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지 투어(College Tour)를 통한 도전정신 불태우기
조인정의 미국유학奮鬪記(29)/ 유학 출발부터 생활까지 도움이 될 만한 Tip(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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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이해할 때까지 그냥 지나치지 말라

“I am sorry but I don’t get it. (미안한데, 이해 못했어.)”, “Could you explain that one more time? (한번 더 설명해줄 수 있어?)”, “I am still confused(여전히 헷갈려.)”, “What did you just say? (너 방금 뭐라고 말했어?)”

이 句文(구문)들은 미국 유학 생활 중 입에 달고 살던 문장들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하는 미국 친구들에게, 또 말을 너무 빨리 하는 친구들에게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행히 누구 하나 이에 대해 답답해하거나 신경질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쉬운 단어를 쓰며 前 보다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다시 설명해주었다.

수업 시간 진도를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당당히 찾아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다시 정확히 짚으려 노력했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내용에 대한 숙제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시험 때에도 고비를 맞게 되므로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해결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9. 기숙사 선생님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자

기숙사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가진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에 80%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머물던 기숙사에도 약 5~6명의 기숙사 선생님이 번갈아 가며 일을 하셨는데, 나는 모든 분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기숙사 선생님들과 학교, 스포츠, 음악, 직업, 가족관계 등에 대해 대화하면서 나의 영어 스피킹 실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 분들은 나의 부모와 같은 조언자였다. 입학 원서를 쓰던 당시에는 내 인터뷰어(interviewer)가 되어 모의 인터뷰 연습을 함께했고, 내 입학 원서를 수정하고 보완해 주기도 했다.
 

10. 지역관리자와 꾸준한 소통하자

교환학생을 하는 유학생이라면 호스트 가족과 학생 사이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견 차이와 같은 고충사항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지역관리자와의 꾸준한 소통이 필요하다. 지역관리자와 친하게 지내는 건 어렵지 않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간단한 안부 인사만이라도 자주 한다면, 지역관리자와 가깝게 지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호스트 생활 중 겪게 되는 학생의 애로사항과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지역관리자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온 직후부터 약 세 달간 너무 엄한 호스트 부모 밑에서 생활하느라 눈물로 지새웠다. 당시 이곳의 지역관리자에게 끊임없이 내 고충을 담은 메일을 보냈고, 그의 도움으로 새로운 호스트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관리자와의 꾸준한 소통이란 교환학생 생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11. 학교 카운슬러(counselor) 오피스를 자주 방문하자

최고 학년인 시니어가 되어 대학 입학에 관련된 원서를 작성할 때, 나는 학교마다 각기 달리 요구하는 수많은 종류의 원서들을 작성하는 데 적잖이 애를 먹었다. 그때 마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카운슬러 오피스였다. 사실 카운슬러는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만 도움과 조언을 주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모든 문제들을 학생과 상의하고 해결해준다. 나는 시니어 학년에 수강할 교과목을 選定(선정)할 때 스케줄이 잘 세워지지 않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나는 거의 며칠 동안을 카운슬러 오피스에 들락날락 거리며 내 스케줄에 대해 그와 오랜 논의를 했다. 졸업에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미 이수한 나에게 그는 ‘인턴십’을 해볼 것을 제안했고, 나는 한 학기 동안 사회 선생님 밑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카운슬러와 학생들간 친분을 갖는 것을 적극 찬성한다. 내 친구 레이첼은 거의 매일 같이 카운슬러 오피스를 찾아가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모두 늘어놓았다. 카운슬러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레이첼에게는 이익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가끔 대학교나 회사에서 고등학교 체험단을 모집하는 公告(공고)가 학교로 전해지는데, 보통은 카운슬러가 가장 먼저 이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카운슬러와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레이첼은 그 공고문을 가장 먼저 전해 들었고, 그는 선착순으로 뽑혀 校外(교외)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2. 여행을 통해 시각을 넓히자

西方 교회의 4대 敎父(교부) 중 한 사람인 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유학 생활 중 여행이라? 고3이면 학업에 집중을 해야지, 왜 쓸데없이 여행을 다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100% 일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에 정말 많은 여행을 다녔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있었던 주에는 레이첼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을 다녀왔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였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지식의 폭을 크게 확장시켜주었다.

특히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피카소, 고흐, 고갱, 몬드리안, 모네 등 世紀(세기)의 미술가 들이 그려낸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간 사진으로만 보던 나이아가라는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어마어마했다. 직접 발로 뛰며 눈으로 보았던 이 값진 풍경들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배웠다. 여행을 통해 얻게된 소중한 경험들이 마치 차곡차곡 책으로 엮어져 내 마음 한 켠의 진열장을 채워주는 듯 했다.


13. 도전정신 불태우기? 칼리지 투어(College Tour)가 그 해답!

카운슬러 오피스를 찾아가면 항상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칼리지 투어 신청서였다. 학교에서는 칼리지 투어를 학생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동부의 많은 대학들이 빼곡히 명단에 올라있었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칼리지 투어 신청을 한 상태였다. 시니어가 되면서 더 자주 친구들이 칼리지 투어로 인해 학교를 결석하기도 했다.

나도 레이첼과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코넬 대학교 입학 사정관들이 말하는 학생들을 심사요건을 들을 수 있었다. 난 校內(교내) 복도에 마련된 책상에서, 도서관에서 함께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코넬 대학생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그간 꿈꿔왔던 멋진 대학생활을 위해 前進(전진)해 나갈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물론, 칼리지 투어를 할 때 무조건 명문 대학으로 가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원서를 낼 생각이 있는 학교에 미리 방문해 그 학교에 대한 배경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게 더 옳다고 본다. 실제로 내 친구들도 칼리지 투어 중 그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기숙사를 돌아본 후 마음이 바뀌어 다른 학교를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14.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험한 그 이름, 술과 마약!

내가 유학 생활을 보냈던 위스콘신과 펜실베이니아州 모두 21살 이상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다. 즉, 21살이 되기 전까지는 술을 구입하고 소지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며, 만약 이를 어겨 적발된다면 즉시 체포되어 기소된다.

내 주변에서도 술로 인해 빚어진 안타까운 일이 정말 많았다. 일례로 내가 교환학생을 하던 당시 독일에서 온 어떤 남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밤늦도록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가 음주를 했다는 것이 적발되었다. 그는 미국 유학 생활을 한 달도 채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약도 술과 마찬가지로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야기되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경찰서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학교로 초청돼 학생들 앞에서 마약의 심각한 문제점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비극적인 일들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카톨릭 학교에서도 여전히 어느 요일, 몇 교시, 몇 번째 쉬는 시간, 어느 층의 어떤 화장실 몇 번째 칸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마약을 살 수 있다는 루머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도록 어두운 뒷거래를 통해 학생들은 마약을 서로 사고팔며 惡의 손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 2013-10-01, 14: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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