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弘 목사 -『독립운동하던 심정으로 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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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ㆍ金正日에게 영혼을 팔았던 主思派 출신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규명해야 한다.
  
  정리 : 이근미 자유기고가
  
  
  KBS의 대한민국 自害
  
  우리나라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6¡25 발발 54주년이 되는 날 아침에, KBS1 TV에서 노근리 사건을 거듭 설명하더군요.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 여러 나라들이 이 나라에 와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국영방송이 감사와 치하 대신 노근리 사건을 장황하게 보도했습니다.
  
  「KBS는 국영방송인데 이상하다, KBS 편성진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단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근리 사건은 불행하고 슬픈 일이지만, 전쟁 상황이라는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북한군들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피란민 속에 숨어 있다가 피란민을 보호하려고 다가오는 국군이나 유엔군에게 총을 쏘아 많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몇 번 그런 일을 당하면 하급 지휘관이나 사병들이 자기 동지를 잃었다는 분노에 휩쓸려 그런 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월남전(베트남戰)이나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이 그런 건 제쳐놓고 마치 미군이나 유엔군이 양민을 학살하러 온 것처럼 보도한다는 것은 우리 국가 전체를 해치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이 금년 4월 초에 金正日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金正日을 만났을 때 『남조선을 언제 방문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金正日이 『남조선이 해방되면 해방군 사령관으로 가는 것이지, 지금 갈 거 뭐 있냐』고 했답니다. 실제 얘기입니다.
  
  이 말이 金正日의 본심일 거 같습니다. 일본에서 「공포의 전략가 金正日」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金正日이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대단히 탁월한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지도자라는 내용을 여러 사례를 분석하여 쓴 책입니다.
  
  그 뛰어난 전략 감각을, 민족을 살리고 백성을 살리는 쪽으로 쓰고 않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쓰는 게 비극이지요.
  
  金正日이 전략적인 데 비해 우리 남한 지도자들은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이 정치 9단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요즘 생각해 보면 對北관계나 국제관계 풀어 나간 것을 봤을 때 9단이 아니라 0.9단이라고 할까요?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타임」誌 지난 6월21일자입니다. 제목이 「金正日은 왜 웃고 있는가」입니다. 찬찬히 읽고 탄식을 했습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에 있어 金正日이 최고의 승리자다. 金正日이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도대로 잘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金正日이 미소짓는 첫째 이유로 남한에서 이념 교육하는 것을 예화로 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보면 견우·직녀 얘기가 나옵니다. 휴전선에서 견우·직녀가 서로 만나려고 애쓰는데 공중에서 붉은 용이 방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붉은 용」이 미군이라고 설명합니다.
  
  全敎組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그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미군들 때문에 통일이 안 되고, 견우·직녀가 못 만나고 있다. 남북 통일이 안 되고 있다』 이런 걸 자꾸 강조하고, 그게 나중에 청년 학생들의 심리 저변에 깔리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건전한 시민관과 국가관을 저해하는 핵심입니다.
  
  저는 1970년대에 운동권 뒤에 줄을 섰다가 징역도 살고 했습니다. 나는 민주투사도 운동권도 아닌데, 어쩌다가 딴 짓을 한 거지요. 1970년대 운동할 때는 순수했습니다. 反美, 親사회주의, 親北이 없었습니다. 우린 이런 얘기를 한 거예요.
  
  『朴正熙 대통령이 경제를 부흥시키고, 안보도 튼튼히 하고,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래도 민주주의의 기본은 지키셔야지요. 나라의 기본이 인권인데 지키셔야죠』
  
  1980년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민족사적으로 光州사태는 정말 불행한 사건입니다. 光州사태는 운동권이 질적으로, 획기적으로 달라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가면서 대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反美·親北 사회주의화됐습니다.
  
  후배들에게 『완전히 다른 종자처럼 왜 이러냐』고 하면, 『선배님들은 보수·수구세력이에요』하고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全大協 핵심들의 金日成 찬양
  
  1980년대 운동권 핵심세력이 全大協(전국대학생협의회)입니다. 그 全大協 핵심세력들이 親北 사회주의 기치를 내걸고 급기야 『金日成 주체사상으로 민족의 활력을 이어가자』로 나가 버렸습니다.
  
  全大協 핵심세력들이 작성한 反帝청년동맹 강령을 일부 읽어 보겠습니다.
  
  <反帝청년동맹은 金日成 청년혁명조직이다. 각계각층 민중을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켜 하나의 힘으로 굳게 만든다. (생략) 反帝청년동맹은 美제국주의 침략자와 그 앞잡이를 몰아내고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1989년 7월21일 「주체기치」 제2호 1면에 나오는 글입니다. 북한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남조선 운동권 핵심들이 만들어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걸로 끝났으면 좋은데, 1980년대 全大協 핵심세력들이 흩어진 게 아니고 「제3의 길」이라는 학습단체를 만들어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조직을 키워 이번 17代 국회에 17명이 공천받아 12명이 당선되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활약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1980년대 金日成 주체사상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생각하던 그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느냐. 아니면 생각이 달라졌느냐』고 했더니, 『선배님, 그건 옛날 얘기지요. 당연히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정신 나간 사람이지요』라고 하더군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해명이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것도 국가적으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反帝청년동맹강령을 발표했던 중심세력들이 국회까지 들어왔으면, 「그때 생각은 이랬는데 그 뒤 이런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때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국정활동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軍, 압록강 渡河 훈련 실시
  
  지난주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현역 국회의원들 중에 공식적인 글이나 국회 발언을 통해 『우리가 미국을 따르던 시대를 접고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말하자면 『親美에서 親中으로 노선을 바꿔야 한다』고 발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중국에 가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정말 착각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난 7월3일부터 13일 동안 중국군이 압록강 渡河(도하) 훈련을 했습니다. 압록강을 중간까지 왔다가 거기서 기역자(ㄱ)자로 꺾어서 다시 되돌아가는 훈련을 했습니다.
  
  중국군이 지금 왜 새삼스럽게 압록강 渡河작전을 펴느냐? 북한 쪽에서 항의를 했겠지요. 『홍수대책으로 한다』고 했답니다.
  
  지난번에 高建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하던 기간 중 북한 용천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高建 총리가 『金正日 정권이 무너지고 북한에 親中 괴뢰정부가 들어설까 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중국 北京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藏學(장학·티베트學)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거기서 티베트에 관한 모든 걸 연구하여 티베트에 관한 두꺼운 연구서 7권을 냈습니다. 티베트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하고, 티베트의 역사를 전부 중국의 역사로 재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독립국이었던 티베트를 중국 땅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이번에는 東北工程(동북공정)입니다. 고구려 땅인 만주와 한반도를 중국 역사에 속한 중국 땅으로 만드는 겁니다. 동북공정을 하면서 지금 압록강 도하작전까지 발전된 겁니다.
  
  이럴 때 남한에 미군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국력이 커지고, 언젠가는 자주 국방을 해야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방국가 미군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우리가 미국에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죠.
  
  대학생들이 『미군 물러가라』며 던진 돌이 미군 경비병의 이마에 맞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습니다. 그걸 한국 경찰이 보고만 있은 거지요.
  
  미국 TV에서 현장을 찍어 2003년 12월 30일에 미국에서 방영했습니다. 그걸 미국 국방장관 럼즈펠드가 보고 『제기랄, 미군 빼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미군 3700명이 빠졌습니다. 럼즈펠드가 보고 이해가 안 간 겁니다. 「그렇게 의리 없는 나라에 왜 우리 군인을 보내 희생당하게 하느냐」고 외면하는 거지요.
  
  옛날 운동권 같이 한 사람들이 『金鎭洪 목사가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너무 親美주의자고 너무 민족주의자』라고 공격합니다. 『그래 맞다. 나는 민족주의자고 親美주의자다. 나는 목사지만 목사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이 땅에서 나라 사랑하고 민족 사랑하는 목사로 살고 싶다. 6¡25 때 이 나라를 지켜 주고 자유 우방국가인 미국과 친한 게 뭐가 나쁘냐. 내가 나쁜 걸 논리적으로 말해라. 뭐가 나쁘다고 생각하냐』고 반문합니다.
  
  
  황당한 金日成 父子 신격화
  
  청년들이 북한에 대해 환상을 품고, 엉뚱하게 온 세계가 쓰다가 버린 사회주의에 대해 이상을 갖고 매력을 느끼고 따라가는 걸 보면서, 「우리가 정말로 국민교육을 잘못시켰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나는 북한에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고, 농장을 3년 반 했었고, 지금도 여러 가지 사업을 합니다. 제가 북한 갔을 때 얘기를 청년들에게 자주 들려줍니다.
  
  세 번째 북한에 갔을 때가 金正日 생일이 사흘 지났을 때였어요. 저녁 7시30분쯤 TV를 틀었더니 북한을 대표하는 詩人이 金正日 생일 축시를 읽었습니다. 내가 듣고 놀랐습니다.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석가모니는 인류 구원을 위해 히말라야 설산에서 7년 고행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도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였으나 실패하였도다.
  그러나 우리 영명하신 金正日 장군께서는 인류 구원 역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성취하고 계시도다>
  
  이렇게 줄줄 나가요. 내가 그걸 듣고 『해도 너무하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 뒤질려고 환장했나』 그런 말을 했어요.
  
  북한 호텔에서 책자를 팔고 있어요. 갈 때마다 책을 사 옵니다. 내가 사온 책 중에 「金日成 그이는 하나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기독교 신앙고백의 핵심이 되는 사도신경을 이렇게 설명해 놨어요.
  
  <전능하신 당과 인민을 영도하시는 金日成 주석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金正日 동지를 내가 믿사오니,
  이는 공산당으로 잉태하사 美 제국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으시고…>
  
  이렇게 죽 나가서 끝에 「아멘」합니다. 이거 참 해도 너무합니다. 이게 무슨 나라가 장난도 아니고. 이래가지고… 참 불쌍합니다.
  
  
  남한의 자칭 진보세력, 북한인권 고의로 묵살
  
  중국 두만강에서 100km 떨어진 자리에 130만 평 되는 땅을 50년간 빌려 중국 「두레마을」을 세웠습니다. 거기에 脫北者(탈북자)들이 찾아옵니다. 8년 전부터 함경도 양강도 쪽으로 자꾸 양식을 들여보내고 열심히 활동을 했더니 북한 국경지역에서는 소문이 많이 났나 봐요.
  
  부부가 북한 땅에서 탈출을 하면서 약속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국경을 넘다가 총격을 받아서 헤어지거나 하면 연변 두레마을에서 만나자』
  
  한번은 두레마을에 남편이 먼저 왔어요. 두레마을에 와서 마누라를 찾아요.
  
  『당신 마누라를 어째 여기 와서 찾냐』고 했더니, 『고향을 떠날 때 국경에서 헤어지면 여기서 만나기로 했수다』 그래요. 낮에는 산에 가서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내려와서 자기 마누라가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며칠간 밥도 주고 목욕도 시켜 줬는데 4일 뒤에 마누라가 찾아왔어요. 두레마당에서 둘이 안고 우는데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렇게 만났으니 신혼방처럼 생각하고 잘 자라고 새 이불 해서 자게 했더니 하필 그날 중국 공안이 쳐들어와서 부부가 잡혀갔어요. 남편이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망을 치다가 다리가 부러졌어요. 개 끌듯이 끌고 가요. 그걸 현장에서 보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어떻게 저렇게 백성을 학대하고 인민을 억압할 수 있나.
  
  金正日이 수백만 명을 굶어 죽게 한 건 단군 이래의 큰 범죄예요. 민족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일이지, 다른 변명할 게 뭐 있습니까. 민족적인 범죄입니다.
  
  그런 현실을 남한의 진보세력이나 청년들, 운동권들이 고의로 묵살한다 이겁니다. 朴正熙 대통령 때는 『인권을 보장하라. 민주주의 합시다』 했는데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남한의 진보세력이 입을 딱 다물고 있어요.
  
  이건 인간의 기본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사회주의가 좋다. 金正日 체제가 좋다. 북한이 좋다』는 사람은 정부에서 북한으로 다 보내줘야 합니다. 석 달만 가 있어 보면 다 압니다. 뭐든 경우가 있고 앞뒤가 있어야지, 아닌 걸 맞다고 하고, 맞는 걸 아니라고 하면 이 나라의 전체 풍토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죽은 자이툰 부대 장병들
  
  자이툰 부대에 가서 派兵(파병)예배 때 설교를 했습니다. 왜 날 와달라고 하느냐니까, 병사들이 지원해서 이라크를 가는데 자꾸 후방에서 『보내면 안 된다. 미국 앞잡이다』 하니까 병사들이 사기가 죽어서 「가야되나, 안 가야 되나」 고민하게 되었답니다.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는 이유 네 가지를 조목조목 얘기했더니, 예배 시작할 때는 모두들 얼굴에 그늘이 있었는데 예배 끝날 때는 모두 기분이 좋아서 축제가 되었습니다. 이왕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확신을 갖고 당당하게 나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뒤에서 나쁜 일 하러 가는 것처럼 해서는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요.
  
  우리나라는 앞으로 3~5년 안에 先進國으로 진입하느냐, 後進國으로 내려앉느냐가 결정될 겁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선배들이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6¡25 전쟁 때 나라를 방어하던 마음으로, 전선에 나가던 마음으로, 나라 일에 관여해야 합니다.
  
  헌신하고 물질이 들어가는 데는 물질을 내야 하고, 노동이 들어가는 데는 노동을 내고, 지식이 필요하면 지식을 내야 합니다. 나라 살리는 일에 모두가 힘을 합쳐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세 청중의 질문에 대한 金鎭洪 목사의 답변이다>
  
  ─연변 두레마을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으로 압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북한에 다니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산에 나무가 없는 겁니다. 나무가 없으면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납니다. (중략) 자연이 완전히 황폐해져 버린 겁니다. 어떤 데 가면 산 전체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습니다.
  
  북한에 나무가 있어야 되는구나 생각해서 몇 번 얘기해도 「묘목이 없어 못 심습네다」 뭐 이런 식입니다. 「묘목을 길러 낼테니 심으세요」하고 연변에다 잣나무 묘목을 심어서 북한에 들여보내 나무심기 운동을 하고 있지요. 과거보다 식량을 직접 전달하는 양이 많습니다. 우리는 중간 간부와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원하는 민간 對 민간 지원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자녀도 이번에 자이툰 부대에 자원했습니다. 자이툰 부대에서 한 설교의 네 가지 요점을 얘기해 주십시오.
  
  『첫째는 韓美동맹입니다. 안보의 기틀, 미국이 어려울 때 돕는다는 건 절대적인 것이라는 걸 말했습니다. 두 번째, 전쟁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이라크 국민들과 친선하러, 그 사람들을 도우러 가는 평화군대라는 걸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국부대는 쿠르드族 지역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도우신 지역입니다.
  
  쿠르드族은 학대받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후세인 밑에서 독가스로 학살당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한국군이 오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철도 놔달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그렇게 여유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 거지요.
  
  세 번째, 쿠르드族 지역에 석유 매장량이 엄청납니다. 우리가 자원이 없으니 교류를 해서 석유 자원을 확보하면 좋겠지요. 네 번째, 우리는 수출 안 하면 못 사는 나라인데, 전쟁이 아닌 평화군으로 가서 中東 사람들과 잘 친해서 앞으로 수출 역량을 길러야지요. 이것이 이라크 파병의 명분입니다』
  
  
  씨감자 사업 같이한 북한 책임자 총살당해
  
  ─金日成이 죽은 뒤 북한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한에 사는 以北 출신들은 강인하고 용맹이 있는데 지금 북한 주민들은 왜 나약한 것일까요?
  
  『내 경험을 말하지요. 나진·선봉지역에서 씨감자 보급하는 농장을 만들어서, 대전 연구단지에서 개발한 씨감자 40만 개를 보급했습니다. 그 농장을 3년 반 동안 운영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요. 첫 번째 갔을 때는 북한주민들이 저를 모른 척했습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고개만 까딱 숙이더니, 세 번째 가니 벌써 「오라버니 왔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밭에서 같이 감자를 캐면서 「남조선은 거지가 많다지요?」하고 물어요. 내가 「왜 거지가 많아, 부자가 많지요」하면서 얘기를 주고받았지요. 「美 제국주의에 얻어먹는다면서요?」 하길래 내가 「美 제국주의가 욕심이 많은데 주나요. 자동차와 TV를 만들어서 팔아서 살지요」하고 얘기해 줬지요.
  
  3년 반 동안 우리와 계약한 당사자가 네 번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은 북한 핵심분자들 600명 앞에서 총살당했습니다. 한 사람은 실각하고 두 사람은 다른 데로 옮겼어요. 철저하게 지도부를 통제하는 거지요. 金正日은 「공포의 전략가」입니다.
  
  평양에서 좀 벗어난 지역에 농기계 수리 공장을 세웠습니다. 80호 되는 마을의 논으로 농기계 실험을 하러 갔는데 중앙에 軍 초소가 있고 군인이 보초를 서요. 모른 척하고 「민간 마을에 왜 軍이 보초 서지요? 강도가 나타났습니까?」 물었습니다만, 이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 2004-09-29, 17: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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