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살이와 계모와 새엄마
사람이나 事象(사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사람이 상처 입지 않게, 세상이 상하지 않게 신중히 해야 할 것 같다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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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노자)》, 《莊子(장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거기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중 한 구절이 노자의 《道德經(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여러 가지로 새길 수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것을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그 대상은 이미 본래의 그 대상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확실히 그렇다. 무엇에 어떤 이름을 함부로 붙여버리면 그 대상은 본질이 왜곡되어 그 이름에 고정이 되어 버린다. 과실로 교통사고를 내 복역을 하고 나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사람 중에는 어쩌다 실수를 했을 뿐 누가 보아도 선량하고 진실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을 ‘前科者(전과자)’라고 해 버리면 듣는 사람은 바로 ‘범죄자’를 연상하고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보게 되기 쉽다.

그런 예는 찾으면 많겠지만 여기서는 ‘繼母(계모)’라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한다. 生母(생모)가 죽거나 그 아버지와 헤어지고 새로 맞은 새어머니가 계모인데, 이 이름이 고약한 데가 있다. 그런 여자는, 그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제 또래 젊은 짝을 못 만나고 나이든 사람한테 살러 간 딸이 애처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런 계모를, 떠난 엄마의 정 밖에 모르는 전처 소생 애들은 무슨 마귀나 악귀 보듯이 하고, 말 안 들을 때 매 한 대 때려도, 그냥 넘어가도, 이래도 저래도 주위에서는 하기 쉬운 말로 ‘제 속으로 낳은 자식 같으면 저러겠나’ 하고 가시 돋힌 말을 한다. 그래서 이름도 서러운 ‘후살이’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보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단 계모라고 하면 바로 ‘전처 자식을 구박하는 표독한 여자’를 떠올린다. 자기가 낳은 딸, 팥쥐는 고운 옷 입혀 잔치에 데리고 가고, 전처 딸 콩쥐에게는 밑 빠진 독에 물 길어다 채우기, 나무 호미로 밭 매기 등 모진 일을 시키는 우리의 古說話(고설화) ‘콩쥐 팥쥐’에 나오는 콩쥐의 계모, 전처 딸 자매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古小說(고소설)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 같은 사람이 그 전형이다.

서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흑단 같은 머릿결에 흰 눈 같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의, 아름답고 착한 백설공주를 독이 든 사과를 먹여 죽이려 하고 있는 것도 계모인 왕비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의 사정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실례를 한 가지만 들겠다. 미국 사람 이야기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 되어 수도 워싱턴으로 갈 때다. 그가 탄 기차가 그의 고향 켄터키역 앞을 지나갈 때 기관사는 자기들의 고향이 낳은 자랑스러운 새 대통령이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옆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위해 차를 천천히 몰았다. 그런데, 그 차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링컨이 세우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멈춰선 기차를 바라보고 있으니 키가 커다란(193cm), 예의 그 턱수염을 기른 새 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걸어와 한 늙고 초라한 할머니한테로 가더니 포옹을 하고 한참을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더라 한다. 그 여인은 바로 어린 링컨을 키워 준 그의 새어머니 사라 부시였다. 그는 徐行(서행)하는 기차에서 도열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그 뒤 링컨은 어느 자리에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한 조그마한 여인이었다”고 했다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링컨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난 그 어머니를 말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니더란다. 링컨의 어머니는 그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나 그 아버지는 이듬해 이웃에 살던 사라와 재혼을 했다. 그런데 그 새어머니가 링컨을 그렇게 깊은 사랑으로 길렀다 한다. 일만 시키려는 그 아버지를 그러지 못하게 만류하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바로 그 새어머니였다.

사라는 참으로 현숙한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링컨이 세상을 떠난 후 누가 그녀에게 그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더니 “보통, 사람은 몸이나 정신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성장을 멈추는데 그 사람은 자꾸자꾸 크더라”고 하더란다. 참으로 그 아들에 그 어머니가 아닌가.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몰라서, 편견을 가지고 보아서 그렇지, 링컨의 어머니 못지않은 착하고 어진 ‘새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 없이 함부로 ‘계모’ 어쩌고 하는 말을 쓰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찌 비단 그 말 뿐이겠는가. 사람이나 事象(사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사람이 상처 입지 않게, 세상이 상하지 않게 신중히 해야 할 것 같다. 하기야,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소위 한국의 지성 중에 지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쥐xx’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는 세상인데-.

 

[ 2012-04-16, 11: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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