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 토론대회에서 1등 하다!
조인정의 미국유학奮鬪記(22)/ 나의 스트레스와 勞苦, 도전정신을 높이 사 하늘이 주신 멋진 선물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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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junior)와 최고학년인 시니어(senior) 시절 내가 부러워했던 건 방과 후에 스쿨버스에 올라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친구들이었다. 마지막 교시의 끝을 알리는 교내 안내 방송이 나오면, 기숙사 친구들은 올림픽의 달리기 선수들처럼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부리나케 스쿨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나도 수업이 끝나고 진이 다 빠진 몸을 이끌고 당장이라도 스쿨버스에 오르고 싶었으나 방과 후 과외활동 때문에 기숙사로 곧장 갈 수 없었다.

소포모어(sophomore) 당시 위스콘신 주의 캐스빌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미술, 음악, 소프트볼 등의 여러 과외활동에 참여했다. 과외활동은 단순히 내 자신에게 색다른 분야의 특별한 경험과 배움을 주었던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과외활동을 하는 동안은 학업과 성적에 매진해 앞만 보고 달리던 내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과외활동도 스트레스 제로였던 것은 아니었다. 과외 활동의 우수한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모임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고, 연습도 빠지지 않고, 또 늦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모두 그러모아 안간힘을 써서 과외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매일 지쳤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부천여자고등학교에 반 년 동안 재학할 당시 나는 ‘다빛’이라는 학교 토론 동아리의 일원이었다. 동아리 선배와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어떤 주제를 가지고 찬성과 반대로 팀을 나누어 토론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토론을 나름 즐겼던 터라 미국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토론부 활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11학년 당시 영어 말하기에 전혀 자신감이 없던 나는 토론부 활동의 마음을 결국 접고야 말았다.

최고 학년이 되자 어느 날 문득 나는 만약 이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작가인 루이스 E 분(Louis E. Boone)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 할 수도 있었는데, 했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하고 싶은 토론을 단순히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학교 토론부 신청 명단에 내 이름을 기입했다.

내가 속하게 된 스피치 앤 디베이트(Speech and Debate) 클럽에는 스피치에 속해있던 즉흥 말하기(Impromptu Speaking), 웅변(Original Oratory), 시 해석(Prose and Poetry Interpretation)등이 있었고, 토론에 관련된 2:2 토론(Public Forum Debate), 학생국회(Student Congress), 링컨 더글라스 토론(Lincoln Douglas Deabte) 등이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한 개의 장르를 선택해야 했다. 과연 어떤 장르가 가장 내게 적합한지 토론부 선생님과 이야기해 보았고, 선생님께서는 내가 한국에서 배워 익숙했던 2:2 토론을 추천했다. 물론 한국에서 했던 것은 갑, 을, 병으로 나뉘어 3:3으로 진행되었던 토론이었지만 하는 것에서는 2:2토론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듯 했다.

나의 첫 번째 파트너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윌리엄(William Greenleaf)이었다. 토론부 선생님은 나를 토론을 꽤 오래해 본 학생으로 생각하셨는지, 자꾸 토론부의 주장을 일컫는 캡틴(Captain)이라 불러 민망하게 했다. 윌리엄과 나는 10월에 있을 첫 번째 토론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 날 주제는 ‘선진국에 기후 변화를 완화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Do developed countries have a moral obligation to mitigate the effects of climate change?)’였다.

윌리엄은 내게 자신이 찬성 쪽의 주장과 예시, 그리고 뒷받침 설명들을 조사해온다고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찬성 편이었기 때문에, 찬성쪽 주장에 대해 조사하고 싶었으나, 이미 선수를 친 윌리엄에게 이를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반대쪽의 입장에서 주장을 펼치려고 하니 머릿속이 완전히 백지였다. 인터넷에서도 반대편의 주장으로는 쓸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고, 적당한 예시와 논문도 없어 몇 시간씩 눈을 부리부리 뜨고 열을 내며 찾아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며칠 후 윌리엄과 나는 토론부 교실에서 다시 만났다. 윌리엄은 나의 모든 주말을 바쳐서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주장들을 보더니 모두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 주장 중에 개발도상국들도 환경 파괴를 하고 기후 변화에 영향을 주므로 선진국들에게만 100% 도덕적 책임이 가해지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한 부분이 있었다. 윌리엄은 내 종이에 크게 X표를 그리더니, 다시 조사해오라고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열 받아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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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우리 토론부 그룹 메시지로 토론부에서 나와 가장 친하고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제시(Jesse Edwards-Borowicz)라는 친구가 혹시 반대 주장에 대해 좋은 정보가 있으면 알려달라며 내게 물었다. 나는 이 메시지를 제시가 보낸 후 약 두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 확인했는데, 내 파트너였던 윌리엄이 제시에게 답문을 이미 보냈었다. 윌리엄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아무 정답도 찾을 수 없어’라고. 제시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윌리엄은 ‘왜냐하면 그녀는 말도 안 되게 글을 썼거든’이라 답했다. 제시에게 내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것 보다 윌리엄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울컥하는 마음을 주제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메시지는 토론부 그룹 메시지였기 때문에 토론부에 속해있는 모든 학생들이 같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적인 장소여서 나의 정신적인 충격은 두 배로 컸다.

이를 악물고 더 좋은 주장을 찾기 위해 열을 올렸다. 밤이 늦도록 잠을 줄이면서 주장을 뒷받침 할 예시를 찾았고, 토론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께 따로 찾아가 질문하고 내 글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사실 나는 이번 파문이 있은 얼마 후에 토론 선생님과 과연 내가 윌리엄과 파트너가 되어 토론 대회를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 선생님은 기가 죽은 나를 격려해주시며, 지금처럼 열정을 가지고 토론 준비에 임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나를 스포트라이트 할 것이라 했다. 따라서 나는 이번 시련을 참고 이겨내기로 했다)

대회 바로 직전에도 윌리엄은 내가 쓴 세 가지의 반대측 주장과 뒷받침 예시 중 두 번째 단락을 모조리 삭제했다. 얄미웠지만, 그는 내 파트너였고, 더군다나 이번은 내가 처음 나가는 토론 대회여서 작년부터 토론 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 윌리엄에게 나는 뭐라 할 수 없었다.

토론대회는 어느 공립학교에서 실시되었다. 심판은 시간을 재서 贊反(찬반) 양론의 주장과 내용의 타당성과 논리적인 면을 심사했다. 동전을 던져 편을 정했다. (나와 윌리엄이 토론대회 전에 찬반 양편의 주장에 대해 모두 준비했던 이유는, 대회 당시 어떤 편이 될 지는 오로지 심사위원의 마음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준비했던 반대측이 결정되었다. 내가 서문을 읽고 우리 측의 주장을 제기했다. 부족한 영어에도 나는 기죽지 않고 내가 최대한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또박또박 대답하고 질문했다.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는 질문을 던진 적도 있었고, 논리에 맞지 않는 뒷받침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윌리엄은 어찌나 화가 나 씩씩거리던지, 팀원끼리 상의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질 때면 내게 잔뜩 꾸지람을 늘어놓았다. 한 가지 황당했던 점은 토론 중 윌리엄이 갑자기 내가 처음에 작성해 그에게 X표 받았던 그 내용 종이를 아직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혹시라도 내 주장에 쓸까하고 챙겨갔으므로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게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던 문구를 자신의 주장처럼 펼쳐냈다. 심판도 그의 주장에 흡족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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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과의 대결이 끝나고 오늘의 토론대회는 막을 내렸다. 우리는 모두 대강당에서 모였다. 이제 곧 1, 2, 3등을 발표할 터이다. 특이하게도 사회자가 3등을 발표하면 그 곳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 한 번을 쳤다. 그리고 2등을 발표할 때는 두 번을 쳤고, 마침내 영예로운 1등 수상자가 발표되었을 때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축하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들처럼 잠자코 앉아 박수를 쳤다. 수상자는 1, 2, 3등이 각 토론과 스피치 장르에 따라 다르게 발표되었는데, 나와 윌리엄이 속해있던 2:2 토론의 수상자 발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때 만해도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그 동안 토론대회 준비로 쌓였던 긴장이 대회가 끝남과 함께 풀려 온몸이 나른해졌기 때문이었다. 3등, 2등, 드디어 大尾(대미)의 1등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 사회자가 외쳤다. “머시허스트 고등학교 제니퍼 조(나의 영어이름) & 윌리엄 그린리프(Mercyhurst Jennifer Cho and William Greenleaf)!”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리가 있는 곳을 보면서 박수를 보냈고, 토론 선생님 또한 놀란 모습을 보이시더니 잘했다며 우리를 칭찬해주었다. 옆의 친구들이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소리를 경이롭게 들었다. 나와 윌리엄은 1위라고 쓰여 있는 블루리본을 받았고, 게논 대학교(Gannon University)에서 수여하는 200달러 상당의 장학금도 받았다. 기분은 여전히 떨떠름했고, 이렇게 큰 상을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스트레스와 勞苦(노고), 그리고 도전정신을 높이 사 하늘이 주신 멋진 선물이라 믿고 기분 좋게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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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부 활동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다. 토론대회 전 내가 펼칠 주장에 대한 글을 쓰면 항상 토론부 담당이었던 존 셔프 선생님(Mr. Schaff)께 이메일로 나의 글을 보냈다. 외할아버지처럼 인자한 외모를 가지고 계셨던 선생님은 내 메일을 읽고 선생님이 조언하는 부분과 문법적인 오류들을 상세히 적어 답장을 주시곤 했다. 대회 며칠 전에도, 하루 전날에도 선생님의 학생들에 대한 지극 정성은 대단했다. 내가 2:2 토론에서 장르를 바꾸어 학생 국회라는 대회를 나가기 전 선생님은 나를 위해 일부러 학교를 방문하셨다. (과외활동 선생님은 대부분 외부에서 오는 강사나 일반인이다) 선생님께서는 꼼꼼히 학생 국회 토론의 내용에 대해 요약정리 하여 필기해 온 내용을 내게 주셨다.

또 선생님은 한국인인 나를 만나면서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후에 대강당의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선생님은 미국 토론 연맹(National Forensics League)의 일원의 자격이 된 몇 안 되는 학생들을 무대 위로 호명하여 축하했다. 그 때 내 이름도 불렸는데, 토론부 선생님은 내 이름을 ‘제니퍼’가 아닌 한국이름인 ‘인정’으로 호명하였고, 내가 무대에 오르자 “안녕하세요”하며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내게 “다른 한국어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은 ‘안녕하세요’ 말고는 좀 어렵네”라시며 “다음번에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공부해 올 게”라고 내게 말했다.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얼마 전 그는 이메일 보내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와 같이 훌륭한 여자 아이를 만난 것은 내게 큰 영광이다. 너의 부모님은 네가 자랑스러울 거다. 너는 학업적인 성취를 넘어 세계 미래를 책임질 거라 내가 믿는 학생 중 하나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에 더 공부해서 너와 한국어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길 바란다(미국 악센트 없이). 언제고 에리(Erie)를 찾는다면 우리 집에 놀러 오길 바란다.’

토론 선생님은 내게 진정한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가 보여준,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는 훌륭한 교사로서의 면들을 본받을 것이다. 과외활동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했고, 그 도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 했으며, 노력한 것만큼의 훌륭한 결실을 얻었다. 새로운 도전은 나를 항상 설레게 했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더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과외활동을 통해 自我(자아)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세상에서의 내 존재 가치를 배웠다는 데 있다. 

[ 2013-08-13, 1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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