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시(Amish) 학교에서의 색다른 추억
조인정의 미국 고등학교 유학奮鬪記(11) / 외부세계와 거의 단절한 채 사는 아미시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방문은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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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시(Amish)- 그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것은 호스트 가족과 차를 타고 시내를 가던 중이었다. 도로를 달리던 차의 유리창 너머로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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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말이 끌던 그 馬車(마차) 안에는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짚으로 만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있었고, 그 옆 좌석에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앉아 있는 듯 했다. 할아버지는 마치 고전 영화 속의 주인공 같아 보였고, 혹 지금 영화 촬영을 하는 것 아닌가하는 궁금증마저 일었다. 마차의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지만 그 주변에는 단 한대의 카메라도 보이지 않았다. 그 신기한 광경에 나는 마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에이미는 그것이 아미시(Amish)라고 내게 설명해주었다.

4월의 어느 날, 학교의 컴퓨터 선생님이 나를 불러 교환학생들에게 미국의 색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다며, 내게 ‘아미시 학교’에 가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난 번에 아미시 할아버지를 본 후, 아미시 생활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결국 나를 포함하여 슬로바키아 친구 아니, 브라질 친구 마리아나, 그리고 노르웨이 친구 씨씨 등 넷은 컴퓨터 선생님과 함께 차를 타고 아미시 학교로 향했다.

아미시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자면, 아미시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야곱 아망(Jakob Ammann)이 창시한 개신교의 再洗禮派(재세례파, Anabaptists)인 아미시파(Amish)를 따르는 교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재세례파가 보수화되면서 등장한 敎派(교파)이기 때문에 現代문명의 혜택을 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500년 전과 변함없는 전통을 따르고, 엄격한 육체계율에 따라 행동하며,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外部(외부)세계와의 접촉을 끊은 채 격리되어 살아가고 있다.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한적한 시골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평야가 펼쳐진 곳에 다다르자, 우리는 아담한 규모의 하얀 건물 하나와 그 옆에 있던 마구간과 사일로(silo, 큰 탑 모양의 곡식저장소)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 하얀 건물이 아미시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학교라고 말했다. 학교는 너무나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학교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가정집으로 쉽게 착각했을 것이다. 나와 친구들이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려 하자, 선생님은 아미시 사람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유포될 수 있는 사진을 외부 사람이 찍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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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전에 아미시 학교의 담당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학교 안의 出入이 허가되었다. 학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클래식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서면 바로 오른쪽 벽면의 고리에는 밀짚모자가 잔뜩 걸려있었다. 네 줄로 정렬되어 있는 책상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교실 한 쪽에는 난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앞쪽 벽에는 긴 칠판이 있을 뿐 미국의 어느 公立(공립)학교에서 볼 수 있는 스마트 보드가 걸려있지 않았다.

학생들의 복장 역시 특이했다. 여학생들은 모두 긴 소매가 달린 긴 스커트 차림이었는데, 아주 심플한 단색의 파란색을 입고 있었다(단색으로 된 검은색, 흰색, 파란색의 옷만 입는 아미시의 특징 때문에, 이들은 ‘Plain People’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머리는 흰색의 기도모자로 단정하게 가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모두 멜빵 바지 차림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모두 같은 스타일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 낯선 사람들이 방문한 것을 보고 몇몇의 학생들은 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또 몇몇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 학교에는 단 한 분의 선생님이 계셨고, 그 분이 30명 남짓 되는 전교생에게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맨 앞줄 책상에 앉아있던 여자아이들은 유치원생들처럼 나이가 아주 어려 보였는데, 맨 뒤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은 나보다 키와 덩치도 크고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알고 보니 아미시 학교에서는 6~7살짜리 아이부터 8학년의 15살 아이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사고력부터 시작해서 이해도도 다르고, 배워야 할 지식의 깊이와 정도도 다를 텐데, 어떻게 수업이 가능한지 나는 의문이 생겨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아미시 선생님께서 대답하시길, ‘사실 이러한 나이 차 때문에 영어수업시간에 어린 아이들은 수업을 따라오지 못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고 했다[아미시 사람들의 생활 언어인 ‘Pennsylvania Dutch(‘펜실베니아 독일어’로 독일어의 방언)’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영어 수업을 받는다].

나와 교환학생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교실 앞에서 자신들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나는 대한민국은 사계절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이며, 현재까지 남북으로 分斷(분단)되어 있고, 한국인들은 ‘김치’라는 매운 음식을 얼마나 좋아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이라면 늦게 까지 야간자율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해 그들에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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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준비해갔던 색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팔찌 접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색종이 접기 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수줍었던 그 들은 내게 “네!”하며 씩씩하게 대답했고 눈빛은 반짝반짝 열의에 넘쳐 있었다. 후에, 나는 한국어도 알려주고 싶어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던 엄마의 편지를 꺼내 한글을 보여주었고, 칠판에는 한국어로 내 이름과 ‘안녕하세요’를 적고 학생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천천히 발음해주었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며 한국어를 어설프게나마 따라 말했다.

우리들의 차례가 끝나자, 아미시 선생님은 이번에는 자신들이 우리들의 방문에 보답으로 준비한 것이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이 학교에 다니던 15살로 나이가 가장 많은 남학생이 며칠 후 졸업을 하기 위해 준비한 연설문을 우리들 앞에서 씩씩하게 낭독했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이번에는 모든 학생들이 교실 앞쪽으로 나가 코러스 진영으로 세 줄을 만들어 서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앞에서 지휘를 했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물론 가장 앞줄의 가장 어린 학생들은 노래가사를 다 외우지 못해 부끄러워 입을 뻐끔거린 채로 배시시 웃으며 서 있었다.

영어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독일어 노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들은 노래를 전혀 따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 어린 후배들이 선배들과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너무 장하고 대견스러웠다. 완벽한 하모니는 아니었지만 목청껏 최선을 다해 아주 멋진 무대를 선사한 그 학생들에게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미시 선생님께서는 얼마 후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을 주셨는데, 학생들은 모두 자신들의 밀짚모자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갔다. 모두는 한마음으로 어딘가로 달려갔는데, 그 곳은 다름이 아니라 학교 앞 ‘마구간’이었다. 매일 그들의 집에서 학교로 오고 갈 때 타는 그 말이 여전히 신기한지, 마구간에서 학생들은 손을 내밀어 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학생들을 보니 아이들의 童心(동심)이 내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우리는 떠날 때, 학생들의 표정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미시 선생님과 학생들은 마지막까지도 이 학교에 방문해 준 우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우리가 탄 차가 저 멀리 肉眼(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들에게는 분명 오늘의 수업이 평소와는 다른 다른 수업이었을 것이다. 아미시에서의 수업은 나에게 있어서도 뜻 깊은 수업이었다. 世俗(세속)에서 벗어난 그들이 소박한 삶 속에서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갑제닷컴> 컨텐츠의 외부 게재시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지 마십시오.




Works Cited (사진의 출처)
PBase.com. 'Amish School Classroom.“ PBase.com. PBase.com LLC, 2013. Web. 11 Jul 2013.
Wood, Laura. 'The Wisdom of the Amish.' The Thinking Housewife. Laura Wood, 28 Jun 2012. Web. 11 Jul 2013.
Yannucci, Lisa. 'About the Amish People.' Mama Lisa's World. Lisa Yannucci, 2013. Web. 11 Jul 2013.

 

       
  
 
 

[ 2013-07-12, 10: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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