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요
우리사회는 ‘자기 탓’,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거의 모두 ‘네 탓’이라고 삿대질 하고 있다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천주교 미사 순서 중에 사제와 신도가 모두 동시에 “제 탓이요, 제 큰 탓이옵니다”하는 痛悔(통회)의 기도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말이야말로, 비단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소금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이나 자기 탓,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눈을 닦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거의 모두가 ‘네 탓’이라고, 눈을 부라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자는 열악한 작업환경, 저임금에 혹사를 한다고 사용자를 탓하고 사용자는 현실에 맞지 않게 높은 임금을 요구해 가격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파산을 하게 되었다고 근로자들을 원망한다. 야당은 여당을, 여당은 야당을 탓한다. 선거에서 떨어진 한 국회의원 출마자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내 인생이 개차반으로 망가졌다’고 분개하고 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옛날에도 이런 屬性(속성)이 있었던 것 같다. ‘서투른 목수 연장 나무란다’,  ‘잘 되면 내 탓이요,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이런 심리를 학자들은 投射(투사ㆍprojection)라 하여 잘 못 된 일로 인해 받을 마음의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防禦機制(방어기제ㆍdefence mechanism)로, 정신건강에 유익한 면도 있다고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이 어느 정도라야 말이지, 요즘 세태같이 되고 보면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나는 남을 탓하지 않는, 원망하지 않는 사람의 예를 몇 가지 잊지 못하고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라디움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마리 큐리의 시아버지 되는 분이다. 마리의 남편 피엘 큐리는 30대의 나이에 영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찾아 올 정도로 천재성을 보인 프랑스의 물리학자였다.

그 사람이 1906년 잔뜩 찌푸린 흐린 날 오후 좁은 차도를 걷다 달려오는 마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사고를 낸 사람에게 원망을 퍼부었을 것인데, 그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다가 차를 못 보았나?” 하는 말만 했다 한다. 세계가 그 장래를 기대한 자식을 잃은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쓰렸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자식을 죽게 한 사람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가버린 자식의 불찰을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니다. 그것은 35년 여 동안 이 나라의 주권을 강탈한 일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한 잘못된 과거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고 ‘遺憾(유감)’이니, ‘痛惜(통석)의 念(염)’을 금하지 못 하느니 하고 얄팍한 말재간만 피우는 것이 또한 얄밉지 않을 수 없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유대인 희생자들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는 사진을 본 뒤에는 더욱 그들에 대한 괘씸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분명히 우리가 마땅히 유심히 보아야 할 만한 면도 있다. 물론 그들끼리의 일이겠지만,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 그런 면이다.

들은 이야기인데, 1979년 대 일본 항공 아프리카의 한 지점장은 그의 지점에서 실은 기내식이 상한 것이어서 승객들이 식중독을 일으켜 문제가 되자 ‘내가 내 회사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하면서 자살을 했다 한다. 또 누군가에게서 들으니 그 사람들은 큰 빚을 지고 아무리 해도 갚지 못하게 되면 ‘내가 남을 괴롭게 했다.’고 하면서 자살을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자살이야, 인명 경시로 좋게 생각할 일이 아니겠지만 그 강한 책임감만은 놀라운 것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구한말을 살다간 선비 黃玹(황현) 선생이다. 과거에 장원급제를 했으나 나라가 기울어 가는 것을 보고는 宦路(환로)에 나설 마음이 없어 향리, 전라남도 구례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고 있던 그분은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해 버리자 9일 뒤 자택에서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생은, 죽음에 앞서 絶命詩(절명시) 네 편과 한 편의 유서를 남겼다. 그 시도, 후세에 가르침이 되는 바가 크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남긴 유서 중 일절을 잊을 수 없다. 선생은 거기서 “내가 죽어 義(의)를 지켜야 할 까닭은 없다. 다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라고 하고 있다. ‘내가 왜’를 외치면서 상대 탓하기에 바쁜 요즘 사람들, 한 번 쯤 마음에 깊이 새겨 볼 만 한 말이 아닌가 한다.

 

[ 2012-04-27, 10: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