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국가단체 ‘민혁당’ 연루 이석기 의원
“북한을 추종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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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총선 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李石基(이석기) 씨는 反국가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해체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하영옥의 지시로 조직 재건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민혁당은 김일성이 1927년 중국의 길림에서 조직했다는 청년혁명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사상적으로 계승했다는 조직이다. 1992년 김영환, 하영옥, 朴 모 씨 등은 반제청년동맹을 계승해 從北 지하당인 민혁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1997년 총책 김영환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북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민혁당 해체를 선언했다.
  
  민혁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1997년 민혁당 해체 당시 경기남부위원장이던 李石基 씨는 민혁당 해체 선언 이후 하영옥(서울대 법대 82학번)을 중심으로 조직 재건에 나섰다. 李 씨는 하영옥에게 경기남부뿐만 아니라 영남위원회 조직까지 책임지는 임무를 받았다. 민혁당은 1997년을 기점으로 조직이 二分化(이분화)되는데, 李 씨는 사상적 전향을 거부하고 북한의 지도에 충실한 후기 민혁당에서 더 큰 중책을 맡게 됐다. 이후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사상적 전향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李 씨는 또 민혁당을 이탈한 후배 朴 모 씨를 만나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알고 있느냐, 조직 내부에 사상적으로 변절한 사람들(김영환 등)이 있어 전부 제명시켰다. 제명된 인간들이 마치 조직의 중앙위원인양 행세하며 많은 동지들을 이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李 씨는 김영환 등이 민혁당을 이탈하면서 북한 추종주의를 명확히 비판했지만 “북한을 추종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이 문제를 사상적으로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박 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李 씨는 민혁당 해체를 인정하지 않은 하영옥과 함께 활동하다 1999년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지하로 잠적, 3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李 씨는 2002년 5월 공안당국에 의해 검거되어 구속됐다. 그는 법정에서 징역 2년6월이 확정된 상태로 복역하다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8·15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그는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 이사 및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을 맡아왔다. 진보당 내 민혁당 사건 연루자로는 李 씨 외에 이의엽 정책위의장이 있다.
  
  이의엽 의장은 민혁당 사건으로 2000년 9월 구속됐다. 2001년 출소 이후 부산에서 노조교육, 조직사업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부산 금정구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으며, 2010년 민노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운동권 출신의 하태경 前 열린북한방송 대표(4·11총선 새누리당 당선자)와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최근 라디오와 좌담회에서 이석기, 이의엽 씨 등을 거명하며 이들이 민혁당과 연계되어 있었던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진보당 배후에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과 그 산하 조직인 경기동부연합 및 민혁당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 2012-04-27, 15: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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