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의 대화록 해설서 비판
[‘NLL의 진실과 노무현의 전략’을 반박한다-①] 北核/적극적 변호가 불가능한 사안

趙成豪(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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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이사장 이병완)은 지난 7월31일, ‘NLL의 진실과 노무현의 전략(이하 해설서)’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발간사와 부록을 포함해 총 79쪽으로 구성된 이 해설서는, 국정원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공개로 불거진 NLL(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등 각종 논란을 반박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조갑제닷컴>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을 중심으로 이 해설서를 분석, 누락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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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의 진실과 노무현의 전략'(노무현재단 刊)


1. 北核(북핵)


노무현에게 北核 폐기 의지는 있었나?

노무현 前 대통령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하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北核 문제 해결 의지를 천명했었다. 그는 2007년 8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번 회담이 그동안 北核문제로 정체되어온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평화, 軍備(군비)통제, 경제협력 등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오도록 준비하고, 창조적이고 포괄적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정원이 작성한 대화록에서 盧 前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北核 폐기)’ 의지는 찾기 어려웠다. 대화록에는, 그의 北核 관련 발언이 다섯 번 나온다.


대화록에 나타난 노무현의 ‘北核 발언’ 짚어보기

발언 ①: <현재 핵문제는 관련 각 측의 노력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았으며, 이는 김 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①을 보면, 盧 前 대통령은 김정일에 의해 北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처럼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먼저 정상회담 이전의 6자회담 흐름을 復棋(복기)할 필요가 있다. 2005년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北 계좌를 동결(금융 제재)해 美北관계는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2006년 10월9일의 핵실험으로 美北관계가 악화 되어가던 중 2007년 2월13일, 제5차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예비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BDA와 핵문제 등 몇 가지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했는데 이것이 ‘2·13합의’이다.

‘2·13합의’는, 북한이 60일 내 영변 핵시설 폐쇄(shut down) 및 봉인(seal)하는 대가로 重油(중유) 5만 톤을 지원하고, 이후 불능화(disablement)를 이행하면 95만 톤의 重油 및 에너지를 추가 지원(이른바 ‘인센티브 보상 방식’)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같은 해 3월19일, 북한은 미국이 BDA 동결 해제에 非협조적이라는 이유로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 불참했다. 결국 북한은 同年 6월26일, BDA 계좌로 동결되었던 자금이 入金(입금)되자 비로소 IAEA(국제원자력기구) 실무단 訪北을 허락하고, 영변 핵시설 원자로 냉각탑을 파괴했다(注: 북한은 2008년 9월19일, 외무성을 통해 테러지원국 해제를 요구하며 ‘영변 핵시설 재가동한다’고 발표함).

북한의 회담 불참은 일방적인 약속 파기이자 행패였다. 북한은 지난 60여 년 간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협상과 파기를 반복하는 ‘벼랑 끝 외교전술’을 구사해왔다. 국제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妄動(망동)이다. 그런 前歷(전력)이 있는데도, 盧 前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각별한 관심’, ‘지도력’ 운운하며 김정일 덕분에 北核 문제가 상당부분 진전된 듯이 칭찬을 건넨 것이다.


盧, “(北核의) 실질적 논의는 6자회담에서…”

발언 ②: <미국이 이 회담 바라고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서로 협력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6者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남북 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 거니까요. 그런 원칙은 이미 다 얘기했으니까요. 한나라당은 뭐라뭐라 뭐 핵 얘기를 좀 많이 쓰라고 그걸 가지고 인제 시비를 자꾸 걸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②에서 盧 前 대통령은, 동맹국인 미국을 비판하며 ‘6자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어 ‘단지 남북 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 것’이라고도 말한다. 즉,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만 하고 실질적 논의는 6자회담에서 하자는 이야기이다. 사실상 정상회담에서 北核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뜻이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발언 ③: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③에서 그의 北核 관련 입장은 더욱 명확해진다. 盧 前 대통령은 핵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상회담의 판이 깨지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핵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것(또는 문서적 합의만 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피력한다.


‘문서적 합의’만을 요구한 노무현

발언 ④: <우리 국민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핵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안 그러면 가가지고 인제 뭐 내가 해명을 많이 해야 되죠… 한 줄 들어있으면 가서 뭐 이렇게 간다… 이렇게 될 것 같구요.>

④에서 그는, 김정일에게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언을 (정상회담 합의문에) 넣자고 요청한다. 그는 이 발언 前後(전후)로 ‘우리 국민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줄 들어있으면 가서 뭐 이렇게 간다(注: ‘한국에 돌아가 국민들에게 北核 해결 방안을 설명할 때 필요하다’는 취지의 언급으로 추정)’라고 말한다. 이는 실질적 핵 폐기 요구가 아닌 ‘문서적 합의’를 요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盧 前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국제 규약 준수’나 ‘상호주의 원칙’ 등을 제안했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요구마저도 마치 애원하는 투로 ‘한 번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간청하듯이 말한다.

盧 前 대통령의 입장은, ⑤에서 ‘자신이 北核 대변인 노릇을 했다’는 말을 함으로써 정점을 찍는다.

발언 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 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해설서, 北核 비중있게 안 다뤄

해설서는 北核 문제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해설서에는 北核과 관련된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NLL, 경제협력 등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한 부분이 있지만, 北核 부분은 그에 비해 원론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이 많다. ‘핵’이라는 키워드로 해설서 전체를 검색해보면, ‘北核’과 관련해 총 8개 항목이 검색된다. 이중 눈여겨 볼 대목은 (A)와 (B)이다(나머지는 발언의 문맥상 들어간 원론적 언급이므로 생략).

(A)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을 제시했습니다. (17~18페이지)
(B)
개성공단 문제에서 시작한 ‘자주’ 이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인식 또는 완곡한 비판은 평화보장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발언에서 다시 표출되었습니다. (24~25페이지)


‘감사調’의 칭찬이 핵문제 해결 제시?

(A)는 해설서 제3장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입장’에 수록된 내용이다. (A)의 전체 문단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확고한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이루며,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의 체제붕괴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전쟁에 반대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실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과제로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남북한의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을 제시했습니다.>

이 문단만 읽어보면, 盧 前 대통령은 핵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확고한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이루며,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을 한 뒤, 김정일에게 앞서 지적한 ‘발언 ①’을 건넨다. 이는 해설서의 설명처럼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과 거리가 멀다. 단지 핵문제의 ‘主犯(주범)’격인 김정일에게 ‘감사調’의 칭찬만 건넸을 뿐이다. 따라서 ‘핵문제 해결을 제시했다’는 해설서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해설서 제4장 ‘두 정상간 쟁점과 합의사항’에 수록된 (B)의 전체 문단은 다음과 같다.

<개성공단 문제에서 시작한 ‘자주’ 이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인식 또는 완곡한 비판은 평화보장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발언에서 다시 표출되었습니다. ‘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 철회’와 ‘조선반도 비핵화’,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 보장’ 등을 6자회담을 통해 풀어가는 데 찬성하지만 미국이 안 주려고 하고 국제사회의 지지가 없으면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없다, 지난 5년 내내 이런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웠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대변했다,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버리면 북측도 남측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하고 적대관계를 풀어야 하고 일본하고도 아니꼬워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한다…(중략) 북의 자주노선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북한을 비판했다’는 주장 檢證
 

이 주장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盧 前 대통령은 김정일과 대화하면서, 북한을 비판하기보다는 北의 행태를 묵살·두둔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묵살’의 대표적인 예는 경수로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김정일에게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되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 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北에 경수로를 짓게 된 배경을 알려면 20여 년 전의 美北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1989년 美 정찰위성은 북한 영변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포착했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샀다. 결국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 美北간 군사적 위기는 고조되었다. 美北간의 갈등 해결을 명목으로 지미 카터 前 美 대통령이 訪北(1994년 6월15일)하고 약 넉 달 후인 10월21일, 美北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네바 합의’에 서명한다.

제네바 합의는 ▲北의 핵개발 포기 ▲美北수교 ▲북한에 대한 에너지 공급이 주된 내용이다. 북한이 영변 핵처리 시설을 폐기할 경우, 경수로 건설을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이 제네바 합의 역시 2002년 12월 북한이 핵연료봉 봉인을 해제하고 NPT를 再탈퇴함으로써 휴지조각이 되고, 결국 경수로 건설은 중단되고 만다. 이를 주도한 장본인은 김정일이었다. 盧 前 대통령은, 그런 김정일 앞에서 北의 책임은 일체 거론치 않고, 경수로를 꼭 지어야 한다고만 말한다.

그는 김계관이 말한 ‘敵對(적대)정책 철회’,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찬성하며 6자회담 성사에 있어 미국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하지만 곧바로 BDA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그 직후, 문제의 ‘北核 대변인 노릇’ 발언을 한다. 이처럼 盧 前 대통령은 곳곳에서 北核을 비롯한 북한의 행태는 감싸고 두둔하는 발언을 한다. 해설서의, ‘노 대통령이 북한을 비판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10·4남북공동선언문’ 제4항의 의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남북공동선언문’은 총 8개의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이 제4항이 北核과 관련된 조항이다. 그 全文은 다음과 같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이는 합의된 내용의 반복에 불과하다. 더구나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는 북한의 핵실험과 억지로 파기된 것인데, 북한에 대한 준수 요구도 아닌 '공동노력' 운운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대화록에 따르면, 노무현은 김계관이 ‘무기화된 핵무기는 신고하지 않겠다’고 해도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8년 10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면 최대한 사리를 밝혀서 북한을 변론했습니다. 개별 정상회담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 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고백한 대로, 그는 北核 문제에 있어서 북측의 대변인 또는 변호인 노릇을 한 게 맞다.

[ 2013-08-15, 11: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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