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학교 유학手記(6)/사랑이 넘치는 에이미 가족을 만나다!
집안 현관의 벨을 울리고 집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에, 나는 ‘과연 새로운 호스트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걱정 반 설렘 반에 마음속은 긴장감으로 잔뜩 고조되어 있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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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벤의 학교 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앞의 이야기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나의 새로운 호스트 가족과 학교를 찾을 때까지 지역관리자인 데브라의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다. 내 앞방에는 독일인이었던 벤이라고 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다. 나는 예전 호스트 집에서의 습관 때문에, 보통 아침 6시면 기상했다. 만약 조금 늦게 일어난 날에는 허겁지겁 번데기 같이 쌓여 있었던 이불 속에서 황급히 벗어나와 옷을 갈아입었으나, 호스트 엄마의 핀잔과 화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호스트 가족과 학교를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 기간 동안 지역관리자 집에서 여유롭게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누리면, 금 새 싫증이 나지 않던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데브라의 가족과 함께 시청하던 TV도, 인터넷 서핑도, 독서도 곧 신물이 나서 이제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고 지루했다. 오히려 아침에 학교에 가는 벤이 부러웠고, 그가 학교에서 하는 아메리칸 풋볼(미식축구)과 집에 돌아와서 해야만 하는 숙제 또한 너무 부러웠다. 나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그러한 숙제를 주기를 원했다. 당시에 나는 아침에 눈을 떠 1층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갈 때가 가장 행복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시리얼을 아침식사로 먹어야 한다’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브라는 내가 속해 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지역관리자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의 다른 직업도 동시에 병행했다. 그녀는 私服(사복)을 입은 채로 어떤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주문해 먹어보고, 그 음식의 맛과 웨이터의 서비스를 평가하여 어딘가에 보고하는 일을 했으며, 주유소 Citgo를 여러 군데 다니며 외관 사진을 찍어 Citgo회사에 보고했다. 또한, 농부인 자신의 남편을 도와 소젖을 우유공장에 납품하는 일도 했다. 그녀는 낮에는 마치 스파이처럼 레스토랑과 주유소를 돌아다니기에 바빴지만, 밤에는 마음 따뜻한 지역관리자로서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그들의 안부를 살폈다. 나도 그녀를 몇 번 따라다니며 하루의 일과를 체험해 보곤 했는데,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들어왔을 때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은 저녁 8시를 이미 훌쩍 넘었다.
  
  독일 친구 벤을 통해 나는 그리운 가족들 및 친구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벤이 아침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에 집에 남아 영어공부를 하거나, 데브라의 일을 따라다니거나, 居室(거실)에 남아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 시간 동안에는 집안이 적막강산이라 할 만큼 조용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브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 아들 때문에 다시 집안에는 活氣(활기)가 넘쳤다. 어느 날 밤, 벤은 독일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과 畵像(화상)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화면의 사람들에게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통화를 마치고, 내가 그 화상전화를 너무 신기해 하며 무엇이냐고 묻자, 벤은 웃으며 내게 스카이프(Skype)라고 부르는 그 프로그램을 알려주었다.
  
  그 프로그램을 다운 받는 일부터 프로필을 만드는 일 하나하나까지, 아는 것이 없는 나를 위해 벤은 모든 일을 꼼꼼하고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벤은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소셜네트워크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이 날 이후로 예전 학교의 그리웠던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한국에 계신 엄마와 아빠도 곧 이 프로그램을 내게 듣고 난 후, 나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첫 날에 부모님과 나는 화면에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나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아서 그랬는지 부모님은 나를 너무나 반가워 하셨으며, 우리는 세 달 남짓 겪었던 그 동안의 고생들과 아픔은 이제는 잊어버린 채 다시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인데,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이 그 해의 추수를 축복하고 친지들과 이웃들과 함께 축하하는 날이다. 나도 하루 전 날에 데브라와 함께 오렌지 껍질, poppy seed(양귀비 씨: 빵&과자들의 재료나 장식용으로 쓰임.), 시나몬 등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맛있는 빵을 내 일생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고, 내일 있을 가족모임이 너무 기다려졌다. 데브라의 가족들은 위스콘신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아이오와 주에 많이 살았기 때문에, 가족모임은 그 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고, 나와 벤도 특별 게스트로 초청받았다.
  
  아이오와에 도착해서 모임이 있던 집 문을 열자마자,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많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또, 한 쪽에서는 모여서 카드게임, 주사위 게임 등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벤도 그 게임을 배우고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에 추수감사절에는 빠질 수 없는, 오븐에 구워내 육즙이 풍부한 칠면조 고기를 비롯하여, 나와 데브라가 어제 만든 빵, 프렛즐, 사과파이, 칵테일 새우, 샐러드, mashed potato(매시드 포테이토: 감자를 삶아 으깨어 우유, 버터, 소금으로 맛을 낸 요리) & gravy sauce(그레이비 소스: 고기의 육즙에 버터와 밀가루를 넣어 만든 걸쭉한 소스로서 삶은 요리나 육류에 뿌려 먹음)와 같이 각자 집에서 손수 만들어 온 요리를 뷔페 식으로 차려놓아 함께 먹었다.
  가족의 情(정)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나니 11월도 거의 끝나갔다. 나는 데브라로부터 새로운 호스트 가족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마침내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집 또한 위스콘신에 위치해 있어서 예전의 호스트 가족을 다시금 만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이 가족이 유일하게 현재 나를 호스트 가능한 집이며 동시에 나를 호스트 할 의향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결정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이 새로운 호스트 집으로 무조건 보내져야 했다. 만약 이 선택을 거절한다면 이제는 봄 학기가 시작되는 3-4월까지 호스트 가족을 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까지 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데브라와 위스콘신 주 총 지역관리자인 마가렛과 함께 캐스빌(Cassville)이라고 하는 미시시피 강 옆의 작은 마을로 새로운 호스트 가족을 만나러 갔다.
  
  큰 옥수수 밭과 사일로를 겸비하고 있어 시골집을 연상케 했던 데브라의 집과는 달리, 이 새로운 호스트의 집은 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던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타운을 이뤄 살던 곳에 있어서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조금 더 차로 언덕을 올라갔더니 우리는 많은 집들이 모여 있던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터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많은 집들 사이에 가장 먼저 잔디밭에 세워 둔 눈사람 모형의 조형물과 집 외관에 붙여둔 크리스마스 리스, 그리고 정원수에 감겨 있던 크리스마스 電球(전구)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내는 아름다운 집이 내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동화책을 펴면 등장하는, 그 아담하면서도 아름답던 바로 그 집이 내가 곧 함께 살게 될 그 호스트 가족의 집이었다.
  
  집안 현관의 벨을 울리고 집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에, 나는 ‘과연 새로운 호스트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걱정 반 설렘 반에 마음속은 긴장감으로 잔뜩 고조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내가 얼마 전 교환학생들과 미네소타 여행 중에 만났던 에이미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집 안으로 함께 온 지역관리자들과 나를 안내했다. 집안을 본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이 집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방문했던 집 중 단연 가장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소품들로 가득한 그야말로 ‘모델하우스’와 같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집 안 곳곳을 소개해 주었다. 거실은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木刻(목각) 호두까기 인형들로 아기자기 하게 꾸며져 있었고, 조금 전 것보다는 작은 또 다른 거실에는 예술적인 장식들이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려 있었다. 트리 아래에는 많은 선물들이 쌓여 있기도 했다. 또 집안 곳곳에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는데, 한 쪽 벽에는 세 아들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었고, 장식장 위에도 액자에 담겨 있던 가족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하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벽걸이 TV 와 비디오 게임기가 있었고, 위스콘신 주 미식축구 팀인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의 사진들, 선수들의 사인과 작은 기념품들로 꾸며진 작은 홈바(home bar)도 있었다. 그녀의 집 소개가 끝난 후, 나와 그녀는 다시 데브라와 마가렛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다른 남자 지역관리자가 이 집을 방문했는데, 그는 자신을 몬티라고 소개하며, 만약 내가 캐스빌에서 살게 된다면 그가 곧 내 지역관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몬티는 또 내게 에이미가 여태껏 5년 동안 브라질,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왔던 여러 명의 교환학생들을 호스트 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지역관리자인 그에게 어떠한 불평이나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만약 내가 이 집으로 와 살게 된다면, 분명 나는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미국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 저번 여행 때에도 에이미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해도 된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었고, 어서 빨리 새로운 호스트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에이미의 家族愛(가족애)가 담긴 집안의 여러 사진들을 보니, 분명 에이미의 가족은 예전의 호스트 가족과는 다른 따뜻한 마음씨의 화목한 가정일 거라는 생각에 나는 흔쾌히 찬성표를 던졌다. 어쨌든 나는 내일부터 이 집의 일원이 될 것이었고, 또 달라진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새로이 맞서게 될 운명과의 만남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예전 호스트 가족과의 생활에서 보다는 분명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치지도 않았다. 지난 석 달 동안 구름에 가려져 있던 태양이, 내일은 밝게 다시 떠올라 내가 새로운 인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환한 불빛으로 밝혀주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 2013-07-02, 23: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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