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작별, 새로운 인생으로의 첫 발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5) / 에이미 가족에게서 배운 인생의 교훈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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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겨울이 막을 내리고, 봄은 아주 잠깐 그 향기를 남긴 채, 위스콘신은 어느새 무더운 여름에 접어들었다. 여름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도 점점 코앞으로 가까워졌다. 6월3일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그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했던 선생님,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날짜는 6월10일 이었기 때문에, 내가 떠나기 전까지 나와 호스트 가족은 즐겁고 추억에 남을 여행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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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에 나는 처음으로 수상 보트를 타고 드넓은 미시시피 강을 구경했다. 호스트 아빠 오션은 미시시피 여행을 위해, 하루 전날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었던 자신의 수상보트를 큰 트럭에 싣고 왔다. 해가 쨍쨍하던 5일, 동네 이웃을 비롯한 사촌들, 교환학생들, 그리고 우리 호스트 가족까지 모두 미시시피 강으로 함께 떠났다. 이미 캐스빌의 많은 사람들이 미시시피 강 안의 작은 섬으로 피서(避暑)를 즐기러 갔는데, 오늘 우리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오션은 핸들을 잡고 보트를 아주 능숙하게 운전했다. 하지만 나는 보트 위에서 가끔씩 덜컹거리는 진동 하나에도 깜짝 놀라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꼭 쥐었다. 미시시피 강은 무서울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고, 길게 뻗어 있는 강을 따라 양 옆으로 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의 위대함에 지레 겁을 먹었다. 강물의 색깔 또한 토사 때문에 진한 흙탕물이어서 무시무시했고, 전혀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한참 시원한 바람을 가로지르며 가다 보니 어느새 작고 아담한 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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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이었지만 깨끗했던 그 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던 중 나는 키근의 물장난에 이미 홀딱 젖어 버렸다. 또 나는 키근이 밀어주는 튜브를 타고 모래사장에서 점점 더 먼 곳까지 갔는데, 나중에는 내가 손쓸 수 없을 만큼 사람들과 멀어져 버렸다. 키근은 나를 놀려주려고 내가 부르는 소리에서 시선 하나 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안전지대로 표시된 선 끝까지 간 나를 보고는 열심히 개헤엄을 쳐서 나를 구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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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놀다 보니 모두들 허기가 졌고 에이미는 피자를 주문했다. 미국에서의 배달이라 하면 아직까지는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섬까지 과연 어떻게 피자가 배달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의 초고속 배달과는 다르게 피자를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피자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모두들 거의 포기 상태였다. 그 순간 저 건너편에서 보트를 타고 피자 몇 판을 들고 오는 배달원의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굶주림에서 구원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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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국 가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사실 방학을 맞으면서 밤과 낮이 완전히 바뀌어 생활리듬이 엉망이었고, 키근과 챈스는 거의 오후 2시가 되어야지만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미와 오션은 평소처럼 아침 일찍부터 이미 출근했기 때문에,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던 나는 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채 키근과 챈스가 일어날 때까지 영화나 TV를 시청하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은 뭔가 특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날씨도 너무 화창해서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은 뒤 혼자 거리를 활보하기로 했다. 캐스빌의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도 들고 갔다. 거리를 혼자 걸으며 많은 추억과 사색에 잠겼는데, 건물 하나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예전의 그리운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했다. 나는 캐스빌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교회, 도서관을 지나쳐 드디어 학교 앞에 도착했다. 방학이라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외관을 보며 이곳에 처음 도착한 날을 떠올렸다. 학교 옆 소프트볼 경기장에 들어서니 항상 함께 연습하고 경기했던 팀원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었다. 마지막을 기념하고 싶어서, 나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습 때처럼 경기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는 그 장소,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그 장소에서, 나는 그곳의 기(氣)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쉬지 않고 열 바퀴를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에이미가 일하고 있는 그녀의 헤어샵(hair shop)에도 들렀다. 에이미는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을 엄청 반가워했다. 그곳은 사실 내게 쉼터 같은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 가기 전에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에이미가 손님들에게 해주는 머리 손질을 구경하며 나는 카운터에 있던 사탕을 꺼내 먹고, 잡지를 보고, 매니큐어를 칠했다. 이제 하루가 지나면 이곳과도 안녕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에이미는 저녁 늦게 퇴근을 했고, 나와 에이미는 지역관리자가 운영하던 호프집에 가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교환학생 친구들도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그곳에 모였고, 우리는 곧 서로 멀리 떨어져 각자의 길을 갈지라도 영원히 좋은 친구로 남아 꾸준히 연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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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웃들이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모였다. 토요일 아침마다 ‘Coffee Morning’을 함께하던 이웃과 사촌들도 다 모였었는데, 내게 덕담을 해주고 내게 그들과의 추억을 기념할 수 있는 선물도 주었다. 만날 때마다 한국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진 DMZ 아저씨는 바빠서 참석을 못하셨다. 나는 아저씨와 전화로 작별 인사를 했는데, 아저씨는 한국에서 엄마가 아저씨를 위해 보내준 소주를 잘 마시겠다고 하며, 건강하게 잘 살라는 덕담의 말씀도 해주셨다.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폭풍 치듯 쏟아져 흘러내렸다.

나와 에이미는 가장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었던 메디 & 코디(Maddi&Cody)의 집과 아이얼린(Irelyn Kasten)의 집을 찾아갔다. 토요일 아침마다 재롱을 부리던 메디와 코디에게도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이얼린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안타깝게도 아이얼린은 이미 꿈나라로 가있었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이 꼬마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못하게 되니 얼마나 아쉽던지…. 나는 그녀를 안고 마지막으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이얼린의 엄마와 아빠에게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챈스는 나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왔다. 메디슨 공항에서 아침 7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나, 키근, 챈스는 함께 밤을 새기로 마음을 먹었다. 챈스는 나를 위해 우리 둘 다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을 틀었다. 물론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키근의 핀잔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를 무시한 채 새벽 4시까지 코난을 시청하기로 했다. 얼마 후, 에이미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시계를 보니 거의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코난을 보다가 잠들어 버렸던 것 같다. 내가 졸고 있는 동안 정말로 잠을 자지 않았던 키근과 챈스는 결국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에이미는 공항에서 내가 수속을 밟는 모든 과정을 진짜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처럼 꼼꼼하게 옆에서 챙겨주셨다. 모든 수속이 끝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한 데 모여 앉아있었는데, 떠남과 보냄의 아쉬움에 아무도 선뜻 대화를 시작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드디어 안내방송이 울려 내가 게이트로 갈 시간이 되었고, 나는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작별의 포옹을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목이 메어서,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흐느끼는 나를 에이미가 다독이며 달랬고, 그녀는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내게는 한 부분이 되어버린 가족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과 나눴던 많은 추억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인생으로의 항해에 첫 발을 내디뎌야만 했다. 에이미 가족과 함께 생활했던 8개월 동안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첫 번째 호스트 생활을 하면서 더욱 소극적으로 변해버려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장벽을 두었던 나는, 에이미 가족을 만나면서 어두웠던 장막을 깨고 쾌활한 성격으로 변해있었다. 또 누군가를 내 가족으로 맞이하는 법, 이웃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며 사랑하는 법, 가족을 세상 어느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법, 이 모든 깨달음을 통해 정신적 인격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기도 했다.

에이미는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인정아, 너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 가족이야. 그리고 우리 집은 항상 너를 위해 열려있을 거야.”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에이미 가족을 만난 것은 내 일생일대의 천운(天運)일 거라고, 그리고 내가 에이미 가족에게서 배운 인생의 교훈을 나 혼자만 느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겠다고.

[ 2013-07-19, 11: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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