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의 하루(3)/영국의 보병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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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5년6월18일 워털루에서 보병들이 쓴 소총은 50발 이상을 쏘면 화약을 점화시키는 부싯돌이 작동하지 않고 총대안에 화약이 차서 발사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쑤시개로 총대를 쑤셔 소제하느라고 시간을 까먹어야 했다. 이 때문에 보병들은 여러 줄을 만들어 교대로 총을 쏘게 되었다. 유효 사거리는 수백 미터였지만 좀처럼 적중하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조준사격보다는 한 방향으로 몰아쏘는 지향사격이 主였다. 근접하면 총검으로 백병전에 돌입했다.
  
  기병은 칼, 권총, 소총, 창 등으로 무장했다. 칼보다는 창이 효과적이었다. 프랑스 기병만이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었다. 기병이 말에서 내리면 갑옷 무게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워털루의 결전 날 웰링턴이 지휘하는 영국군 중심의 연합군 6만7천명은 156문의 대포를, 나폴레옹의 7만2천명은 246문의 대포를 갖고 있었다.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은 포병을 활용하는 데 천재적인 소양을 보여주었다. 당시 대포는 말이 끌고다니는 포와 고정식이 있었다. 대포알은 세 종류였다.터지지 않는 강철탄, 터지면서 파편으로써 살상하는 것, 그리고 바늘, 침 같은 것을 속에 넣었다가 폭파시키는 수류탄 비슷한 포탄. 터지지 않은 강철탄은 무게가 5kg 정도였는데, 보병 기병이 밀집한 데로 쏘면 수십명이 한 방으로 살상당하기도 했다.
  
  당시 대포는 발사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개발되지 않았다. 한번 쏠 때마다 포대가 움직여 다시 조준하여야 했다. 발사 속도는 소총과 같아 1분당 두 발 정도였다.
  기병이 보병을 향해서 돌격하면 보병은 밀집대형으로 쪼그리고 앉아 총검을 숲처럼 세웠다. 말들도 이 총검의 숲을 향해서 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밀집대형을 만들면 보병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달아나고싶어도 달아날 수가 없게 된다. 대형을 이탈하면 기병에게 당하기 때문이다.
  
  보병이 빨리 밀집대형을 갖추어 총검의 숲을 만들기만 하면 기병이 당해내기 어려웠다. 그런 대형을 갖추기 전에 돌격하여 보병을 패주시켜야 했다. 이 때문에 기병이 돌격할 때는 보병이, 보병이 돌격할 때는 기병이 보조해주어야 했다. 이날 나폴레옹은 이런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상한 작전을 편다.
  
  통상적인 전투절차를 보면, 먼저 포병의 장거리 포격이 시작된다. 그 다음 보병이 앞장서고 기병이 뒤를 따른다. 보병은 적의 최전선(보통 포병)에 접근할 때까지 사격을 삼가한다. 충분히 접근한 뒤 보병은 사격을 한 다음 총검으로 바로 돌격을 개시한다. 이 직후 기병이 뒤에서 나타나서 전열이 흩어진 적진으로 돌입, 적의 보병이 밀집대형을 갖추기 전에 전선을 붕괴시켜야 한다. 이런 타이밍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결국 승패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느 쪽이 끈질기에 버티는 보병을 갖고 있느냐였다. 해군 국가인 영국은 그런 보병도 갖고 있었다. 이것이 웰링턴의 자랑이었고 이날 眞價를 발휘했다.
  
[ 2004-07-05, 18: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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