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의 하루(5)/포격 시작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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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6월18일 일요일의 워털루. 기자는 10년 전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워털루를 찾았다. 戰場은 완만하게 구비치는 전원 풍경이었다. 웰링턴은 미리 연합군이 포진할 장소를 봐두었다고 한다. 웰링턴은 북쪽을 차지했는데 이곳이 남쪽의 프랑스군 주둔지보다도 약간 높다.
  
   웰링턴은 양군 사이에 있는 얕은 능선을 주저항선으로 결정하여 그 능선 뒤에 군대를 배치했다. 누가 보아도 웰링턴은 高地를 선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高地뿐만이 아니었다. 웰링턴은 主저항선의 바로 앞이자 프랑스군으로부터는 차폐물이 되는 農家의 바로 뒤에 지휘소를 정했다. 연합군의 맨 앞에 선 셈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의 최전방선으로부터 약1.4km 뒤에 있는 여관 앞에다가 지휘소를 잡았다. 이곳으로부터는 고지 능선 뒤에서 영국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웰링턴은 저지대의 프랑스군 동향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두 장수의 위치가 두 장수의 태도를 보여준다.
  
   치질, 방광염,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던 나폴레옹은 戰場의 현장감에서 상당히 멀리 있었고, 완벽한 정신적 육체적 무장을 갖춘 웰링턴은 현장속에 있었다.
  
   머뭇거리던 나폴레옹이 웰링턴의 군대를 향하여 포격을 명령함으로써 전투를 시각은 오전 11시30분이었다. 표적은 프랑스 군대의 우익 앞에 있는 휴고몬이라 불리는 농장건물群이었다. 이 건물은 영국군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건물군에 대한 프랑스군의 포격과 잇단 보병공격은 워털루의 본 게임은 아니었지만 전략적 중요성은 컸다.
  
   이 건물을 둘러싼 포격전과 백병전은 종일 계속되었다. 영국 군대는 끝까지 건물을 지켜내었다. 한때는 영국군이 지키던 정문이 돌파되어 약100명의 프랑스 보병이 정원안으로 들어왔다. 정원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한 영국군의 手記이다.
  
   <나(맥도넬 대령)는 프랑스 군인들의 함성이 등뒤로 들렸을 때 정원에 있었다. 나는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양쪽 군인들이 뒤섞여 도끼, 총검, 칼로써 백병전을 펼치고 있었다. 영국군의 일부는 계단을 따라서 저택 입구로 물러나고 있었다. 다른 군인들은 저택의 창을 통해 몰려오는 프랑스 군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나는 부하 세 명을 데리고 정문쪽으로 달려갔다. 프랑스 군인들이 바깥에서 문을 밀어붙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문을 다시 닫고 큰 나무틀을 내려 안에서 잠그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웰링턴은 "워털루의 승리는 이 정문을 닫는 데 성공했기에 가능했다"고 쓴 적이 있었다. 맥도넬 대령과 영국 군인들은 정문을 봉쇄한 뒤 안에 들어와 있었던 프랑스 군인들을 찾아내 죽이느라고 여기 저기를 뛰어다녔다. 마지막 남은 프랑스 군인은 북치는 소년이었다.
  
   연합군의 요새로 변한 휴고몽 農家를 점령하기 위한 프랑스군의 공격은 한 시간을 넘어도 성공하지 못하고 局地的인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오후 1시 프랑스軍의 야전 지휘관 네이 원수는 戰線의 후방에서 의자에 앉은 채 지휘를 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전령을 보내 총공격 준비가 다 되었다고 보고한다.
  
[ 2004-07-06, 16: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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