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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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토론방
  
  제목 : 다시 듣는 예스터데이, 비틀즈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흔히 팝송의 영원한 고전이라 일컬어진다. 영국의 BBC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팝송의 왕관도 「예스터데이」가 차지했다. 랭킹 20위 안에 든 곡 중에 복수로 꼽힌 가수는 비틀즈가 유일한데, 그들은 1위곡 외에도 6위곡(헤이 쥬드), 15위곡(이매진)까지 진입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비틀즈의 등장을 영국의 사회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는 아직도 신분 제도가 엄연히 존재한다. 대학만 해도 고등학생 졸업자의 7%밖에 못 간다. 서민들은 일단 그들이 public school이라고 부르는 비싼 사립학교에 감히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신분 상승의 기회가 박탈된다. 장관이 되어도 서민 출신이면 겨우 중산층에 들까 말까 한다. 귀족은 꿈도 못 꾼다.
  
  영국은 60년대 들면서 서민들도 살기가 상당히 좋아졌다. 실질적인 중산층이 많이 늘어났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정치적 민주이고 그 다음으로 찾는 것이 문화적 풍요로움이다. 두 욕구는 '자유'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신분으로부터의 자유, 관습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기존 문화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런데 이미 정치적 민주화는 최소한 투표권에서는 전혀 차별을 받지 않았다. 피선거권이 없는 바 아니나 그건 전혀 바라볼 수 없는 선악과이다. 여기서 서민은, 중산층은 땀흘려 번 돈을 멋있게 쓰고 싶어진다. 강렬한 문화적 욕구가 생긴다. 의원이 될 수 없는 소외감까지 겹쳐 그 욕구는 더한층 강렬해진다.
  우리 나라의 70년대와 일견 비슷했다. 우리 나라는 정치 민주화와 겹쳐서 훨씬 복잡하게 전개되었지만.
  
  그런데 귀족이 즐기던 클래식은 너무 어렵다. 폼 잡으며 음악회 가서 감동 받은 척해 봐야 그 갈증이 해소될 리가 없다. 자기 수준에 맞는 음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 혜성같이 나타나 그 갈증을 한꺼번에 풀어준 멤버가 바로 비틀즈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서민이었다. 밑바닥 인생이었다. 이들은 60년대의 영국만이 아니라 서구의 젊은이들이 원하던 바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영국 역사상 서민으로서 비틀즈만큼 출세한 사람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비틀즈는 모든 서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쉬웠다. 척 들으면 이해되었다. 모차르트, 베토벤이 주는 긴장이 전혀 없었다. 또한 다른 팝송과는 달리 응어리진 무엇을 풀어주는 신비한 마력이 엄청났다. 예술이란 것이 바로 이런 감동을 주는구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황홀했다. 눈물의 홍수.
  
  더군다나 비틀즈는 누구나 저 정도는 부를 수 있을 것 같이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 노래를 쉽게 불렀다. 그러나 막상 불러 보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다. 이게 또 엄청난 매력이었다.
  
  지금 보면 촌티가 뚝뚝 흐르지만 그들의 떠꺼머리는 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헤어 스타일이었다. 노래 부르는 자세도 지금 보면 얌전하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몸을 리듬에 맞춰 점잖지 못하게 막 흔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마음껏 노래하고 춤췄다.
  
  이상은 비틀즈를 사회 현상으로 설명하는, 많이 듣던 말이다.
  곡 자체는 어떨까. 이를 분석해 보면 흥미진진하다. 그들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더불어 2차대전 후 쌍벽을 이루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음악사상 저 빛나는 3B의 바하, 베토벤, 브람스에서 브람스를 빼고 비틀즈를 넣은 게 혹시 이 「예스터데이」한 곡을 분석하고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첫째는 리듬이 아주 단순하다. 모든 음악은 단순함에서 시작해서 복잡함으로 가다가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간다. 역사상 길이 남는 곡은 한결같이 단순하다.
  
  모차르트가 자기 곡 다 주고도 그레고리안 성가 한 동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그레고리안 성가는 모든 음을 한 박자로 처리하는 지극히 단순한 곡이다. 아마 중세에는 지금보다 틀림없이 느리게 연주했을 것이다.
  
  서양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환희의 송가는 4분음 4박자에 동일한 4분음표의 연속이다. 주제곡 네 악절 총 64박자 중에서 무려 48박자가 4분음표이다. 2분음표가 4개 있는데, 이것은 4분음표를 붙임줄로 묶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려 64박자 가운데 56박자가 4분음표이다. 환희의 송가는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끝없는 감동을 줄 게 틀림없다.
  
   환희의 송가가 감동적이려면 반드시 그 앞의 복잡한 부분을 통하여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껴야 한다. 이 자체만 연주해서는 그 맛을 반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예스터데이」는 그런 전제 조건이 없다. 기타로 겨우 두 마디를 둥둥둥둥 울릴 뿐이다. 한 박자로 느리게 시작할 수 없다. 호흡이 빠른 60년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그는 8분음표로 처리했다. 전주곡 두 마디 전체를 8분음표로 처리하고 첫 7마디에서 무려 8분음표를 21개 사용했다. 이 부분은 4번이나 되풀이된다.
  
  '어제'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바로 사랑하는 여인이 떠났기 때문이라는 글로 말하면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비로소 느린 박자를 도입한다. 2분음표, 4분음표를 사용한다. 기교라야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처럼 겨우 점4분음표에 8분음표를 더한다. 실은 이 부분이 제일 애절하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걸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가슴이 끝없이 두근두근한다. 결국 채울 길 없는 이 마음의 방황을 둥둥둥둥 8분음표로 처리한다. 이 마음에 대해서 목사처럼 충고하지 않고 그냥 무당같이 둥둥둥둥 울린다.
  
  첫 음이 서양 음악의 반란이다. 모든 서양 음악은 클래식, 팝을 막론하고 도미솔라 4음 중 하나로 시작한다. 그런데 비틀즈는 첫 음을 '레'로 시작한다. 동양의 5음계에서는 이게 흔하다. 그러나 서양 음악에서는 평균율 12음이 인위적으로 확정된 후에는 이걸 상상도 못했다.
  
  「예스터데이」라는 그 첫 마디에서 '뿅' 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첫 음이다. 동양의 신비함 속으로 그냥 빨려 들어간다. 그 야릇함이란! 이건 동양인이 상상할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서양인에게 안겨 준다. 또한 이 곡이 동양에서도 단연 최고의 팝송으로 꼽힐 수 있게 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 음도 파격적이다. '미'로 끝난다. '도' 아니면 '라'로 끝나야 하는데, '미'로 끝나서 끝없이 다시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실은 본론에 해당하는 가운데 부분에서 높은 '도'로 끝난다. 여기서 마쳐야 한다. 그런데 비틀즈는 이를 거부한다. 채울 길 없는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면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둘째 마디 셋째 마디는 갑자기 장조에서 단조로 바뀐다. 둘째 마디에서 비틀즈는 단조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 가락스런 단조를 사용한다. '파, 솔' 두 음을 모두 반음 높인 것이다.
  가락도 아주 단순하다. 레도도 미파#솔#라시도시라라 라라솔파미레 파미미레 도미레라 도미미 --- 얼마나 단순한가. 쉬운가. 감미로운가.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이걸 그저 약간 변형했을 따름이다.
  
  이런 음의 흐름을 세상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정말 천재다. 천재는 누구나 알고 있고 느끼고 있으나 아무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예스터데이」의 큰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흔들어대는 둥둥둥둥 둥둥둥둥의 리듬이 계속될 때 그 부분은 파격적으로 7마디가 반복된다. 두 마디가 한 동기, 두 동기가 작은악절, 두 작은악절이 큰악절 --서양 음악은 클래식, 팝을 막론하고 모두 이렇게 짝수형으로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같은 좌우가 다른 모양은 그들의 미학에서는 참지를 못한다. 우린 전체의 통일을 강조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균형을 이루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건 우리 나라가 세계에 우뚝 내세울 독특한 미학이다. 중국에도 없다. 그들의 미학도 기본적으로 좌우 대칭이다.
  
  서양 음악에서 이런 균형을 최초로 깬 사람이 저 유명한 베를리오즈이다. '환상 교향곡' - 프랑스는 이 곡 하나로 세계 교향곡에 금자탑을 세웠다. 별칭 '환상' 그대로 이 곡은 가히 환상적이다. 낭만주의의 맛과 멋이 흠뻑 스며 있다. 그 환상적인 맛과 멋을 베를리오즈는 7마디로 순식간에 사람들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걸 비틀즈가 사용한 것이다!
  
  낭만주의의 시간은 과거이다. 중세에 대한 향수이다. 기사와 말과 아가씨와 예수 그리스도 -- 전혀 마음의 갈등이 없는 행복한 시대였다. 먹을 것만 충분하면 그보다 좋은 세상은 없었다. 사람들은 인정스럽기 그지없었다. 축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늘 어린 시절이 가장 아름답다. 마음이 천사였기 때문이다.
  
  「예스터데이」는 단지 사랑하는 여인이 떠났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산업화 이전, 잘 살기 이전, 물질적으로 약간 부족했으나 행복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 행복을 꼭 잡던 때였다. 이젠 그 옛날이면 지극한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 '물질'을 다 갖췄지만, 그 행복을 맛볼 '마음'이 없다. 그 아름답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문명의 급속한 발달, 급격한 자연 파괴, 메마른 인심 -- 그러나 그 불편한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나 나나 너무 닳아 버렸다.
   동심! 「예스터데이」는 동심을 노래한다. 동동동동 동동동동
  
  
[ 2004-08-13, 09: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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