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와 진중권, 그 추종자들은 들어라

홍성주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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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마이,진중권>이라 함은, 이영훈교수가 9월 2일 MBC100분 토론에 나와, 현정부의 친일청산에 대해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가 하지도 않은 발언-‘자발적인 참여자’,‘상업적 공창’, ‘정신대=성매매’를 마치 그가 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이영훈교수를 <인격살인>하고 친일파, 친일패륜아의 딱지를 붙여 지식인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파시스트를 칭한다. 그리고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억울하게 당한 지식인의 양심과 자유를 옹호할 생각보다는, 온갖 궤변논리를 동원하여, “이영훈이 토론에서 한 발언은 그렇게 해석될 소지가 있었고, 실제로 그가 그렇게 발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식으로 이영훈교수의 생각,사상,학문적 입장까지 자의적으로 재단하며 오마이의 천인공로할 <인격살인>행위에 동참하고 있는 자칭 ‘진보논객’ ‘지식인’들을 지칭한다.
  
  <오마이,진중권의 추종자>라 함은, 파시즘적 행태를 보여주고있는 오마이,진중권들과 정치적 입장(친일청산)을 같이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이교수 발언의 전후사정, 학문적 세계에 대한 이해나, 나아가 21세기 한국의 민족문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관점도 별로 없이 떼거지처럼 몰려다니며, 오마이,진중권들이 이영훈 교수에게 한 폭력을 그대로 흉내내어 휘두르며, 다중의 힘만 믿고 학자적 양심과 소신, 지식인의 자유로운 정신에 재갈을 물려 침묵시키려 하고 있는 어중이떠중이 인터넷 전사(?)들을 지칭한다.
  
  그대들에게 묻는다.
  친일청산의 목적만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되면, 그대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어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그대들의 생각과 목적이 ‘정의’롭다는 것을 누가 보증해주는가? 그리고 <파시즘적 매도와 재갈물리기>의 방법이라도 성스런 목적(친일청산)을 위해서는 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권한을 그대들에게 부여해주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오마이와 진중권, 그 추종자들은 들어라!
  사실인즉, 그대들의 목적이 정의로울 거라고 보는 것은 그대들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일뿐이며, 그대들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사실은 파시즘과 포퓰리즘으로 병든 그대들 자신의 영혼일 뿐인 것 아닌가!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역사의 정의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신이 아닌 이상,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무엇이 참이고, 정의인지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걸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을 살고있는 우리들은 다만, “우리가 무엇을 참, 정의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결정할 수는 있을 뿐이다. 즉, ‘합의’는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어떤 정책 결정을 위해서, 즉 “당분간 무엇을 정의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이해당자들이 다같이 토론하고, 자신의 입장이 보다 잘 반영되도록 다투어 의견을 피력하고, 사회구성원 각자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주권을 행사하여,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란, 이와같이 “우리가 무엇을 참, 정의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신과같은 절대권력자 1인의 결정에 맡기지 않고, 혹은 소수의 귀족이나 특권자들의 결정에 맡기지 않고, 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결과론적 목적론” 이데올로기의 결정에 맡겨두지 않고, 성인이 된 사회구성원 각자가 나서서 주권을 행사함으로서 결정하게끔 하기 위한 사회,문화,정치체제를 말한다. 즉, 정기적인 각종 선거와 삼권분립의 정치제도,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규범을 규제하기 위한 법과 헌법 체계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제도와 규범이 ‘정의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문화양식으로서 <대화 토론의 양식>을 곧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MBC 백분토론이 왜 필요한가, 여기에 학자나 정치인 등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패널이 참여하여 왜 열띤 공방을 벌이고, 우리같은 평범한 국민들은 왜 새벽 2시까지 지켜보게 되는가 하는 것은, 그 이유가 명백하다. 이것은 <과거사진상규명> 문제와 관련하여 “당분간 우리가 무엇을 정의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어떤 민주적인 정치적 절차, 과정의 일환이며, 이에 수반되는 사회구성원 내부의 하나의 ‘특수한’ <대화 토론 양식>인 것이다.
  
  따라서 이 대화에 참여하는 패널이나 모든 관중들은, 그들 각자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공통의 <규칙>에 의해 규제된다. 그 규칙(룰)이란 다름아닌, 민주주의 토론양식으로서, 이 <민주주의>가 지시하고 있는 일반적인 규범과 태도를 의미한다. 발언시간지키기, 제대로 듣고 말하기...등등 잡다한 것들로부터, 중요하게는 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장차 결정할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민주주의적 신념과 태도를 갖출 것이 요구된다.
  
  가령, <친일청산>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은, ‘왜 그것이 정의인가’를 주장하고 사람들을 설득할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어떤 누구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확정하여 타인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토론과 투표 혹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정의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 다시말하면, 후일의 어느 시점에서는 정반대로 뒤집어질 수도 있는, 그런 결정을 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 ‘절차’로서 우리 인간이 ‘참과 정의’를 정의할 수 있는 명백한 <범위와 한계>인 것이며, 바로 이 <절차의 정의로움>이야말로, 민주주의제도가,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단정할 수 없는 <정의>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근접해 갈 수 있게 하는 근본원리인 것이다.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제도의 우수성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 이제 다시 그대들을 향해 묻는다.
  이영훈교수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천인공로할 <인격살인>은, 바로 민주주의 대화양식이 요구하는 <규칙>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아니, ‘파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보라, 이영훈교수가 ‘자발적 참여자’ ‘정신대피해자=성매매자’라는 발언을 한적이 있는가, 없는가?
  
  토론에서 송영길의원이 이영훈교수를 몰아부치며 ‘일본’과 동일시 하는 것은, 그래도 감정이 지배하기 쉬운 격한 토론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게임 위반정도로 가볍게 봐줄 수 있다. 하지만, 토론회이후 벌어진 <오마이,진중권>들의 행태는 그 게임규칙을 명백히 파괴하고 있는 ‘반민주’, 즉 파시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일말의 반성의 태도도 없이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너무나 분명한 ‘왜곡’를 합리화하고 그 죄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는 행태는 분명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이 진실로 위험한 이유는,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러한 반민주적 행태가, 근원적으로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친일청산)만이 절대적으로 참이고 정의이며, 반대편 주장은 ‘사이비’ ‘거짓’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즉, 이들은 감히 “무엇이 정의인가”를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하겠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오직, “우리가 무엇을 정의로 볼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절차적 정의’에 대한 생각은, 그들의 논리세계속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이 참된 정의인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자신들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믿고 있는 어떤 이념적 체계, 이데올로기야말로 “무엇이 참, 정의인가”를 알수있는 절대적인 가치규범을 제시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가치규범의 전형적인 것으로서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짐이 곧 국가다’는 말처럼 절대군주 일인이 정의를 결정해주는 방식을 <왕정, 혹은 전제주의>라고 한다면, 현세기 인류가 이미 실패를 경험한 마르크스-레닌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바로 그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대표하는 <당>이 인민을 대신해 그것을 결정해주는 방식이었고, 이것을 오늘날 사람들은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결과론적 목적론’에 경도된 이러한 전체주의 일당독재는 사회정의를 오히려 철저히 유린함으로서, 마침내 그 국가마저 붕괴되기에 이르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오늘날 21세기를 살고있는 우리들은 그 좌절과 오류의 경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소위, ‘진보’를 사칭하고 있는 <오마이,진중권>은 바로 이 점을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단지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주장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무도하게 자신들이 나서서 정의, 역사의 정의를 ‘결정’까지 해버릴려는, 그래서 스스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부정의’를 심판하고야 말겠다는, 씨알도 안먹히는 전체주의 파시즘 행태를 당장 중단하고 이영훈교수와 한국 지식인 사회에 당장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며, 파시즘적인 민족숭배주의자-친일청산론자들의 궤변에 넘어가 학문과 양심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려고 혈안이 된 그들 추종자들도 이점을 똑똑히 깨닫고 자중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민족문제를 바라보는 젊은 혈기와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 도가 넘쳐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이고, 더 경계해야 할 해악인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거치없이 분위기에 편승되어 반인륜적인 파시즘적 테러에 가담하는 행태를 중지해야 한다. 오히려 반대로, 오마이뉴스의 너무나 명백한 천인공로할 <인격살인>의 왜곡과 반성없음을 질타해야 할 것이다!
  
  
  2004. 9. 13일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지식인 행동]
  
  
  PS ; 위 성명과 같은 뜻에 동참하여 서명하실 분들은, 자신의 인적사항(성명,나이,주소,직업)과 위 성명에 대한 의견을 아래 저의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홍성주
  ju1015@hotmail.com
[ 2004-09-15, 09: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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