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독립군 家系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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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月刊朝鮮 10월호「추적/마침내 풀린 김희선 의원의 독립군 가계 의혹」
  
  <요약 내용>
  1)『김희선 의원의 아버지는 독립군이 아니라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김학규 장군 큰 며느리 등의 증언)
  2) 열린당 김희선 의원은 김학규 장군과 족보상으로 남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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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의원은 『아버지 김일련이 한독당 비밀청년 당원으로서 김구 선생의 밀명으로 활동하다가 실종됐다』고 주장했으나, 만주에서 옆 마을에 살았던 田鳳愛씨(김학규 장군의 며느리) 등 복수의 인사는 『김일련이 일제하 만주국 유하 경찰서 경찰로 일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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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성김씨 족보에 따르면 김희선 의원의 증조부 김순옥은 1897년에 사망했다. 이때 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 김성범은 15세였고, 김의원이 작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김학규 장군은 그 3년 뒤인 1900년에 태어났다. 따라서 『증조모 선우순이 증조부 사이에 난 김성범과 김학규를 데리고 안동김씨 김기섭에게 재가했다. 김성범과 김학규는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본관이 서로 다르게 됐다』는 김희선 의원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김학규 장군 후손들은 『김희선 의원이 독립운동가 가계를 자처하기 위해 김학규 장군의 아버지를 바꿔서 환부역조(換父易祖)했다』고 흥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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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본문 요약>
  광복군 제3지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학규(金學奎) 장군의 손녀 혹은 종손녀라고 주장해온 열린당 김희선(金希宣 61·국회 정무위원장)의원은 의성김씨 집안의 족보, 김학규 장군의 호적, 김학규 장군 며느리의 증인을 확인한 결과, 김학규 장관과 족보상 남남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인 田鳳愛씨(80)를 포함한 복수의 인사들이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金一鍊)은 독립군이 아니라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는 요지로 증언했다. 月刊朝鮮은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 10월호에서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지금까지 김희선 의원은 『증조모 선우순(鮮于順)이 의성 김씨 김순옥(金淳玉)과의 사이에 할아버지 김성범(金成範)과 작은 할아버지 金學奎를 낳았고, 안동 김씨 집안에 재가(再嫁)하면서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김성범은 「의성김씨」, 김학규는 「안동김씨」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1936년 발간된 「의성김씨 태천공파」 派譜(파보)와 1992년 제작된 「의성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김성범(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의 아버지 金順玉은 1897년 사망했다. 이때 김성범의 나이는 15세였고, 1900년생인 김학규 장군은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김학규 장군의 호적과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장군은 「의성김씨」 金順玉이 사망한 지 3년 후에 「안동 김씨」 김기섭씨와 재가한 선우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학규 장군의 큰 며느리인 田鳳愛(80) 여사는 『시아버님(김학규 장군)은 안동김씨』라며 『김의원의 증조할머니인 선우순 할머니가 희선이 할아버지인 김성범을 데리고 의사인 안동김씨 김기섭한테 시집가서 김학규장군을 낳았다』고 말했다.
  
  田 여사는 『시할머니(鮮于順)가 우리 시어머니(金鳳洙 여사)에게 「남편이 죽고 혼자 되니 살 수가 없어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왔다」고 늘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들었다』며 『두 사람(김성범과 김학규)은 친형제가 아니다』고 했다.
  
  田鳳愛 여사는 김학규 장군의 장남 김일현의 부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김일현씨는 1950년 동두천 전투에서 7사단 1연대 중대장으로 전사했다. 김일현 대위에게는 1951년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김일현 전봉애 부부 사이에는 딸이 둘 있다. 전봉애 여사는 조부 전준벽(田畯闢) 선생도 애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김학규 장군의 후손들은 『김희선 의원이 독립군 가계임을 자처하기 위해 김학규 장군의 아버지를 바꿔버리는, 환부역조(換父易祖·지체가 좋지 않은 사람이 부정한 수단으로 자손이 없는 양반 집을 이어서 자기 아비 할아비를 바꾼다는 뜻)를 했다』고 흥분하고 있다.
  
  김희선 의원은 자신의 부친 김일련에 대해 『한독당 비밀청년 당원으로서 金九 선생의 밀명으로 활동하다가 실종됐다』고 주장해 왔다.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 田鳳愛 여사는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1919~1954?)이 광복전 만주 柳河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가를 색출해서 취조했다」는 한 제보자의 주장에 대해서 金일련씨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유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한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당시 田여사는 김일련씨 옆 마을에 살아 서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전여사는 『그건(만주국 경찰 근무 사실) 그 주위에서 흩어져 살았던 김희선 의원들의 삼촌들도 다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田여사는 『내가 김일련씨의 직책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면서 『김일련씨가 제복 입은 것은 못봤고, 사복을 입은 것만 봤다. 그러니 고등계인지 일반계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희선 의원 집안과 가까운 다른 익명의 증언자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김일련씨는 남한으로 내려와 장사를 시작했고, 1949년 배에 물건을 잔뜩 싣고 중국으로 장사하러 갔다』며 『그후 러시아에서 납치돼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김희선 의원이 1954년 러시아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내용에 대해 『「못돌아 올 것 같다」는 내용이지, 독립운동 얘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田여사는 「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 김성범과 아버지 김일련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두 사람이) 독립운동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 2004-09-17, 00: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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