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를 왜곡한 영화를 보고 감동하였던 박근혜
공수부대를 학살집단으로 조작한 '화려한 휴가'를 본 박근혜의 5년 전 논평.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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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이명박씨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이던 박근혜씨는 광주 상무지구 내에 있는 영화관에서 5.18 광주사태를 왜곡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후 “마음이 아프고 무거운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평가하는 한편 “진정한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만들어 광주의 희생에 보답하겠다”고 말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전남도청을 지키던 공수부대가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집단적으로 발포, 수십 명(또는 수백 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목이다. 나치 군대가 유태인을 집단학살하듯 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본 많은 국민들은 공수부대를 살인집단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사실을 본질적으로 왜곡해선 안 된다. 이 장면은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造作한 것이었다.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없는 내용을 극화’한 것이다.
  
   첫째, 영화에서는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고 탄창을 M-16 소총에 일제히 끼운 뒤 무릎 쏴 자세를 취한 다음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히 사격한다. 이것은 완전히 조작이다.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다. 있었다면 1996년의 5.18 재판 때 구속 기소되었을 것이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가장 정밀하게 조사했던 1995년의 서울지검과 국방부 검찰부도 사격명령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둘째, 공수부대의 발포는, 시위대가 탈취한 차량을 몰고 군인들을 향하여 돌진, 공수부대원을 깔아 사망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위적, 그리고 조건반사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때도 공수부대 중대장들에게만 10발씩 지급되고 일반 사병들에겐 실탄이 거의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셋째, 애국가를 부르는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하는 장면은 공수부대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발포하는 듯한 상징성을 풍긴다. 영화 관람자는 공수부대가 반란군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넷째, 국방부는 이 장면에 대해서 영화사에 항의하고 국민들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는 해명을 했어야 했다. 군 장병들에게도 특별한 정훈교육을 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공수부대의 난폭한 몽둥이 진압이 광주사태의 한 원인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실을 근거로 하여 공수부대를 “동족을 무차별 사살하는 살인집단”으로 그릴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이 영화는 시작되기 전 “이 영화는 史實과 다릅니다”라는 주의를 주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했다’고 한 것은 2중의 왜곡이다.
  
  문제는 박근혜씨가 사실을 反軍的으로 왜곡한 영화에 근거하여 논평을 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고 조작된 픽션을 근거로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선동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가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한나라당 비대위는 이영조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였는데,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광주사태 관련 표현을 문제로 삼은 선동꾼들에게 굴복한 것이다. 사실 여부에 관계 없이 선동세력이 문제를 제기하면 거기에 따라가는 이런 자세로는 한반도의 좌익선동세력과 싸워 조국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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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 중 전남도청 발포 부분.
  
   <시위대, 광주시장에게 화염병 던져
  
   전날 밤 시위대의 차량 공격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뒤 도로에서 교대로 假睡眠을 취한 공수부대는 5월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 前面에 11공수여단이 61·62대대를, 노동청 방면에 63대대를, 광주천 방면에 7공수여단 35대대를 각각 배치하여 전남도청 방어를 준비했다. 동이 트자 시위대들이 금남로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5월21일 08시경 전남도청 앞에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死體 2구가 실린 손수레를 앞세우고 공수부대의 蠻行을 규탄하며 계엄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0시경 시위대 代表 4명이 7공수여단 35대대장의 안내로 전남도청에서 張炯泰 도지사와 면담, 공수부대의 철수·연행자의 석방·과잉진압의 사과, 계엄사령관과의 面談 주선을 요구했다. 張炯泰 도지사는 要求조건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후 도청 앞에 마이크 설치를 기다리던 중, 먼저 具龍相 광주시장이 나가 시위대에 진정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시위대는 도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각목과 화염병을 던져 具龍相 시장은 연설을 하지 못했다. 11시경 張 도지사는 시위대 앞에서의 연설을 포기하고, 헬기를 타고 계엄군이 철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시민들은 자제하고 生業에 복귀해 달라는 방송을 했다. 시위대는 12시까지 공수부대가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대가 수만 명으로 불어나면서 카빈 총을 들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고, 장갑차를 비롯한 트럭·버스 등 수십 대의 차량이 시위대 前面에서 공수부대를 압박해 왔다. 위기의식을 느낀 11공수여단 61대대장(安富雄 중령)은 여단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필요한 대책강구를 건의했다. 여단 참모장은 宣撫活動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도청을 死守하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11시경 63대대장은 대대장 지프차에 보관하고 있던 대대 경계용 실탄을 중대장들에게 1인당 10발씩 지급하고,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위급시에만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12시경 공수부대는 장갑차 2대와 함께 도로에 횡대로 포진하여 시위대의 도청 진출을 저지했다. 시위대는 장갑차·트럭·버스·택시 등 100여 대의 차량을 前面에 내세우고 공수부대의 저지선을 압박했다.
   서로 10m 정도까지 접근,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13시경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시위대가 화염병을 투척하여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 쪽으로 돌진했다. 공수부대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부근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 도지부 건물 등으로 산개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死亡했다.
   (편집자 주: 당시 현장에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통신병 慶箕萬씨 증언에 의하면 시위대 장갑차 돌진으로 사망한 대원은 11공수여단 소속 권용문 상병이라고 한다. 권상병은 머리가 장갑차 바퀴에 눌려 짓이겨진 채 즉사했고, 다른 사병은 가볍게 다쳐 곧 일어나 달아났다. 「月刊朝鮮」88년 7월호 「공수부대의 광주사태」참조)
   장갑차의 갑작스러운 돌진에 놀란 계엄군 장갑차 소대장이 장갑차에 거치된 기관총 방아쇠를 건드려 空中發砲가 되었다. 도청 직원들이 宣撫活動의 일환으로 스피커를 통해 애국가를 방송하며 해산을 호소하는 가운데, 계속하여 시위대의 버스와 트럭이 도청 쪽으로 돌진해왔다. 뒤쪽에 있던 일부 공수부대 將校들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發砲를 하여 버스 1대는 운전자가 사망하면서 도청 건물 좌측 건물과 충돌하여 정지하고, 장갑차와 다른 차들은 도청 앞 분수대를 돌아 나갔다.
  
   돌진하는 장갑차에 일제히 발포
  
   시위대의 차량 기습 돌진에 놀라 散開하였던 공수부대원들이 다시 隊列을 정비하여 대형 화분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일부 공수부대원들은 그 뒤에서 사격자세로 경계했다.
   13시 30분경 시위대 쪽으로부터 장갑차 1대가 빠른 속력으로 도청 쪽으로 또 돌진하자 그 순간 경계 중이던 공수부대원들이 장갑차를 향하여 일제히 發砲하여 장갑차 위에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흔들던 청년이 피격되었다.
   공수부대의 發砲로 후퇴하였던 시위대가 다시 가톨릭센터, 한국은행 광주지점 부근에 모이고, 그 중 5~6명이 태극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나오자 공수부대원들은 이들을 향해 發砲를 했다.
   그 무렵 방송국 등의 警戒任務를 수행하다가 전남도청으로 철수해 있던 31사단 96연대 1대대 소속 병력이 師團으로 철수하면서 경계용 실탄 200여 발을 7공수여단 35대대 군수장교의 요청에 따라 공수부대에게 넘겨주어, 35대대 장교들도 1인당 10발 정도의 실탄을 분배받았다.
   한편 시위대는 軍輛(차량)을 이용하여 인근 광산·영광·함평·화순·나주·영암·해남·강진·완도·송주·고창 등지로 진출하여 武器를 확보, 武裝을 했다. 13시경 광산 하남파출소에 시위대 80여 명이 차량 3대를 타고 와 카빈 9정을 탈취했다. 고속버스·트럭 등 10여 대의 차량에 탑승한 광주 시위대가 함평에 도착하여 群衆 示威를 벌이고 신광지서에서 총기 100여 정, 실탄 2상자를 확보했다. 13시35분경 화순 소재 4개 파출소에서 총기 460정과 실탄 1만발을 탈취했다. 14시경 나주 남평지서 무기고에서 카빈 20여 정과 실탄 7~8상자를 탈취했다.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나주 시위대가 합세하여 나주경찰서에 진입, 군용 레커차로 무기고를 파괴하고, 카빈 500여 정, M1 소총 200여 정, 실탄 4만6000여 발을 탈취했다.
   15시35분경 화순광업소에서 카빈 1108정, 실탄 1만7760발, 화순 동면지서에서 M1 72정, 칼빈 296정, AR 1정, LMG 1정, 실탄 1만4000천여 발을 탈취했다.
   그 밖에도 이날 하루 동안 일산방직·호남전기·연초제조창·영암경찰서·화순경찰서·지원동 석산 화약고·한국화약·강진 성전파출소 등을 습격하여 카빈·M1·AR·LMG 등 총기 4900여 정, 실탄 13만여 발, TNT 10여 상자, 수류탄 270여 발을 탈취했다.
   시위대는 이들 武器를 가져와 광주 공원과 학운동에서 분배한 후 銃器 사용 교육을 실시했다. 15시경 광주공원에서 銃器를 분배받은 시위대가 지프차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상황을 전파했다. 17시경에는 광주공원에서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시위대들이 組를 編成하여 정찰, 도청 감시, 외곽도로 경계 등의 임무를 부여 받고 시내 요소에 배치되기 시작하는 등 이른바 市民軍이라 불리우는 武裝 示威隊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4시50분경 시위대의 장갑차가 다시 전남도청 광장 쪽으로 돌진하다가 공수부대 장갑차에서 발포하자 후퇴했다. 15시경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위대가 충금지하상가 사거리에 도착, 20여 정의 銃器를 분배했다. 화순 경찰서 등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위대도 학동 석천다리, 지원동에서 銃器를 분배하여 일부 武裝 侍衛隊는 전남도청 쪽으로 진출했다.
  
   시위대와 공수부대 총격전 시작
  
   14시 50분경 공수부대는 전남도청 본관과 신관, 전남일보, 水協 도지부, 상무관 등 인근 건물 屋上에 일부 병력을 배치하여 도청부근으로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하여 銃擊을 가하였다.
   15시15분경 전남도청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우체국 쪽에서 시위대 2000여 명이 모여 일부 시위대는 카빈과 실탄을 휴대하고 전남도청 쪽으로 진출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15시 50분경 카빈을 휴대한 시위대가 전남의대 오거리에서 전남道警 쪽으로 사격을 하면서 이동했다.
   16시경 광주은행 본점 부근에 트럭이 도착하여 시위대에게 30여 정의 카빈을 분배했다. 일부 시위대는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屋上에서 LMG 2정을 설치하고 전남도청과 軍헬기를 향해 사격을 했다.
   14시45분경 20사단 61연대장이 11공수여단과 병력을 교대하기 위하여 61항공단 203대대장이 조종하는 UH-1H 헬기를 타고 전남도청 上空에서 공중 정찰을 하던 중 시위대의 對空 사격으로 6발이 헬기에 맞았다. 15시50분경 광주통합병원 상공에서 宣撫放送을 하던 같은 機種의 61 항공단 방송용 헬기도 6발의 총격을 받았다. 戰敎司로 복귀한 61연대장은 戰敎司에 병력 교체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보고했다.>
  
[ 2012-03-14, 21: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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