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入學을 위해 흘렸던 땀과 눈물
조인정의 미국유학奮鬪記(24)/ 入試 기간 동안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내 방 어디를 둘러봐도 현기증이 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책상 위의 널브러진 책들이며,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종이 뭉치들, 커피와 녹차 컵들. 심지어 책과 파일은 내 침대 위까지 침범해 주인인 내가 발 디딜 틈 하나 주지 않았다. 폭탄을 맞은 듯 정신없는 방안을 들어오면 한숨이 푹푹 저절로 쉬어졌다.

기사본문 이미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대학원서 접수 마감일은 내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어떠한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 같았다. 이전에 나는 대학 선택에 있어서도 많은 애를 먹었다. ‘아시아 학과(Asian Studies)’에 지원하고 싶었던 나는 일단 내 전공과목에 맞는 훌륭한 교육 커리큘럼과 다양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학교를 찾았다.

이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부분에 대해 합격을 줄 만한 학교들은 많았지만, 학교의 위치, 학비, 규모, 종교적 색깔 등을 고려해 많은 학교들을 일단 제외시켰다. 당시 프린스턴 리뷰(The Princeton Review)사가 발간한 《The Best 377 Colleges》라는 책을 구입, 미국 대학의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 US News Education 와 College Board 사이트를 통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많이 습득할 수 했다.

다행히 내가 원서를 쓸 당시에는 ‘커먼 어플리케이션(Common Application)’을 통해 대학 입학 원서 작성이 훨씬 더 수월했다. 커먼 어플리케이션으로 등록된 대학은, 미국 내 47개주 517여 개 학교였는데,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마다 각각 다른 원서 양식을 보낼 필요 없이, 하나의 양식으로 각 학교에 따로 보낼 수 있었다.

커먼 어플리케이션 등록 학교들의 입학사정관들은, 지원 학생들의 추천서와 에세이에 큰 비중을 둔다. 그렇지 않은 학교들은 학생들을 단순히 내신 성적(GPA)과 공인 시험 성적을 놓고 평가한다. 평가방법은 간단하지만, 이를 수행해야할 학생들에겐 苦役(고역)이다. 학교 숙제와 시험 공부, TOEFL과 SAT, IB 에세이까지 더하면 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과 후에 매일 2시간씩 이뤄지는 소프트볼 연습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내 몸은 방전이 되었다. 시간도 너무 부족했다. 물론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 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기사본문 이미지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난, 남은 시니어 기간 동안 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일분 일초를 잘 계획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소프트볼 연습을 끝나고 와 저녁을 먹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후 시간은 학업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소프트 볼 경기가 끝나고 기숙사로 늦게 돌아온 밤에는, 오트밀을 물을 타 전자레인지에 돌려 꿀과 섞어 먹었다.

샴푸나 치약이 떨어져 사야 했을 때는 나의 룸메이트나 소영이에게 부탁해 사달라 했고, 영화관에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새벽 늦게까지 책상과 의자에 붙어서 살았다. 잠을 자더라도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내 이름 ‘조인정’의 마지막 자 ‘정(桯)’이 고유한 우리말로 의자를 뜻하는 ‘걸상’이다. 내 팔자는 곧 의자에 붙어 학업을 해야 할 삶이라고 여기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잠시 4가지로 분류되는 미국의 대학 입시제도에 대해 설명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수시에 해당하는 Early Decision과 Early Action이 있다. 이 둘은 원서 접수 기간이 11월1일에서 15일 사이로 정시와 비교할 때 30~45일정도 빠르다.

Early Decision은 오직 한 학교만 지원이 가능하며, 합격을 했을 경우 반드시 지원한 학교에 입학을 해야 한다. 따라서 Early Decision을 지원하는 학생은 자신이 가기 원하는 어느 대학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Early Action은 여러 학교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고, 어느 학교에 합격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학교를 무조건 가야 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합격된 학교 중에 원하는 학교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 유의할 점은 미국의 모든 대학이 수시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기에, 학생들은 원서 접수에 앞서 어느 학교에서 수시를 허용하는 지 미리 파악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입시 제도는 ‘정시’에 해당하는 Regular Decision이었다. 내가 정시를 선택한 이유는 수시를 쓰고 싶은 어느 한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고, Early Action에 해당되는 대학은 몇 밖에 없어 선택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었다. Regular Decision은 학생들이 가장 널리 이용하는 방식으로 원서마감일은 대부분 1월1일, 2월1일, 3월1일 중 하나이며 합격 여부는 3월에서 4월 사이에 통보된다. 학생들은 합격된 학교들 중 원하는 학교를 선택한 후 학비를 납부, 입학여부를 최종 통보를 해주면 된다. 수시와 달리 미국의 거의 모든 학교가 정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기에, 학생들은 모든 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다.

마지막은 Rolling Decision인데, 이는 원서 마감일과 상관없이 9월부터 2월 사이에 언제든지 지원 가능한 입시전형이다. 원서를 지원한 순서에 따라 Qualified된 학생을 선발하여 결과를 통보해 준다. 선착순 형식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원서를 일찍 제출할수록 합격률이 높다.

원서 접수 마감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각 학교에서 요청하는 에세이를 쓰느라 나는 밤잠을 설쳤다. 대부분의 에세이는 최대 약 500자 정도였고, 주제는 학교마다 달랐다. 내가 지원했던 어떤 학교는 독특한 주제를 주며 7개의 에세이를 제출하라고 하기도 했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입학 사정관들이 학생들의 특별한 사상과 재능, 잠재력, 그리고 개성을 모두 에세이를 통해 평가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는 에세이를 쓰는 것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영어 선생님께 부탁해 수정을 보고, 조언을 듣는 것은 물론 친구들(브래난, 메디, 메기)에게도 부탁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부분에 차이가 있어서 그들의 監修(감수) 하나하나는 대단히 중요했다. 마지막 감수는 기숙사 선생님들께서 수고해 주셨다. 선생님들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덧붙이고, 수정하기를 밤늦게까지 계속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는 통금시간이 있어서 밤 10시45분이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늦은 시간에도 난 혼자서 에세이를 손보았다. 시간이 늦을수록 눈꺼풀이 천근 같은 무게로 내 눈을 덮는 바람에 커피를 마시고 녹차를 마시며 잠을 쫓았다. 매일같이 두 세 잔의 인스턴트 블랙 커피를 타먹었다. 한 번 월마트에 갈 때마다 220g 정도 되는 커피를 3개씩 사서 쟁여 놓고 먹었으니 그때 소비한 커피의 양도 상당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가족 재정능력을 증명하는 문서 작성에 있었다. 미국 학생들은 모두 FAFSA(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라고 하는 문서를 작성하는데, 이는 미국 연방 및 주정부의 보조, 대학자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학비보조를 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사용된다. 대학교는 학생의 학비 수혜 자격과 액수를 결정짓기 위해 이 문서를 사용한다. 문제는 이 문서 작성은 영주권자 이상이 대상이라는 점이다.

영주권자가 아닌 나는 College Board에서 주관하는 CSS로 재정증명을 대신 해야 했다. 가족원 개개인의 통장 잔여금, 부모님의 일년 소득, 부동산, 주식, 세금, 의료보험금, 일년 급식비와 의류비 등 아주 세세한 재정상태까지 물어보았다. 이 문서의 분량은 5~6장 정도였고, 집안 재정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스캔해서 보내주신 자료 하나하나를 번역했고, 통화단위를 달러에서 원으로 바꾸어 계산하며 밤잠을 설치며 문서를 작성했다.

비싼 학비에 장학금을 꼭 받아야 했던 나는 장학금 관련 문서까지 작성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졸린 눈을 억지로 참고 문서작성에 열을 올렸다. 이때마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룸메이트가 너무 부러웠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일찍, 또 많이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당시의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원서 작성을 하다가 목이 거꾸러진 채 잠시 졸면, 룸메이트가 부르는 내 이름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작업을 하곤 했다.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고, 버거웠지만, 버텨냈다. 아니, 어떻게든 버티려 노력했다. 나의 꿈과 목표를 생각하며, 또 보고 싶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나갔다. 정말 당장에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내 눈 앞에 직면한 이 현실에서 벗어나 5분이라도 좀 편안히 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때마다 나는 이어폰을 꼽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데이비드 아출레타(David Archuleta)의 노래를 들었다. 데이비드의 노래는 풀썩 쓰러져버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든든한 버팀목 같았다.

기사본문 이미지
데이비드 아출레타는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로 2008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7’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실력파 가수이다. 나는 중학교 때 이미 데이비드의 ‘Crush’라는 노래를 듣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빠졌었는데, 너무 지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날에 듣는 데이비드의 노래는 언제나 용기와 꿈을 주었다. 데이비드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Rainbow(무지개)’와 ‘Dream Sky High’였다. ‘Rainbow’의 가사 중 내가 좋아하던 부분이 있었다.

< Even if there is pain now/ Everything will be all right/ For as long as the world still turns/ There will be night and day/ Can you hear me/ There’s a rainbow always after the rain. (지금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밤과 낮이 있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한 모든 것은 괜찮아 질 거야. 내 말 들리니? 무지개는 항상 비 온 후에 뜬다는 거 말이야.) >
 
그렇다. 지금은 힘들어 쓰러질 거 같아도, 굳은 비 뒤에 뜨는 아름다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이 고난 뒤에 나의 꿈은 곧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것이다. 또 다른 노래 ‘Dream Sky High’의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 Dream Sky High/ Ride the chances flying by/ Even angels dream sky high/ Of everything they long to try/ Dream it Sky High! (하늘 높이 꿈을 꿔. 날아오를 수 있는 너의 꿈을 반드시 잡아봐. 심지어 천사들도 오래도록 하늘 높이 꿈을 꾸고 있어. 하늘 높이 꿈을 꿔봐!) >

노래를 듣는 동안 정말로 하늘 높이 나는 꿈을 꿨다. 앳된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대학교 校庭(교정)에 처음 서보는 꿈을, 곧 한국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는 꿈을, 미래의 교수가 되는 꿈을,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는 꿈을. 나의 모든 꿈들은 저 하늘 높이 올라 구름을 타고 새처럼 飛翔(비상)했다. 그 순간 내 모든 어깨의 짐은 조금 느슨해지는 듯싶었다. 머릿속 그려진 즐거운 꿈 덕분에 나는 한 번 빙그레 웃고 다시 힘을 내고 내 일에 착수했다.

1월1일 드디어 대학교 원서 접수 모든 것을 마쳤다. 하지만 온 몸의 긴장을 늦추려는 것도 잠시, 몇몇 대학교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당시 총 네 개의 인터뷰를 보았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인터뷰 요청 전화는 학교 담당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터뷰는 지원학생의 지원서 파일과 추천만으로 학생의 입학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 때 이루어진다. 물론, 예전에는 인터뷰가 入學의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다. 또한 인터뷰를 ‘옵션’으로 표시해 놓은 대학들이 종종 있는데, 이때 반드시 인터뷰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본 네 개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는 내가 지원한 학교의 졸업생들로, 지금은 변호사·교수·영어선생님·대학원생이 되어 학교를 위해 인터뷰 봉사를 하는 분들이었다. 대부분 질문 내용은 비슷했다. 왜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지, 학교에서 참여하고 있는 과외활동은 무엇인지, 장래희망은 무엇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내용을 약 45분에서 1시간 정도 설명했다.

인터뷰는 대부분 커피숍에서 일대일로 진행되었다. 긴장을 잔뜩해서 입술이 바짝바짝 탔지만, 나의 본 모습과 가능성을 그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침착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인터뷰는 생각처럼 딱딱하지 않았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지난 경험들을 이야기로 인터뷰어에게 소개하는 편안한 자리였다.         

3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지원했던 리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리하이 대학교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베실레헴(Bethlehem)에 위치한 사립대학으로 1865년 실업가이자 자선가인 아사 팩커(Asa Packer)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6년 美 <뉴스위크>가 선정한 ‘뉴 아이비리그(New Ivy League)’ 대학에 꼽혔다. 상경계열과 회계학 분야가 가장 강하며, 2007년에는 <비지니스 위크>가 선정한 미국 대학 랭킹 중 리하이 대학의 회계학과는 미국 전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봉투에 적힌 학교의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에 봉투를 꼭 잡고 기도를 한 후,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편지를 뜯었다. 첫 문장은 이러했다. Dear InJung, Congratulations! 나머지 문장은 읽을 필요도 없었다. 만세를 불렀다. 합격이었다. 한국은 아직 이른 새벽이었지만, 들뜬 마음에 잠자고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 순간 내 모든 힘들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나는 울먹이며 부모님께 합격의 소식을 전했다. 전화를 끊고 복도를 방방 날아 걸으며 나는 소영이에게 이 소식을 알리러 갔다. 발걸음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기사본문 이미지


아주 기분 좋은 합격의 소식으로 내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돌았다. “꿈꿀 수 있다면, 실현도 가능하다”라고 했던 월트 디즈니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꿈에 만족하여 멈추지 않고, 내 미래의 더 큰 꿈을 향해 진전하기로 했다. 하늘만큼 높은 나의 꿈으로 가는 길은 장애물이 넘쳐나 분명히 나는 넘어지고 또 쓰러질 것 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설 것이다. 마치 궂은 비 뒤에 하늘에 펼쳐지는 찬란한 무지개처럼.


<출처>
ABCNews. “Photo: Lehigh University.” ABCNews. ABC News Network, 2013. Web. 19 Aug 2013.
Archuleta, David. “No Matter How Far.” DavidArchuleta. DavidArchuleta.com, 01 Feb 2013. Web. 19 Aug 2013.




[ 2013-08-20, 1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