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숙자들에게 점심 대접하기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8)/진심으로 하는 봉사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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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둘째 주 일요일은 내 스케줄러에 항상 중요하다고 표시된 날이었다. 이 날은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고 내 자신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머시허스트 고등학교(Mercyhurst Preparatory School)에는 ‘Feed the Hungry’라고 불리는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였다. 활동 희망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매달 둘째 주 일요일마다 에리(Erie) 시내에 있는 노숙자 쉼터에서 점심식사를 요리하고 제공하는 아름다운 일을 벌였다.

봉사활동은 사실 미국 대학 願書 지원 時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그 이유는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이 봉사활동 내역을 통해 학생이 어느 부분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예과를 고려하는 학생이라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이, 獸醫師(수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이라면 버려진 애완동물 보관소에서 수행되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 학교에서도 한국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으로 이행해야만 하는 최소 봉사활동 시간을 제시하는데, 머시허스트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25시간을 채우는 것이 의무였다. 한국에서 중학교 3년 동안 60시간을 채우는 것이 졸업을 하기 위한 필수항목이었고班 학생들은 60시간을 채움과 동시에 봉사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나는 당시에 이와 같이 25시간을 정확하게 채우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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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친한 친구인 레이첼과 대화하면서 나는 당시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은 한낱 진정성이 없는 형식에만 국한된 봉사활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레이첼은 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주 강렬했던 친구였는데, 그녀는 매일 방과후에 댄스교실에 가서 발레, (Tap), 재즈, 힙합 등의 여러 종류의 춤을 마스터했고,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조교 선생님으로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친구들에게 춤을 가르쳤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오전8시부터 오후4시까지 레이첼은 조교로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탁월하게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었다.

레이첼이 방학 동안에 했던 봉사활동의 시간만도 거의 500시간이 되었으니, 일 년간 그녀가 춤으로 남에게 선사한 도움은 어마어마한 희생이었다. 하루는 내가 레이첼에게 봉사활동을 그렇게 오래하면 힘들지 않아?”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레이첼은 내가 춤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를 잘 따라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어.”라고 대답했다. 아차 싶었다. 여태껏 봉사활동을 하면서 과연 나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던가? 말로만 봉사를 했다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던가?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게시판에 붙어있는 ‘Feed the Hungry’ 활동 신청서를 보았다. 나는 당장 신청했다. 느긋한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싶은 내 강한 욕구를 뿌리 채 뽑아버리며 나는 기숙사 선생님의 차를 타고 학교에 아침 10시에 도착했다. 몇 번 학교에서 마주쳤던 5-6명의 친구들이 이미 학교 부엌에 모여 있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Feed the Hungry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비롯하여 세분의 다른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배부른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다는 취지에 동참했다.

봉사활동을 담당하셨던 지머맨 선생님(Ms. Zimmerman)이 그 날 할 일을 알려줌과 동시에 우리의 손길도 바빠졌다. 일단, 우리는 지머맨 선생님의 차에서 빵, 돼지고기, 밀가루, 콩 통조림, 케첩, 바비큐 소스, 복숭아 통조림 등을 부엌으로 가지고 왔다.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분담한 역할을 수행해 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루는 내가 하얀 콩과 케일(kale)을 재료로 하는 수프 담당이 되었다. 수프를 끓이기 전에 우리는 펄펄 끓는 물이 담겨있는 냄비에 작은 돼지고기 한 덩어리를 넣었다. 냄비는 한국에서 엄마가 빨래를 삶을 때 쓰던 아주 커다란 양동이 정도의 크기였다. 그 냄비에 찰랑찰랑하게 담긴 굉장히 많은 양의 끓는 물에 넣은 그 조그마한 돼지고기는 알고 보니 국물 맛을 내는 용도였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내겐 마치 멸치 한 개로 국물 맛을 낸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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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그 멀건 국물에 쌈 채소로 유명한 케일(kale)을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넣었다. 진한 초록색의 단단했던 케일이 물에 데쳐져서 갈색으로 색이 변했다. 나는 케일이 잘 삶아질 수 있도록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물을 휘휘 저었고, 흰 콩도 넣어주었다. 음식을 하는 나로서도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음식이며, 왜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 밍밍한 수프보다 차라리 마트 냉동창고를 꽉 채우는 값싼 인스턴트를 사서 요리한 음식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모든 요리는 통조림에 들어있는 소스와 야채, 냉동되어 있는 고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요리를 하면서 사실 학교를 조금 원망했다. 미국에서는 賣場(매장)에서 파는 야채와 과일이 저렴한 나라인데, 왜 하필이면 꼭 통조림에 저장된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혹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료를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었다.

통조림 치즈 소스와 삶은 마카로니로 만든 맥 앤 치즈(=마카로니 앤 치즈:Mac and Cheese), 통조림 복숭아파인애플을 섞어 만든 화채, 인스턴트 고기에 바비큐 소스를 발라 만든 바비큐, 옥수수가루로 만든 콘브래드, 그리고 내가 만든 케일 스프가 오늘 우리가 노숙자들을 위해 제공할 음식이었다.

성심 성의껏 만든 음식들을 가지고 점심시간에 우리는 에리(Erie) 시내에 위치한 노숙자들을 위한 보호시설로 차를 타고 향했다. 5분 정도 달려서 우리는 어느 교회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회는 일층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이층은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로, 그리고 지하는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부엌과 카페테리아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교회 앞은 무료 점심 배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숙자들로 긴 줄을 늘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흑인이었고, 남녀노소,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찢어지고 누르스름하게 절어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던 머시허스트 고등학교는 사립 고등학교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입학을 하는 곳이었고, 또 기숙사에서도 부유한 중국인들과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이토록 어려운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차에서 음식을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하얀 턱수염을 기른 흑인 할아버지 한 분께서 다가오시더니 자신이 그 음식을 대신 나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사양했다. 나이가 들어 이미 나약해지시고 걷기가 불편해 보이셨던 분께 부탁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몇 번이고 사양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연거푸 말씀하시더니 끝내 음식을 천천히, 아니 아주 천천히, 부엌으로 나르셨다. 그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줄을 서계셨던 몇몇 분들도 음식 나르기를 손수 도와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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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배급하기에 앞서 우리는 하느님께 짧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바비큐 고기를 배식하고 있는 내게 오는 사람마다 “How are you?”하고 인사를 하며 와 줘서 고맙다(Thank you for coming)”라는 말을 전했다. 몇 몇 분들은 내가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했고, 한국이라 답하자 ‘Thank you’라는 말을 한국어로 배우고 싶어했다. 그 분께 감사합니다라고 천천히 발음해 알려드리니, 나를 따라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셨다.

누렇게 변한 누추한 옷을 차려 입은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일회용 접시를 겨우겨우 들어 음식을 받으셨다. 내 마음은 너무나 안쓰러웠고, 나는 이분을 어떻게든 더 도와드리고 싶었다. 한쪽 다리를 저는 사람, 했던 말을 우리에게 반복 또 반복해서 말하는 정신이상자, 나이가 든 노인 분 등 이곳은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관심 밖에 있는 그 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쉼터였고, 그들은 이 곳에서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위안을 삼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10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의 配食(배식)을 마쳤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다시 우리에게 와서 비닐봉투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남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실 배식을 하면서도 몇몇 분들은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며, 일하거나 거동이 불편해 그곳에 올 수 없었던 가족들을 위해 점심을 대신 받아서 가져갈 수 있느냐를 물어보았다. 비닐에 음식들을 담아 들고, 고맙다고 몇 번이고 우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돌아가시는 그 분들을 보면서, 나는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순간 내 마음 또한 짠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울컥하는 뜨거움이 내 심장 전체로 퍼졌다.

영화에서만 있는 얘기일거라 생각했던,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을 직접 내 눈으로 접하며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시간만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지난 날의 봉사가 아닌 이제는 진정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봉사를 해보겠다고.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동안 내가 겪었던 시련은 분명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나가는 그들의 생활과는 손톱의 때 만큼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그토록 원하던 외국에서 하며, 항시 부모님의 사랑을 전화통화로 느낄 수 있는 나는 실로 내게 벌어지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 감사해야 했다.

<사진 출처>

The Upper Room of Erie. “The Upper Room of Erie, a Homeless Shelter.” The Upper Room of Erie. Upper Room of Erie, Inc., 2013. Web. 28 Jul 2013.

 

[ 2013-07-29, 04: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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