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없는 正統의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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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토론방
  
  제목 : 傳統 없는 正統의 공허함
  
  남북한을 막론하고 우리 문화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정통성에 대한 결벽증이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면서 중국은 정통성 시비를 거의 않는다. 그들은 정통(正統)보다 전통(傳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은 목숨을 걸고 정통성을 따진다.
  
  정통은 과거 지향적이되, 승자의 과거를 '당위성'에 비추어 부정한다. 따라서 잘못되었다고 판단된 과거, 다시 말해서 정통성이 결여된 과거가 늘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끝없이 문화가 단절된다. 축적되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가 늘 불안하다. 반면에 전통은 과거 지향적이되, 승자의 과거를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긍정한다. 따라서 과거는 전통이 되어 현재를 풍요롭게 한다. 자연히 문화가 연속된다. 계속 축적된다. 정치와 사회가 안정적이다.
  
  정통은 '나와 우리' 편만 인간이거나 천사이지만 나머지는 짐승이거나 악마이다. 전통은 '나와 우리' 편만이 아니라 '너와 너희' 편, '그와 그들' 편도 같은 인간임을 인정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알고 보면 짐승도 없고 천사도 없고 악마도 없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배운다. 선과 악도 알고 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임을 인정한다.
  
  정통은 당위성을 가치기준으로 삼는다. 전통은 현실을 가치기준으로 삼는다. 정통은 명분을 임금으로 모신다. 전통은 실리를 어버이로 모신다. 정통은 속으로 '좋아도' 변화를 거부한다. 변화는 곧 변절이고 타락이기 때문이다. 전통은 속으로 '싫어도' 변화를 받아들인다. 변화는 발전이고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정통은 위선과 편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언제나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선 당장 먹고살아야 되기 때문이다. 전통은 정직과 휴머니즘이 넘친다. 인간의 약점을 서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내 약점이 드러나도 과히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정통의 나라 조선에서는 유교의 비조 공자(사서오경, 교과서)나 유교의 중시조 주자(사서집주, 참고서)의 글자는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었다. 왜구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해 준 대명이 비록 오랑캐에게 멸망했지만, 공자와 주자를 곧이곧대로 섬기는 조선이 세불리하여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지만, 천지신명과 성현의 보살핌으로 여전히 건재함에 오랑캐의 나라 청을 대신하여 천지간에 홀로 유교 정통의 맥을 잇게 되었다. 바야흐로 이제 조선이 중화이다. 다만 나라가 작아서 소중화가 되었을 뿐이다. '북벌하여 언젠가 모든 걸 바로잡으리라.'
  
  기독교의 성경은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책은 모조리 우수마발이다.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버스와 전철 안에서도 남이야 보건 말건 오로지 성경만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칼빈이나 교황은 신과 동격이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이다.
  학교의 교과서는 경전이다. 시험 문제가 조금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된다. 헌법재판소에 가져가야 한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 소련이든 중국이든 동독이든 헝가리든 루마니아든 유고든 쿠바든 스웨덴이든 프랑스든 독일이든 모조리 사이비 사회주의요 공산주의일 따름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체사상만이 정통 마르크스 사상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다.
  
  이성계는 나쁜 놈이다. 고려를 배신한 자다. 왕건도 나쁜 놈이다. 신하가 임금이 되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만고의 역적이다. 외세를 끌어들였고 만주 땅을 잃었다.
  이승만은 나쁜 놈이다.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서 친일파와 손을 잡았다. 박정희는 더 나쁜 놈이다. 독립군을 때려잡는 일본군 장교 출신에 일개 군인이 감히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나쁜 놈이다. 그들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우리의 현대사는 다 부정해야 한다. 정통성 있는 정부가 전혀 없었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아니, 너도 나쁜 놈이다. 쿠데타 세력과 야합해서 태어난 정권이니까. 나만 예외이다. 나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 있다. 제2의 건국을 한 분이다. 제2의 국부(國父)이시다.
  --웃긴다. 넌 그러면 왜 유신본당과 손을 잡았느냐.
  
  김일성은 좋은 분이다. 친일세력을 척결했다. 지주와 자본가를 몰아냈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공화국을 세웠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획기적인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웃긴다. 너는 조만식 등 우파 민족주의자를 숙청하고 박헌영 등 좌파 민족주의자를 매장했다. 점령군인 소련군 장교로 소련에 빌붙어 정권을 탈취했다. 이승만이 미군 장교로 정권을 잡았다면 도대체 너는 무슨 말을 했겠느냐. 농지개혁은 현물세니 뭐니 하여 매년 30% 이상 받던 빛 좋은 개살구였을 뿐이다. 그나마 결국은 협동농장으로 다시 빼앗아 갔다. 다 떠나서 외세를 빌어 동족을 3백만이나 죽고 죽이게 한 죄는 어떡할 거냐. 사이비 정통성으로 이를 호도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삼국 통일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 정통성이 있는 국가 원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는 모조리 부정해야만 하는 수치의 역사다. 역사적 사실은 전혀 배울 필요가 없다. 근본만 알면 된다. 우리는 다같이 저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전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다. 나름대로 자기 역사는, 전통은 긍정한다. 자부심을 느낀다. 과거는 바꿀 수 없음을 알고 거기서 교훈을 얻고 현재에 충실한다. 미래를 설계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정통성에 정신적 노예가 되었을까.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그렇게 되었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이 문제였다. 이민족에게 끊임없이 침략 당하던 송 나라가 현실적으로 무력하기만 했던 한족의 처지를 과거의 화려함으로 바꾸어 거기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려고 만든 중화사상을, 우리 선조가 거룩한 학문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사상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은 어떠한가. 99%의 한족이 하층민으로 살던 이민족의 왕조 곧 원(1271~1368)과 청(1636~1912)마저 모두 중국 역사로 편입한다. 1910년 8월 29일에서 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의 일제시대를 굳이 36년이라고 1년을 늘여서 이 때 이야기가 나오면 숨도 쉬지 못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심지어 저네들은 고구려와 발해도 자기 나라였다고 우긴다. 현재 자기 영토에 편입된 곳의 역사는 모조리 중국의 역사요, 중국 전통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중국 문화에 아니 들어가는 게 없다. 한국도 늘 자기 속국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공산주의도 중화사상의 몸에 마르크스 외투를 걸친 사상으로 바꾼다. 미국이 인권 논쟁을 들이대면 즉시 미국의 흑백 문제를 들쑤신다. 외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개고기 왜 먹느냐고 하면 숫제 대꾸도 않는다. 전세계에서 개고기를 중국이 제일 많이 먹지만, 아무도 중국보고는 뭐라고 못한다. 숫제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자본주의도 공산당 지배 하의 시장경제를 의미한다. 모택동의 과오를 일부 인정하되 그의 공은 더 높이 평가한다. 문화혁명의 악몽도 흘러간 과거요, 현실 속에 녹아 든 전통으로 생각한다. 그걸 따지기 시작하면 또다시 천하 대란이 일어남을 그들은 '피'로써 배운 것이다.
  
  우리가 정통성에 대한 결벽증으로 끝없는 소모전을 벌일 때에 그들은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쓸쓸하기만 했던 상해의 포동지구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떤 곳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현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우리가 우리 현대사에 그렇게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의 10배가 넘는다. 13억 인구의 중국 수출이 2000년 말에 2492억 달러이지만 인구 겨우 4천7백만의 한국 수출이 무려 1726억 달러이다. 인구 13억의 나라 GNP가 겨우 1조달러이지만, 인구 4천7백만의 한국 GNP가 무려 5천억 달러이다. 반 토막 나라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을 능히 깔볼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기의 전통을 자랑하고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부끄러워 한다. 정통성의 관점에서도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 중국에 뒤질 게 하나도 없다. 공산주의 못한 것이 철천지한이고 정통성의 유일한 흠결인가.
  
  서민들의 자유와 평등, 풍요로움--이것이 비교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에 비교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북한에 비해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로 북한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은 현실과 환상을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비 정통성을 앞세워 그들이 자행한 남침, 인권탄압, 독재, 부자세습, 연좌제, 기아, 감시, 증오 --가장 중요한 이런 것들을 민족화해란 허울로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막연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정통성만 확보하면 제일 중요한 현실의 정치와 경제, 문화는 어떤 식으로 하든 무조건 다음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짐은 항상 옳으니라.'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할 수 없노라.' '오로지 짐을 찬양하고 긍정하고 숭배할지어다.'
  
  민중은 현실을 원한다. 55년이 지나도 찾아올 기미가 전혀 없는 '이팝에 고깃국'을 원하는 게 아니다.
  민중은 현실을 원한다. 정통성 있는 민주주의 실험 10년이 지나도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날마다 정통성 시비로 국회에서, 길거리에서, 9시 뉴스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전쟁보다 더 치열하게 여야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같은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원수를 만들어 상종을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든(반미주의자가 기하급수로 늘긴 한다만, 미국이 정색을 하면 얼른 '오버'하고 파병한다.) 일본이든(수상이 나서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단 한 번 대마도와 유구<오끼나와>가 우리 땅이라고 정부 차원에서 한 마디 하기는커녕 황송하여 생각도 못한다.) 중국이든(중국 동포가 불법 노동자로 체류하는 건 너나 없이 도와 주지만, 우리 헌법이 명시한 저 30만의 굶주린 동포가 저 넓은 중국 땅에서 어딜 가든 개돼지 취급을 받아도 단 한 번 항의할 줄 모른다.) 북한이든(유럽과 제3세계가 중심이 되어 UN에서 북한 인권을 규탄해도 우리 정부는 슬그머니 도망간다.) 현실적으로 다른 주권 국가에게는 하나같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대한민국은 너네 없이 헐뜯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 풍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 다른 나라들처럼 전통을 중시해야 한다. 전통을 부정하고 오로지 정통성만 긍정하면, 우리는 조상도 없고 부모도 없고 이윽고 욕하는 '나'도 없어진다. 유교의 중국, 자본주의의 미국,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그들 나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통은 흔적도 없다.
  
  원효를 생각해 보자. 그는 석가모니라는 불교의 정통성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가족을 버리고 나서 득도한 석가와 달리, 득도 후에 우정 여색을 가까이 하여 나라의 기둥이 될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 한 번으로 끝냈다.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두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우적우적 씹어먹고 냇가에 우뚝 서서 힘차게 오줌을 누었다. 그러나 그 한 번으로 끝냈다. 왕을 만나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거지를 만나서도 거만하지 않았다. 불경을 존중했고 참선도 존중했다. 그러나 필요하면 불경이든 참선이든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무아미타불'만 되뇌었다. 아니면 나무 그늘 아래서 쿨쿨 낮잠을 잤다. 불교의 성지 인도에 주눅들지도 않았고 불교의 대국 중국에 고개 숙이지도 않았다.
  
  통일신라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랑스러워 했다. 수백 년만에 비로소 찾아온 평화를 사랑했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평화와 전쟁, 갈등과 화해를 되풀이하면서 때로는 발전하고 때로는 퇴보함을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화쟁(和爭) 사상이다. 헤겔, 마르크스의 정반합(正反合)이란 변증법이 터무니없이 일직선의 '발전'만을 가정함에 비해, 그의 화쟁 사상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 '발전'도 가능하고 '퇴보'도 가능함을 가르치는 한 차원 높은 세계적인 대사상이다.
  그는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조금도 차별하지 않았다. 현실은 현실로 긍정하고 세 나라 백성이 하나가 되는 서방정토를 다름 아닌 삼한에 세우려고 했다. 모두 그의 위대한 가르침에 고개를 숙였다. 후에 중국이든 일본이든 그의 사상을 황송한 마음으로 배워갔다.
  
  좋든 싫든 전통을 부정하거나 무시한 정통은 현재를 도외시하고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정통의 개념도 문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조선의 정통과 대한민국의 정통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통은 전혀 다르다. 고정불변의 정통은 없다. 정통도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통도 전통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설령 정통성의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해도 그 후에 실지로 이룩한 일이 과연 나라와 겨레에게, 민중에게 도움이 되었나,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을 같이 헤아려야 한다. 본처 자식만 자식이 아니고 첩의 자식도 자식이다. 본처 자식은 훌륭하고 첩의 자식은 고약하란 법이 없다. 홍길동은 첩의 자식이었지만 본처 자식보다 훌륭했다. 다만 정통성 좋아하는 양반 사회가 똑똑하고 인품이 훌륭한 그한테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그를 용납하지 않고 생매장했을 뿐이다. 성춘향은 기생의 자식이었지만, 양반인 변학도보다 수십 배 훌륭했다.
  누가 있어 홍길동과 성춘향에게 돌을 던지랴.
  
  우리 국민의 95%는 양반의 후손이 아니라 상민과 노비의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옛날에 양반들이 기득권을 지키고 영속시키기 위해 밤낮 거룩한 정통성을 내세웠듯이, 해방 반세기가 넘도록 한줌도 안 되는 정치인들이 밤낮 가슴 울렁이는 정통성을 외친다. 그러나 그들 심보에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점하려는 탐욕뿐이다. 그들의 선동에 휘말려 이리 저리 줄을 서서 똑같은 소리를 증폭시키면서 밤낮 풀뿌리끼리 치고 받고 싸울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싸우려면 먼저 싸울 대상이나 똑바로 찾을 일이다.
  
   (2001. 1. 27.) (2004. 1. 20.)
  
  
[ 2004-08-12, 10: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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