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인민복과 노무현의 막말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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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토론방)/김정일의 인민복과 노 대통령의 막말
  
  김정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의 인민복이 아닐까 한다.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사람 앞에서든 그는 모양과 색깔이 밋밋하고 칙칙한 인민복 차림이다. 너무 멋이 없어 보는 사람마저 피곤하게 만드는 인민복 차림이다. 온갖 화려한 의상이 등장하는 영화에 심취한 그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의 막말이 아닐까 한다.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사람 앞에서든 그는 꼭 한두 마디 막말 또는 상말을 내뱉는다. 경어법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등소평과 김일성을 직접 만난 대담을 나눈 피터 현은 두 사람의 옷을 보고 그 마음을 훔쳐 보고 있다. 그들은 둘 다 절대 권력자로서 거의 언제나 인민복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나는 노동자·농민의 화신이다.' 아마 이것이 그 노림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의 옷이 미묘하게 달랐다고 한다. 등소평은 인민복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김일성은 인민복에 주머니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흔적만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진실과 위선의 차이이다. 등소평은 일인자가 되자마자 인민을 위해 공산주의의 명분을 희생하고 자본주의의 실리를 취해서 13억 떼거지를 기아에서 해방시키고 중원에 '작은 평화'를 선사했다. '작은 모택동 또는 작은 스탈린' 김일성은 자본주의의 실리는커녕 공산주의의 명분에 주체사상의 명분을 더 얹어 버렸다. 그 인민복에 주머니가 필요할 리 없었다. 필요한 것은 '내시와 상궁'들이 빠짐없이 들고 다니다가 말도 하기 전에 척척 대령하니까.
  
  김정일의 인민복을 보면 그 모양은 시골 머슴의 작업복보다 꼴불견이지만, 실은 최고급 옷감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또한 그의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윗도리의 가슴부분에 작은 단추가 보이지만 그건 그냥 폼으로 달아놓았을 뿐이다. 그 아래엔 아예 주머니의 흔적도 없으니까. 윗도리의 아랫부분에는 주머니는커녕 아예 단추 흔적도 없다. 바지에도 주머니가 안 보인다. 이번에는 돋보기를 들여대고 자세히 살펴보면, 인민복이, 작업복이 어찌나 그렇게 줄을 잘 세워놓았는지 파리가 앉다가 베일 정도이다. 주석궁만한 배도 기가 막히게 잘 가려지고 있다. 농촌에서 일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랫배가 넉넉한 사람은 작업복이 꾸깃꾸깃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하다 보면 뱃살이 비죽비죽 잘도 나온다.
  
  김정일은 조선의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고 로마의 황제보다 호화로운 수많은 특각(별장)에서 세계 각국의 별미를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혀로 맛보며 미국의 스필버그보다 많은 영화 필름을 갖춰 놓고 드넓은 영화관에서 혼자서 그걸 보고 또 본다. 진시황이 휘두르던 권력보다 센 권력을 휘두르고, 빌 게이츠가 쓰는 돈보다 많은 돈을 쓴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인민복으로 인민들의 눈을 가려서, 날마다 천국을 약속하며 영혼을 좀먹는 물질에서 벗어나 욕심 없는 공동 생활해야 한다며 교인들의 재산을 동전 한 닢까지 가로채어 호의호식하는 사이비 교주처럼, '노예'들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에 태어났으면 강남에서 오렌지족이나 되었을 사람이 아버지 잘 둔 덕분에 리비도와 에고와 슈퍼에고가 혼연일체된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다. 분명히 북한에는 지상낙원이 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지상낙원이.
  
  노무현 대통령은 명문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그 당시 진영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산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은행에 취직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은행원을 시시하다고 걷어찬 것이다.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정도론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야망의 사나이! 그래서 그는 누가 보기에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법고시에 도전했던 것이다. 왜? 그것은 한국에서 이름 없는 사람이 벼락 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 나와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상고 출신 사시 합격자에게 꼼짝 못하는 게 한국 사회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미국 가서 박사 학위 받고 서울대에서 교수하는 것보다 그게 더 확실한 출세의 길임을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사시에 합격했다! 그로써 그는 하루아침에 엘리스가 콩 나무 타고 이상한 나라에 올라가듯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에 들어갔다. 명예과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얻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판사는 명예는 주지만, 부와 권력은 주지 않는다. 부는 변호사, 권력은 국회의원이다. 그는 이내 칙칙한 법복을 벗고 산뜻한 신사복을 입었다. 얼마나 수완이 좋았던지 불과 몇 년만에 요트를 샀다. BMW도 아니고 요트를 샀다! 축구 위에 테니스가 있고 테니스 위에 골프가 있고 골프 위에 승마가 있고 승마 위에 요트가 있다. 요트는 미국에서도 부의 상징이다. 그냥 부가 아니라 시간도 넉넉해야만 탈 수 있는 꿈의 상징이다. 현대판 귀족이 아니면 상상도 못하는 지상낙원의 상징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1980년대에 그 요트를 사서 탄 것이다!
  
  그러나 명예와 부는 쟁취했지만, 그는 권력이 없었다. 이 때 마침 인권 변호사의 길이 열렸던 것이다. 판사와 변호사의 이력서를 들고 정치 보스를 골라잡아 고개 한 번 가볍게 숙이면, 국회의원은 절로 굴러오는 게 한국적 정치 현실이다. 여기에 그는 인권 변호사라는 기가 막힌 민주화 경력이 보태졌다. 마침내 그는 국회의원을 넘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평생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하지 않고 남몰래 꿈꾸었던 권력과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쥔 것이다.
  
  상고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수직적 신분상승에 성공했듯이 정치 아마추어 출신으로 즐비한 안팎의 정치 프로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단숨에 권력의 최고봉인 청와대에 입성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의 '필살기'는 서민 이미지였고, 그 서민 이미지의 '초필살기'는 상말이었다. 간간이 섞어 쓰는 이 상말은 서민의 속엣말로 '떠서' 번개처럼 '수구보수' 세력의 눈을 치고 천둥처럼 '반통일' 세력의 귀를 때렸다. 이 상말은 또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 인권 변호사, 청문회 스타, 계란(민주주의의 명분)으로 바위(지역 감정) 치던 의사(義士)' 등의 색동 겉옷을 걸친 풍운아가, 병적으로 강한 한국인의 평등의식과 이론적 선험적 19세기 마르크스 사상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서 청계천 다리 밑에서 태어난 불평불만의 빨간 속옷을 은밀히 받쳐입은 것으로 간주되고, 정의의 분노에 액센트를 주는 강의어(强意語)로 여겨져서 오히려 그 팬 클럽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권력도 부도 명예도 얻지 못한 서민들이 하나둘 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것은 세뇌된 노예 심리라 생각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들려 준 대로 '구조적 모순'을 되뇌며 '노빠'에게서 짜릿짜릿한 대리 만족을 느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 상말은 노가다와 농투성이와 공돌이와 장돌뱅이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가 거나하게 한 잔 하거나 '동지'가 모이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속엣말로 여겨져서 그 지지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상말은 절대 실수가 아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전략 아래 각각의 전투에 맞춰 적절하게 구사되는 전술의 꽃이다.
  
  대한민국에는 독특한 계급 사다리가 있다. 그 첫 발판은 명문대이다. 그러나 그 명문대 위에 고시가 있고 그 고시 위에 민주 투쟁이 있고 그 민주 투쟁 위에 통일 투쟁이 있고 그 통일 투쟁 위에 선거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이런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한 사람이다. 다만 명문대라는 허울뿐인 사다리의 첫 발판을 건너뛰었을 따름이다. 전심전력으로 도움닫기를 해서 명문대를 머쓱하게 만드는 고시 사다리로, 명문대 위의 사다리 계단으로 단숨에 날아올랐다.
  
  때가 무르익어 '노짱'은 책상물림인 한 KS와 겨루게 되자, 그 '귀족'이 밟고 선 색 바랜 명문대 발판을 뚝 떼어 사다리 꼭대기에 올려놓고 서민의 굵은 팔뚝으로 사정없이 흔들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귀족'은 팔다리가 왕창 부러져서 다시는 문밖에 나다니지 못하게 됐다. 너무도 답답하여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다고 해도, 민주 투쟁하러 가려고 해도, '정치 판사'가 안 보내 주었다. 민주 훈장을 주면 못 쓰는 팔다리 대신 날개를 달고 부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빠'는 일찍이 1980년대 중반에 세계 최고 부자의 나라 미국의 귀족과 맞먹는 대한민국의 '만석꾼 양반'이 되었지만, 명분에 약하고 이성보다는 감정을 중시하고 강자를 응원하기보다 약자를 동정하는 데 야릇하고 짜릿한 정의감을 느끼는 한국인의 심리를 간파하고 교묘한 서민적 이미지 조작으로 동정심과 모성애와 형제애와 우정과 전우애와 동지애를 유발했다.
  
  그의 눈부신 성공 신화는 계속된다. 어느 날 이장 집 안방으로 다짜고짜 쳐들어가 뜬금없이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동네 확성기에 대고 외친 다음 느닷없이 통일 투쟁의 운동장에 뛰어들어 참가 자격도 없는 번외 선수로 심판과 관중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햇볕이 쏟아지는 모양의 깃발'을 들고 트랙을 빙빙 돌다가, 똘똘한 선수를 발견하지 못해 로열 박스에서 꾸벅꾸벅 졸던 DJ가 비몽사몽 '햇볕 정책' 어쩌고 하는 안내 방송이 들리는 듯하여 눈을 반쯤 떴다가 기적처럼 눈에 번쩍 띄는 놀라운 신인을 발견하고서는, 1000만 부동표를 그에게 몽땅 안겨 주었다. 이제 노무현 후보는 한 건만 더 올리면 화룡점정! 계란을 한꺼번에 예닐곱 개를 먹고 목을 가다듬자마자 큰 소리로 '지역감정 타파!'를 외쳤다. 그리고는 한 구석에서 옹기종기 갓 쓰고 점잖게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50년 무대접을 5년 안에 화끈하게 대접한다'고 귓속말로 계속 속삭였다. 존재하지도 않던 지역 감정을 새로 하나 창조해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석권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김정일의 인민복과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 또는 상말--이것만큼 위선적인 것이 또 있을까.
  
  
  
  
  
  
  
[ 2004-07-10, 10: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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