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억과 골병을 부르는 졸업무도회(Prom)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4) / 사실 난 프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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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보던 겹겹의 레이스에, 화려한 보석장식이 달린 색색의 드레스가 내 눈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나는 그날 호스트 엄마 에이미의 손에 이끌려 deb이라는 드레스 샵(dress shop)에 갔다. 이번 주말이 다음 주에 있을 미국 고교 졸업 무도회 ‘프롬(Prom)’에서 내가 입을 드레스를 살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프롬은 사실 미국 고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두 학년–주니어(junior)와 시니어(senior)–을 위한 파티여서 그 학년의 학생들의 입장만 허용되었지만, 캐스빌 고등학교는 규모가 작고 학생들도 많지 않아서 그 제한을 고등학교 2학년인 소포모어(sophomore)로 까지 확장했다. 나는 당시 소포모어였고, 교장 선생님의 교환학생들에 대한 특별한 양해 덕택에 프롬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난 프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드레스를 입고 남들과 함께 섞여 춤을 춰야 할 텐데, 춤과는 벽을 쌓고 살아온 내가 과연 이 파티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드레스는 또 어떻게 구하고, 화장은 어떻게 하고, 파트너는 어떻게 찾는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서 큰 혼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결국 프롬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교에서 반 아이들의 대화는 모두 자신의 드레스와 파트너에 대한 내용뿐이었고, 선생님들 또한 학생들처럼 곧 다가올 프롬에 매우 들떠있었다. 크리스탈을 비롯한 많은 미국 친구들이 프롬에 같이 가자고 몇날며칠 동안 나를 설득했고, 시니어였던 호스트 오빠 찬스도 프롬을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프롬 날 아침 일찍부터 슬로바키아 친구 아니(Anetka Ani)와 마리아나(Mariana Schmidt)가 우리 집으로 화장도구와 드레스를 들고 찾아왔다. 에이미는 캐스빌에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아니와 마리아나도 에이미에게 머리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에이미가 친구들 머리를 손질해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있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내 머리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 머리를 하고 친구들 앞에 설 수 있을지 민망한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에이미는 내 머리를 얇게 말아 위로 틀어 올렸다. (이 때, 그녀는 실핀과 스프레이를 이용해 내 머리를 위로 고정시켰는데, 다음날 아침에 샤워할 때 큰 애를 먹었다. 스프레이는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머릿속 어딘가 박혀있었던 실핀은 빼도 빼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예상과 달리 나는 내 헤어스타일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머리 위에 뿌린 글리터 파우더(glitter powder)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아름다움을 한층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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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끝나자 에이미는 내 눈 화장을 시작했다. 에이미는 동양인의 눈화장이 처음이었는데, 내가 서양인들보다 조금 더 찢어진 모양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눈두덩이에 색조화장을 짙고 길게 그렸다. 나는 완전히 ‘진한 화장을 한 뮬란’의 모습으로 변했다. 붉은 오렌지 빛깔의 롱드레스를 꺼내 입고, 하이힐을 신고, 향수를 뿌리고 나니 파티에 갈 준비가 끝이 났다. 내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에이미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나보다 몇 배는 더 들떠했고, 입이 귀까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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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스카이프(Skype)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화면에 내 모습이 보이자마자 바로 ‘엄마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연달아 ‘내 딸이 아니네. 몰라보겠어’를 외치시는 엄마와, 카메라 플래시를 계속 터뜨리시는 아빠에게 인기 있는 모델이 되었지만, 사실 나 자신은 정말 쑥스러웠다.

나의 파트너는 단짝 친구 크리스탈이었고 (미국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오후 4시쯤 크리스탈이 우리집에 찾아왔다. 미국 프롬의 전통대로 나는 집 앞에서 파트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미리 연락을 취해두었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챈스가 일하던 곳의 레스토랑에 갔다. (프롬과 같은 중요한 파티가 있는 날에는 파티에 가기 전에 어느 레스토랑에서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사실 우리는 아주 단순하게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는데, 고등학생이 먹기에 가장 저렴한 식사였으며 가장 미국적인 식사를 원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큰 햄버거를 손에 들고 먹으려니 드레스에 조금이라도 음식이 묻을 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삼십 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우리는 미시시피 강 근처를 걷기로 했다. (캐스빌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미시시피 강 상류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미시시피 강은 캐스빌 시민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고, 수력 발전소가 있어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기도 했으며, 낚시나 보트 등을 즐길 수 있는 레저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에 해가 지고 있어 강물로 입수하듯 보였고, 노을빛은 꼭 하늘 전체를 삼켜버릴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연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붉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캐스빌은 너무나 낭만적인 마을로 변해 있었고, 이곳에서의 추억을 담기 위해 우리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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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과 나는 파트너로 입장했기 때문에, 입장료 할인을 받아서 프롬이 열리는 학교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체육관은 완전히 탈바꿈한 ‘바다 속의 모습’으로 인어공주가 사는 성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같이 듣던 여자 친구들도 이 날만큼은 동화 속의 공주처럼 장식이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남자 친구들은 턱시도와 함께 자신의 파트너 드레스와 같은 색의 베스트(vest)를 말쑥하게 차려 입어 왕자 같아 보였다.

DJ가 트는 음악에 맞춰 프롬에 있는 사람들 모두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온 그룹의 친구들도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 또한 거절할 수가 없어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워낙 뻣뻣한 내 몸은 리듬을 제대로 타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함성을 지르고, 어깨동무를 하고, 파트너를 이뤄 춤을 추고, 막춤을 추며 음악에 심취해 있었지만, 전혀 이 순간을 즐길 수 없었던 나는 춤추기를 포기하고 ‘프롬에 온 모든 사람들과 사진 찍기’를 내 목표로 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미, 오션, 예전에 DMZ에서 일하셨던 아저씨, 에이미의 사촌인 신디가 우리를 보기 위해 프롬을 찾았다. 에이미는 내게 진정한 춤을 알려주겠다면서, 갑자기 챈스를 불러와 나와 파트너 춤을 추게 시켰다. 챈스는 내게 오른손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왼손은 그의 등에 올리라고 했다. 정말이지 나는 프롬 장소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나는 분명 망신을 당할 것이다. 춤을 추다가 챈스의 발을 밟을 지도 모른다. 챈스는 내게 춤 동작을 천천히 설명해주었고 우리는 음악이 한 곡 끝날 때까지 함께 춤을 추었다. 그 때는 음악이 왜 빨리 끝나지도 않는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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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이 끝나고 조금 안심을 찾으려는 순간, 나와 한국에 대해서 항상 이야기를 하던 DMZ 아저씨가 내게 춤 신청을 했다. 다시 또 춤이라니! 그렇지만 그 분은 너무 재미있는 분이었고, 우리는 웃음으로 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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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덧 11시쯤을 가리키자 프롬의 마지막 곡이 울려 퍼졌고, 나와 친구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아쉬움으로 뜨거웠던 오늘의 밤을 추억했다. 친구들은 프롬이 끝난 후에도 2차 파티가 있어서 그 곳에 참석하러 갔지만, 나는 더 이상 높은 하이힐과 춤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 작별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편안 복장으로 갈아입는 순간, 무거운 짐이 내 어깨에서 사라지는 듯 평온해졌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린 긴장감에 나는 몸져 누워버렸다. 방금 전과는 달리 아픈 모습이 역력한 나를 보고 키근은 어이가 없었는지 증거자료를 남겨야 한다며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찍었다.

프롬은 언제나 모두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날이었고, 시니어(senior)들에게 있어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상징 있는 파티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게 프롬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격렬한 댄스가 끝나고 나면 항상 골병이 들기 때문에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 2013-07-18, 13: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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