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소프라노 솔로 공연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2) / 관객들의 박수와 심사위원의 미소를 보니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한 그 어떤 스타도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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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미국에서 공부 하고 싶다!’는 영감을 준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안재우·안재연 씨의 자서전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이다. 두 분은, 하버드에 합격하기 위해 학업 뿐 아니라 육상운동과 음악 활동에 있어서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캐스빌 고등학교 재학 당시 나는 課外(과외)활동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과외활동이 내 적성에 가장 잘 맞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과외활동이란 정확하게 무엇이고, 과연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대학 入試(입시)에 반영되는 것인가? 일단 과외활동이란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교 內外(내외) 활동을 모두 총괄한다. 다시 말해, 과외활동이란 스포츠, 음악, 정치(예: 학생회), 영화, 저널리즘, 봉사활동 등 모든 영역의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대학 원서에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시절에 참여한 과외활동을 모두 나열하고 설명해보라 한다. 물론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과외활동은 학교 성적만큼 큰 요소로 대학 입학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학교들은 학생들을 개개인으로 평가함에 있어 학생들이 참여했던 과외활동을 보고 그 학생의 개성과 특성을 파악하여 얼마나 그 학생이 특별한지 가늠해 선발한다. 또 과외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얼마나 고등학교 시절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보냈는지 평가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여러 종류의 과외활동들에 참여하고 대학 원서에 한 줄을 더 적는 것보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특별하게 보일 수 있는 과외활동을 몇 가지 선택하여 자신의 열정과 흥미를 표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이는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교의 입학 사정관들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대학들은 학생의 리더십도 과외활동을 통해 확인한다.

어떤 학생이 9학년 때는 단순히 ITS(International Thespian Society의 약자로 연극, 뮤지컬과 같은 무대 예술에 관련된 국제적인 단체)의 멤버로 시작했다고 하자. 그가 10학년 때 서기(secretary)로, 11학년 때 副클럽장(vice president)으로, 그리고 12학년 때 마침내 클럽장(president)이 되었다면, 이 학생은 자신의 리더십 역량을 잘 보여주었기에 대학들에게 호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사실 어느 한 방면에서 일인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활동에 상당한 흥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과외활동을 찾고 선택하는 것은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마침내 세 가지 과외활동-미술, 음악(chorus & handbells), 그리고 소프트볼(softball)–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미술을 좋아해 매년 미술부장을 했고, 과목 우수상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캐스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수강했던 미술 코스는 Ceramics(製陶術·제도술)이었지만, 사실 이 수업시간에는 제도술을 특별히 배우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미술 작품을 만들어,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면 되는 느슨한 클래스였다.

하지만 ‘뭔가 해보고 싶다!’는 의지로 불타있던 나는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매년 미국 議會(의회)에서 주관하는 ‘The Congressional Art Competition’에 참가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을 상대로 하는 이 대회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었고, 다만 너무 크지 않은 사이즈의 평면 그림(2D)을 제출하면 되는 게 전부였다. 나는 포스터 물감을 사용하는 시각미술에 가장 자신 있었기 때문에, 이 재료로 잘 표현될 수 있는 옵아트(Optical Art: 기하학적 형태와 미묘한 색채, 원근법을 이용하여 보는 이에게 착시효과를 주는 그림)를 그리기로 했다. 주제는 정했지만, 막상 하얀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하려니 대체 무엇을 그려야 할 지 막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 번의 스케치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나는 큰 원 두 개가 있는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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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색을 칠하는 작업에 있었는데, 옵아트가 가진 아주 미세한 색 변화는 보는 이에게 錯視(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엄청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학업이 우선순위라, 나는 숙제가 끝난 자정이 넘은 시간부터 색칠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감 날짜가 다가올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새벽 4시까지 색을 칠한 적도 있었고, 마감 바로 전날에는 밤을 새기도 했다.

아직도 이 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는데, 좁은 책상에 도화지를 펴고 학교에서 빌려온 붓, 팔레트, 물감으로 색을 칠하고 있을 때, 내방 바로 맞은 편 안방에서 들려오는 호스트 부모님의 소리 하나 하나에 나는 깜짝 놀라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까지 잠을 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호스트 부모님께 발각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호스트 엄마에게 들었던 꾸중이 생각나서였다.

내 작품을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위스콘신 3區의 미국 하원인 론 카인드(Ron Kind) 의원으로부터 나는 축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약 100명의 출품된 그림 중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장려상 쯤 해당되는 ‘Honorable Mention’에 내 이름을 올렸고, 상으로 파란 리본을 받았다. 더욱이 내 작품처럼 수상을 받은 작품들은 5일 동안 대중들을 위한 전시회에 진열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나는 캐스빌 고등학교에서 합창(Chorus)과 핸드벨(Handbells), 이렇게 두 가지 음악 수업을 수강했다.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위스콘신州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한 음악 대회가 있다며, 참가하고 싶은 학생들을 모집했다.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 앞에서 노래를 해본 적도 없었고, 앞에 나서는 것에도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자신과 싸운 끝에 ‘나 자신과의 대결에서 이겨보기’로 마음먹고 대회 신청을 했다.

많은 학생들은 혼자 솔로를 하는 것에는 많은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듀엣을 하거나 트리오를 했다. 사실 나는 같이 할 친구를 찾지 못해 소프라노 솔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예뻐하셨던 음악 선생님은 내게 고전 영국풍의 노래를 불러 보자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멜로디와 가사에 잘 조화시킨 ‘Over the Mountains’라는 곡을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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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회 전 몇 주 동안 거의 매일 점심시간 마다 음악실로 가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을 했다. 영어로 불러야 해 가사 읽기도 벅차서, 선생님이 오히려 내 가사에 피아노 반주를 맞춰야 했다. 영어 발음을 통해 音(음)의 강과 약, 숨 쉬는 구간 등을 배우며 노래를 익히려니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다.

며칠 뒤, 나와 가깝게 지내던 나탈리아(Natalya Schwab)가 다른 친구들과 준비 중인 더블 트리오를 자신들과 함께 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결국 나는 5인조 더블 트리오에서 소프라노 파트까지도 맡게 되었다.

사실 캐스빌 고등학교는 거의 매년 핸드벨 부분에 있어 州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연주하는 친구들 간의 화합이 대단했을 뿐 아니라 선생님의 곡 선택과 지휘 또한 매우 훌륭했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벨을 연주하기가 아주 쉬운 악기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주를 할 때 어느 정도 손목에 힘을 주는지, 어느 만큼 팔을 주욱 뻗는지, 언제 댐핑(damping: 핸드벨을 가슴 옆 쪽으로 붙여 진동을 막는 일)을 하는지 등에 따라 음의 강약과 울림의 길이가 달라져 매우 어렵고 복잡했다.

소프라노 솔로, 더블 트리오, 그리고 핸드벨 까지 모든 공연은 같은 날 이뤄졌는데, 이 대회는 어느 공립 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첫 순서가 아침 8시에 시작하는 것에 반해 내가 속한 공연은 모두 거의 마지막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응원해주려고 함께 온 친구 트리시아(Tricia Haverland)와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먼저 구경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긴장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공연을 보았고, 내 순서가 점점 다가오자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나와 트리시아는 연습을 하기 위해 다른 교실로 들어갔고, 나는 트리시아를 관객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앞에서 내가 준비한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불렀다.

드디어 내 솔로 공연이 있었고, 내 이름과 학교명을 밝히며 관중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는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교실 하나를 꽉 채운 사람들의 시선에 입 하나 뻥끗할 수 없었다.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었다. 결국에 음악 선생님이 다시 반주를 시작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끝내자!’라고 자기암시를 하며 성공적으로 노래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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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남과 동시에 들려오는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심사위원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 어떤 스타도 부럽지 않았다. 곧 시작된 더블 트리오는 오히려 친구들과 화합을 맞추는 거라 훨씬 더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맡은 부분을 잘 소화해낼 수 있었다. 핸드벨에서도 마찬가지로 약 20명이 되는 친구들과 합주를 하는 것이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수행해냈다.

결과는 그 날 저녁에 발표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솔로와 더블트리오 둘 다 지역구에서 금을 받았다(이 대회에서 금은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따로 평가되어 금, 은, 동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지역구 대회에서 금을 받은 참가자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참가자가 州 대회로 나갈 자격이 주어졌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핸드벨 에서는 우리 학교가 지역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며칠 뒤에 있을 州 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우리 학교는 영광스럽게 州 대회에서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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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연습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도 너무 뿌듯했지만 내 옆에서 항상 큰 도움과 조언을 해주었던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서는 참가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미술과 음악대회에서 큰 상을 받게 되자, 나는 미국에 오면 배울 것이 더 많을 거라고 했던 재우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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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15, 10: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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