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사 건네기’로 친구들과 벽을 허물다!
조인정의 미국 유학奮鬪記(19)/ 메기, 브래난, 메디와의 추억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친구를 갖는 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스페인의 작가인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y Morales)이 한 말이다.

그렇다. 머시허스트 고등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나는 운이 좋게도 심성이 고운 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우리의 우정은 세상의 누구도 가를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내가 타고난 人福(인복)을 지니고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交友(교우)관계를 잘 다지기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내가 들인 제일의 노력은 바로 ‘용기’를 가지는 것이었다. 용기를 가지는 것은 얼굴에 두꺼운 철면피를 까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소극적이었던 나는 호스트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소극적인 모습에서 脫皮(탈피), 他人(타인)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해 나갔다. 처음엔 새로운 학교에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낯선 친구들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아직까지 미국인들은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내가 그들에게 투명인간으로 비춰지진 않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100여 명이 되는 중국학생이 재학 중이었으니, 내게 관심을 주는 걸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무관심은 내 마음을 점점 더 침울하게 만드는 가장 독한 병이었다. 대부분 내가 수강하는 수업의 교실을 들어가면, 외국학생이 나 혼자이거나 또는 중국인 친구가 두 세 명 있을 뿐이었다.

하루는 세계종교(World Religions) 시간에 힌두교를 배우면서 힌두교도 사이에서 존경 받는 神이자 코살라국의 왕자 라마(Rama)의 무용담인 라마야나(Ramayana)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다. 선생님께서는 영상이 끝난 후 둘씩 짝을 지어서 줄거리를 요약해서 수업시간 내에 제출하는 숙제를 주셨다. 영상이 끝나고 내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군가 내 옆에 앉은 미국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나랑 같이 과제 할래?”라는 말을 해주지는 않을까 하며 노심초사했다. 우리 반 학생 수가 짝수였기에,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나와 짝을 해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았다.

하지만 벌써 친구들은 그룹 과제를 시작했고, 나는 ‘오늘도 또 짝이 없다’라는 생각에 마음 속으로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과제는 마쳐야 했으므로 나는 집중해서 과제에 몰두했다. 안타깝게도 시간 내에 과제를 끝낼 수 없었다. 중간중간 줄거리가 막히는 부분에서 짝의 도움 없이 혼자 흐름을 생각해 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나만 빼고 모든 그룹에서 과제를 제출했다. 선생님께 아직 덜 끝냈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놀랍게도 선생님께서 오히려 내게 사과를 하셨다. 방금 어느 한 조에서 세 명이 한 그룹이 되어 과제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혼자 끙끙대며 과제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고 하셨다. 반 친구들이 나와 같이 조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잘못된 편견 때문이라며 내게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씀하셨다.

무관심은 내 마음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떻게든 극복해야만 했다. 나는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면, 내가 다가가서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어떨까? 별거 있나? 같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사본문 이미지
우선 ‘모르는 친구에게 인사하기’부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간단한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 파워는 실로 대단했다. 나와 인사했던 친구들은 후에 나를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고 짧게 대화를 건네기 시작했다. 이후 조금씩 친구들과 顔面(안면)을 트게되었다. 처음엔 그들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 바닥만 보며 걸었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새 복도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손 제스처를 취해가며 먼저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미국 친구들도 동양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2년 간의 머시허스트 고등학교 생활 중 내게 진실된 우정이란 얼마나 따스한 햇살과 같은 지 보여준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내게 마치 구름 사이로 비추는 한 줄기의 밝은 빛 같았고, 곧 내 마음속의 차갑게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를 걷어내 준 존재였다.

중국어를 수강하게 되었던 첫 날,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중국어 교실로 들어섰다. 예쁘장하게 생긴 어느 미국 여자아이가 내게 일본어로 “하지메마시떼”라고 인사했다. 나는 “I am sorry, but I am Korean”이라고 대답했다. 이 친구는 지금도 매일같이 연락하고 지내는, 가족과 같은 메기(Maggie Davis)이다.

메기는 예전에 일본인 여자아이를 한 명 호스트 한 적이 있었고, 자신도 일본으로 잠시 교환학생을 다녀왔을 정도로 아시아 문화를 사랑하는 친구였다. 이렇게 아시아 문화를, 특히 한국 문화를 좋아하던 메기 덕분에 나는 누가 진짜 한국인인지 헷갈렸던 적이 많았다.

내가 우연히 알려준 한국 노래를 듣고 그 매력에 빠진 메기는 케이팝(K-Pop)에 거의 미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난 새로 발매된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소식들을 메기로부터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뒤 메기는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 문화 전도사’ 역할까지 했다.

나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메기에게 한국어 강의를 했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내 강의를 듣던 메기는 놀랍게도 한글을 매우 빨리 익혔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항상 그녀는 내게 “아줌마, 여기 불고기 2인분 주세요”라고 하거나 “오빠, 선물 사주세요” 또는 “내가 제일 잘나가! 나는 짐승이다!”라고 했다. 발음은 서툴렀지만 귀엽게만 들렸던 그 말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특별한 날이 되면 메기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평범한 날에도 메기는 나를 보기 위해 기숙사로 놀러왔다. 메기 가족은 곧 나의 가족이 되었고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음에도 따뜻한 가족애를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메기 가족 덕분에 나는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 매년 3월 17일. 기독교의 축일로 아일랜드의 수호 聖人이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전도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는 날)에 초록 물결로 넘실대던 거리의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에는 오하이오주의 사촌 별장에 초대받았고, 크리스마스에는 어느 백작의 별장에서 메기가 부는 플룻 연주에 맞춰 관객들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내게 메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이자 떨어져 있으면 언제나 보고 싶은 가족의 一員(일원)이었다.

기사본문 이미지
브래난(Brennan McAndrew)은 前篇(전편)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나의 과학 선생님이다. 과학, 특히 화학을 우리 학교에서 최고로 잘했던 브래난은 나의 질문에 소홀히 대답했던 적이 없던 자상한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등교 시 타는 스쿨버스에서는 서로 자리를 잡기 위한 엄청난 死鬪(사투)가 벌어진다. 새치기 때문에 줄을 서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몸싸움을 싫어하고 또 매번 밀렸던 난 편한 자리 찾는 것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미국 스쿨버스는 우리 나라의 관광버스처럼 한 좌석에 두 명이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고 서 있을 수는 없다. 이는 교통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북새통 같은 버스에서 브래난은 언제나 듬직하게 그의 옆자리를 항상 내 자리로 맡아주었다(스쿨버스는 기숙사에 오기 전 브래난 집에 먼저 들렀다). 그가 자신의 무거운 가방을 내가 도착할 때까지 옆 자리에 떡 하니 놓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브래난은 프랑스를 예전부터 좋아하고, 작년에도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6개월간 다녀왔었다. 그 곳에 있을 때도 그는, 나와 자주 편지로 서신왕래를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은  우리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나는 최근에도 브래난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편지에는 그의 착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녹아있어 큰 감동을 준다.


기사본문 이미지


메디(Maddi Filutz)와 나는 학교의 봄 뮤지컬(Spring Musical) 주제였던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를 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사회시간에 몇 번 보았던 메디는, 그 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서먹서먹한 친구였다. 마법사 오즈가 살던 나라인 에메랄드 시티의 시민으로 등장하게 된 우리는, 방과 후에 함께 노래 연습을 하며 곧 제일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무대에 오르지 않는 시간에 우리는 복도에 앉아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빅 타임 러쉬(Big Time Rush),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브래난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메디와 브래난은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서 기숙사에 갇혀 격리된 인생’을 보내는 나를 위로하겠다며, 방과 후 나를 데리고 에리(Erie)의 명물인 프레스카일(Presque Isle State Park)로 갔다. 프레스카일은 거대한 에리호(Lake Erie)와 드넓은 모래사장이 마치 그림엽서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대자연의 아름다운 壯觀(장관)을 연출해 내는 곳이었다.

기사본문 이미지
방과 후에 기숙사로 곧바로 가지 않은 것은 사실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매일 똑같이 돌아가던 지루한 일상에서 한 번 쯤 탈출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일었다. 잠시나마 고된 일상을 내려놓고 싶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메디의 차로 프레스카일을 향해 달렸다. 차가운 저녁 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호숫물이 일으키는 파도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으로의 탈출에서 멋지게 성공한 우리 셋은 만세를 외치고, 포옹하고, 또 서로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크게 적었다. 영원히 이 시간을 잊지 않고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빨갛게 변해가는 아름다운 노을을 향해 기도했다.

미국에서 만난 메기, 브래난, 메디는 내게 제2의 가족이었고, 그들이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며, 그들이 없었다면 분명 무관심이란 지독한 병에 걸려 하루하루 슬픈 밤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들은 내게 한 줄기 따스한 빛이었고, 선생님이자 조언자였다.

[ 2013-08-01, 10: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