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의 하루(6)/프랑스 보병 돌격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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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5년 6월18일 일요일 워털루.
  연합군의 요새로 변한 휴고몽 農家를 점령하기 위한 프랑스군의 공격은 한 시간을 넘어도 성공하지 못하고 局地的인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오후 1시 프랑스軍의 야전 지휘관 네이 원수는 戰線의 후방에서 의자에 앉은 채 지휘를 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전령을 보내 총공격 준비가 다 되었다고 보고한다.
  
  이때까지도 나폴레옹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전투가 진행중인데도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는 아마도 치질과 방광염과 高熱로부터 오는 고통을 몰래 참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잠시 일어나 망원경으로 전장을 훑어보고는 다시 앉고는 했다. 네이의 연락을 받자 그는 다시 일어나 망원경을 눈에 대었다. 오른쪽으로 약8km 떨어진 숲속에 정체불명의 부대가 보였다. 참모들은 부대의 복장으로 보아 프러시아 군인 같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참모는 프랑스 군인 같다고 했다. 잠시 뒤 포로가 된 프러시아 기병장교가 불려왔다.
  
  그는 웰링턴과 합류하기 위해서 달려 오고 있는 프러시아 블뤼헤 장군의 부하 장교라고 자백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나폴레옹은 글로시 장군의 부대를 보내 퇴각중인 블뤼헤 장군 부대를 추적중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데 없이 그 부대가 나타난 것이다. 나폴레옹은 약20km 멀리 있는 글로시 장군에게 급전을 보낸다.
  "즉시 아군쪽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이 명령서를 기병장교가 갖고 달려가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리고 이 명령서를 수령한 글로시 장군이 워털루까지 오려면 한 밤중일 것이다. 나폴레옹은 기병과 보병을 보내 접근중인 프러시아 군대의 선봉을 요격하도록 조치했다.
  
  그는 전투를 중단시키거나 후퇴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오늘 아침 우리는 90 대 10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60 대 40으로 유리하다."
  
  오후 1시30분 네이 원수는 지휘하에 있던 74문의 포병에 대해 웰링턴 군대를 향하여 일제 포격을 명령했다. 9~15kg짜리 포탄들이 날아갔다. 양쪽 합해서 14만 군대가 가로 세로 2X2km 정도의 공터에 밀집해 있었다. 밀집대형을 향하여 포탄이 쏟아지니 죽고 다치는 군인들이 많았다. 강철탄을 맞은 군인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경우, 머리통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집중 포격은 상대방의 사기를 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웰링턴 군대는 잘 견뎠다. 연합군은 유럽의 여러 나라 군대로 편성된 혼성군이었는데 영국군이 약 4분의 1이었다.
  
  이들은 스페인 전장에서 단련된 고참이었다. 웰링턴은 이 영국사병들을 다국적 군대 사이에 끼워넣어 다른 나라의 신참 군인들을 붙들어주도록 했다.
  웰링턴은 보병들을 능선 뒤로 물려 엎드려서 포화를 피하도록 했다. 프랑스 포병은 低지대에 있었으므로 능선 뒤의 웰링턴 군대의 동향을 잘 파악할 수 없었다. 네이 원수는 연합군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혼란에 빠져 붕괴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포격은 30분쯤 계속되었다. 연합군을 충분히 타격했다고 판단한 네이 장군은 보병의 정면 공격을 명령했다. 참모들은 나폴레옹에게 영국보병은 끈질기고 잘 훈련되어 있으므로 정면공격을 피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일축당했었다.
  
  약1만7천명의 보병이 대열을 유지하면서 연합군을 향하여 진격하는 모습은 장엄했다. 북소리에 맞추어 "황제 만세!"를 부르짖으면서 거대한 인간덩어리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양쪽에서는 기병이 따랐다. 엄청난 물체의 관성이 敵陣을 그 힘으로 자연스럽게 돌파할 것 같았다. 보병집단은 경사면을 올라갔다. 그런데 여기에 약점이 숨어 있었다. 프랑스 보병은 너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장교들의 명령이 들리지 않았다. 간밤에 온 비로 땅이 늪처럼 되어 질퍽질퍽했다.
  
  많은 보병들이 신발이 진흙에 감겨 벗겨졌다. 밀집대형이 나아가는데 신발을 찾아 신을 시간이 주어질 리가 없었다. 맨발의 보병이 되었다. 바지에 진흙이 붙어 행군에 지장이 컸다.
  
  밀집대형의 한 가운데 있는 군인들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적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적진에 돌입하면 총을 쏠 수 있는 보병은 앞의 3열뿐이었다. 뒷줄의 병사들은 덩어리로 엉켜 있어 장전도 발사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밀집대형은 포격의 좋은 표적이었다. 포탄 한 발이 정면의 병사를 타격하면 그 뒤의 스물 세명을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보병은 보기에는 무서웠지만 실전에서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능선 뒤에 숨어서 연합군의 스코틀랜드 보병 3000명이 프랑스군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군대가 50보 거리고 접근했을 때 스코틀랜드 보병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이들은 능선으로 달려가 다가오는 프랑스 보병들을 향하여 일제히 발사했다. 낮은 곳에서 올라오느라고 능선 뒤의 정황에 어두웠던 프랑스 보병들에게는 갑자기 군인들이 땅속에서 튀어오르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대응사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보병들도 한발을 발사한 다음 제2탄을 쏘려면 30초가 걸린다. 그 사이 프랑스 보병이 다가오므로 어차피 제2탄 발사를 포기하고 총검에 의지하여 돌격하여 백병전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두 덩어리의 인간집단이 정면 충돌했다. 찌르고 쏘고 비명과 함성과 괴성이 오고가는 아수라장이 전개되었다(계속).
  
[ 2004-07-08, 18: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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