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김영삼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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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필자가 1993년11월호 월간조선에 썼던 [박정희와 김영삼의 화해'란 제목의 기사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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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泳三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전(前)정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의 연장선상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내부의 적」 「기득권층」 「조직적 반대세력」 「수구세력」 「反 개혁세력」이란 대결적, 갈등촉진적, 분열적 이미지의 말들을 거침없이 쏘아붙이고 있다.
  
  『돈 없는 사람이 부끄러웠던 시대가 가고 오히려 돈 많은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을 했던 金대통령이 요사이는 청부(淸富)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으나 먼저 뱉은 말을 지우기는 어려운 법이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세법을 개정하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있었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정하는 대통령? 이런 말은 빚이 된다. 북한의 악마적 정권을 향해서는 동반자라고 부르면서 국민을 향해서 「내부의 적」이라니, 적은 전투와 제거의 대상이다. 「내부의 적」은 혁명정부나 전체주의 국가가 쓰는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의 뒤에는 계급적, 反역사적, 그리고 反자본주의적 논리가 스며 있다.
  
  金대통령의 반공적 의식구조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알게 모르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다(북한의 영향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 원리인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와 배치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의 영향을 가리킨다). 취임사에 나온 문제의 구절―「어떤 동맹국·사상·이념보다도 민족이 중요하다」는 말은 북한의 對南통일전략에 있어서 기축이 되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엉터리다. 사상이 민족보다 더 중요하기에 한반도와 독일은 분단되었고 이민족의 집합체인 미국은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동의함으로써 통일국가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북한정권이 문제의 이 구절 때문에 처음엔 金泳三정부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취임사에 이런 구절을 끼워 넣은 세력이 「수구세력」 「내부의 적」 따위의 계급적 시각에 기초한 용어와 反자본주의적 용어를 대통령과 그 주변에 공급하고 있는 인맥과 일치한다면 이것은 「언어의 유희」 수준에서 넘길 일이 아니다. 문민 대통령은 총칼이 아닌 말로써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이야말로 국정운영의 풍향계인 것이다.
  
  金泳三대통령은 이런 말로써 득을 보고 있는가. 아닌다. 그는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쓸데없이 많은 적을 만들고 있다. 정말로 金대통령의 개혁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세력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으면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내어 거명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내부의 적」 「기득권층」이란 계급적·혁명적 말을 쓰면 개혁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기성세력 전체를 한 묶음으로 삼아 매도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기성세력은 비록 숫자에선 소수일지 모르지만 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층이다. 우리 사회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책임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인기에 연연하여 국정을 이끈다면, 즉 선거운동 하듯이 나라를 끌고 간다면 결과는 뻔하다. 기업경영가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말했다.
  『회사를 경영할 때 보니까 아래층 80%가 하자는 대로 하니까 망하더라. 어차피 장(長)자 붙은 관리층의 의견대로 해야 잘 된다』
  
  한국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단순시각을 연장시켜서 개발연대의 주인공으로서 세계사의 금자탑을 이룩한 오늘날의 기성세력을 매도하여 마음에 상처를 낸다면 金대통령이 딛고 있는 권력구조와 중앙부부터가 내려앉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정치성향을 대표하는 세 사람이 있다. 金泳三, 金大中, 그리고 죽은 朴正熙다. 지지계층의 넓이에 있어서는 朴正熙가 제일이다. 지난해 가을 동아일보사가 (주)동서조사연구소에 의뢰해서 조사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여론평가를 보자.
  
  朴正熙는 수 52.9% 우 33.9% 미 9.9% 양 1.9% 가 1.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全, 盧 두 사람은 미의 분포율이 가장 높았다). 朴正熙는 호남지방에서도 60% 이상의 지지율을 보였다. 金대통령이 역사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라고 못박은 인물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전혀 다른 것임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이 朴正熙 세력은 지역·계층면에서 金泳三 세력과 많이 겹친다. 金대통령이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면 할수록 朴正熙 지지세력의 반발을 사게 되고 그의 지지 기반은 분열될 것이다. 실제로 요사이 金泳三대통령의 역사관·인간관·反자본주의적 시각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朴正熙 지지세력이지 金大中 지지세력이 아니다.
  
  金正男 수석비서관은 최근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 에너지와 민주화를 이룩한 도덕적 에너지의 생산적 통합이 되어야만 신한국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화 세력은 환상과 전투성을 버려야 하고 「경제파」는 부정과 부패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파는 부패하고 민주파는 도덕적이란 전제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 본 것이다. 두 세력의 차이는 도덕성의 차이가 절대로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도덕면에선 인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두 세력의 차이는 방법의 차이였다. 경제파는 빵 뒤에 자유가 따라온다는 신념으로 빵의 크기를 키우는 데 전념했고, 민주파는 빵과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였다. 두 세력의 상호작용이 위기 때마다 생산적으로 통합돼 왔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다.
  
  두 세력간의 관계는 이렇게 정의돼야 한다. 경제가 발전했기에 민주가 가능했고 민주파의 견제와 저항이 있었기에 경제파의 독재화가 예방되었다. 金泳三 대통령이 「우리는 깨끗하고 너희는 부패한 세력」이란, 도덕적 잣대를 깔고 두 세력을 통합하려고 접근한다면 실패할 것이다. 민주파와 경제파가 서로의 역사적 역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 2004-08-11, 23: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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