣은 뒤 총알을 총대속으로 밀어넣고 쑤시개로 쑤셔 단단하게 틀어막고 발사하는 데 30초가 걸렸다. 훈련을 잘 받은 보병이라야 1분에 두 발을 쏠 수 있었다.
  
  
[ 2004-07-05, 16: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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