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신뢰-시오도어 루즈벨트의 경우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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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신뢰
  
  한자로 믿을 信자는 사람 人변 옆에 말씀 言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의 말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어떤 사람의 말을 믿을 수가 없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뜻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말로써 이루어지고 말로써 평가되고 말로써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 이 말이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면 정치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公職은 公信이다」는 것을 행정부의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이때의 공신이란 말은 공적인 신뢰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Public Trust라고 합니다. 공직자, 즉 공무원 언론인 정치인처럼 공공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公衆과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해서만 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신뢰관계가 없다면 산속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마치 맹수를 만난 것처럼 긴장하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고 내 호주머니에 든 돈을 가져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과 공직자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국민들은 공직자를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보고 공직자들은 국민들을 폭도로 보게 될 것입니다. 예산을 공무원이 빼돌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뢰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 국민과 정부를 연결해주는 끈인 것입니다. 이 끈이 끊어지면 우리 사회는 개인 단위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정부와 국민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아 국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관계가 사라지면 약탈국가가 되든지 무정부상태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정상적인 국가는 이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 관계를 깨는 사람들을 엄중하게 다스립니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헌법입니다. 이 헌법을 깨는 쿠데타나 내란은 어느 나라나 실패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으로 다스려집니다. 어느 나라나 간첩을 重刑으로 다스리는 이유도 이것이 헌법적 질서와 체제에 반역하는, 국가를 배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헌법이나 한 사회의 규칙을 깨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나라는 自衛 능력이 없는 사회가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양식 있는 사람은 악한과 위선자와 거짓말쟁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죽어 지내야 합니다.
  
  동서양 어디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어기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정치인들은 그러나 자신이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설득에 실패하면 그는 국민들의 외면속에서 정치인의 생명이 끝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속을 깨는 이유로서 국민의 부름을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1997년에 이인제씨도 국민들이 자신을 불러냈기 때문에 당원으로서의 도리에 구애받지 않고 출마를 강행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경선불복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인제씨와 비슷한 경선불복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2기에 걸쳐 공화당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서 미국을 세계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등산, 모험, 전쟁, 탐험 등 야외 활동을 찬양하고 남자다움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서부에 있는 옐로우스톤 파크는 이렇게 해서 생긴 국립공원1호입니다. 그는 자신이 총애하던 하워드 태프트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물러난 뒤에 다시는 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태프트는 대통령이 되자 루즈벨트가 추진했던 정책을 뒤집는 등 전임자를 무시하는 언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불만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12년 공화당 후보경선에 다시 출마합니다. 전당대회에서 태프트 측이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써 자신을 물리치자 진보당이란 신당을 만들어 별도로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1912년 大選은 공화당 후보 태프트, 진보당 후보 루즈벨트, 민주당 후보 우드로우 윌슨 이 세 사람이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유세 도중 루즈벨트 후보는 연설장으로 가는 승용차에 오르는 순간 한 광신자에 의해서 저격을 받았습니다. 권총 탄환은 오버코트와 안경집과 연설문을 뚫고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갈비뼈 하나를 부순 뒤에 허파 바로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두둑한 배짱으로 유명한 루즈벨트는 군중이 이 범인을 붙잡아 몰매를 가하자 『저 자를 상하게 하지말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는 총알이 가슴에 박혀 있는 데도 연설장에 나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피묻은 셔츠를 흔들면서 『이 정도로는 이 황소를 죽이지 못한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연설을 끝내고야 그는 총알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웅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대선에서 우드로우 윌슨에게 참패했습니다. 프린세턴 대학총장출신인 윌슨은 선거인단 기준으로 4백35표, 루즈벨트는 88표, 태프트는 여덟표를 얻었을 뿐입니다. 공화당의 분렬로 민주당 후보가 그 50년 전의 남북전쟁 뒤에 처음으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경선에 승복하지 않은 한때의 영웅 루즈벨트를 버린 것입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1997년 이인제씨에게 있어서 당과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출마한 것은 영원히 원죄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것이 5년 뒤 입증된 셈입니다.
  이인제씨의 문제는 약속깨기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납득할 만하게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문민정치의 한 결점입니다. 지식인들은 그 지식을 이용하여 변명의 논리를 항상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군인들 사이에서 승부는 패전과 승리로 갈라지니 변명이 통할 여지가 없습니다. 기업활동에서도 승패는 적자와 흑자로 수치화되니 변명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주자학을 신봉한 지식인들이 다스렸던 조선조 5백년 동안 이 지배층은 국가 안보에는 실패를 거듭하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고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보니 역사의 교훈을 얻지도 못하고 꼭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는 점입니다.
  임진왜란이 나기 2년 전인 1590년에 선조는 황윤길을 정사, 김성일을 부사로 하는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인지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돌아와서 상반된 보고를 합니다. 西人 출신인 황윤길은 전쟁의 위험이 있다고 하고 김성일은 西人과 라이벌 관계인 東人으로서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김성일의 이 잘못된 보고는 서인 출신인 황윤길과 무조건 반대되는 생각을 펴야 한다는 당파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이때 조선조 조정은 결국 김성일의 전쟁 없다는 판단을 받아들여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군인 이순신을 존경하는 것은 그가 홀로 전쟁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만드는 등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글을 아는 지식인들이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망국적인 행동을 한 데 비해서 군인은 有備無患의 정신으로써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군인들이 집권을 하고 있었더라면 황윤길과 김성일의 상반된 판단을 검증하기 위하여 재조사단을 보냈을 것입니다.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정보가 엇갈 릴 때는 제3자를 투입하여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구해본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입니다.
  조선조의 주자학자들은 이 임진왜란의 실패를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고서 그 직후에는 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자초했습니다. 이때도 아무런 방비 없이 당했던 것입니다. 지식인의 자기 합리화는 변명의 논리로 쓰여지면서 진정한 반성의 기회를 빼앗아갑니다. 변명이 있는 곳에서 반성이 없고 반성이 없는 곳에서 발전이 없습니다. 조선조 지식인들이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식민지화라는 네번의 실수를 되풀이 했던 것은 이 지식인들이 모두 자기합리화와 변명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이런 식의 거짓말과 변명을 일삼으면 첫째 교육에 문제가 생깁니다. 며칠전 어떤 교사가 한 이야기입니다만 초등학교어린이의 반장선거에서 진 학생이 정치인들을 본받아 타당한 이유도 없이 반장선거를 부정하고 재선거를 주장하고 나서면 교사가 무엇이라고 설명하겠습니까. 둘째, 국가지도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정치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존경이 따르지 않으면 권위가 생기지 않습니다. 현대 민주정치제도하에서 대통령의 힘은 권력에서 나온다기보다는 권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권위는 도덕성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뒷받침이 없으면 권위도 안생기고 그런 권위를 기초로 한 국민설득력도 사라지게 됩니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잃은 정치지도자는 선동이나 사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셋째 약속을 안지키는 지도자가 나타나면 공권력이 먹히지 않게 됩니다. 대통령도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불상한 시민이 법을 좀 위반하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하는 생각이 확산되면 법이나 질서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민윤리도 제대로 설 수 없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동의 기준은 교사이고 아들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이듯이 국민들은 정치지도자의 행동을 살펴보고서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김대중 총재는 1987년12월 대선에서 金泳三후보와 함께 동시출마하여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자 개표에 컴퓨터 부정이 있었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재개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컴퓨터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런 컴퓨터 부정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을터인데 당시에 언론들은 양비론 양시론으로 이 문제를 보도하다가 보니 지금도 그때 컴퓨터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기간에 정보화를 내세웠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도 없는 사람이 외친 정보화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가 진 것은 동시 출마를 강행하여 민주화를 열망하던 표가 분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잘못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컴퓨터에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는 전형적인 지식인의 변명논리인 것입니다.
  지금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사나 무사들의 통치를 오랫동안 받은 적이 있고 많은 전쟁을 경험해보았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왜 군인들이 다스린 적이 있는 나라에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했는가, 지식인이나 종교인들이 다스린 나라는 왜 선진국이 되지 못했는가 하는 데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샤무엘 헌팅턴 교수가 쓴 유명한 책으로 「국가와 군인」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헌팅턴 교수는 서양 직업군인들의 사고방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헌팅턴 교수에 따르면 군인들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군인은 전장에서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허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훈련을 통해서 단련시켜야 용감한 군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군인들의 인간관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군인들은 이런 사람들을 용감하게 만들려면 반복적인 훈련과 엄격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의 건국을 주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들이 가진 약점들을 직시한 바탕에서 어떻게 하면 제도를 통해서 이런 약점을 바로잡고 보완하느냐를 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틀인 균형과 견제의 장치였습니다. 직업군인들의 인간관과 민주주의의 인간관은 인간의 약점을 직시하고 제도적인 보완책을 강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제도적인 보완책으로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직업군인의 인간관과 민주주의자들의 인간관이 이처럼 같았기 때문에 군인들의 통치를 받았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권리로서의 민주주의만을 기억하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나의 권리만 주장하였지, 민주주의가 요구하고 있는 법과 규칙의 준수라는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40%가 1997년에 한 이인제씨의 약속위반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 동안의 민주주의 교육이 실패하였음을 말해줍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은 자기수정능력입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국민들이 단속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악한과 사기꾼과 선동꾼과 거짓말쟁이들이 국민의 이름을 빌어 정권을 잡는 것을 방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호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결판 날 것입니다.
  
출처 :
[ 2002-11-27, 18: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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