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Erie)에서의 마지막 추억
조인정의 미국유학奮鬪記(27)/ 메기네 집에서의 졸업파티, 레이첼과의 동물원 구경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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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졸업 파티 초대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졸업식을 하고 나면 대부분 가족끼리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졸업 축하 만찬을 하는 것으로 졸업의 大尾(대미)를 장식한다. 미국의 졸업 파티는 마치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듯 졸업 파티 초대장을 친인척과 이웃들,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께 보내고, 파티를 열어 함께 음식을 먹고 즐기는 큰 행사이다.

5월 마지막 날에 졸업식을 했기에 많은 시니어들은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약 2~3주 후에 졸업파티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메기는 내가 6월3일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는 것을 알고 졸업 파티를 서둘렀다. 결국 메기의 졸업 파티는 졸업식 바로 다음 날인 6월1일에 열렸다.

메기의 집은 학교가 위치해 있는 에리(Erie)가 아닌 코노 레이크(Conneaut Lake)에 있어 약 45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운이 좋게도 메기와 내가 함께 듣는 중국어 클래스의 선생님께서 나와 브래이든이라고 하는 중국 남자아이를 차로 메기 졸업 파티에 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메기의 집은 이미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집 앞 잔디밭에는 햇빛을 가리는 큰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잘 세팅 되어 있었다. 내가 메기의 집 앞에 들어서자 메기는 어찌나 반가웠는지 나를 끌어안으며, 음식이 있는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다. 메인 메뉴는 멕시코의 대중 음식이자, 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음식인 ‘타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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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띠야에 들어가는 다진고기, 토마토, 양파, 바질 등 갖가지 속 재료의 맛있는 냄새가 먹기 전부터 군침이 돌게 했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메기의 소중한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사진들이 놓여 있었는데, 메기의 귀여웠던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시절까지 친구들과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며 졸업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 모두는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찍힌 장면들이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 주제로 피어났다.

브래난, 케이틀런, 세이디 까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메기의 졸업 파티를 위해 모였다. 타코를 먹으며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세이디가 내게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기리보이’ 라는 가수가 있는데, 이 가수가 부른 노래가사가 무슨 말인지 영어로 번역 좀 해줄래(세이디는 현재 뉴욕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니어 졸업 무도회인 프롬(Prom)에서 내 파트너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빅뱅의 탑이다)?”

세이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사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가사는 전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잔 할래요. 원래 술은 잘 못하지만 오늘 말해야 하니까 맨 정신에는 못하니까 그만 할래요” 이 가사를 춤까지 추면서 부르는 세이디를 보며 나는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 많고 많은 한국노래 중에 이 가사를 번역해달라고 하는 걸까 생각 하면서.

타코를 먹은 후 우리는 메기 집 바로 옆에 위치한 호수인 코노 레이크(Conneaut Lake)로 향했다. 물장구를 치고, 조개껍데기를 줍고, 물수제비를 던지며 우리는 배꼽이 빠질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님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려는 채비를 하는 듯 보였다. 중국어 선생님과 브래이든 그리고 나도 이제는 다시 에리로 떠날 시간이었다.


6월3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는 것이니 이때가 메기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메기는 내 졸업 선물을 주었다. 내가 며칠 전 메기와 함께 쇼핑을 하며 눈 여겨본 분홍색 운동화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행기 탈 때 배낭에 넣어 갈 수 있는 작은 선크림, 로션 등의 소지품들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나를 정성스럽게 생각해주는 메기가 너무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 아쉬움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메기의 부모님까지도 나를 딸처럼 꼭 안아주셨고, 한국으로 조심해서 잘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동안의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훌쩍훌쩍 나왔다. 메기도 울기 시작했다. 내가 탄 차가 메기 집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메기와 메기 부모님은 나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에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이미 내 룸메이트는 그 전날 새벽에 내가 자고 있을 때 떠나버렸기에 안타깝게도 마지막 인사를 못하고 헤어졌다. 다른 중국 친구가 내 방에 찾아 와서 하는 말이, 너무 곤히 자고 있는 나를 내 룸메이트가 차마 깨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이어폰을 꼽고 중국 드라마를 보고, 내가 공부하다가 머리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깨워주던 룸메이트가 떠나니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마지막 날은 레이첼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에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본 동물원이 하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책에서 접하던 여러 동물들과 아무나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동물들도 많이 있어 인기만점이다. 그런데 나는 에리에 살면서 한 번도 이곳을 가 본 적이 없었다. 학교수업과 소프트볼 연습, 그리고 봉사활동 때문에 여가시간을 가질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위해 레이첼은 함께 에리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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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가는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가슴 설레는 일인 것 같다. 레이첼과 나는 동물원 입구에서부터 곧 동물 친구들을 만나볼 생각에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장난감 기차 같이 생긴 빨간색 미니 기차를 타고 우리는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았다. 기차가 지나가는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순록과 사슴들이 보이자 난 사진을 찍어댔다. 레이첼은 내 옆에서 동물들에 대해 설명을 했다.

미국의 동물원은 한국과 모든 점에서 흡사했지만, 사람들과 동물들 사이의 거리감은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레이첼과 내가 캥거루들이 모여 있는 구역을 지날 때였다. 얇은 밧줄 하나로 만들어진 울타리는 사실 캥거루들의 집 표시를 하는 정도였을 뿐, 사람들과 캥거루를 완전히 차단시키지 않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서 캥거루에게 먹였다. 그때 갑자기 어느 작은 캥거루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면서 사람들이 걷는 길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있는 울타리로 넘어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캥거루 하면 일단 복싱 챔피언이 먼저 연상되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强(강)펀치를 날리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 했다. 다행히 캥거루 한 마리는 다른 편 울타리로 넘어 간 것뿐이었다. 그후 난 울타리에 붙어있는 교통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통표지판 중앙에는 캥거루가 그려져 있었고, ‘Kangaroo Crossing(캥거루 횡단 주의)’라고 쓰여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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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열대種 앵무새들이 날아다니는 거대한 사이즈의 새장 안을 들어가 본 것도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레이첼은 새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다른 문 하나가 더 있었다. 레이첼이 첫 번째 문을 열고 닫자, 바로 우리 앞에 들어갔던 사람이 두 번째 문을 열었다. 나는 처음에 왜 이렇게 문을 열고 닫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이 동시에 모두 열리면 새장에 있던 새들이 빠져나갈 수 있기에 두 개의 문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배려였다. 출구에 위치한 두 개의 문을 지날 때에도 바깥쪽 문을 열고 싶은 사람들이 안쪽 문의 사람들이 다 나오고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다. 누구 하나 성급하지 않았고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인들의 훌륭한 질서의식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흰 털북숭이 라마, 이불을 가지고 놀던 오랑우탄, 카메라를 들이대면 진귀한 포즈를 취하던 다람쥐 원숭이, 일반 고양이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생긴 사막 고양이, 층층이 포개져 잠을 자는 민털 두더지쥐, 베이글을 먹던 표범 등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와 레이첼은 童心(동심)의 세계로 돌아갔으며, 함께 해준 레이첼에게 너무 감사했다. 에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나를 위해 뜻 깊은 시간을 선사해준 레이첼이 너무 고마웠다.

브래난과 메디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둘은 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기를 원했다. 갑작스러운 연락과 급히 정한 약속이었지만, 레이첼 엄마는 나를 내 친구들과의 약속장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브래난과 메디는 미국 대형 푸드마켓인 웨그먼스(Wegmans)안의 카페에서 만났다. 메디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를 위해 바로 약속장소로 달려왔는데, 그녀의 손에는 크리스피크림도넛(Krispy Kreme Doughnuts)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메디가 일하는 곳이 바로 크리스피 도넛이다). 내가 도넛가게에 메디를 보러 갈 때, 혹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메디는 도넛을 좋아하는 날 위해 크리스피도넛을 한 번에 열 개도 넘게 가지고 오곤 했다. 이 날도 메디가 가져온 도넛은 나를 위한 달콤한 선물이었다.

우리는 프레스카일(Presque Isle State Park)에서 산책을 하기로 결정했다(이 곳은 예전에 내가 메디와 브래난과 방과 후에 기숙사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탈선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는 항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에리호(Lake Erie)의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져 있는 산책로를 30분 넘게 걸었는데도 우리는 이야기를 하느라 지친 줄 몰랐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 옆을 걷고 있는 이 소중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2년 동안 에리에서 보낸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아무 즐거움도 없는 단조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는 항상 생동감이 넘쳤다. 기쁠 때는 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두 배 더 기뻤고, 슬플 때는 그들에게 기대며 마음의 슬픔을 내려놓았다. 브래난과 메디와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며 인사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대학교에 다니더라도 꼭 자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방학 중에는 함께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했다. 
  
저녁식사는 다시 레이첼 집에서 했다(메디가 나를 레이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레이첼 가족과 크리스마스에 함께 만들었던 스웨덴 소시지인 콜브(Korv)가 이 날의 식사 메뉴였다. 함께 만들었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맛있었다. 이 저녁식사가 정말 에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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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엄마와 레이첼은 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거의 가까웠던 깊은 밤이었다. 내가 레이첼 집으로 다시 놀러 갈 것을 약속하면서, 그리고 레이첼이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올 것을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내 비행기는 새벽 6시 행이었다. 잠을 꼬박 새면서 짐 정리를 했다. 새벽 4시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기숙사 선생님 제프(Jeff Green)와 함께 에리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작은 에리 공항에는 몇몇의 사람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공항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수화물의 무게를 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 직원이 내게 “하지메 마시떼(일본어로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뜻)”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당황해서 영어로 “저 한국사람인데요” 라고 했지만 곧 중학교 때 배웠던 일본어를 총 동원해 그에게 일본어로 간단하게 내 소개를 했다.

그 남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소리에 내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더니 다시 또 일본어로 내게 학교가 어디냐, 몇 살이냐 등을 묻기 시작했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엄청 많았던 그는 다음 번에 에리에 올 때는 한 번 같이 만나서 한국에 대해 나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나는 기분 좋게 승낙했다. 비행기를 타러 올라온 순간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는 내가 타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었다. 그는 내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갈 때도 편안한 비행을 하라고 인사를 건넸다.

비행기가 상공을 날았다. 창문너머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에 펼쳐진 에리의 집들은 아주 작은 장난감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에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뜻 깊은 경험을 했으며, 슬픈 일을 겪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나는 좀 더 강해졌다. 3년 전 《쌍둥이형제, 하버드를 쏘다》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유학을 가겠다는 큰 결정을 했던 난, 3년간의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내 또래에 쉽게 겪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나의 소중한 경험들은 영원히 내 마음에 간직될 것이며, 이는 내 미래의 더 큰 꿈이라는 씨앗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는 지난 날들의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더 높은 꿈을 가지고 더 높게 그리고 더 멀리 飛翔할 것이다. 이 경험이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큰 꿈을 가지고, 자신을 믿고, 그리고 성실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인생의 길이 나있는 그 과정에 아무리 수많은 장애물들이 방해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꿈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꿈을 이루기 위한 값진 경험이 될 것이며, 그 경험 하나하나를 통해 우리는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 2013-08-29, 1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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