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4] 말뿐인 李會昌 對北정책의 수수께끼

金演光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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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은 햇볕정책의 계승자가 될지 모른다』
  
  ●無이념, 無비전으로 金大中의 햇볕정책에 사실상 동조했다
  ●『李會昌의 이념을 굳이 말하자면 실용주의. 그는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다』(李會昌 후보의 한 측근)
  ● 두 차례의 對北지원 제한법 입법이 李會昌 후보의 소극적 자세로 무산됐다
  ●한나라당의 「쌀 200만 섬 무조건 對北지원」 아이디어는 李會昌 후보에게서 나왔다
  ●『그는 보수가 아니다. 그는 자신과 국민을 속이고 있다』(李良熙 의원)
  
  李會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西海交戰(서해교전)이 벌어진 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인 李會昌(이회창)씨는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다. 대신 그는 7월1일 한나라당 대책회의에서 西海交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방위체제를 전면 再검토해야 한다. 5단계로 돼 있는 교전수칙에 대해 잘못됐다는 비판이 있다. 北의 무력도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보다 강력한 대응뿐이라는 이 간단한 규칙을 잊고 있는 것 아닌가. 강력하고 충분한 억제력을 갖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北이 그토록 빈번하게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는데 이것을 밀어내기로 막은 안일한 대응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원칙을 세우고 어긋나면 응징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간단하고 유일한 길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처리를 지켜보겠다』
  이 자리에서 徐淸源(서청원) 대표는 『이제는 원칙 있는 對北정책을 再수립할 때가 됐다』면서 『햇볕 일변도로 퍼주기만 해서는 안 되며 금강산 관광, 민간교류 등 對北지원을 전면 再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徐대표는 『서해에선 목숨을 잃는데 동해에선 금강산 관광이 계속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李會昌 후보는 햇볕정책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西海交戰을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李후보 진영은 서해교전 이후 기자회견을 가질 것인가, 햇볕정책을 어떤 강도로 비판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黨 대책회의에서 군사도발을 비판하는 선에서 정리하기로 결론이 났다. 한 참모의 설명이다.
  
  『햇볕정책 건드려봐야 표가 안 된다』
  
  『햇볕정책과 이념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려봐야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게 별로 없다. 민주당이 「逆(역)색깔론」을 펴면 20代와 30代의 표만 달아난다. 유승민 여의도 연구소장이 상당히 강경하게 써온 원고를 李會昌 후보가 상당 부분 고쳐 썼다. 형식이야 어떻게 됐든 李후보가 할 말은 다 한 것 아닌가』
  李후보는 일요일인 7월7일 오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햇볕정책은 北에게 일방적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도록 하고 가야 한다. 이걸 도외시한 햇볕정책은 再검토되고 지양돼야 한다.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 쉽게 잊혀져 가고 있다. 무력도발의 희생자로 보지 않는다. 이건 우리가 처한 상황의 역사적인 계기가 만들어낸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左右 이념 문제를 떠나서 우리 아들 딸들의 시대를 위해서, 그들의 생명과 장래를 위해서 이 부분은 대통령과 정권이 생각을 180도 바꿔주기를 요구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햇볕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가, 점심시간에 『햇볕정책 再검토』라고 기자들에게 정정했다. 李후보의 지난 4년간 발언을 좇다보면, 그는 햇볕정책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을 전면 부정하거나 비판하면서도, 『햇볕정책의 승계』를 자임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그래선지 韓和甲(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李후보의 발언에 대해 『왜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분노를 느끼느냐』고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李후보는 햇볕정책에 분노를 느끼고 180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햇볕정책은 국민의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시작했는데 왜 그때는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분노를 느끼는가. 李후보에게 묻고 싶다. 李후보의 對北정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면,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
  
  「남북관계 특별법」 流産의 내막
  
  2000년 여름 「남북 교류협력 지원에 관한 특례법안」 立法(입법)을 추진했던 자민련 李良熙(이양희) 의원은 『한나라당과 李會昌 후보는 「금강산 관광 중단」, 「햇볕정책 再검토」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며 『李후보는 국민과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했다.
  李의원은 『李會昌씨는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정부의 무분별한 對北지원에 제동을 걸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걸 다 차 버렸다』며 『李후보는 지금도 마음만 막으면 얼마든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킬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여름 李의원은 「남북 교류협력 지원에 관한 특례법안」의 發議(발의)를 준비했다. 당시 그는 자민련 원내총무였다. 이 법안은 국회 안에 「남북관계특별위원회」를 두고, 일정 규모 이상의 對北 사업과 지원은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자민련 의석은 17석으로 줄어들었다. 의원 입법에는 국회의원 20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李의원은 국무총리로 가 있는 李漢東(이한동) 자민련 총재의 도장까지 받아냈다. 李총리가 『햇볕정책을 수행하는 정부의 국무총리인데 내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온 국민이 남북 頂上회담의 열병에 들떠 있었다. 언제 수천억원 단위의 對北지원이 국회의 승인없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통일부가 관리하는 「남북협력기금」은 국회의 승인없이 지출하고, 사후 보고만 하면 되는 돈이다. 對北 지원에 제동을 걸기 위해 법안을 남북 頂上회담 직후 서둘러서 만들었다』
  李의원은 睦堯相(목요상)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에게 한나라당이 법안 공동 발의에 참여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당시는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 숫자가 국회 교섭단체 구성 정족수(의원 20명) 이하로 줄어들어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 줄 것인가」가 정가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李의원은 睦의장에게 『「對北특별법」은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법안이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睦의장에게 공식 요청을 하고, 평소 친분이 있던 한나라당 崔秉烈(최병렬) 부총재에게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崔부총재가 「좋은 아이디어다. 이런 일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돕겠다」며 법안까지 들고 갔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요. 한나라당과 李會昌 총재가 법안 제출에 뜻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결국 법안 발의를 포기했어요』
  李의원은 『한나라당이 자체 여론조사를 했더니 보수적인 의견은 많지 않고, 젊은 층의 햇볕정책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서 입법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며 『李총재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느냐보다, 득표의 유·불리만 따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李會昌은 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
  
  금강산 관광과 對北지원에 대해 李會昌 총재는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다.
  『금강산 관광의 代價로 지급되는 막대한 액수의 달러는 북한의 변화 인센티브를 낮추고 오히려 폐쇄적인 억압체제와 군사적 위협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1999년 10월20일 정기국회 대표연설)
  『對北지원에 필요한 재원은 투명한 법적 절차에 따라 확보 집행되어야 하고, 반드시 국민의 지지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2002년 2월4일 국회 대표연설)
  그러나 李會昌 총재는 자민련의 對北 지원 제한법안 입법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崔秉烈 부총재의 기억이다.
  『그때는 국민들이 남북 頂上회담에 도취돼서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을 환영했고, 李會昌 총재는 표를 의식하는 분위기였어요. (李총재가) 對北 정책에 대해서 말을 잘 안하거나, 속내를 안 보이고 엉거주춤한 상태였습니다. 李총재는 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때 그때 왔다갔다 해요. 保守(보수)라는 구분이 李會昌 후보에게는 정확하게 적용이 안돼요.
  서해교전 후에는 상당히 右傾化(우경화)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죠. 李후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분명하게 들리잖아요. 그래도 李총재는 對北 지원 제한법을 앞으로 立法(입법)하는 게 자신의 인기에 도움이 될지 지금도 계산을 하고 있을 거예요』
  2001년 10월12일, 두 건의 對北지원 제한법안이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와 자민련 金鍾泌 총재는 2001년 9월18일 만나 『북한에 돈을 지원하는 일은 반드시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며, 필요하면 입법을 하거나 법을 개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그 무렵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의석을 합치면 146석으로 원내 과반의석을 10석 초과했다. 그런데도 이 법안은 지금까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한국관광공사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900억원 지원,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국가의 관광비용 지원 등의 이상한 조치는 원천봉쇄될 수 있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위원인 한나라당 金容甲(김용갑) 의원은 『양당이 공동 발의한 對北 지원법안은 민주당의 반대가 거셌고, 상임위에서의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고 했다.
  『與野(여야)가 합의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면 문제가 생긴다.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했고, 통외통위의 우리 당 金元雄(김원웅) 의원 같은 이들도 민주당 쪽에 가세했다. 일방적으로 표결하기가 어려웠다』
  金의원은 『입법을 하지 않더라도, 「금강산 관광 중단」을 다른 현안과 연계해서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발목 잡는다」는 여론을 의식해서 조심조심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자민련쪽에서 對北지원 제한법안 입법을 주도했던 金學元(김학원) 원내총무는 『수가 부족해 상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한나라당 측의 설명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철학이 담기지 않은 이념 논쟁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협의가 잘 안 된다」, 「朴寬用(박관용) 의원이 나서서 조정한다」는 얘기를 하더니 계속 늑장을 부렸다. 정책공조가 처음에는 잘되는 듯하다가, (한나라당이) 삐딱하게 나갔다. 통외통위 소위원회에 넘겨 심의를 하다가 중단된 상태다』
  ―한나라당이 왜 소극적으로 선회했다고 보나.
  『한나라당이 슬슬 여론의 눈치를 보더라. 「자민련과 공조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지 협조가 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金元雄 의원이 법안통과에 반대하는 등 상임위 과반수 확보가 어렵다고 설명하는데.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金의원의 상임위를 바꾸면 된다. 여당이 「사보임」(국회의원의 소속 상임위를 임시로 변경하는 조치)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킨 게 어디 한두가지인가. 李총재가 당론에 배치되는 사람을 설득할 수도 있지 않나. 의지의 문제다』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한 데는 李會昌 후보의 뜻이 반영됐다고 보나.
  『물론이다. 對北지원 제한법이 현재 통외통위에 계류중이다.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李총재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이번 국회에서 지켜보겠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2001년 5월9일~12월24일)으로 한나라-자민련의 양당 정책공조를 담당했던 金滿堤(김만제) 의원은 『李총재가 법안 처리에 부정적이었고, 그것 때문에 나와 李총재의 사이가 삐끄러졌다』고 했다.
  金滿堤 정책위의장은 2001년 8월 金大中 정부가 추진한 건강보험 직장-지역 통폐합, 의약분업 등이 시장기능을 약화시키고 정부의 통제와 간여를 확대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金의장의 先攻(선공)으로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사회주의 攻防(공방)」이 펼쳐졌다.
  「左派的(좌파적) 정권」이라는 공격이 뼈아파서인지 陳稔(진념) 경제부총리는 金의장을 찾아와 『제발 사회주의라는 말은 좀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는 大選(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2002년 4월3일)하면서 『지금 급진세력이 좌파적인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現 정부의 「좌파적 정책과 언행 여덟 가지」를 제시했다. 내용은 金滿堤 의장이 지난해 얘기했던 것을 그대로 모아놓은 것이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나서서 반격을 가하자, 李후보 측은 『앤소니 기든스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金대통령을 좌파 정치인으로 규정했다』(南景弼 대변인)는 궁색한 답을 내놓았다. 李후보 측이 제기한 2次 「좌파적 정권 논쟁」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논쟁을 시작했지만 거기에 李후보의 철학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金 前 의장의 설명이다.
  
  李會昌, 『무조건 200만 섬 지원하자』
  
  金 前 의장은 『지난해 내가 좌파적 정권 논쟁을 할 때 李會昌 총재는 「표 떨어진다」며 반대했다』며 『李총재가 가끔 金大中 대통령과 햇볕정책을 비난하기는 하지만, 그의 정치적 스탠스(입지)는 최근 들어 전보다 더 左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代와 30代 젊은층, 수도권 사람들이 보수이념을 곧 守舊(수구)로 간주해 탐탁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李총재는 전보다 더 보수에서 중도로 선회하고 있다. 서해교전 때도 처음에는 「안보문제다. 사고다」는 아리송한 입장을 보였다. 여론이 워낙 나빠지니까 「햇볕정책 再검토」를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李총재가 대통령 후보경선 출정식 때 강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金大中 정부의 좌파성향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았나.
  『그때는 민주당 盧武鉉 후보가 워낙 左로 가 있으니까 그걸 견제하려고 해 본 것이다. 지금은 다수 여론이 개혁 이미지를 선호하니까 거기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때 그때 여론에 따라 입장을 자꾸 바꾼다. 그에게서는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찾기 힘들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정치 지도자의 비전은 이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비전에서 이념이 형성되고, 이념에서 정책이 나온다. 분단된 한반도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통일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 강한 자기 이념과 비전이 없다는 것은 곤란하다』
  金 前 의장은 『李會昌 후보는 그때 그때의 인기와 여론을 좇는다는 점에서는 「포퓰리스트」(인기 영합주의자)다. 서해교전 이후에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金滿堤 정책위의장 시절 한나라당이 『200만 섬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자』고 청와대와 민주당에 먼저 제의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金의장은 2001년 9월20일 『조건을 달지 않고 쌀 200만 섬을 인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했다.
  한나라당 안의 보수적인 중진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姜在涉(강재섭) 부총재 등은 『對北지원을 하더라도 분배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고, 상호주의 입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이었다. 對北지원에 대한 국회 동의도 우리 당의 주장이지 않느냐』고 나섰다.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9월24일)는 신중으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사건에 대한 李會昌 총재의 입장은 『쌀 재고 과잉 해결 차원에서 對北 쌀지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정책위에서 우리 당의 일관된 對北지원 기본원칙은 생략한 채 구체적인 쌀지원 규모까지 발표해 문제가 발생했다』(조선일보 9월25일자 보도)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쌀 200만 섬 무조건 對北지원은 누가 주도한 것일까?
  『李會昌 총재가 조건없이 지원하자고 했다. 나는 조건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李총재가 「인도적 지원에 무슨 조건이냐」고 했고, 나와 權五乙(권오을) 의원이 李총재의 주장에 밀렸다. (200만 섬 지원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반발하고, 당내 보수파가 들고 일어나니까 「신문에 왜 났느냐」가 문제가 됐다』
  
  『그는 보수층과는 다르다』
  
  ―李會昌 총재는 金鍾泌 자민련 총재와 對北지원 제한 입법에 합의했는데, 왜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나.
  『李총재는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다. 「너무 강경하게 나가면 안 좋다」, 「金大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는 게 당시 李총재의 얘기였다. 李총재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유화적이다. 햇볕정책을 수용하겠다는 자세다. 보수층과는 다르다』
  ―자민련에서는 한나라당의 정책공조에 큰 기대를 걸었고, 對北지원 제한법이 통과될 걸로 믿었던 것 같다.
  『李총재가 자민련과 정책공조를 하라고 해서, 나는 세게 밀어붙였다. 對北지원 제한법은 그중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얼마 뒤 李총재가 특유의 우물쭈물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金學元 자민련 총무가 가져온 안에 대해 「그게 아니다」고 했다. (李총재가) 朴寬用 의원에게 새로운 안을 만들어오라고 했고, 趙雄奎(조웅규) 의원 등을 설득해 물타기한 안을 밀었다. 朴寬用 의원이 「이 정도면 민주당도 받아줄 거다」고 했는데 잘 되질 않았다』
  金 前 의장은 李총재가 건강보험 재정통합, 교원정년 환원, 방송법 등의 문제에서 『여론이 안 좋아지면 자신의 입장을 너무나 쉽게 번복했고, 그게 엄청난 黨 정책의 혼선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자민련과의 정책공조도 돌이켜보면, 李총재는 「정책을 만들어내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특유의 우물쭈물 자세를 견지했다』
  金 前 의장은 『리더는 자기가 이슈를 만들고 끌고가야 하는데 李총재는 상황에 끌려다니다가 눈치를 보며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며 『이념의 軸을 左右로 왔다갔다 하니까 국민들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金滿堤 의원은 「李會昌 대통령」의 對北정책 역시 햇볕정책의 과오를 되풀이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李총재는 햇볕정책을 구성하는 요소들, 즉 상호주의를 포기한 일방적 對北지원과 유화정책을 경우에 따라 비판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이 하도 욕을 먹으니까 차별화를 위해 다른 레토릭을 쓰지만 金大中 노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집권하면 보수층과의 충돌이 많을 것이다. 李총재는 강한 이념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통일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惡(악)의 제도와 체제를 포기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善의 제도와 체제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金正日을 「피그미」라고 불렀다. 한국內에서 『한 국가의 지도자를 그렇게 비하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있었지만, 피그미라는 호칭은 북한을 反문명적인 야만 국가로 바라보는 미국 공화당 사람들의 인식을 담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은 북한의 金正日을 「국방위원장」으로 호칭하고, 노벨상을 함께 탔어야 할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다. 金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의 세계사적 흐름에 맞서가며 북한체제를 두둔하고, 유화적으로 포용하는 정책을 고집해 왔다.
  李會昌 총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辛卿植(신경식) 한나라당 大選기획단장 등 李會昌의 측근으로 알려진 세 사람을 연이어 만났다. 이들은 하나같이 『李會昌 후보는 이념이 없다』고 했다.
  匿名(익명)을 전제로 한 측근은 인터뷰에 응했다.
  ―북한의 金正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문명국가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국가의 독재자라는 시각이 있고. 「金正日 국방위원장」으로 존중하는 시각이 다른 하나다. 李총재는 金正日과 북한체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李총재는 양쪽 모두로 갈 수 있다. 유동적이다. 李총재는 이념이 없다. 左右로 나눠서 얘기하기 어렵다. 굳이 그의 이념을 얘기하자면 실용주의 현실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李會昌 총재의 정확한 입장은 뭔가.
  『불투명하다. 자신의 입장을 확정짓지 않은 상태로 봐야 한다. 그래서 밖에서 그의 발걸음이 이상해 보이는 거다』
  
  『李會昌의 이념적 색채는 소위 진보, 그것보다는 실용주의』
  
  ―李會昌 후보는 자신을 「개혁적 보수」, 「따뜻한 보수」라고 얘기하는데.
  『李會昌 후보는 보수가 아니다. 그는 늘 소수 의견을 내온 판사였다. 維新(유신) 시절, 全斗煥 정권 아래서 늘 主流에 맞서 온 사람이다. 그의 이념적 색채를 굳이 얘기하자면 소위 진보고, 그것보다는 실용주의자다. 판사는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듣고 자기 판단을 내린다. 전문가가 아니지만 결정을 내린다. 자기 주장과 이념이 강하면 훌륭한 판사가 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李會昌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정책에서 큰 실수를 하지는 않을 걸로 기대한다』
  ―20代와 30代를 공략한다고 하면서, 李會昌 후보는 왜 자신의 이른바 진보성향을 얘기하지 않나.
  『얘기해서 표가 안 될 걸로 생각하는 거다』
  ―李會昌 후보의 가장 큰 취약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그는 조직을 움직여 보지 못했고, 「퍼스널 매니지먼트」(인사)를 해 본 적이 없다. 李會昌은 개성과 카리스마가 강하다. 강한 개성의 리더 옆에는 강한 사람이 버틸 수가 없다. 李會昌 주변에는 「예스 맨」만 포진해 있다. 河舜鳳(하순봉) 梁正圭(양정규) 두 사람이 실세라고 얘기 듣다가, 尹汝儁(윤여준) 의원이 좀 도왔고, 尹의원마저 물러나 주변에 사람이 없다.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나는 머리가 있는 참모는 필요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내가 다 아니까 심부름하는 정도의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金大中 대통령이 이런 성향이 강한데 李會昌 후보는 金大中 대통령에 못지 않다. 人事에서 출렁거릴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 측근은 이런 얘기를 했다.
  『李총재는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위기에 처하면 주변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참모들과 둘이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위기에 처하면 「판사로서의 본능」이 살아난다. 상황이 조금 좋아지면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 李총재의 위기는 늘 한나라당의 선거 승리 이후에 왔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李총재가 경선에서 맞섰던 崔秉烈 李富榮씨와 지금까지 식사도 한 번 안 했다고 들었다. 포용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최고위원 경선 때 朴槿惠(박근혜)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崔秉烈 의원에게 표를 몰아줬다. 그래서 崔부총재가 1등을 한 것이다. 崔秉烈씨의 행적이 「순수한 행보」만은 아니었다. 李총재가 마음이 상했다. 崔부총재가 「떨어지면 선대위원장이 돼서 돕겠다」고 했지만,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사석에서는 李총재가 崔秉烈씨를 향해 험한 소리까지 한다. 그렇더라도 李총재가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옳다. 싫은 것을 좋은 척하지 못하는 게 李會昌 후보다』
  
  『정치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金大中 후보의 선거전략을 조언했던 통계학자 李英作(이영작) 박사는 선거 당시 「李會昌씨는 실체(Substance)가 없다」는 보고서를 金大中 후보에게 제출했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 그 이유를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李會昌씨가 후보가 되면 오히려 우리에게 쉬운 후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 하면 李會昌씨는 실체(Substance)가 없는 분이다. 결국 훌륭한 대법관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법이라는 건 어떤 점에서는 도덕의 일부분입니다. 법에는 죄인과 죄 짓지 않는 사람만 있고 도덕에는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만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정치에서는 죄지은 사람과도 같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법이라는 건 過去(과거)지향적이고 未來(미래)지향적이지가 않아요. 특히 재판관은 과거의 팩트(사실)를 놓고 이 사람이 유죄다 아니다를 판별하는 거죠. 그러나 정치는 미래지향적이죠』
  李英作씨의 분석은 『주변의 얘기를 듣고나서, 때와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는 李 총재 측근들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 4년여 동안 李會昌 총재의 개인 지지율은 20%를 넘지 못했고, 늘 한나라당 정당 지지율보다 낮았다. 6월의 지방선거 이후 그의 개인 지지율은 「魔(마)의 20%」 벽을 처음으로 깼다.
  
  이념이 없으니 지지자에게도 감동을 못 준다
  
  李총재는 지난 4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시작하면서 「서민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점퍼 차림으로 시장에서 씻지 않은 오이를 뚝 잘라 먹고, 하룻밤에 2만~3만원쯤 하는 모텔에서 잠을 잤다.
  여론조사 기관인 「오픈 소사이어티」의 金杏(김행) 대표는 『지난 4년간 李會昌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국민을 감동시킬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에서 李會昌을 지지하는 사람은 金大中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李會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李會昌을 지지하는 사람을 상대로 「야당 총재 李會昌의 정치행적에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느냐」 조사한다면, 「그렇다」는 응답이 10% 이하일 것이다.
  자기의 언어로 자신의 얘기를 해야 감동을 준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끌고 가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빛을 내는 發光體(발광체)가 될 수 있다. 李후보는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 적이 없다. 영호남지역 갈등해소를 충심으로 얘기하지도 않았다』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있는 고려大 咸成得(함성득) 교수는 조선일보의 兩黨(양당) 대통령 후보 검증작업에 참여했다. 李會昌 총재의 정치 경제 사회 현안에 관한 발언을 거의 대부분 읽었다는 咸교수는 『李총재는 對北 안보정책에서 자신의 비전이 없다. 그래서 大勢 추종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지적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對北 유화정책이 지나치게 신념화 이념화됐다. 정치 경제 모든 걸 햇볕정책에 갖다붙이는 집착과 아집을 보였다. 對北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은 인정해야 한다. 이에 비해 李총재는 「내 것」이 없다. 李會昌 후보의 말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다. 李會昌 후보가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할 비전과 용기 지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를 걸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咸교수는 李會昌 총재가 지난 4년간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지 못했고, 총풍 세풍 등 돌발사건에 대처-대응하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咸교수는 최근 「제임스 바버의 분석틀에 기초한 노무현과 이회창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李會昌 후보를 「소극-부정형 지도자」로 분류했다. 盧武鉉 후보는 「적극-부정형 지도자」로 분류됐다.
  
  레이건의 巨大한 비전은 30代에 형성
  
  소극-부정형 지도자로 분류된 李會昌 후보의 특징으로는 「권력욕」, 「신념에 따른 행동」, 「포용력과 조정력의 부족」, 「위기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꼽혔다.
  <李會昌 후보는 행동과 사고방식이 소극적이며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도적적 기준과 윤리의식이 강하다. 정치적 리더십과 유연성이 결여돼 있다. 막연한 원칙에 집착하여 黨 내분 수습에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부적합하다.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
  李會昌 후보가 「反金大中 정서」의 반사이익을 넘어서서, 국민에게 긍정적인 代案을 제시하려면 비전을 담은 프로그램과 후보의 매력을 제시해야 한다. 李會昌 후보에게 이게 가능할까? 咸교수는 『비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李총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통령을 하면서 참모들이 써주는 대로 읽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최근 카네기 멜론대학의 女교수가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아나운서 시절 써놓은 메모를 하나 찾아냈다. 스포츠 중계하다 쉬는 시간에 메모지에 낙서하듯 쓴 것이었다. 메모에는 「군비 증강. 세금 감면. 공산주의는 악이다. 악은 힘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냉전을 끝낸 레이건의 세계전략은 30代에 형성된 것이다. 레이건의 거대한 비전에 참모들이 따라 간 것일 뿐이다』
  咸교수는 李會昌 후보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李會昌 대통령 아래서 對北정책은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엉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4년 동안 발휘하지 못한 정치적 리더십을 단기간에 높일 방도는 없다. 어차피 3金 이후의 정치판에서 정치 리더는 명령자보다는 조정자로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李會昌 후보의 선택은 하나다. 「관리적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국정운영 팀」을 만들고, 이 팀과 함께 국민에게 내놓을 「알맹이」를 만들어내라. 「反金大中 정서」에만 올라타고 대통령이 될 경우, 「李會昌 대통령」의 임기는 17代 총선이 열리는 2004년 4월이 될 것이다. 李총재는 비전과 경륜이 있는 참모들을 지금부터 주변에 포진시키는 수밖에 없다』●
  
출처 :
[ 2002-12-13, 18: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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