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답답할 땐 조지 오웰을 읽는다!
좌경지식인의 正體와 본질을 가차 없이 폭로한 聖者같은 작가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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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죽어도 눈물이 나지 않던 청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북경 특파원(前 서울 특파원) 바바라 데믹 기자가 쓴 '부러운 게 없어요-북한의 보통 삶'(NOTHING TO ENVY. ORDINARY LIVES IN NORTH KOREA)이란 책이 話題(화제)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삶을 오랜 인터뷰를 통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月刊朝鮮이 1991년 신년호 부록으로 내어놓은 책('북한, 그 충격의 실상: 가 본 사람과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모든 對北정책은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에 기초한, 뿌리가 든든한 정책이 된다.
   이 책에는 준상이란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1961년에 북한으로 간 在日동포를 부모로 둔 청년이 1994년 7월9일 김일성 사망 발표일에 겪었던 일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평양의 한 대학 재학생이던 준상은 토요일 오전 기숙사에서 책을 읽다가 "중대 발표가 있으니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核(핵)위기가 드디어 전쟁으로 악화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오 무렵 운동장엔 약 3000명이 도열하였다. 정오가 되자 확성기를 통하여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이 죽었다는 발표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신음과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한 학생은 쓰러졌다. 다른 학생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한 사람씩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준상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젊은이였다. 그런 그도 따라서 주저앉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그의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땅 바닥만 내려다 보았다. 그는, 다른 동급생들의 슬퍼하는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래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는 자주 울어 아버지로부터 "계집아이처럼 약하다"고 꾸지람을 듣는 그였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가를 만져 봐도 눈물이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인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왜 슬퍼지지 않는가? 김일성을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大兄은 사랑 받기를 원한다
  
   준상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고독감을 느꼈다. 위대한 수령의 突然死(돌연사)에 모든 학생들이 슬퍼하는데, 자신만 無心(무심)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울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장래, 노동당 入黨(입당) 문제 등 생존이 걸려 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준상은 겁이 났다.
   그는 해를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눈물이 솟아날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다. 눈을 오래 뜨고 한 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리 지르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기계적 동작을 되풀이하였다. 갑자기 진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꿇어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진짜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부러운 게 없어요'라는 책의 著者(저자) 바바라 데믹 기자는 脫北(탈북)하여 한국에 온 준상씨에게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1984년' 번역본을 주었다고 한다. 준상씨는 이 책을 다 읽고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그린 것 같아 놀랐다는 평을 하더라고 한다.
   바바라 데믹 기자도 북한을 여행한 소감에서 '1984년'의 회색과 비슷한 色調(색조)를 느꼈다고 했다. 이 소설에선 선전 포스터만 천연색이라고 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오웰의 소설에는 ‘2분간 미워하기’ 시간이 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自我(자아)비판 시간을 연상시킨다. 이 시간엔 전국의 직장 및 가정에 달려 있는 텔레스크린의 지시에 따라 敵(적)을 규탄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反혁명 분자의 얼굴이 등장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괴성을 지른다. 이때 성의 없이 행동하는 자는 사상경찰에 끌려간다.
   <두려움, 복수심에서 나오는 쾌감, 殺意(살의), 敵을 고문하고 얼굴을 망치로 때리고 싶은 욕망이 모든 사람들 사이로 電流(전류)처럼 흘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發狂(발광)과 발작을 하게 만들었다.>
   ‘미워하기 시간’에 조작되는 집단 히스테리는 순간적으로 미움의 대상이 변한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그 미움을 大兄(대형)에게 발산하였다가 금방 大兄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꾸기도 한다. 준상이 김일성 사망 발표일에 경험하였듯이 '1984년'의 사람들도 살기 위하여 감정을 스스로 조작할 수 있다. ‘1984년’의 무대인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大兄에 복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大兄을 사랑해야 한다.
   바바라 데믹 기자는 김일성도 복종에 만족하지 않고 사랑 받기를 원했다고 했다. 스탈린이 아니라 산타 클로스나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은 일본의 천황과 더 비슷하다고 했다.
   '1984년'에도 준상씨처럼 체제에 의문을 품은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성 말살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면서도 일말의 양심과 의문을 지녔던 윈스턴은 사상경찰에 붙들려가서 온갖 고문과 설득을 당하고 석방된다. 사상경찰은 윈스턴의 머리에서 문제의식, 비판의식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가 증오하던 大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에 비친 大兄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는 후회한다. 40년 동안 大兄을 오해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 검은 콧수염 뒤에 숨어 있는 그 은은한 미소를 제대로 보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한다. 大兄의 포근한 품을 멀리 하고 그를 완강히 거부하였던 데 대하여 自責(자책)한다. 이 유명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술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을 흘러내렸다. 그런 건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싸움은 끝났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그는 大兄을 사랑하였다>
  
   읽는 것이 고통인 암울한 소설
  
   복종을 강요하는 체제와 사랑을 강요하는 체제는 질적으로 다르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에선 연애도 금지된다. 사람들은 오로지 大兄(대형)만 사랑해야 한다. '1984년'에서 주인공인 윈스턴은 사상경찰의 고문과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두 가지를 포기한다. 줄리아라는 戀人(연인)에 대한 사랑과 '2+2=4'라는 진실이다.
   윈스턴을 신문하는 사상경찰관은 '2+2=5'를 진실로 받아들이라고 집요하게 압박한다. "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黨(당)이 인정하는 것"이다. 윈스턴은 결국 '2+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는 명제를 포기하고 '2+2는 5이다'고 말한다. 진실을 포기하는 순간 사랑도 사라진다.
   '부러운 게 없어요'에서 준상은 연인을 먼저 탈북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한국에서 재회해 보니 연인은 결혼한 뒤였다. 준상은 두만강을 넘을 때 읊었던 헝가리 詩人 산도르 페토피가 쓴 詩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고 한다.
  
   자유와 사랑
   이 둘을 나는 가져야 한다.
   내 사랑을 위하여 나는 내 생명을
   희생시킬 것이다.
   자유를 위하여 나는
   내 사랑을 희생시킬 것이다.
  
   ‘1984년’은 북한처럼 암울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다.
   <1950년대에 일어난 核전쟁으로 1984년 현재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세 초강대국으로 분할된 상태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영국, 미국 등 영어권 나라를 통합)는 지금의 북한처럼 사상, 언어, 결혼 등 모든 생활이 통제되는 체제이다. 물자는 부족하고, 국민들은 屋內外(옥내외)의 도처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일종의 CCTV)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런던에 사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眞理省(진리성:선전부)에 근무하면서 역사기록을 改造(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성립 당시의 기록은 계속 고쳐지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다. 윈스턴은 작업 중 정부의 선전과 배치되는 옛 자료를 접한 뒤부터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일기도 쓰고 연애도 하는데 이는 모두 금지된 행위이다. 그는 ‘憎惡(증오)주간’에 만난 줄리아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벗어난 방을 발견하여 밀회를 즐긴다.
   윈스턴은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黨內局(당내국) 간부 오브라이언을 만나 現체제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오브라이언은 동지적 共感(공감)을 보이면서 反체제 지도자 골드스타인이 쓴, 금지된 책을 준다. 오브라이언은 사상경찰 간부인데, 윈스턴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함께 체포되어 愛情省(애정성:검찰)의 101호실에서 혹독한 신문을 받는다. 결국 윈스턴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사상적으로 改造되면서 줄리아를 배신한다. 윈스턴은 일단 석방된다. 그는 처형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진심으로 大兄(대형)을 사랑하게 된다.>
  
   북한과 비슷한 이유
  
   ‘1984년’을 읽어내려 가면 북한체제와 너무나 비슷한 데 놀라게 된다. 權力(권력)구조와 생리, 그리고 인민들의 삶이 흡사하다. 오웰이 이 소설을 완성한 1948년엔 북한정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출범한 해이다. 오웰은 스탈린이 다스리던 소련 전체주의 체제를 참고로 하여 소설을 썼지만 결과적으론 북한체제를 모델로 한 셈이 되었다. 소련체제는 1953년 스탈린의 사망과 3년 뒤 흐루시초프 서기장에 의한 格下(격하) 연설을 계기로 변하게 된다. 강제수용소와 피의 숙청이 사라지고 反체제 운동이 일어난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와는 다른 모습이 된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이란 大兄이 모든 인민들의 公的, 私的 활동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북한만이 ‘1984년’에 부합된다. 체제의 작동 원리가 같다.
  
   *大兄과 김일성: 오세아니아 全域(전역)에 붙어 있는 ‘大兄이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포스터와 북한의 도처에 서 있는 김일성 동상은 우상이 다스리는 체제를 상징한다. 大兄과 김일성은 무서운 복종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항구적 戰時(전시)체제: ‘1984년’의 오세아니아는 늘 戰時상태를 유지한다. 실제론 다른 두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 척할 뿐, 긴장상태를 유지,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북한정권이 미국과 한국의 위협을 과장, 영구적 戰時상태를 조성,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憎惡(증오)의 과학: 오세아니아 주민들은 매일 2분씩 텔레스크린 앞에 모여 앉아 敵(적)을 향하여 집단 히스테리를 발산시킨다.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암약한다는 ‘인민의 敵’이 증오의 主대상인데, 실재하는지조차 애매하다. 북한정권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있지도 않는 계급의 敵을 향하여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법이다.
   *常時(상시) 감시망: 오세아니아의 모든 시민들은 텔레스크린이란 일종의 쌍방향 CCTV 감시망 속에 놓여 있다. 思想(사상)경찰의 눈이 도처에서 번득인다. 북한엔 CCTV보다 더 강력한 신고망이 깔려 있다.
   *역사의 조작: 오세아니아에서 과거의 기록은 현재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고쳐진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면 과거를 지배한다’는 게 黨의 방침이다. 세계 어느 독재국가도 북한처럼 역사를 뒤집는 나라가 없다. 그들은 역사를 통제하면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고, 그리하여 權力과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2중의 단절: 오세아니아와 북한은 외부세계와 단절될 뿐 아니라 역사 조작에 의하여 자신들의 역사로부터도 단절되었다. 주민들은 방향감각과 비교대상과 비판의식을 잃는다. 일종의 無重力(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처럼 살아간다.
   *언어 조작에 의한 洗腦(세뇌): 오세아니아 정권의 구호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무지)는 힘이다’. 북한도 민족을 말하면서 반역을 하고,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하고, 화해를 말하면서 분열시키고, 민주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고, 진보한다면서 퇴보한다. 오세아니아에선 ‘뉴스피크’라는 新語를 만들어 비판적 사고의 씨앗을 말살한다. 북한도 용어혼란 전술로 그렇게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노예화: 오세아니아는 사회주의 체제의 주인이어야 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짐승처럼 사는 곳이다. 북한에서도 노동자 농민계층이 가장 심한 억압을 당한다. 대기근 때는 이 계층 사람들이 주로 굶어죽었다. 오세아니아와 북한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배신한 점에서도 같다.
  
   주민을 상대로 한 전쟁
  
   조지 오웰이 이처럼 정확하게 북한체제를 예언한 능력은, 그의 문학적 천재성이라기보다는 知的(지적) 성실성으로 설명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스페인 內戰에 참전, 좌파 편에서 싸웠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장악한 좌파정권 안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을 목도하였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親蘇(친소)분자들이 동료 사회주의자들을 상대로 일으킨 무자비한 숙청과 학살을 체험하였다. 그 자신도 희생될 뻔하였다.
   공산전체주의의 악마성과 僞善(위선)을 발견한 그는 죽을 때까지 13년간 수많은 기사, 논평, 著作(저작)을 통하여 이 진실을 알리는 데 全力을 다하였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 치료를 받으면서, 喀血(객혈)을 해가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태워가면서 ‘1984년’을 완성하였고 1년 뒤 죽었다. 47세였다. 죽어가면서 쓴 것이 이 소설이다. 진실을 본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殉死(순사)였다. 그런 점에서 ‘1984년’은 한 위대한 문학가가 韓民族(한민족)에게 선물한 ‘진실의 눈’인 셈이다. '1984년'이 아직도 有效(유효)한 곳은 한반도뿐이다.
   영국 作家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로 3分된 세계를 무대로 한 것이다. 이 세 나라는 전쟁상태이다. 하지만 서로 결정타를 날리지 않는다. 싸우는 척하는 것이 國內통치에 아주 유리하다고 암묵적 합의를 한 것이다. 오웰은 "이 전쟁은 속임수인데 싸우는 두 동물의 뿔이 상대를 해치지 않도록 각도를 맞춘 것과 같다"고 했다.
   오세아니아를 다스리는 黨(당)은 전쟁상태임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선전하면서 독재체제를 강화해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은 內戰化된다. 세 나라 지배층은 서로는 싸우지 않는 대신 자기 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 오웰은 소설에서 이런 요지의 설명을 했다.
   <이 전쟁의 목적은 영토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를 수호하는 것이다.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없어졌다. 세 나라는 詐欺的(사기적) 전쟁상태를 지속함으로써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영구적인 평화는 영구적인 전쟁과 같은 의미가 된다. 黨의 구호인 '전쟁은 평화다'는 그런 의미이다. 전쟁상태를 유지하여야 지배층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黃長燁 선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무장한 김정일 정권은 비무장 상태의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끊임없이 전쟁의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식량이 부족하면 지배층끼리 나눠 가지고 주민들에겐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300만 명이 평화시에 굶어죽었다. 이들은 黨이 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餓死(아사)전쟁의 戰死者(전사자)이다. 그래서 북한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라는 것이다.
  
   사람을 가두어놓고 기억력까지 말살
  
   '1984년'의 사람들은 외부뿐 아니라 과거와도 단절되어 있다. 時空間의 2중적 폐쇄상태이다.
   <黨員(당원)들이 프롤레타리아처럼 현재의 생활 상태를 견디는 것은 비교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黨員들은 외국과는 접촉을 해서는 안되듯이 과거로부터도 단절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선조들보다 자신들이 잘 살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가 점점 향상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黨의 무오류성을 지키기 위하여는 과거를 재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 기록은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眞實省(진실성)에서 오늘의 필요에 맞추어 과거를 조작하는 것은, 愛情省(애정성)에서 하는 주민감시나 억압만큼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필요하다. 과거는 기록 및 기억과 부합해야 한다. 黨이 모든 역사기록과 주민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하므로 과거는 黨이 선택하는 방향에 맞추어진다.>
   북한주민들도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도 단절되어 있다. 그들이 제대로 배우는 역사는 조작된 김일성 父子의 역사뿐이다.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史實(사실)도 배우지 않는다. 주민들이, 김일성보다 더 위대한 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교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을 폐쇄공간에 가두어놓고 기억까지도 없애버리니, 방향감각과 비교기준을 잃어버리고 노동당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정보화가 深化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를 건전한 국민으로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韓國史와 國語 교육이 質(질)과 量的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부와 언론이 漢字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과거, 즉 漢字문화에 기반을 둔 전통문화와 역사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좌경세력은 한국사의 내용을 조작, 왜곡하여 가르친다. 과거를 조작하는 세력은 현존하는 권력이다. 과거를 조작하는 이유는 그런 조작으로 좌경화된 국민들을 量産(양산)하여 미래의 권력을 계속 잡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런 과거 조작이 개방된 민주사회에서, 정보화 시대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白晝(백주)의 암흑'이라 할 만하다.
   오웰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바깥 세상 및 과거와 단절된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별과 별 사이의 공간에 사는 사람처럼 어느 쪽이 아래이고 어느 쪽이 위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나라의 지도자들은 절대적 존재가 된다>
  
   "2+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걱정 없다."
  
   '1984년'은 북한정권과 남한의 從北(종북)세력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유효한 안내서이다. 문학의 天才(천재)는 그 어떤 학자나 정치인보다도 인간과 역사에 대하여 先見力(선견력)이 있다는 사례가 오웰의 경우이다.
   이 책의 名言들을 소개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본다면 中世의 천주교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 한 이유는 과거엔 정부가 시민들을 항상 감시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판이 시작되면서 여론을 조작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와 라디오는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다. 텔레비전 기술의 발전으로 私생활은 없어졌다."
   언론의 발달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고만 알려져 왔다. 오웰은 言論을 공산주의자가 장악할 경우, 사상통제의 兇器(흉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오웰이 예로 든 출판,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에 지금은 인터넷이 더해졌다. 이 매체들이 좌경화되면 중세 암흑시대보다 더한 무지몽매한 세상이 된다. 문명의 利器(이기)에 의하여 연출되는 이런 사태가 '白晝(백주)의 암흑'(공산주의자였다가 전향한 헝가리 作家 아서 케스틀러의 소설 이름)이다.
   "의식화되기 전에는 그들이 절대로 반란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후가 아니면 의식화될 수가 없다."
   ("Until they become conscious they will never rebel, and until after they have rebelled they cannot become conscious.")
   북한주민들이 의식화되어야 수령독재체제를 반대하는 행동을 할 터인데, 그런 의식화는 행동을 통하여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깨려면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 對北(대북)풍선날리기나 휴전선의 對北방송이 그런 역할을 한다.
   "자유란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게 하는 게 허용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Freedom is the freedom to say that two plus two make four. If that is granted, all else follows.")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은 '해는 동쪽에서 뜬다'처럼 증명된 진실을 상징한다. '6·25는 南侵(남침)이다' '천안함 爆沈(폭침)은 북한 소행이다' '김정일은 나쁜 놈이다' '李承晩과 朴正熙는 위대하다'는 것도 증명된 진실이다. 이런 진실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 즉 언론자유가 보장된 사회는 공산화나 독재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6·25는 南侵이다' '천안함 爆沈은 북한 소행이다' '김정일은 나쁜 놈이다'는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면 그런 사회는 위험해진다. 한국 사회는 그 단계에 進入(진입)하였다.
  
   언어조작으로 의식을 개조, 물질을 지배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물질을 통제한다. 현실은 머리 속에 있다."
   ("We control matter because we control the mind. Reality is inside the skull.")
   思想(사상)을 바꾸면 현실을 改造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웰은 사상을 바꾸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언어 조작임을 간파하였다.
   이 나라의 거짓말 전문 선전부서의 이름은 眞理省(진리성)이다. 침략 전쟁을 좋아하는 국방부의 이름은 平和省(평화성)이다. 양심수들을 고문, 처형하는 법무부의 이름은 愛情省(애정성)이다. 물자 부족으로 시달리는 나라의 경제부처는 풍부省이다.
   지금 한반도의 김정일 세력이 쓰는 國語사전도 의미가 거꾸로 되어 있다.
   "퇴보는 진보이고, 살인마는 위원장이며, 화해는 도발이고, 통일은 분열이다."
   '1984년’의 나라 오세아니아에선 '뉴스피크'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비판적 思考(사고) 자체의 씨를 말리려 한다. '뉴스피크' 사전의 특징은 비판적 의미를 지닌 단어수가 점점 줄어들고 略語(약어)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뉴스피크'가 정착되면 사람들은 黨의 오류를 비판하려고 하여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한글專用의 확산이 한국인을 그렇게 만들지 모른다.
   '뉴스피크'라는 新言語(신언어)의 문법엔 '二重사고'(Doublethink)가 있다. 두 가지 모순되는 의미를 모순을 느끼지 않고 容認(용인)하는 사고방식이다. 'blackwhite'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먼저 敵에게 적용될 때는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기는 억지'란 의미이다. 이 단어가 黨員(당원)에게 적용될 때는 '黨이 원하면,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할 정도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의미한다.
   천안함 爆沈이 북한 소행임을 부정하는 자들 속에서 이런 二重사고를 볼 수 있다. '천안함 폭침'이란 단어가 이들에겐 '천안함이 북한에 의하여 폭침되었다고 우기는 억지'라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필요하다면 천안함이 북한에 의하여 폭침된 것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는 신념'이란 의미도 띤다. 이런 자들에겐 거짓과 진실이 의미가 없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에 맞추어 언어의 의미를 자유자재로 변환시킨다. 신념이 사실을 改造하는 것이다.
  
   카탈로니아 讚歌
  
   스페인 內戰(내전)을 다룬 유명한 소설과 實錄(실록)이 있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조지 오웰이 쓴 넌 픽션 ‘카탈로니아 讚歌(찬가)’가 그것이다. 관점은 다르다. 헤밍웨이는 좌파에 동정적이고, 오웰은 좌파 편에서 싸웠지만 반대파를 숙청하고 헤게모니를 잡은 親蘇派(친소파)를 파쇼와 같은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관점에선 오웰의 知性이 헤밍웨이의 낭만주의를 압도한다.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공산주의의 본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즉, '카탈로니아 찬가'가 없었더라면 '동물농장'과 '1984년'이란 인류의 유산도 만들어질 수 없었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무대는 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이다. 이 도시를 여행할 때 이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80년 전의 역사적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한 가운데에 난 번화가이다.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고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붐빈다. 이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하여 벌어졌던 ‘內戰 속의 內戰’이 ‘카탈로니아 찬가’의 主題(주제)이다.
   오웰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두 편의 소설- ‘동물농장’과 ‘1984’- 때문에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자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이 좌파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內戰으로 치닫자 오웰은 바르셀로나로 가서 좌파 민병대에 자원, 입대한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도입부는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은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당은 파괴되고, 팁은 없어지고, 상류층의 사치스런 옷차림은 사라지고, 하층민들은 당당해졌다. 오웰은 프랑코 군대와 대치한 戰線(전선)에 투입되어 지루한 참호전을 하게 된다. 敵(적)과의 實戰(실전)보다는 이와 쥐를 상대로 한 싸움이 더 처절하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나왔다가 ‘內戰 중의 內戰’에 휘말린다. 바르셀로나의 좌파정권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세력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산주의와 파쇼는 같다
  
   오웰은 자신의 계보와 신념에 따라 反蘇 사회주의 진영에 서게 된다. 親蘇派(친소파)가 시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오웰은 전선에 복귀한다. 여기서 목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除隊(제대)와 출국을 꾀하게 되는데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反蘇분자’로 지목되어 언제 끌려가 총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스페인에 동행하였던 부인은 호텔에 연금되고, 오웰은 露宿(노숙)을 해가면서 거리를 방황한다.
   경찰은 밤에만 설치고 낮은 자유롭다. 오웰이 안전한 낮 시간에 여기저기 들르는 카페와 음식점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관광 가이드이다. 목숨이 오고 가는 살벌한 분위기이지만 독일이나 소련과는 다르다. 오웰은 스페인 사람들은 절대로 파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살벌한 상황에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오웰은 ‘스페인에 대하여는 나쁜 기억이 많지만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親蘇派 형사들이 오웰의 부인이 묵던 호텔 방을 급습, 두 시간 동안 수색을 하는데 부인이 누워 있는 침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사실은 이 침대 밑에 불온문서와 무기가 숨겨져 있는데도 그들은 남자의 명예심을 지킨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오웰은 親蘇派가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동자 계급을 탄압함으로써 계급해방이란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하였다고 개탄한다. 바르셀로나에서 親蘇派가 정권을 독점한 뒤엔 노동자들이 다시 탄압을 받고 자본가들이 回生한다. 형사들은 노동자風의 사람들을 검문하여 잡아들이고 부유층 같아 보이는 이들은 조사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은 똑같은 巨惡(거악)이란 깨달음이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는 독자들은 오웰 부부가 기차 편으로 스페인을 벗어나 프랑스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시가전, 암살, 투옥, 처형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스페인을 떠나 7개월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깊게 잠들어 있는 영국을 보면서 두려워지는 것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잠자리에서 튀어나오기 전엔 잠에서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오웰의 이런 예감은 곧 적중하였다. 1939년 8월 스탈린은 히틀러와 손잡고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배신하고 독일이 전쟁으로 달려가는 길을 열어준다. 그해 9월 독일이 폴란드로 쳐들어가자 영국은 비로소 평화至上주의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오웰의 正直과 헤밍웨이의 僞善
  
   1938년에 출판된 ‘카탈로니아 찬가’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단골 출판사가 스탈린 비판 내용 때문에 출판을 거부, 다른 회사를 찾아서 낸 책인데, 1951년 再版(재판)이 나올 때까지 초판 1500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오웰은 1950년 47세로 죽었는데, 그때까지 번역판은 이탈리아어뿐이었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 초판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신경을 썼다.
   그 뒤 바르셀로나도 많이 바뀌었다. 프랑코 시절에 핍박을 많이 받았던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2002년 월드 컵 8강전에서 스페인 팀이 승부차기로 한국 팀에 지자 환호했다. 지난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팀이 우승하자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처음으로 ‘스페인 만세’와 ‘카탈로니아 만세’를 같이 외쳤다.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의 主力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이 떠오른다. 6·25 남침을 前後(전후)하여 박헌영의 남로당이 김일성에게 배신당하고 숙청당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로당 후손들 중에서 오웰 같은 양심가가 나와서 김일성주의를 비판하는 名作(명작)을 남길 때도 된 것 같다.
   조지 오웰은 이론과 신념의 포로가 된 지식인들을 싫어하고, 보통사람들의 도덕성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그의 말년은 공산주의의 악마성과 지식인들의 僞善을 벗기는 데 집중하였다. 오웰은 인간과 사실과 체험을 소중하게 여겨, 근사한 개념이나 이론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知性人이다. 영국 저술가 폴 존슨은 '지식인'이란 책에서 조지 오웰의 성실성과 대조적인 존재로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불성실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內戰을 취재하러 가기 전부터 공산당의 노선에 전폭적으로 동조하고 그들의 선전활동에 협조하였다. 미국 소설가 도스 파소스도 공화파 편을 들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의 만행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동료 좌파들을 무자비하게 암살하고 고문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변호하였다. 파소스가 스탈린주의자들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헤밍웨이는 파소스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하였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가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썼다.
   1940년에 그가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어보면 헤밍웨이는 공화파의 문제점과 스페인 공산당의 행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이런 사실에 침묵하고 있다가 內戰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뒤에야 소설을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는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의 발간을 막으려 하였던 자들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고 혹평하였다. 조지 오웰이 진실을 알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공화파 편에서 참전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헤밍웨이는 지식인들의 행동을 선동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참전하지 않았다. 2차 대전중의 상당 기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팔아 얻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쿠바의 하바나 근교에서 深海 낚시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知的 성실성
  
   구글에서 조지 오웰의 語錄(어록)을 검색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詐欺(사기)가 판을 치는 시절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혁명이다."
   (During times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becomes a revolutionary act.)
   위선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에서 "李承晩과 朴正熙가 한국 민주주의의 건설자이다"라고 하면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빗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親知(친지)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 싸우려면 우리도 같은 정도의 狂信(광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同意(동의)할 수 없다. 狂信者들을 이기려면 우리는 狂信者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머리를 써야 이길 수 있다.>
   그는 '동물농장'을 위한 서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출판인들과 편집자들이 어떤 기사들을 싣지 않기로 한다면 이는 고발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론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러한 知的(지적)인 비겁성은 작가나 언론인들이 직면해야 하는 最惡(최악)의 敵이다.>
   오웰은 "자유란, 사람들에게 듣고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조지 오웰의 一生을 다룬 영화에는 그가 자신의 글을 거부하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네는 신념을 사실보다 더 重視(중시)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할 것이다. 50을 채우지도 못하고 죽은 조지 오웰의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것은, 그리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知性으로 평가되는 것은, 자신이 발견해낸 불편한 사실들을 자신의 신념보다 늘 우선시키면서 생각을 고쳐간 知的 성실성 덕분일 것이다.
   그는 1946년 트리뷴紙에 기고한 글에선 이렇게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知的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할 때인데, 보통 戰場에서 그렇게 된다.>
   그렇다면 말장난과 僞善의 곡예를 펼치는 한국의 좌경적 지식인들이 꿈에서 깨어날 때는 그들이 불러일으킨 전쟁의 피비린내를 맡으면서일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 교수 존 루이스 가디스의 名著(명저) '冷戰'의 프롤로그는 조지 오웰로부터 시작한다. 오웰이 스콧랜드의 주라 섬에서 '1984년'을 쓸 때 그는 急死(급사)한 부인과 자신의 폐결핵으로 인생의 終章을 예감하고 있었다. 전화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車道도 없는 외딴 섬을 집필 장소로 고른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말자 核전쟁의 위험으로 치닫고 있던 유럽은 희망이 없어보였다. 오웰은 유럽 문명과 자신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984년'은 주인공 윈스턴의 패배로 끝나지만 冷戰은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그 1984년 미국에선 레이건 대통령이 웃어가면서 소련 공산주의를 무너뜨릴 방도를 연구하고 있었다. 1년 뒤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어 공산帝國을 내부로부터 해체해가기 시작하였다(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8년 안에 유럽과 소련의 공산정권들은 모조리 무너졌다. 오웰의 '1984년'은 유럽에선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2010년의 한반도에서는 지속되고 있다.
   오웰은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수필에서 사람들이 글을 쓰는 네 가지 공통된 동기가 있다고 했다. 순전히 이기주의로 글을 쓰는 경우, 美學的 열정, 後代를 위해 기록을 남기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의도. 그는 책을 쓰는 것은 '긴 鬪病생활과 같은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싸움'이라고 표현하였다. 오웰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惡靈에 씌워지지 않고는 그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좋은 散文은 (세상을 잘 보게 하는) 통유리와 같다'고 했다. 그는 뒤돌아보니 정치적인 의도를 갖지 않고 쓴 글일수록 형식적이고 生氣가 없더라면서 글을 쓰려면 정치적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권고도 하였다.
   오웰은, 공산주의의 본질을 가장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었다. 그가 '1984년'에 담고자 하였던 '정치적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글의 힘으로, 진실의 힘으로 거짓의 공화국을 해체하는 데 '1984년'을 무기로 이용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1984년'은 한반도의 知性人을 위하여 쓴 책인 셈이다. 그가 '머리를 써야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머리'는 오웰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정직한 知性'이거나 레이건과 같은 '위대한 人格'일 것이다. 至誠의 知性으로 大兄을 쳐라!
  
   *오웰의 블랙리스트 38명
  
   1949년 오웰은 ‘1984년’을 출판한 뒤 병원에서 폐결핵 치료를 받고 있었다. ‘白晝(백주)의 암흑’이란 소설로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숙청을 폭로하였던 아서 케스틀러의 妻弟(처제)인 셀리아 커원이 찾아왔다. 커원은 영국 노동당 정부에서 설립한 정보조사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부서는 對공산권 선전을 맡았는데 커원은 국장의 보좌관이었다.
   오웰은 비밀 공산주의자이거나 동조자로 의심되는 38명의 이름을 적어 커원에게 건네주었다. 對공산권 선전을 할 때 이 사람들을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명단은 ‘오웰의 리스트’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 정부가 명단을 공개한 것은 오웰이 죽은 53년 뒤인 2003년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스페인 內戰 때 좌파 편에서 참전하였던 오웰은 좌익 인맥에 밝았다. 신문사의 書評(서평) 담당 기자로 일한 적도 있어 지식인 사회의 動向(동향)에도 정보가 많았다. 그는 1940년대 중반부터 ‘비밀 공산당원’ ‘동조자’ 등으로 분류된 명단을 공책에 정리해두고 있었다. 135명에 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38명을 추려서 커원에게 준 것이다. 주요인사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작가와 기자
  
   J.B.프리스틀리: 소설가 및 극작가
   킹슬리 마틴: ‘뉴스테이츠맨’의 편집장
   알라릭 제이콥: 2차 대전중 모스크바 주재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특파원
   아이리스 모레이: 옵저버紙의 모스크바 특파원
   E.H.카: 역사학자
   아이작 도이처: 前 트로츠키주의자, ‘트로츠기’ 3부작의 著者
   월터 두란티: 뉴욕타임스의 모스크바 특파원
   나오미 미치슨: 소설가
   노먼 맥켄지: 역사학자 및 사회민주당의 창립멤버
   마가렛 스튜어트: 트리뷴의 산업노동 담당 기자
   랜덜 스윙글러
   피터 스몰렛: 데일리 익스프레스 기자
  
   *과학자
  
   골든 칠드: 고고학자
   존 맥머레이: 철학자
   패트릭 블랙킷: 물리학자
   J.G.클로우더: 가디안의 과학 담당 기자
   A.J.P.테일러: 역사학자
  
   *배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찰리 채플린
  
   *노동당 국회의원
  
   베시 브라독
   톰 드리버그
   존 프라츠-밀즈
   스티븐 스윙글러
  
   *기타
  
   해군 중령 에드가 영
  
  
   스페인 내전을 통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의 행태를 속속들이 알게 된 오웰은 공산전체주의는 파시즘과 같은 인류의 敵(적)이라고 보았다. 그가 작성한 명단에 오른 지식인들은 거의가 親蘇的(친소적) 인사들이다. 이 명단은 搜査用(수사용)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원고를 청탁한다든지 방송에 출연시켜선 안 된다는 정도의 정보였다. 이 명단이 작성된 이후 이들의 행태를 보면 오웰이 사람을 잘 보았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피터 스몰릿 기자는 그 뒤 소련 KGB에 포섭된 간첩으로 밝혀졌다. 그를 포섭한 사람은 영국 정보기관 MI 6의 핵심 요직에서 근무중이던 킴 필비였다. 필비는 캠브리지 대학 재학 때부터 KGB에 포섭된 간첩이었다. 스몰릿은 2차 대전중엔 영국 戰時(전시) 정부의 정보부에서 소련과 과장으로 일했다.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특파원 월터 두란티는 1930년대 소련에 관하여 보도하면서 스탈린의 숙청을 비호하고, 大飢僅(대기근)을 축소 왜곡하였다. 그는 1932년 소련 보도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동료 기자들은 소련 선전물을 받아 기사를 쓰는 그를 경멸하였다. 2003년 뉴욕 타임스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 교수 마크 폰 하겐에게 의뢰하여 두란티의 퓰리처 상 기사를 검증하도록 하였다. 하겐 교수는, 두린티 기자가 편파적이고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스탈린의 선전에 너무 의존하였다면서 뉴욕 타임스의 명예를 위하여 스스로 이 賞을 반납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뉴욕 타임스는 하겐 교수의 보고서를 퓰리처상 위원회에 보냈으나 위원회는 상 회수까지 가진 않았다.
  
   스탈린의 변호인 E.H.카
  
   스탈린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심하게 왜곡한 사람은 역사학자 E.H.카였다. 그는 2차 대전 직전까지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시에 옹호하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라면서 챔벌린 영국 정부의 對히틀러 유화정책도 지지하였다. 2차 대전의 문을 연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까지도 옹호하였다. 그는 14권짜리 소련 역사를 썼는데, 왜곡의 결정판이다. 지금은 웃음꺼리가 되고 있다. 카는 마르크시즘이 가장 성공적인 전체주의라면서 소련의 사회복지 정책은 유럽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소련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먼 사람, 치유가 불가능한 사람’이란 악담도 쏟아 부었다. 1970년대 말 鄧小平이 毛澤東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가자 ‘퇴보적’이라고 비방하였다. 노르만 앙겔은 카를 ‘도덕적 허무주의’라고 혹평하였다. 미국의 리처드 파이프스는 카의 소련 옹호는 유태인 학살 옹호와 같다고 경멸하였다. 영국의 송두율 같은 E.H.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은 知的 천박성의 한 증거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리스트에 오른 親蘇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성연애자와 변태성욕자들이 었다. 이들은 변태장면이 KGB에 약점으로 잡혀 소련을 위한 위선적 言動(언동)을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 2011-04-07, 23:27 ]
  
  
   동물농장: 이상주의자들이 독재자가 되는 과정
  
   朴承用(영문학자)
  
   George Orwell(조지 오웰. 본명은 Eric Arthur Blair)의 '동물농장'은 전체주의국가의 絶對權力者(절대권력자)와 절대권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寓話(우화:allegory)이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민중은 언제나 지도자와 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장치인 제도로부터 압제를 당하게 마련이라는 것이 오웰의 持論(지론)이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자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絶對權力(절대권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할 때 민중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해방을 약속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지도자”나 “이상주의자”도 민중을 억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오웰은 “기존의 폭군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폭군은 항상 있다. 새 폭군은 전임자만큼은 나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폭군임에는 틀림없다.”라며 정치적 이상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그는 “도덕주의자(moralist)들이 급진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도덕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모습(the shape of society)을 변경시키면 모든 일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를 變革(변혁)함으로써 모든 惡(악)을 제거하고 사회를 완벽하게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인간의 현실적 生存條件(생존조건:the conditions of human existence)에 바탕을 두지 않는 觀念的(관념적) 사회혁명의 無望(무망)함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상은 그 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이상적일지라도 거부하여야 한다는 것이 오웰의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저항 독립운동가로서 聖人(성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Gandhi(간디)도 오웰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오웰은 간디의 聖者(성자)의 이상을 (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인간이 되고픈 유혹을 결코 느껴보지 못한다면서)非인간적이라며 비판하였다. 간디의 無抵抗主義(무저항주의)도 영국같은 민주주의 정권하에서나 가능한 방법이며 나치스 독일이나 소련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을 뿐더러 항의시위에 참여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할 것이다. 그러나 오웰은 증오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정치투쟁의 理想(이상)을 실천한 간디의 숭고한 인격은 높이 평가하였다.
  
   간디처럼 증오와 권력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간디 같은 인물은 인류역사상 예외적인 인물이다. 어떠한 인간도 증오와 권력욕을 초월할 수는 없다. 萬人이 萬人의 적이 되거나 경쟁자가 되는 삶의 투기장에서는 증오와 권력의지는 생존본능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조직을 이루어서 투쟁할 때에 생존의 가능성이 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
  
   조직에는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가 있어야 조직이 유지된다. 대중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지도자는 대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이들 지도자는 언제나 대중을 지배하거나 조작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오웰은 “역사는 일련의 詐欺(사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詐欺劇(사기극)속에서 민중은 유토피아(Utopia)의 약속에 따라 蜂起(봉기)하도록 유인되지만 그들의 일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에 의해 노예가 된다.”라며 정치지도자와 민중의 지배-종속적인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當代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서점점원, 농장 일군, 식당종업원, 교사, 가정교사, 방송요원, 군인, 영화평론가, 장기입원한자, 특파원, 작가 등으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념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浮浪者(부랑자)의 생활을 하면서 貧民(빈민)들의 고통을 체험적으로 관찰하였다.
  
   그가 발견한 것은 빈민들의 세계에도 정교하고 엄격한 계급이 제도화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호텔종사원의 경우 위로는 호텔 총지배인으로부터 최하층의 화장실 당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업원이 계급화 되어 있었다. 요리파트에는 요리장, 요리사 인사관리자, 요리사의 계급이 있고 접대부분에는 급사장(headwaiter), 웨이터, 견습웨이터의 계급이 있었으며 객실정리담당과 화장실 담당에도 계급화 되어 있었다.
  
   심지어 런던의 거지들 상호간에도 평등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계급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오웰은 체험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었다.
   오웰은 또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좌익편에서 우익 파시스트와 싸웠다. 그는 국제노동당 分遣隊(분견대) 대원으로서 스페인 동북부 Aragon(아라곤)전선에서 싸우다가 목에 관통상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관념적이기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오웰에게는 부상으로 인해 실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커다란 타격이 되었다. 그는 스페인 공산당의 대숙청을 피해 프랑스군 전선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무수한 시체를 보고 “역사는 친구와 친족이 無意味(무의미)한 內戰(내전)에서 파멸되고 투옥되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정치적 분노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특정 이념으로 무장한 인간이 그 이념을 전체주의적으로 강행할 때 무참한 殺戮(살육)을 당연시하는 可恐(가공)할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타락할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웰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정권이나 독재자를 용인하거나 이들에 대해서 비판을 유보하는 서구의 지식인이나 좌익작가들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자유와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성장하여 독재의 참상을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대다수 지식인과 좌익작가들은 肅淸(숙청)과 비밀경찰의 공포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소련이 파시스트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소련의 實狀(실상)을 바로 보기를 거부하였다. 오웰은 “동물농장”序文(서문)에서 소련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영국의 지식인 및 당시(1930년대 와 1940년대)의 사회분위기를 개탄하고 있다.
  
   <현재 영국의 정통 주류사회는 소련을 비판 없이 찬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고 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소련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소련정부가 掩蔽(엄폐)하기를 원하는 어떤 사실의 폭로도 출판되는 일이 거의 없다. 소련에 아첨하는 이러한 전국적인 음모에 대해서 기이하게도 지식인들이 관용과 침묵으로 대하고 있다. 소련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더 기이하다.
  
   스탈린을 공격하는 글은 거의 누구도 발표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처칠에 대해서는 신문이든 잡지든 책이든 어디에서나 마음놓고 공격하는 것이다.(중략). 소련의 위신만 다치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는 잘 유지된다. 1941년 이후 소련의 선전을 그대로 삼키고 되풀이하는 대부분의 영국 지식인들의 비굴함은 그들의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놀라울 것도 못된다. 모든 이슈에 있어서 소련의 관점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수용되고 역사적 사실이나 知的인 품위도 없이 그대로 발표된다.(중략). 영국의 대부분의 지식인은 소련에 대해서 민족적인 충성을 바치고 스탈린의 지혜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것은 일종의 不敬(불경)이라고 가슴속 깊이 느끼고 있다.
  
   소련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밖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기 다른 기준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일생 동안 사형제도폐지 운동을 한 사람들이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소련의 대숙청을 찬양한다. 그리고 인도의 大饑饉(대기근)은 당연히 보도해야 되지만 소련의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은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戰前(전전)에 도 사실이지만 지금의 知的분위기도 조금도 나아진 바 없다.(중략) “아무리 인기가 없고 아무리 어리석은 의견도 발표할 자격이 있는가?” 라고 물으면 영국의 거의 어떤 지식인도 “Yes(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을 공격하는 말은?” 라고 물으면 대답은 “No.' 일 것이다>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성장한 영국의 작가들은 특히 좌익작가들은 전체주의 국가의 가공할 독재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소련정권이 자행한 대학살을 묵인하게 된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영국 좌익작가들에게는 소련의 恐怖(공포:horrors)는 觀念(관념)이지 實在(실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웰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용인하고 찬양하는 시대의 主流(주류)에 함몰되지 않고 소련의 독재와 蠻行(만행)을 바로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叡智(예지)와 勇氣(용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가 스페인에서 한 경험은 이념의 이름으로 인간이 자행하는 악마적 폭력에 대한 오웰의 警覺心(경각심)을 심화시켰을 것이다. 그는 전체주의적 이념이 초래할 미래의 지옥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先知者(선지자)였다. 그러나 그는 曠野(광야)의 외로운 선지자였다. 그가 진리를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1930년대 및 40년대 초의 영국 및 서구는 오웰의 경고가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荒蕪地(황무지)같았다.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인 T.S. Eliot(엘리엇)조차도 스탈린의 잔혹한 독재에 침묵하였으며 오웰을 외면하였다.
  
   오웰은 노동자계급은 인류가 생존의 과정에서 당하는 苦痛(고:suffering)의 化身(화신)이며 노동자의 해방에 인류의 구원이 있다고 간주하였다. 그는 지식인은 노동자의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며 노동자를 위한 지식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나는 압제받는 사람들 속으로 내려가서, 압제자들과 싸우는 사람중의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고(중략)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인 부랑자, 거지, 범죄자들, 매춘부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았고 일시적으로 나도 그들의 일부라고 느꼈었다. 내가 그들 중의 하나가 되고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나는 사회의 최하층 바닥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그 때도 비이성적이라고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나의 죄의 일부를 떨쳐 버릴 수 있다-라고 느꼈었다. 그리고 나는 더러운 빈민굴속에서 그리고 무섭도록 지겨운 부랑자들의 하층세계에서 해방감과 모험심을 느꼈으며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느낌은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생기발랄한 느낌이었다” 라고 고백하였듯이 하층계급의 사람들에 대해서 병적일 만큼 깊은 동정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오웰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유럽 지식인들의 동경의 대상이며 압제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세운 나라로 자부하는 소련이 사회주의 이념의 실천과정에서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함으로써 인류의 소망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가난과 억압과 착취가 없으며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으로 권력을 잡은 소련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변신하였다. 새로운 지배계급은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선전선동을 통한 대중조작과 대숙청이나 인민재판 같은 공포정치를 恣行(자행)하여 인민을 '자유의지와 생각이 없는 순한 대중'으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소련은 소수의 관리자와 비인간화된 다수의 노예들이 한 명의 카리스마적 독재자를 우상숭배하도록 세뇌되고 강요당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폭력이 일상화된 집단수용소같은 나라가 되었다. 이념이 권력의 도구가 되고 독재자가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여 인민을 공포로 지배하게 되는 나라는 마왕이 다스리는 地獄(지옥)이 된다.
  
   '동물농장'은 소련과 소련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寓話(우화)이다. 동물농장의 인간은 자본가들이고 동물들은 공산주의자들이며 돼지는 Bolsheviks(볼쉐비크)이고 혁명은 러시아의 10월 혁명이다. 그리고 농장 인근의 농부들은 赤軍(적군)에 반대하는 Czarists(황제충성파)를 지원하는 외국군들이다.
  
   “동물농장”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Mr.Jones(존즈): Manor Farm(매너 농장) 주인. 자본가 상징
   Major(메이저): 수퇘지. 공산주의사상의 創始者(창시자) 인 Marx(막스)와 볼쉐비크 혁명지도자 레닌을 가리키며 성격이 위압적이고 好戰的(호전적)이다.
   Boxer(복서): 짐마차 끄는 말. 프로레타리아트를 나타내고 다소 둔하고 희생적인 성격.
   Clover(클로버): 짐마차 끄는 말. 복서의 동료
   Napoleon(나포레온):돼지. 스탈린의 모든 특성을 가진 동물농장의 독재적 지도자.
   Snowball(스노우볼):돼지. 스탈린에게 암살 당한 Trotsky(트로츠키)와 대응되는 인물
   Squealer(스퀼러):돼지. 辨說(변설)에 능하며 소련공산당 機關紙(기관지) 프라브다紙(지)상징
   Bluebell(블루벨),Jessie(제시),Pincher(핀처): 사나운 개들. 소련의 비밀경찰과같은 역할.
   Muriel(뮤리얼):흰 염소.Benjamin(벤자민):늙은 당나귀. Mollie(몰리):암말. Moses(모세):길들인 까마귀
  
   메이저는 농장의 모든 동물이 존경하는 정신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동물들의 생활이 비참한 이유는 모두 인간들 때문이라며 동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인간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꿈에서 인간이 모두 추방된 동물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고 말하며 인간의 착취가 없는 미래의 세계를 예언한다.
  
   메이저는 자본가를 몰아내고 無産階級(무산계급:proletariat)의 공산주의국가 건설을 제창한 마르크스와 레닌과 같은 인물이다. 그의 연설의 내용은 마르크스나 레닌의 사상 그대로이다.
  
   <동무들, 우리의 삶의 모든 악은 인간들의 압제에서 나온다는 것은 수정처럼 분명하지 않습니까? 인간만 제거하면 우리 노동의 생산물은 모두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거의 하루밤 사이에 우리는 부유하고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인간을 顚覆(전복)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전심전력을 다해서 노력합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메시지는 바로“반란을 일으키라!”입니다.(중략) 동무들, 여러분의 결의가 흔들려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떠한 주장도 여러분을 분산시켜서는 안됩니다. 인간과 동물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고 인간의 재산은 바로 동물의 재산이라고 인간들이 말하는 것에 결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우리들 동물들은 투쟁에 있어서 완전히 단결하고 완전한 同志愛(동지애)를 발휘해야합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의 의무를 항상 기억하라는 것을 단지 반복해서 말씀드릴 뿐입니다. 두 다리로 다니는 것은 모두 적입니다.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것은 모두 친구입니다.(Whatever goes upon two legs is an enemy. Whatever goes upon four legs, or has wings is a friend.)
  
   그리고 또 명심해 될 것은 인간과의 싸움에 있어서 인간을 닮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했을 때라도 인간의 악덕은 결코 채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동물도 집에 살거나 침대에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에 손을 대거나, 무역에 종사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모든 습속(habits)은 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동물도 같은 동물을 압제해서는 안됩니다. 약하든 강하든, 똑똑하든 둔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메이저의 연설은 동물들에게 새로운 인생관을 주입하였고 동물들은 지상낙원을 노래하는 '영국동물歌(가):Beasts of England'를 열창하면서 혁명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자연이 제공하는 현실적 삶의 조건은 불완전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자연은 풍요하지도, 안락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 지구상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궁핍한 자연에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 인류는 언제나 삶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상향을 상상하고 소망해 왔다. 이러한 이상향에의 소망이 熱情(열정)을 통해 폭발하게 되면 혁명이 된다. 특히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증오를 動力(동력)으로 할 때는 지옥의 학살극이 연출된다. 칼 마르크스가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공산주의를 제창한 이래 지금까지 1억의 사람이 죽음을 당하였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대리인인 메이저는 매너농장의 동물들 가슴에 혁명의 불길을 지르고 증오의 기름을 퍼붓는다. 매너농장에는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메이저의 가르침을 실현시키기 위해 동물들은 혁명을 준비한다. 동물들 중에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돼지들이 동물들을 조직하고 교육시키는 사업을 주도하게 된다. 돼지들 중에서도 Napoleon(나폴레온)과 Snowball(스노우볼)이 가장 뛰어나고 혁명을 주도하는 지도자의 일을 맡게 된다.
  
   나폴레온은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겼으며“대단한 연설가는 못 되고 자기 주장은 매우 강하지만”인격적인 깊이는 없다. 그는 혁명조직을 주도하고 젊은이의 교육을 조종하고 음모에 능하고 회의보다는 막후에서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그는 프랑스의 나폴레온과 소련의 스탈린의 分身(분신)이다. 혁명을 배반하고 독재자가 되어 전제정치를 한 나폴레온과 스탈린처럼 그도 매너농장의 동물들을 배반하고 잔혹한 독재를 하게 될 것이다.
  
   스노우볼은 뛰어난 연설가이다. 그의 말은 대중이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대단히 인상적이고 웅변적이며 창의성이나 발랄함에 있어서 나폴레온보다 더 뛰어난다. 그리고 그는 대단한 문필가이다. 그는 또한 매우 지적이고 정력적이다. 스노우볼(눈덩이라는 뜻)은 스탈린에게 패배하고 국외로 망명한 후 암살 당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눈 녹듯이 사라진 백발과 흰 수염의 Trotsky(트로츠키)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매우 둥근 뺨과 반짝이는 눈 및 민첩한 행동과 날카로운 음성을”가진Squealer(스퀼러)는 “검은 색도 흰색”이라고 믿게 할 만큼 설득력이 강해서 혁명과업수행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그는 소련공산당 機關紙(기관지)인 Pravda(프라브다)紙(지)를 상징한다.
  
   나폴레온 스노우볼 스퀼러 이 세 명의 돼지는 예언자 메이저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Animalism(동물주의: 공산주의상징)라는 완벽한 사상체계를 세우고 밤마다 동물들에게 동물주의를 주입시킨다. 처음에는 동물주의 혁명에 회의적이거나 무관심한 동물들이 많았다. 특히 혁명 후에도 설탕을 먹을 수 있는지를 묻는 Mollie(몰리.흰 암말. 황제지지파를 상징)와 Sugarcandy Mountain(설탕으로 된 산: 내세와 천국을 상징)이라는 신비의 나라를 믿고 전파하는 Moses(모세. 길들인 까마귀. 동방정교와 카토릭 상징)가 혁명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돼지들은 끈덕지게 이들의 반대를 극복해 나간다. 혁명이념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동지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Boxer와 Clover(복서와 클로버: 짐마차를 끄는 말. 프로레타리아트 상징)는 충직한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은 부족하였으나 일단 돼지들을 스승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스승이 가르치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회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였고 그 때마다 '영국동물'의 노래를 리드하였다. 우리는 복서와 클로버로부터 보다 낳은 삶을 위한 민중의 소박한 열망과 정직한 노력이 그 善意에도 불구하고 배반을 당하는 아픔을 보게 될 것이다. 열망의 추구과정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일 때는 열망의 에너지는 개량과 복지보다는 파괴와 자멸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동물들의 반란은 뜻밖에 쉽게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존즈씨는 과거에는 유능한 주인이었으나 訟事(송사)에서 패하여 돈을 잃은 후로 술독에 빠져 농장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농장 일군들도 태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반란장면은 일반적인 민중혁명의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요한 祭日(제일)(Midsummer Day) 전야인 토요일에 존즈씨는 Willingdon(윌링던)으로 갔다. 그는 술집 Red Lion(레드 라이언)에서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일요일 정오까지도 귀가하지 않았다. 농장 일꾼들은 아침 일찍 소젖을 짜고 나서 동물들에게 먹이도 줄 생각도 안하고 토끼사냥을 가버리고 없었다. 존즈씨가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는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실 소파에서 금새 잠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이 왔을 때도 동둘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젓소 한 마리가 뿔로 곡물창고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다른 동물도 뒤따라 들어가서 사료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때서야 존즈씨는 잠이 깨어 일어났다. 그는 즉시 인부 네 명과 함께 창고로 달려가서 동물들을 채찍으로 마구 때렸다. 이것은 동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전에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지만 일치 단결하여 고문하는 자들(존즈씨와 인부)을 공격하였다.
  
   존즈씨와 일꾼들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였다. 사태의 수습은 불가능하였다. 그들은 동물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처음 보았고 그들이 마음대로 구타하고 학대하던 동물들이 갑자기 봉기하는 것을 보고서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공포에 질리게 되었다. 그들은 방어할 마음을 잃고 도망갔다. 잠시 뒤에 그들은 승리한 동물들의 추격을 받으며 간선도로로 향하는 짐마차 길을 따라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고 있었다>
  
   이 장면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상징하고 있다. 매너농장은 帝政(제정)러시아이고 존즈씨는 황제이며 일꾼들은 러시아 지배층이고 동물들은 러시아 민중이다. 國家首長(국가수장)의 의식이 술에 취한 것처럼 마비되고 국가를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 지배층이 나태하고 부패하면 민중은 고통을 당하고 고통 당하는 민중은 혁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혁명은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게 하는 마약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혁명이 성공한 후 동물들은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한다. 우선 채찍이나 말안장 같은, 동물들을 학대하던 수단을 모두 파괴해버린다. 채찍이나 말안장은 帝政러시아의 지배기구인 경찰이나 군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목초지, 과수원, 잡목숲 등 매너농장의 모든 재산을 동물들의 공동재산으로 만들었다. 존즈씨의 저택(왕궁상징)은 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어떤 동물도 저택 안에 살지 않기로 동의한다. 동물(프로레타리아트)을 착취하는 인간(자본가)의 집에 동물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혁명지도자 나폴레온은 우유도 먹지 못하게 한다. 동물은 인간의 사치스런 삶의 방식을 踏襲(답습)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동물들은 농장 명칭을 “매너농장”(제정 러시아)에서 “동물농장”(소련)으로 바꾼다. 그리고 동물주의(사회주의)의 원칙을 아래와 같이 7誡命(계명:소련헌법)으로 요약해서 공포한다.
  
   1. 두 다리로 걷는 것은 무엇이든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아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 자서는 아니 되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아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어떤 동물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혁명과업의 수행과정에서 7계명은 모두 파괴된다. 이것은 혁명에 內在(내재)하는 부패 때문이다. 인간은 이상을 추구는 하지만 인간에 내재하는 부패의 본성으로 인해 혁명의 이상은 파괴되기 마련인 것이다. 계명을 공포하는 바로 그 날 혁명주도세력인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나폴레온은 농장의 우유를 인간들에게 팔아서 돈을 챙기는 현상에서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된다. 이상과 현실은 乖離(괴리)하게 되어있고 이상이 높을수록 현실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것이 삶의 조건이다.
  
   동물들의 첫 번째 과업은 乾草수확이었다. 희망과 이상으로 意氣衝天(의기충천)해진 동물들은 열심히 일하였다. 불평이나 불만은 물론 싸움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복서는 항상 작업시간보다 더 일찍 나타나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서 한 후 퇴근시간보다 더 늦게 일하여 모든 동물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농장을 관리할 때보다도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열심히 일한 것은 아니었다. 몰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일을 태만히 하였다. 고양이는 일터에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올드 벤자민은 혁명에 무관심하였다. 보다 우수한 지식을 가진 돼지들은 일을 하지 않고 감독과 지시만 하였다. 인간사회에는 완벽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서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몰리처럼 게어른 자도 있으며 돼지처럼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일요일에는 작업이 없었다. 그러나 국기게양식과 전 동물이 참여하는 총회는 반드시 있었다. 국기는 영국의 푸른 들판을 나타내는 녹색의 바탕에 동물농장의 미래를 의미하는 발굽(hoof)과 뿔(horn)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발굽과 뿔은 소련국기인 낫과 망치에 대응된다. 발굽과 뿔은 인간(부르주아)이 완전히 배제되고 동물(프로레타리아트)들이 주인이 되는 미래의 동물공화국을 표상하는 것이다.
  
   총회에서는 週間(주간)작업계획이 수립되고 각종 決議案(결의안)의 제출과 토론이 있었다. 결의안은 항상 돼지들이 제출하였고 다른 동물들은 투표하는 법만 알았고 자신들의 결의안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돼지는 엘리트이고 다른 동물들은 엘리트의 지배를 받는 보통 사람들인 것이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온이 토론을 주도하였지만 그들 둘의 의견이 일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소위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타인을 지도하고 지배하고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의지 즉 權力意志(권력의지:will to power)도 인간의 生得的(생득적)속성이다. 그러므로 권력쟁탈의 냉혹한 싸움은 전쟁을 통해서이든 숙청을 통해서이든 아니면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서이든 어느 사회에나 인간이 사는 곳이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스노우볼은 모든 동물들을 동물위원회(Animal Committees)에 가입시켜 동물들을 조직화하였다. 닭들을 위한 ‘계란생산위원회’(Egg Production Committee), 소들을 위한 ‘청결한 꼬리연맹’(Clean Tails League), 쥐와 토끼를 길들이기 위한 ‘야생동무재교육 위원회’(Wild Comrades' Re-education Committee), 양들을 위한 ‘보다 흰 양털위원회’(Whiter Wool Movement)등 모든 동물들이 가입해야 하는 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온은 위원회보다는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의식이 아직 굳어지지 않은 어린것들의 교육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제시와 브루벨이 9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하자 말자 그것들을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격리하여 교육시켰다. 혁명가들이나 이상주의자들은 唯我獨尊的(유아독존적) 獨善(독선)에 빠져 인간을 특정 이념이나 가치로 세뇌시켜 인간을 자유의지나 개성이 결여된 기계 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우유를 돼지들이 먹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과 落果(낙과:windfalls)도 수집해서 돼지숙소로 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동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모든 돼지들은 우유와 사과를 돼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스퀼러로 하여금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하였다.
  
   “동무들! 나는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이나 특권의식에서 이렇게 한다고 동무들이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돼지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부터 그것들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먹는 유일한 목적은 건강 때문입니다. 우유와 사과는 (동무들, 이것은 과학에 의해서 증명되었습니다) 돼지의 건강에 필수적인 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돼지는 두뇌노동자(brainworkers)입니다. 우리 농장의 모든 관리와 조직은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동무들의 복지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것은 동무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돼지들이 우리의 의무수행에 실패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아십니까? 존즈가 돌아옵니다. 예, 동무들,분명히 그 놈이 돌아옵니다. (중략) 동무들 중에 누구도 존즈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지요?”
  
   동물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우유와 사과는 돼지만이 먹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돼지들처럼 인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고 인민의 이름으로 부당하게 사치와 특권을 享有(향유)하는 지배 엘리트와 이를 默從(묵종)하는 민중은 어느 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지만 평등과 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공산주의 나라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人間事(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농장에서 축출당한 존즈씨는 술집에 틀어 박혀서 사람들에게 농장을 탈취 당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농장주들(프랑스, 독일 등 자본주의 국가들)은 존즈씨의 불행에 동정을 표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불행을 이용해 먹을 궁리만 하였다. 게다가 농장주들 상호간에도 사이가 나빠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할 공동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매너농장의 동물들이 서로 싸우거나 굶어서 죽게 될 것이라며 사태가 곧 진정 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동물농장이 계속 지탱되고 혁명 소식을 들은 자신들 농장의 동물들이 動搖(동요)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존즈씨와 함께 동물농장을 침공하였지만 동물들은 스노우볼의 탁월한 지휘 아래 승리를 거둔다. 동물들은 승리의 환희에 열광한다. 그들은 이 전투를 “카우세드의 전투”(the Battle of Cowshed)라고 명명한다.
  
   동물들은 지금의 열광과 환희가 미래의 공포와 고난의 前兆(전조)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대중이든 엘리트이든 이념의 마법에 걸리면 열광하면서 파멸로 향해 돌진하는 멍청한 존재이기도 하다. 혁명을 조직하고 선도하는 혁명가는 권력의 행복을 향유하지만 혁명에 동원되는 대중에게는 대리만족외에는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혹독한 독재와 처절한 빈곤의 고통을 당하지만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혁명의 열기에 쉽게 뛰어 든다. “혁명가는 일단 권력을 잡으면 압제자 이상으로 폭군이 된다.”(...once in power, the revolutionary becomes as tyrannical as his oppressor.)라는 Conrad(콘래드. 영국소설가)의 지혜로운 警句(경구)도 민중들에게는 馬耳東風(마이동풍)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겨울이 왔다. 추위로 인해 바깥에서의 작업이 불가능해지자 매일 회의가 열렸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온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스노우볼은 뛰어난 연설 솜씨로 때때로 회의를 주도하였지만 그때마다 나폴레온의 친위부대인 羊(양)들이 “네 다리는 좋은 것이고 두 다리는 나쁜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회의를 중단시키곤 하였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온은 풍차건설을 놓고도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스노우볼은 풍차를 건설하여 전기를 이용하면 노동력이 절약되어 일주일에 3일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고 이에 대해 나폴레온은 풍차건설에 시간을 낭비하면 동물들이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풍차문제 말고도 농장의 방어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나폴레온의 생각은 무기를 구입하고 훈련을 강화하여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스노우볼의 주장은 혁명이념을 수출하여 다른 농장에서도 봉기가 일어나면 자주국방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풍차건설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스노우볼의 승리가 확실해질 것 같을 때 나폴레온은 자신이 비밀히 관리해온 9마리의 거대한 猛犬(맹견)들이 스노우볼을 공격하게 한다. 스노우볼은 죽음만 겨우 면한 채 농장을 탈출해 도망간다. 스노우볼을 제거한 나폴레온은 모든 회의를 폐지한다. 농장경영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그가 주도하는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다른 동물들은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몇몇 동물들이 이 결정에 항의하였지만 맹견들의 위협과 양들의 천둥 같은 구호에 주눅이 들어 침묵하였다.
   나중에 스퀼러가 농장을 순회하면서 나폴레온의 독재를 옹호한다.
  
   “동무들! 여기 있는 모든 동물들은 나폴레온 동무의 희생정신을 높이평가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동무들! 지도자의 자리가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그것은 대단히 깊고 무거운 책임입니다. 나폴레온 동무는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고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온 동무께서는 모든 일을 여러분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면 정말로 기쁘실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동무들은 잘못 된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동무들이 풍차 문제 때 스노우볼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범죄자에 불과한 스노우볼을!(중략). 우리가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존즈가 다시 오기를 원하지 않지요?”
  
   그날 이후로 복서를 위시한 모든 동물들은 “나폴레온 동무가 어떤 것을 말하면 그것은 옳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 나폴레온은 항상 옳다.”를 불변의 金言(금언)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얼마 후에 풍차건설의 지시가 내려와도 동물들은 異議(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설혹 이의가 있어도 맹견이 무서워서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이것은 인간을 만든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은 또한 욕망의 추구에 한계를 없애버림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만족을 모르게 한다. 그래야만 종족의 보존이 더 확실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보다 나은 것을 갈망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이상을 꿈꾸는 동물이다. 이상은 혁명을 낳고 혁명은 나폴레온 같은 독재자를 낳기 쉽다는 것을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 공산혁명이 입증한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혁명을 한 결과 독재자가 나타나는 역설은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강한 자가 무리를 지배하고 이끄는 것이 種(종)의 확산을 원하는 자연의 목적에 符合(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권력의지를 가지고 태어나고 지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대중은 강력한 지도자의 그늘에 들어가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한다. 민주적인 통제장치가 느슨하거나 아니면 그 장치가 마비되거나 아예 없는 사회에서는 혁명의 과정에서 善意(선의)의 독재자 아니면 나폴레온 같은 포악한 독재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선의의 독재자보다는 나폴레온 같은 포악한 독재자의 수가 월등히 많다.
  
   혁명을 독재자가 가로채면 민중은 참혹한 고난을 당하게 된다. 동물농장의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였다. 나중에는 일요일 오후에도 일을 해야 했다. 동물들은 항상 춥고 배가 고팠다. 어떤 때는 식량배급이 여러 날 동안 중단되기도 하여 餓死(아사)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독재자의 거짓을 믿거나 믿게 되었다. 그들은 풍차건설은 원래 나폴레온의 아이디어이며‘ 풍차가 붕괴된 것은 강풍이 아닌 간첩 때문이며, 카우세드 전투의 승리는 나폴레온의 공적이고, 스노우볼은 애초부터 존즈의 첩자라는 명백한 거짓말들을 믿어야 했고 믿게 되었다. 그들은 혁명의 약속과 이상이 파기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위협 당하고 洗腦(세뇌)되었다.
  
   나폴레온이 인간들과도 거래를 하고 자신을 지도자라고 부르게 하며 개인숭배를 강요해도, 돼지들이 저택으로 이사를 하고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사치를 하여도, 나폴레온의 친위대인 맹견들이 다른 동물을 죽여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옥의 공포속에 살아야 하였다. 나폴레온의 공포정치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란 貢納(공납)을 반대하는 닭들을 학살하였다. 그는 스노우볼의 첩자를 잡아낸다면서 온 농장을 수색하였다.
  
   그는 1월의 대학살을 통해 동물농장을 공포의 지옥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9마리의 호위 맹견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동물농장 동물 전원이 보는 앞에서 일요회의폐지에 반대하였던 네 마리의 젊은 돼지를 스노우볼의 첩자라고 자아비판시키고는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이어서 그는 세 마리의 닭, 한 마리의 거위, 양 두 마리를 자아비판시키고는 모두 즉석에서 처형하였다. 자아비판과 처형은“....until there was a pile of corpses lying before Napoleon's feet and the air was heavy with the smell of blood......나포레온의 발 앞에 시체더미가 쌓이고 공기가 피 냄새로 가득할 때까지”계속되었다.
  
   1월의 학살 이후 나폴레온에 대한 개인숭배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 그는 항상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온 동무”라는 존칭에 “전 동물의 아버지”,“인류의 공포”,“牧羊場(목양장)의 보호자”,“오리의 친구”등등의 경칭이 매일 매일 늘어갔다.
  
   스퀼러는 나폴레온의 英明(영명)함을 말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모든 업적은 나폴레온의 功(공)으로 돌렸다. 닭들의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온 동무의 지도로 엿새 동안 다섯 개의 알을 낳았습니다.”라든지“나폴레온 동무의 지도로 물맛이 너무나 좋습니다.”라는 소들의 말이 일상적이 되었다.
  
   “부모 없는 사람의 친구이며 행복의 원천이시며....”로 시작되는 “나폴레온 동무”라는 訟詩(송시)가 七誡命(7계명)이 있는 맞은 편 벽에 새겨지고 나폴레온의 대형초상화도 걸렸다. 동물들이 피땀 흘려 재건한 풍차의 이름은 나폴레온 방앗간으로 명명된다.
  
   공포와 세뇌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의 대상을 존경하고 숭배하게 하기도 한다. 공포가 존경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제 동물들은 나폴레온을 숭상하고 나폴레온의 판단과 행동에는 誤謬(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나폴레온이 Pinchfield(핀치필드:독일)농장주인 Frederick(프레데릭)과 Foxwood(폭스우드:영국)의 농장주인 Pilkington(필킹톤)과 비밀 거래를 하다가 이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이들과 전쟁까지 하게 되어 수많은 동물들이 죽고 다치고 풍차마저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나폴레온 동무의 지도로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서 전쟁의 傷痕(상흔)도 잊게 되었다.
  
   궁핍이 동물들을 괴롭혔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식량배급마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돼지들은 맥주까지 마시며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스퀼러는 식량배급에서의 지나친 평등은 동물주의에 違背(위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신들이 농장의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궁핍의 고통을 다소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시위와 노래와 연설과 생산증대 성과발표, 휘날리는 깃발, 祝砲(축포)등등의 축제분위기도 동물들로 하여금 “ 배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게 하였다.
  
   복서가 죽었다. 그는 우직하였지만 착취와 궁핍이 없는 이상사회의 실현 가능성을 확신하고 지도자인 나폴레온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숭배하였다. 그는 근무시간외에도 자진해서 열심히 일하였다. 심지어 풍차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일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기도 전에 나폴레온은 그를 廢馬(폐마) 도살업자에게 팔아 넘겼다. 복서는 짐마차 안에서 발버둥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스퀼러는 복서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동물농장 만세와 나폴레온 만세를 부르며 임종하였다고 동물들에게 거짓말하였다.
  
   복서는 러시아 민중을 상징한다. 그들은 풍요하고 평등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에서 공산주의혁명에 동참하였지만 스탈린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기만 하였다.
   돼지들이 인간처럼 두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Four legs good, two legs better.네 다리 가진 자는 좋은 것, 두 다리 가진 자는 더 좋은 것.”라는 구호가 천둥같이 크게 울렸다. 七誡命(칠계명)은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MORE EQUAL THAN OTHERS: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뀌었다. 동물농장의 명칭도 다시 매너농장으로 바뀌었다. 동물들은 파티를 즐기고 있는 돼지와 인간들을 보면서 어느 것이 사람인지 어느 것이 돼지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혁명은 부패한다. 이것은 七誡命(칠계명)이 모두 배신당하고 원래의 혁명이념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혁명의 부패는 인간의 原罪(원죄)로 인한 것이다. 인간의 원죄는 人間性(인간성)에 內在(내재)하는 惡(악)을 말한다. 인간은 높은 道德性(도덕성)과 理想(이상)을 추구하는 善(선)한 존재이면서도 생존을 위한 沒道德的(몰도덕적) 공격본능과 무한의 욕망으로 인해 惡(악)에 대한 可能性(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矛盾的(모순적)인 존재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지난 100여년 동안 평등의 이상 아래 1억의 사람을 살해하였다. 이상은 神(신)의 영역이다. 神(신)의 영역을 불완전한 인간에게 강요할 때는 엄청난 재앙이 따른다. 인류가 이것을 제대로 인식만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이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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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內戰(내전)을 다룬 유명한 소설과 實錄(실록)이 있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넌 픽션 ‘카탈루니아 讚歌(찬가)’가 그것이다. 관점은 다르다. 헤밍웨이는 좌파에 동정적이고, 오웰은 좌파 편에서 싸웠지만 반대파를 숙청하고 헤게모니를 잡은 親蘇派(친소파)를 파쇼와 같은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관점에선 오웰의 知性과 정직이 헤밍웨이의 낭만적 위선을 압도한다.
  
   ‘카탈루니아 찬가’의 무대는 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이다. 이 도시를 여행할 때 이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80년 전의 역사적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한 가운데에 난 번화가이다.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고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붐빈다. 이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하여 벌어졌던 ‘內戰 속의 內戰’이 ‘카탈루니아 찬가’의 主題(주제)이다.
  
   오웰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두 편의 소설- ‘동물농장’과 ‘1984’- 때문에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자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영국의 엘리트 양성소인 이튼 스쿨을 졸업한 그는 인도와 버마를 다스리던 영국 경찰에 들어갔다. 근무지는 버마였다. 오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버마와 인도를 식민통치하던 영국 관리였다. 오웰은 5년간 경찰로 근무한 뒤 사회주의자로 변신한다. 영국의 식민통치 방식을 고발하는 두 글, '교수형'과 '코끼리 쏘기'를 썼다. 조지 오웰은 소설가가 되면서 사용하게 된 筆名이고 本名은 에릭 블레어이다.
   오웰은 사회주의 이론에 매료되었으나 경찰 경력 덕분인지 늘 사실을 신념보다 重視하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런던의 빈민굴 생활을 거쳐 파리로 가서 접시닦이 일을 했다(이 체험을 토대로 '파리와 런던에서 기진맥진'이란 체험기를 썼다). 여기서 폐렴에 걸려 자선병원 신세를 졌다. 그 후유증으로 늘 시달리다가 47세에 죽은 것도 이때 약해진 폐 때문이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그는 좌파(공화파) 편에서 싸우기로 하고 입국 허가를 받으려 했다. 스페인 공산당이 입국 허가를 내주고 있었는데, 오웰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던 '국제여단'에 먼저 가입하면 허가를 주겠다고 했다. 오웰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내전의 실상을 확인한 다음이라야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오웰은 무정부 주의자 단체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자원한 부대는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둔 무정부주의자들의 민병대(POUM)였다. 이 민병대는 나중에 스탈린주의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탄압과 살육을 당한 조직이 되었다.
  
   ‘카탈루니아 찬가’의 도입부는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은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당은 파괴되고, 팁은 없어지고, 상류층의 사치스런 옷차림은 사라지고, 하층민들은 당당해졌다. 오웰은 프랑코 군대와 대치한 戰線(전선)에 투입되어 지루한 참호전을 하게 된다. 敵(적)과의 實戰(실전)보다는 이와 쥐를 상대로 한 싸움이 더 처절하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나왔다가 ‘內戰 중의 內戰’에 휘말린다. 바르셀로나의 좌파정권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세력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계보와 신념에 따라 反蘇 사회주의 진영에 서게 된다. 親蘇派(친소파)가 시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오웰은 전선에 복귀한다. 여기서 목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除隊(제대)와 출국을 꾀하게 되는데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反蘇분자’로 지목되어 언제 끌려가 총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스페인에 동행하였던 부인은 호텔에 연금되고, 오웰은 露宿(노숙)을 해가면서 거리를 방황한다.
  
   경찰은 밤에만 설치고 낮은 자유롭다. 오웰이 안전한 낮 시간에 여기저기 들르는 카페와 음식점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관광 가이드이다. 목숨이 오고 가는 살벌한 분위기이지만 독일이나 소련과는 다르다. 오웰은 스페인 사람들이 성격상 절대로 파시스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스페인人들은, 살벌한 정치상황에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오웰은 ‘스페인에 대하여는 나쁜 기억이 많지만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親蘇派 형사들이 오웰의 부인이 묵던 호텔 방을 급습, 두 시간 동안 수색을 하는데 부인이 누워 있는 침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사실은 이 침대 밑에 불온문서와 무기가 숨겨져 있는데도 그들은 남자의 명예심을 지킨다.
  
   ‘카탈루니아 찬가’에서 오웰은 親蘇派가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동자 계급을 탄압함으로써 계급해방이란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하였다고 개탄한다. 바르셀로나에서 親蘇派가 정권을 독점한 뒤엔 노동자들이 다시 탄압을 받고 자본가들이 回生한다. 형사들은 노동자풍의 사람들을 검문하여 잡아들이고 부유층 같아 보이는 이들은 검문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은 똑같은 巨惡(거악)이란 깨달음이었다.
  
   ‘카탈루니아 찬가’를 읽는 독자들은 오웰 부부가 기차 편으로 스페인을 벗어나 프랑스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시가전, 암살, 투옥, 처형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스페인을 떠나 7개월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깊게 잠들어 있는 영국을 보면서 두려워지는 것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잠자리에서 튀어나오기 전엔 잠에서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오웰의 이런 예감은 곧 적중하였다. 1939년 8월 스탈린은 히틀러와 손잡고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배신하고 독일이 전쟁으로 달려가는 길을 열어준다. 9월 독일이 폴란드로 쳐들어가자 영국은 비로소 평화至上주의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1938년에 출판된 ‘카탈루니아 찬가’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오웰의 단골 출판사가 스탈린 비판 내용을 문제삼아 출판을 거부, 다른 회사를 찾아서 낸 책인데, 1951년 再版(재판)이 나올 때까지 초판 1500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오웰은 1950년 47세로 죽었는데, 그때까지 번역판은 이탈리아語뿐이었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 초판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신경을 썼다.
  
   그 뒤 바르셀로나도 많이 바뀌었다. 프랑코 시절에 핍박을 많이 받았던 카탈루니아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 팀이 승부차기로 한국 팀에 지자 환호했다. 지난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팀이 우승하자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처음으로 ‘스페인 만세’와 ‘카탈루니아 만세’를 같이 외쳤다.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의 主力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이 떠오른다. 6·25 남침을 前後(전후)하여 박헌영의 남로당이 김일성에게 배신당하고 숙청당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로당 후손들 중에서 오웰 같은 양심가가 나와서 김일성주의를 비판하는 名作(명작)을 남길 때도 된 것 같다.
  
   조지 오웰은 이론과 신념의 포로가 된 지식인들을 싫어하고, 보통사람들의 도덕성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그의 말년은 공산주의의 악마성과 지식인들의 僞善을 벗기는 데 집중하였다. 오웰은 인간과 사실과 체험을 소중하게 여겨, 근사한 개념이나 이론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知性人이다. 영국 저술가 폴 존슨은 '지식인'이란 책에서 조지 오웰의 성실성과 대조적인 존재로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불성실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內戰을 취재하러 가기 전부터 공산당의 노선에 전폭적으로 동조하고 그들의 선전활동에 협조하였다. 미국 소설가 도스 파소스도 공화파 편을 들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의 만행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동료 좌파들을 무자비하게 암살하고 고문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변호하였다. 파소스가 스탈린주의자들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헤밍웨이는 파소스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하였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가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썼다.
  
   1940년에 그가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어보면 헤밍웨이는 공화파의 문제점과 스페인 공산당의 행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이런 사실에 침묵하고 있다가 內戰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뒤에야 소설을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는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의 발간을 막으려 하였던 자들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고 혹평하였다. 조지 오웰이 진실을 알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공화파 편에서 참전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헤밍웨이는 지식인들의 행동을 선동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참전하지 않았다. 2차 대전중의 상당 기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팔아 얻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쿠바의 하바나 근교에서 深海 낚시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 2013-11-24, 21:35 ] 조회수 : 1138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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