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교 면접시 겪은 아찔한 순간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6) / 나의 유학생활에 용기를 준 안재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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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인천공항이다. 어쩌면 2년 동안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 여름방학은 왜 이리도 금방 지나가 버리는지 내게 잠깐의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약 두 달간의 방학 동안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올바른지에 대한 고민에 직면했다. 일 년 간의 미국 교환학생 생활은, 한국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살아가던 나를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넓고 넓은 세계로 인도했다. 그 신세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한층 더 성숙해졌다. 내가 했던 고민은 ‘미국에서 계속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였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내게 유학을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갈 길이 남들과 다른 위험천만한 가시밭과 같더라도 그 길을 인내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교수가 꿈인 나는, 여름방학 동안 한국의 대학교에서 인턴을 하며 교수의 日課(일과)는 어떠한지 보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존경하던 경제학과 교육학 분야의 연세대 교수님들 몇 분에게 귀국 前 미리 메일을 보냈다.
   
 
<존경하는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Wisconsin주의 Cassville High School에서 10학년에 재학 중인 조인정이라고 합니다. 6월10일 경 한국에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교수가 되는 꿈을 꿔왔습니다.  이유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학생들과 특정 주제에 대해 활발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일은 진정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교수님께서 전공분야로 하고, 강의 및 연구를 하고 있는 경제학·교육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후에 관련 분야를 전공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 제가 교수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연구활동이나, 대학생들의 실습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옆에서 볼 수 있고, 전문지식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또한 제가 존경하는 분을 직접 뵙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제게 엄청난 행운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일할 용의가 있습니다.
교수님의 바쁜 일정에 맞춰서 적극적으로 동참할 마음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서류 일이나, 실습을 조원하는 일, 행정에 관련된 일 어떠한 일이어도 상관치 않습니다.
보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쪼록 가능하시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조금이나마 곁에서 제가 꿈꾸는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존경하는 교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 제 편지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11. 5. 14. 토요일
조인정 올림>
 

감사하게도 존경하던 그 교수님들로부터 답장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그 분들에게 직접 메일을 받으니 답장을 읽기도 전부터 긴장이 되어 심장이 마구 뛰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나의 부족한 교육 정도를 지적하셨고, 아직 고등학생을 조교로 써본 적이 없다며 내 제의를 사실상 거절하셨다.

하지만 몇몇 교수님들은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자신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전망하고 모색하는 나의 열정이 대견하다’고 칭찬해주며 ‘나의 그 희망과 열정을 잘 다듬어 간다면 필히 좋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중 내가 평소 존경하는 교육학의 李 모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그해 가을 敎職(교직)에서 물러나시기에 내 제안을 도울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 미래의 발전을 들을 수 있도록 꾸준히 書信往來(서신왕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셨다. 또 몇 분의 교수님들은 여름에 내가 한국에 귀국하면 자신의 연구실에 들르라고 하셨다.

한국에 도착하여 나의 방문을 원하시던 몇 분의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약속날짜를 정했다. 혹시나 인턴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약속시간 보다 한참 일찍 도착해, 건물 앞 벤치에서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긴장감을 좀 추슬렀다. 정확히 약속시간 5분 전에 연구실에 도착해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참아가며 교수님들께 내 소개를 드렸다. 기대와는 달리, 아니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었겠지만, 교수님들은 내 유학이야기를 듣고 싶어 잠시 부르신 것뿐 이었다. 물론 나는 교수님들과 대면을 하는 그 시간과 기회를 엄청난 행운으로 여겼다.

어느 교수님은 나를 좌절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밀어 넣으셨다. 그 교수님은 나를 소파에 앉히시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미국 유학 기간을 물어보셨다. 나는 일 년이라고 대답했다. 그 분은 다시 부모님의 직업을 물어보셨고, 나는 두 분 모두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분은 갑자기 어이가 없으시다는 듯 웃더니, 내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분의 논리는 이러했다.

‘남은 고등학교 2년 유학기간 동안 너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해지지 않을 것이며, 장기간의 유학을 한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100% 밀릴 게 뻔해. 아이비리그는커녕 유명한 미국 대학에 願書(원서)를 넣을 수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인 너의 부모님은 사립 유학을 경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분의 말씀대로라면, 나는 당장 유학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로 편입해야만 했다.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불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던 나의 열정과 포부는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짓밟혀졌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더니 누군가 건드리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연세대학교 校庭(교정)에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갑자기 내 앞길이 불투명해지는 듯 보였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던 배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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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얼마 후 다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게 미국 유학의 꿈을 불어넣어준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의 저자인 안재우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강남의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동안 전화통화로 내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주셨던 선생님을 처음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니, 선생님께서는 내게 “이제부터 영어로 대화할까?”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 분 앞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천자문을 겨우 익힌 어린 제자가 뛰어난 學識(학식)을 갖춘 스승 앞에서 감히 자신을 높이는 것이라 여겨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표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 내 성적표만큼은 당당히 보여드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잘했네. 너 하버드 가겠다!”라며 칭찬하셨다. 선생님과 미국 유학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또 다른 각자의 앞길을 걷기를 다짐하며 두 번째 약속을 했다. 그것은 2년 동안 오직 자신의 꿈을 향하여 前進(전진)하고, 그 곳에 도달한 뒤 다시 연락을 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부모님께서는 내 꿈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시고 나를 뒷받침해주시겠다는 결정을 내리셨다. 그 당시 내가 속해있던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美 국무부 지원)은 미국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에게는 단 일 년 간의 체험 기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사립 또는 보딩스쿨(Boarding School)로 전환을 해야만 했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사립과 보딩스쿨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사립학교에서는 질 좋은 교육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훌륭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아이비리그와 같은 유명 학교로 지원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때문이었다.

평균적인 사립학교의 일년 학비는 1만 906달러이며, 보딩스쿨은 4만 875달러로 유명 대학 학비와 거의 맞먹었다(사립학교도 마찬가지라서 외국학생이라면 기숙사나 호스트 가족을 따로 섭외해 생활해야 했으므로 그 가격은 보딩스쿨과 비슷하다). 당시 부모님은 경제難(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굳게 의지를 다지셨다. 내가 미국에 있을 당시, 부모님께서는 교환학생과는 다른 사립유학을 주로 하는 강남의 모 유학원을 알게 되셨고, 나는 그 유학원 소개로 수많은 사립학교·보딩스쿨 중 동부에 있는 세 개의 학교를 추려낼 수 있었다.
 
결국 캐스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업 공부, 과외활동을 포함해 원서준비까지 모든 것을 竝行(병행)해야만 했다. 내가 선정한 학교들은 첫 단계인 서류심사가 끝나면, 그 다음 영어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은 2월 쯤 진행되었는데, 나는 한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두 학교와의 면접을 스카이프(skype, 인터넷 화상채팅 프로그램)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한 번은 학교의 컴퓨터 선생님께서 도와주셔 약속시간 내에 수월하게 인터뷰를 끝마쳤다.

또 다른 인터뷰 하나는 펜실베니아 주 에리(Erie)에 있는 머시허스트 고등학교(Mercyhurst Preparatory School)였는데 그 인터뷰는 스카이프를 통해 집에서 진행되었다. 여느 인터뷰가 그렇듯 첫인상은 가장 중요한 합격요소라고 생각한 나는 용모를 최대한 단정히 하고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영상으로 보이는 네 명의 女선생님들은, 내게 간단한 자기소개와 유학경험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다행히 며칠 전 유학원에서는 사립학교에서 자주 물어보는 빈도 높은 인터뷰  질문들을 알려주었고, 그 답을 미리 준비해두어 답변을 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약 30분 동안 인터뷰는 問答(문답)형식으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분들은 내게 위스콘신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위스콘신이 미국 낙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치즈와 아이스크림에 대해 소개했다. 물론 추운 겨울과 엄청나게 내리는 눈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얼마 전에 슈퍼볼 경기를 보셨어요? 위스콘신의 상징인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를 무찌르고 우승했거든요!”라고 말했다. 다시 그 날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순간, 나는 야릇하게 갑자기 굳어지는 네 선생님의 표정과, 순식간에 식어버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스카이프를 종료하고 나는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큰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를 이긴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는 펜실베니아 주의 대표팀이었고, 내가 인터뷰를 본 학교는 바로 펜실베니아주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선생님들이 펜실베니아를 응원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해져 그 날 밤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인터뷰 본 학교 분명히 떨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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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23, 11: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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