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벽을 배짱으로 깨다!
조인정의 미국 고등학교 유학奮鬪記(8)/나는 영어를 쓰는 데 있어 ‘틀리는 것’과 ‘남에게 물어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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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은 학교 곳곳에 울림과 동시에, 나의 심장도 울려 빠르게 진동시킨다. 일단 나는 교장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소포모어(junior: 미국 4년 고등학교 과정 중 2번째에 해당하는 학년)가 모두 모여있는 교실로 향했다. 내가 소란스럽던 교실에 들어서자 마자, 모든 미국인들의 시선이 낯선 이방인인 내게 집중되며 갑자기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곧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교 방송을 통해 캐스빌 고등학교의 새로운 학생이 된 나를 소개하셨고, 그 순간 다시 또 미국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에 나는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캐스빌 고등학교 생활은 2011년 첫날이 시작됨과 동시에 내리는 흰 눈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의 호스트 오빠인 챈스와 스웨덴 오빠인 에릭은 나와 같은 학교의 시니어(senior: 미국 4년 고등학교 과정 중 가장 높은 학년인 4학년)였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함께 등교했다. 매일 아침 나는 내 방 바로 밑 층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의 팝송 때문에 거의 기절할 듯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노래는 키근의 방에 있는 그의 스테레오에서 들려 나오는 노랫소리였다. 챈스는 아침에 에릭을 앞 자리 조수석에, 그리고 나와 키근을 뒷 자리에 태우고  등교했다. (미국에서는 나이가 16살이 되었을 때부터, 부모님의 허락 하에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고, 18살이 되면 자신의 의지대로 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운전 규칙은 모든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키근은 우리 학교 옆에 있던 가톨릭 학교에서 7학년으로 있어서, 챈스는 키근을 먼저 학교에 내려주고 우리들의 학교로 차를 몰았다나는 챈스의 차에 탈 때마다 생명에 엄청난 위험을 느꼈었는데, 이는 그가 마치 먹이를 잡으러 달려가는 치타처럼 엄청난 속도로 맹렬하게 차를 운전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엄청난 데시벨(dB)의 노래를 튼 상태로 차를 운전했고, 이는 스피커 가까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내게 크나큰 고통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몇 번 챈스에게, “내가 생명보험을 미리 들어 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라고 농담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위험한 운전 덕분에, 아침에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서 차에 올라도 내릴 때가 되면 정신이 번쩍 깨인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서고는 했다.

나의 학교 생활과 나의 성적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캐스빌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간 동안, 모든 과목의 스트레이트 A를 받았다. 내가 훌륭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내가 미국에 오기 전부터 영어공부를 많이 했고, 그래서 미국 학교에서 수업은 어려움이 적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다른 모든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영어라는 깰래야 깰 수 없는 높은 장벽이 내 앞을 떡 하니 막고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타고난 천재는 없으며 노력하는 바보가 결국 천재를 능가한다라는 말이 진실임을 시간이 흐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물II를 수강했었는데, 수업 시간 내내 나의 시선은 분명 칠판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선생님의 어떠한 설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의 생물시간을 생각해보면 더 이해가 빠르겠지만, 셀 수 없이 많던 그 생물 용어들을 모두 영어로 공부를 하려니 내 머리는 거의 터질 듯 했다.

더군다나, 이 당시에 나를 가르치던 생물 선생님께서 매 시간마다 많은 노트 필기 내용을 주시며, 수업도 빨리 진행하셔서 나는 방대한 양의 필기를 손이 쉴 새 없이 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부질없었고, 나는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영어 수업과 경제 수업을 들을 때에도, 수업의 약 30% 정도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머지 70%는 오로지 내 노력에 달려있었다.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점점 더 미워지고 바보 같아 보이자, 나는 교과서 예습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물과 경제 수업에서 선생님의 설명은 기본적으로 교과서 한 단원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읽으면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 더 쉽게 이해될 것 같았다. 나는 자발적으로 저녁마다 다음 날 배우게 될 단원의 교과서 내용을 꼼꼼히 읽었고, 그 내용의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해 두었다. 또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올 때 마다 그것을 사전에서 찾아 미리 외워두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하는 모든 말씀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전날 읽어두었던 중요한 단어 중점으로 나는 수업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필기를 하는 것도 한결 쉬워졌다  


 
나는 시험을 볼 때마다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한국에 있을 때에도 시험기간이 되면 이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몸무게가 몇 kg씩이나 감소하고는 했다. 한국보다 시험이 자주 치러지는 미국 학교를 다니면서 나의 스트레스는 더욱 증폭되었고, 하루하루 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캐스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연달아 계속되는 많은 시험들에 시달렸다. 제일 먼저, 매 단원을 끝낼 때마다 Chapter Test(단원 테스트)를 보았고, 이 시험에는 객관식 문제와 주관식 문제, 서술형 문제, 그리고 에세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단원의 첫 장을 넘길 때 느꼈던 뿌듯함은 그 단원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 뿐만 아니라, 간간히 보는 쪽지 시험과 예고 없이 보는 팝 퀴즈는 내 숨통을 턱턱 막기 일쑤였다. 나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시험들에 대비하기 위해서 무조건 외우기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필기 해준 노트의 내용은 한 단어도 남기지 않고 무조건 암기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나의 암기는 시작되었는데, 방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 내어 노트를 암기했고, 샤워를 하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나의 암기는 계속 되었다. 시험 문제는 대부분 노트를 기본으로 하여 출제되었지만, 선생님이 나누어 준 프린트物과 교과서에서도 몇 문제가 출제 되었으므로, 모든 문제에 완벽하게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 또한 마스터 해야만 했다. 나는 프린트物의 내용도 노트 암기와 마찬가지로 한 단어 한 단어씩 꼼꼼하게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교과서는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뽑아 따로 외웠다. 노트, 프린트 물, 교과서를 모조리 다 암기하려니 방과 후에 계속되었던 나의 공부는 한밤 중이 되어서까지도 끝날 줄 몰랐다. 새벽 2시를 넘기기는 기본이었지만, 그 다음 날 있을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암기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목적은 미국 호스트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며, 미국 문화를 습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는 호스트 가족과 대화와 소통을 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도 호스트 가족은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이해해주었고, 내 생활에 어떠한 질책을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식사를 함께 할 때, 내게 요즘 하는 공부는 잘 되어가고 있니?”라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러나 나의 호스트 가족과의 친밀함을 위하여 나는 週中에는 학업에, 週末에는 가족 활동에 집중을 하기로 나와의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영어는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나의 생각으로는 현지인들과 생활하며 실생활에서 배우는 영어가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호스트 생활을 하면서, 호스트 가족들과 항상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급식을 먹고, 스포츠와 음악 관련 과외활동을 하면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렇게 실생활에서 쓰며 배우는 영어가 더 실용적이며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 호스트 동생이었던 키근은 내게 농담을 하며 놀리기를 좋아했다. 그 날도 키근은 내게 장난으로 농담을 했고, 나는 그의 말이 농담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말을 심각하게 여겼다. 그랬더니, 옆에 서있던 에이미가 내게 “You are so blond”라고 했다. 영어 단어 ‘blond’금발의라는 뜻의 형용사였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여, 에이미에게 저는 금발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제 머리카락은 검은 색이에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에이미와 키근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고, 그 순간까지도 나는 전혀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서있었다. 에이미가 곧 내게 설명하기를, blond라는 단어는 미국의 속어인 슬랭으로 여자아이가 순진하고 멍청하게 속을 때쓰는 표현이었다. 나는 당시 너무 민망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었지만, 지금까지 이 단어는 잊을 수가 없고 가끔 미국 친구들에게도 사용하는 센스 만점의 단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어를 쓰는 데 있어 틀리는 것남에게 물어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어 수업 시간에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숙제는 에세이인데, 어느 날 한 번은 영어선생님이 자신이 원하는 자유주제를 선정해서 그 것에 관련된 에세이를 작성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의 삶이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전까지 짧은 에세이 숙제만 해보았지, 長文의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글을 씀에 있어 엄청난 부담이 있었다.

문장 하나를 쓸 때도 많은 단어를 사전을 통해 찾아보아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내 에세이는 문법과 관련되어 고쳐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 그렇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文法을 검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제일 먼저 호스트 오빠인 챈스에게 그 에세이를 읽고 봐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서슴지 않고 도와주었다. 또한, 나는 학교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리고 학교가 끝남과 동시에 영어 선생님께 찾아가 모르는 점에 대해 질문하고, 내 에세이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보완했다.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의 수가 많을수록, 챈스와 에릭이 학교에서 나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졌다. 이 에세이 한 개를 쓰기 위해 몇 週를 선생님 교실이 꼭 내 방인 냥 들락날락 거리며 질문을 하고 해답을 얻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에세이의 완성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마지막까지 재검토를 마치고 과제를 제출하니, 그 동안의 스트레스가 싹 가시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과제에서 높은 점수의 A를 받자마자, 나는 내가 투자했던 시간들과 노력이 이렇게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느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나의 모든 시험 성적과 영어 실력의 향상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우리 속담처럼 내 모든 성적의 바탕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 투자가 있었다. 과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매일같이 썼던 플래너는 내 학교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모든 숙제는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나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시험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시험 성적은 노력하는 자의 끈기를 배신하지 않았고, 나는 미국 아이들을 제치고 학급에서 最上位 성적을 거둘 때가 많았다.

[ 2013-07-08, 02: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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