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대위의 保守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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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철학을 버리고 시류에 편승한 새누리당 비대위를 말한다
  
  조동근 /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 한나라당, ‘비상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니었나?
  
  O 한나라당으로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중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말일 것임. 그러나 복기(復棋)하면 한나라당 스스로 ‘비상사태’를 자초한 측면을 부정할 수 없음.
  
  -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한 ‘무상급식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결과가 “소득수준을 감안한 순차적 무상급식”으로 나왔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이 전개 되었을 것임.
  
  - 오세훈 시장은 주민투표가 ‘대권행보’의 일환으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대선불출마’ 선언(2011.8.12.)을, 그리고 주민투표 개함조건(투표율 33,3%) 충족을 호소하기 위해 서울시장 사퇴라는 ‘배수진’을 침.(2011. 8. 21) 오세훈 시장 입장에서는 진정성을 보인 것으로 판단됨.
  
  - 한나라당은 그러나 사전협의 부재 등을 이유로 수수방관. 특정인이 아닌 특정대안을 선택하는 ‘정책선거’에서, 더욱이 향후 복지정책의 방향타가 될 중요한 투표에서 가치집단인 정당이 중립을 지킨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음. 여당과 달리 민주당 등 야당은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함.
  
  - 2011년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 25.7%(투표인원 216만명)를 기록함으로써 개함조차 하지 못함. 오세훈 시장 사퇴 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후보가 당선됨으로써(2011. 10. 26) 정당정치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됨.
  
  - 한나라당의 비대위 구성(2011. 12. 19)은 박원순 후보의 당선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음.
  
  
  2. 비대위의 패착, ‘보수 지우기’ 시도
  
  O 비대위는 출범하자마자 한나라당 정강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하고자 함. 여론의 역풍을 받아 없던 것으로 함.
  
  - 보수정당의 ‘보수 포기’는 담론으로 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 탈(脫)보수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수주의의 ‘자기강화’를 통한 외연 확대에도 불구하고 각종 ‘이례적 현상’이 누적돼 초기의 이념과 가치를 더 이상 견지하지 못하는 합당한 논거가 제시돼야 함. 그러나 한나라당은 보수주의의 ‘자기강화 과정’을 갖지 못했음. 보수가치를 제대로 펼쳐 본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음. 따라서 ‘보수 포기’는 “갖지 못한 것을 버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님.
  
  - 한나라당 비대위는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도록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천명. 그러나 ‘국민행복론’이 의미를 가지려면 “어떤 이념과 가치에 기초해 국민 행복을 지킬 것인가”를 밝혀야 함. 미래 세대에 빚을 남기면서까지, 더 나아가 사회주의 방식을 통해서 국민행복을 지향할 수는 없기 때문.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는 정치적 슬로건에 지나지 않음. 이명박의 실용주의만큼 ‘몰가치’적이라고 볼 수 있음.
  
  
  3.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 무엇을 얻었나
  
  O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를 표방했다면, 새부대는 사치일 것임. 담긴 것이 새술이 아니기 때문.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당명 변경’이 아닌 진정으로 거듭나는 것.
  
  - 한나라당 당명을 버림으로써 “대한민국 제1의 장수 정당” 이라는 정치자산을 버림. 당명을 변경함에 있어, 비대위가 한나라당의 governance를 제대로 따랐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음.
  
  
  4. 비대위의 치명적 인식 오류: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초래”
  
  O 양극화는 분열, 대립과 증오를 담은 정치용어
  
  -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양극화란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함. 양극화는 말 그대로 중간 계층이 없는 2계층 간의 무한 투쟁을 시사.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투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양극화는 ‘소득분배 악화’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표현돼야 함. 그러면 양극화 해소는 ‘중산층 복원’으로 연결.
  
  
  O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초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논거는 현상 속의 ‘이면의 논리’로 존재. 1990~2010년에 걸친 20년간의 소득분배 추이를 살펴보면 같은 기간 동안 대체적으로 소득분배는 악화됐지만, 경제성장률에 따라 “소득분배가 급격히 개악되고 개선되는” 뚜렷한 파동이 존재해 왔음.
  
  - 대표적 사례가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및 그 이후의 경기회복 시기.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소득분배가 개선됨.
  
  - 성장률과 분배개선은 예외 없이 ‘정의 관계’를 유지. 20년간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도 같은 기간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졌기 때문. 결국 양극화는 ‘저성장의 구조화’에서 비롯된 것임.
  
  -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률을 구조적으로 낮추었음”을 논증해야 함.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위해 경쟁만을 미화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체제로 여겨짐. 앞뒤가 맞지 않음. 한나라당 비대위의 ‘신자유주의에 의한 양극화’ 운운은 좌파지식인의 논리에 투항한, 치명적 패착이 아닐 수 없음. 2009~2010년에는 오히려 소득분배가 개선(양극화 완화) 됐음.
  
  
  O 중산층의 붕괴는 근래 우리 정부가 택한 경제정책 때문이 아님
  
  - 양극화의 원인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생산구조’의 변화와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국제 분업’의 심화에 있음. 경제가 산업화 단계를 넘어 지식기반 사회로 발전할수록 전문서비스와 같은 3차 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evide)도 일조(一助) 함.
  
  - 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자리’를 늘려야 함. ‘분노와 증오’를 표출한다고, 정치권이 개입한다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
  
  -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함. 그리고 교육혁신을 통해 지식기반 사회에 걸 맞는 인력을 양성하고 낙후된 서비스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함.
  
  
  5. 똑 같은 양극화도 여당이 말하면, 파괴력이 달라짐
  
  O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초래한 주범으로 ‘여당’에 의해 ‘악마화’ 됨.
  
  - 되돌아 온 것은, “신자유주의 몰락과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로 보수 세력까지 경제민주화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야권의 힐난.
  
  - 여당이 양극화를 인정한 이상, 논리적으로 ‘부자증세’와 ‘재벌개혁’은 자동적으로 따라가는 정책 패키지가 돼 버림. 발을 빼기가 어려움.
  
  - 오도된 현실 인식은 과잉처방 내지 과잉개입을 초래.
  
  
  
  O 부자증세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 “부자들의 조세부담이 소득에 비해 적다”는 것이 논증될 수 없기 때문.
  
  - 소득세의 경우 2009년 현재 납세자의 40%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고 전체 근로자의 상위 23.9%가 근로소득세의 95.5%를 부담. 크게 나누면 하위40%는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고 중간 40%(정확히는 36%)는 소득세의 5% 미만을 분담. 중간 소득층은 소득수준이나 담세력에 비해 매우 낮은 세금을 부담.
  
  -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빈곤층 비중은 24% 내외로 면세자 비중(40%)보다 크게 낮음. 빈곤층이 아닌 소득계층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음.
  
  - 2011년 부자증세의 일환으로 통과된 한국판 버핏세(최고소득구간 3억, 최고소득세율 38% 신설)의 기대되는 세수증대 효과는 7700억원에 불과. 이를 예산과 기금을 합한 2011년 정부지출액 309.6조원에 대비하면 0.24%에 지나지 않음. 부자증세로 인한 세수확대는 ‘상징적’임.
  
  - 우리 경제의 문제는 부자증세 이전에 ‘과세의 정상화“임. 하지만 부자증세 프레임이 휘말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함.
  
  
  
  <그림-1> 삼성전자, 소니, 노키아의 시가총액 추이
  
  
  
  
  출처: 대기업정책의 쟁점과 바람직한 방향, 2012. 2. 황인학 발제에서 재인용
  
  
  
  
  O 출총제 부활, 재벌세, 순환출자금지 등 재벌개혁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
  
  - 새누리당은 재벌개혁에 관한 한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재벌을 여전히 탐욕스런 존재로 인식함.
  
  - 130년 전통의 코닥 파산과 노키아와 소니의 사실상의 몰락을 ‘소유지배구조’의 문제로 접근할 일은 아님.(<그림-1> 참조) 그들 집단이 ‘탐욕’을 부렸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은 것은 아님. 재벌 개혁은 “곁가지를 손 볼 것을, 밑동에 도끼를 대는” 우(愚)를 범하는 것임.
  
  - 기업 경쟁력의 요체는 기업가정신.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임. 경쟁력은 설계의 대상이 될 수 없음.
  
  
  6. 경제민주화가 양극화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O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 정강 앞부분에 전진 배치됨
  
  - 한나라당 비대위 시절 지도부는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기조를 헌법 119조 제 2항에 기초한 ‘경제민주화’로 삼는다”고 천명.
  
  
  O 경제민주화는 ‘형용모순’의 위험성을 내포
  
  - 정치논리는 기본적으로 1인 1표, 경제논리는 1원(1주) 1표가 원칙임. 1인 1표는 ‘공적 영역’에서의 의사결정시 누구나 같은 1표(동등한 가중치)를 행사한다는 것. 따라서 평등을 지향하는 원칙. 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다름. 내규 또는 조직법이 우선함. 주식시장에서의 의사결정이 대표적 사례.
  
  -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는 별개의 존재로 일종의 two track(독립된 관계)
  
  - 경제민주화는 경제영역에 정치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둥근 네모’ 같은 형용모순 또는 다른 영역에 다른 논리를 적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내적 일관성 결여’라는 오류를 범하게 됨.
  
  
  O 헌법 제 119조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음.
  
  -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 경제민주화는 ‘헌법 119조 2항’에 기초하고 있음. 경제민주화는 독립된 ‘개념’이라기보다 ②항의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에서와 같이 ‘구절’로 표시됨.
  
  - ‘경제민주화’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또는 줄여서 ‘규제와 조정’이라는 경제논리에 충실한 중립적 표현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음.
  
  - 그러나 ‘규제와 조정’이 기본원칙일 수는 없음. 따라서 ①항과 ②항의 관계를 ‘기본원칙과 보조원칙’으로 명료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음. 보조원칙이라고 해서 기본원칙의 하위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님.
  
  - 이 같은 맥락에서 경제민주화를 양극화 해소의 대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름.
  
  
  7. 경제민주화, ‘국가 개입주의’를 정당화 시키는 지렛대가 돼서는 안됨
  
  O 헌법 제 119조 ②항에 기초해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설계주의에 따른 국가개입주의”의 위험을 염두에 두어야 함. 설계주의에 따른 국가개입주의는 ‘지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됨.
  
  -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결국은 이해당사자가 풀어야 할 문제임.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는 제조업체와 부품업체의 ‘클러스터 경쟁력’이 관건이기 때문에 ‘경쟁을 통한 협력’ 메카니즘이 작동할 여지가 충분함. 따라서 국가가 ‘2인3각’ 형태로 짝을 지어줄 이유는 없음.
  
  -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 “살아남는 것이 적합한 것”으로 시장실험의 결과는 ‘사후적’으로 나타남. 따라서 사전적 지정은 논리적으로 모순. 가능하다고 하면 정부는 ‘지식의 문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민간자율 형식을 유지하지 않으면 ‘ISD 류의’ 통상마찰을 빚을 수도 있음.
  
  
  8. 경제민주화, ‘복지확대’에 이르는 길이어서는 안 됨
  
  O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음.
  
  - 불행하게도 여야는 ‘똑 같은 방향으로의’ 복지경쟁을 벌이고 있음. 새누리당은 점심 무상급식도 모자라 아침 무상급식을 주자고 함. ‘구직자 수당지급’도 포퓰리즘 정책이 아닐 수 없음.
  
  - 친서민 정책도 좌(左)로 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 우파의 정책은 “그저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활을 돕는 것이 되어야 함. 국가가 따듯한 밥을 지어준다 해도 이내 식기 마련. 국민 각자가 따듯한 밥을 지을 수 알아야 함.
  
  -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약점을 보완해, EITC(근로장려세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함.
  
  
  9. 과거의 ‘줄푸세’는 어디 갔는가: 여론을 쫒는 것이 리더십은 아님.
  
  O 여당은 ‘좌클릭’ 하면서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함.
  
  - 하지만 여론을 쫒는 것이 리더십이 아닐 것임. 정치지도자는 ‘아젠더’를 던짐으로써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 비대위는 우파 가치에 기초해 ‘발전적 아젠더’를 던지는 대신 표를 얻기 위해 시류에 편승.
  
  -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적 패착은, 2009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후, 초심을 버린 것. 2009년은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진(2008년 10월) 직후로 경기가 좋을 수가 없었음. 경기침체기에 ‘여대야소’ 상황에서 선거에 지는 것은 당연. 전투에서 진 것을 기화로 ‘전쟁의 이념’(이념 정체성)을 포기한 셈,
  
  - 우파적 가치에 기초해 ‘친서민정책’을 펼칠 수도 있었음. “스스로 돕는 자를 국가가 돕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함. ‘익명의 그늘’에 숨지 않는 의견은 국가가 끝까지 경청하겠다는 했어야 함.
  
  
  10. 비대위의 암묵적 공천 압력, 그리고 패착
  
  O 우리나라 만큼 국회의원 물갈이를 많이 하는 나라도 없음.
  
  - 그만큼 국회의원 물갈이를 했으면, 점차 새로운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함. 그렇기 때문에 물갈이는 “자기세력 키우고 상대방 죽이기”로 여겨짐.
  
  
  O 이념전사를 배제한 공천
  
  - 새누리당은 강남을 공천을 전격 취소한 바 있음. 진보·좌파에서 피공천자가 집필한 영어논문의 ‘표현 2곳’을 문제 삼은 것이 발단.
  
  - 하나는 5·18로, ‘popular revolt’로 표현했는데, 이는 성스러운 ‘민주화 운동’을 ‘민중반란’으로 폄훼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제주 4·3 사건으로 이를 ‘communist-led rebellion(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으로 왜곡했다는 것. 이중 “5·18의 표현” 더 부각되었음. 비대위 스스로 광주 표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는 표현을 함.
  
  - 하지만 이는 영문으로 작성된 논문의 전체 줄거리도 아닌 표현 하나를 갖고 공격한 것임. 상식이 통하는 정당이라면 매도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함. 그럼에도 새누리당 비대위는 오히려 공세에 편승해 공천을 철회.
  
  - 전교조는 노동조합의 범위를 넘는 좌파적 활동을 서슴치 않음. 새나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공천한다고 미명하에 반(反)전교조 이념 전사인 현역 의원을 공천하지 않음. 이는 새누리당 스스로 ‘가치집단’이기를 포기한 것이라 볼 수 있음.
  
  - 비대위를 구성하는 위원 면면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우파의 가치 잣대’로 살펴 볼 필요가 있음. 정작 아웃(퇴출)되어야 할 사람은 그들일 것임. 국가관과 이념적 정체성을 물을 필요가 있음.
  
  
  11. 에필로그
  
  O 좌파들이 자주 쓰는 용어가 ‘시장의 실패와 탐욕’.
  
  - 하지만 ‘시장의 탐욕’은 오류. 시장이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 시장이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탐욕스러울 뿐.
  
  - ‘시장실패’의 어법에도 유의해야 함. 시장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시장에서 목도될 뿐”임. 실패를 시장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도리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 그렇기 때문에 시장실패의 ‘이면의 논리’를 찾아야 함. 시장 실패의 근저에는 예외 없이 ‘정책과 정부의 실패’가 존재.
  
  
  O 그러나 사람들은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는 좌파에 동조. 본질에 앞서 현상에 이끌림. 가슴을 적시는, ‘대중이 반길만한’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
  
  - 좌파들은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실패와 탐욕을 디딤돌로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시키고자 함. 자애로운 그리고 ‘전지(全知)한’ 국가가 개입해 시장의 실패와 탐욕을 다스리겠다는 것.
  
  - 경제민주화도 국가개입을 통해 ‘시장의 실패와 탐욕’을 다스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님. 하지만 국가는 전지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실패를 부르게 됨. 이는 ‘역사의 가르침’이기도 함.
  
  
  O 민주주의는 민(民)이 아닌 다중이 주인이 되는 체제.
  
  - 민주주의는 demons(군중)이 지배하는 (crat) 체제. 군중은 ‘증오와 분노’에 의해 크게 흔들림. 그리고 증오와 분노는 냉철할 수 없기에 ‘철학과 이념 및 가치’와 공존할 수 없음. ‘증오와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위무와 약속’ 뿐.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치권은 한결같이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도록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함. 그러려면 “어떤 이념과 가치에 기초해 국민 행복을 지킬 것인가”를 밝혀야 함. 미래 세대에 빚을 남기면서까지, 더 나아가 사회주의 방식을 통해 국민행복을 지향할 수는 없기 때문.
  
  - 선거는 속도 경쟁이 아닌 ‘어느 방향을 지향하는 가’의 경쟁이어야 함. 하지만 이번 선거는 ‘나침반’이 아닌 ‘스톱워치’의 경쟁임. 민주주의의 본산일 수 있는 그리스의 행태가 시사하는 바는, “선거를 치를수록 국가가 발전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파적 그리고 헌법적 가치에 기초한 선의의 경쟁만이 대한민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것임.
  
  - 기업(인)은 정치인에 의해 ‘탐욕의 화신’으로 여겨짐.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탐욕스런 집단은 정치집단임. 그들에게 이념과 정체성은 새털만큼 가벼움.//
  
[ 2012-03-21, 14: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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