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원조 3억불(일본)과 30억불(미국)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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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의 국부 이광요의 자서전을 보면, 60·70년대에 다른 개도국의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한번도 선진국에 가서 구걸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진국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선진국에 손을 내밀기 바빴다. 그렇게 해서 받은 귀중한 달러는 몇 년 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러나 이광요는 선진국을 향해, '싱가포르는 이러이러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귀국의 기업들이 투자하면 짭짤한 이익을 남길 겁니다'라고 했다. 결과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65년 건국 후 불과 한 세대 만에 영국을 앞질렀지만, 수많은 개도국은 상대적으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대통령이 '경제 올인'을 외치던 목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쟁쟁한데, 제 버릇 남 못 주고 '아이스께끼' 하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과거사의 치마 들추기에 여념이 없다. 1965년 한일협정의 외교문서를 일부 공개하자, 아니나 다를까 방송과 인터넷과 신문이 붉은 악마들이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을 응원하던 것처럼 아연 신바람이 났다. 굴욕외교다, 재협상하라, 보상하라! 끝내 단돈 1달러도 못 받을 북한도 한국의 북 장단에 맞추어 장구를 신명나게 두드린다. 독재자 박정희를 부관참시하라! (그 딸도 내쫓아라! 그 당도 해산하라!) 그러나 한쪽에선 계란을 이리저리 몇 개씩 나눠줘서 그 자리서 깨 먹게 하는 대신, 그 계란을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 황금 알을 낳는 봉황으로 부화시킨 박정희를 더 한층 우러러본다. 일본으로부터 무상원조를 우리의 두 배 가량 받은 필리핀의 꾀죄죄한 오늘의 모습과 2003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오늘의 한국을 비교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편을 갈라 싸우기 전에 몇 가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첫째, 일본이 배상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왜? 배상금은 전승국이 패전국에게 물리는 것이니까. 따라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이 받을 자격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이 두 나라는 일본과 싸웠고 일본에 승리했다. 두 나라는 배상금을 포기했다. 엄격히 따지면 중국도 자격이 없다. 그들이 국공합작으로 일본과 싸우긴 했으나, 일본을 물리치진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참전으로 미국의 원자탄 2방으로 비로소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물러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열도는 미국이 단독으로 접수했다. 한족은 제 코가 석 자였다. 일본은커녕 바로 이웃의 한반도에도 전혀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장개석과 모택동이 중원의 사슴 쫓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교활한 스탈린이 얼른 북한을 접수했고. 중국이 나중에 중원을 차지한 후 일본침략으로 6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며 징징거렸지만, 일본은 그냥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중국이 강제할 수단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국은 전승국이 아니었으므로.
  
   초강대국 미국은 인류 역사상 길이 빛날 인도주의를 실천했다. 어제까지 쌍방에 60만의 피를 흘리며 죽기 살기로 싸운 남부 사람들의 손을 그 큰 손으로 말없이 꼭 잡아주던 링컨의 인도주의를 실천했다. 제국주의를 버렸던 것이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과 이태리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배상금을 포기했던 것이다. 인류의 1만년 전쟁사상 불문율이었던 '보복의 법칙'을 강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리어 어제의 원수들을 도와 주었던 것이다. 항복한 원수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다. 과연 독일과 일본과 이태리는 백의민족으로 거듭났다. 가혹한 전쟁 배상금에 원한을 품고 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게서 큰 교훈을 얻어, 위대한 링컨을 생각하며 일대 용단을 내려, 영원한 복수의 고리를 끊으려고, 배상금을 받는 대신 원조금을 주었던 것이다. 과연! 세계는 평화와 자유로, 풍요와 웃음으로 대낮같이 빛났다.
  
   일본으로서는 어디까지나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게 준 달러는 유·무상 원조나 차관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협력기금이었을 따름이다. 그나마, 50여 개국의 전쟁 당사자에 한국은 말석도 차지하지 못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미국이 압력을 가해 어쩔 수 없이 몇 푼 선심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65년에 약속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도 엄격히 말하면 미국이 준 것이지 일본이 준 게 아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한 배상금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일본이 마지못해 성의를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리어 일본은 한국에 고스란히 두고 간 공장과 철도에 대한 청구권을 주장하던 판이었다. 왜? 한국한테는 공포탄이나 유탄 한 방 맞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한테 전쟁에서 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 억울하면, 지금이라도 일본한테 배상금을 왕창 받아내려면 당당히 선전포고하고 일본과 전쟁을 벌여서 왜놈들을 해운대 모래밭에 줄줄이 꿇어앉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100억 달러가 아니라 1000억 달러, 1000억 달러가 아니라 1조 달러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협상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3억 달러가 아니라 30억 달러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으로 봐서는 너무도 같잖은 착각이다. 저러니 아직까지 저 모양 저 꼴이지, 라고 일본은 비웃을 것이다. 미국의 압력과 조정으로 그 정도나마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여기에 해당하는 문서가 미국에서 비밀이 해제되면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참고로, 한 마디 덧붙이면, 1964년 3월 26일 김준연 의원이 국회에서 1억3천만 달러가 미리 들어와서 정치자금으로 쓰였다고 폭로했지만, 그는 법정에 출두해서 횡설수설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다가, 다그쳐 물으니까 '장택상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다가, 증인으로 불려 온 장택상이 정색을 하고 나무라자,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고 한다.(김정렴, 아 박정희) --이걸 아직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음모론교의 광신도들이 많다. 그리고 일본이 어떤 나라인데, 민주당 정권도 협상의 줄을 몇 번 밀고 당긴 끝에 5억 달러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상업차관까지 합하면 8억 달러를 받았으니까, 민주당의 예상보다 많이 받은 셈이다. '똥배짱' 퉁겼으면 북한처럼 한 푼도 못 받았을지 모른다. 김대중 정부가 쌍끌이 협상한 걸 생각해 보라.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둘째, 누가 누구에게 보상하느냐? 한국인치고 피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 진짜 보상을 받아야 할 상대는 누군가? 일본뿐인가? 나라를 망하게 한 조선의 왕실과 양반관료들에게 더 많이 받아야 하지 않나? 다행히 이건 농지개혁으로 사실상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만.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달러를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썼다. 산업화의 기초를 닦아 전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었다. 특별한 경우에는 국가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보상도 했고. 사적인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내 선친은 징용에 두 번이나 끌려갔지만,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이걸 선친이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도 못 봤다.
  
   셋째,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권을 박정희 정권과 비교해 봐야 한다. 박정희는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3억 달러밖에 받지 못했지만, 이승만과 장면은 1945년부터 1960년까지 무려 30억 2천만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았다(한국수출입은행). 대부분 물자로 받아서 이를 팔아 돈으로 바꿔 썼다. 이를 대충자금이라고 했다. 그 당시는 국가 예산을 거의 미국의 원조로 꾸리다시피 했다. 2500만 명의 1년 총생산이 고작 10억 내지 20억 달러밖에 안 되던 때에 매년 2억 달러를 무상으로 받았다! 상상을 초월한 지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1964년에 고작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고서는 2004년 2500억 달러 수출한 것보다 10배는 더 기뻐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미국으로부터 15년에 걸쳐 무상으로 받은 30억 달러는 상상을 초월한 천문학적인 돈이다. 더하여 1945년에서 1959년까지 국군이 미국으로부터 직접 지원 받은 총 13억 달러도 있었다. 도합 43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지원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나?
   도로? 공장? 발전소? 경지정리? 저수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밑이 확 빠지고 사방에 금이 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독에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길어다 붓는 식이었다.
  
   박정희는 달랐다. 공부는 죽어도 안 하는 몽상가가 밤낮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수석으로 졸업해서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겠다는 화려한 공부 계획만 짜듯이, 경제개발5개년 계획입네, 하고 청사진이나 밤낮으로 그리고 지우고 했을 뿐 군사비까지 합하면 15년 동안 마음씨 좋은 양키로부터 공짜로 43억 달러나 받아서 고작 당인리화력발전소 하나 달랑 건설한 이전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겨우 무상 3억 달러를 종자돈으로 한국의 산업 지도를, 하얀 종이 위에 그 누구도 상상 못했던 한강의 기적을 멋지게 그렸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고 얼른 다시 손을 내밀던 국민들에게, 노예근성에 찌들은 거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와 땀을 흘리는 국민이, 주인의식으로 충만한 일꾼들이 이 땅에 우르르 새로 태어나게 했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선글라스를 낀 마술사가 지팡이를 쭉 내뻗자 베짱이 국민이 일제히 개미 국민으로 바뀌었다!
  
   넷째, 도대체 북한은 뭘 했나? 일본이 물러가면서 고스란히 북한 땅에 남겨 둔 90%의 공장과 발전소(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 당시 기준으로 100억 달러!), 한국보다 90% 이상 많았던 석탄과 철광석과 시멘트! 그런 호조건으로 동족을 학살하는 전쟁을 일으킨 것 외에 무엇이 있는가? 전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민족을 2000만의 거지와 200만의 깡패와 100만의 도둑으로 만들고 와중에 동남아 해일 피해의 15배가 넘는 300만을 굶겨 죽이고, 순채권국으로 돌아선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무역적자가 연간 10억 달러에 달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120억 달러의 외채를 '내 배 째라'며 마냥 뭉개고 있지 않은가.
  
   구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루블과 위안과 원료와 제품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조총련으로부터 갈취한 엔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일본과 수교한다며 기껏 가짜 유골이나 보내어 100억 달러는커녕 단돈 1달러로 못 받을 짓을 자초하는가. 이제 한국과 미국과 중국의 도움으로 노동당원과 인민군만이 간신히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국가 전 재산의 실질적 소유자는 만경대 김씨 한 가문이 있을 뿐이고.
  
   이런 북한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못하는가? 핵과 미사일과 생화학무기를 손에 든 1점짜리 열등생에게는 끽 소리도 못하고 싸늘한 시체로 변해서 가만히 땅속에 누워 있는 99점 우등생에게는 100점을 못 맞았다고 길길이 뛰는가. 스스로는 10점도 간신히 맞으면서.
  
   마지막으로, 현 정부와 이전 몇 정부는 남을 헐뜯는 것 외에는 도대체 잘하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묻고 싶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북한에 대해 외교를 그리도 잘하고 있는가. 뭍에는 일자리가 넘치고 서해든 동해든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엔 갈매기만 한가로이 날아다니는가. 미국은 한국만 보면 반가워서 두 손을 치켜들고 막 달려오는가. 중국은 한국이 부러워서 마냥 바라보는가. 아니면 무서워서 벌벌 떠는가. 일본은 한국 대통령을 욘사마 대하듯 대하는가. 무사마라며 발을 동동 구르며 괴성을 지르는가.
  
   외환위기 극복합네, 분배를 개선합네, 농촌을 살립네, 일자리를 창출합네, 남북화해합네, 북한을 살립네, 하고 실질적으로 이룩한 게 무엇 하나 있는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와중에 반반한 돌이 이리저리 감쪽같이 없어지면서 축대가 와르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 아닌가. 대학만 나오면 기업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난리인가. 쩍 벌어졌던 빈부격차가 바짝 붙었는가. 국가부채와 개인부채도 푼돈처럼 작아졌는가. 신용불량자는 먼 나라 얘기인가. 농민들은 대기업의 노동자도 부러워하지 않는가. 62조원이나 투자했으니까. 앞으로 119조원을 더 투자할 것이니까.
  
   한국의 적선으로 북한주민들이 다들 배불리 잘 먹고 있는가. 김정일이 핵도 버리고 미사일도 버리고 위조지폐도 불태우고 아편도 불태우고 오로지 민생에만 올인하는가. 휴전선을 개방하여 남북 이산가족이 하루에 100만 명이라도 만나게 해 주는가. 우리가 음으로 양으로 건네준 최소한 15억 달러의 현금으로 중소기업 수준의 공장이라도 하나 번듯하게 지었으며, 국제 시장에서 옥수수 1톤이라도 샀는가. 1년에 2억 달러를 국제 곡물 시장에 풀면 북한에는 굶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데,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돈과 아낌없이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보낸 식량은 어디로 가고 NHK에 비친 청진에는 어째 전쟁고아보다 더 비참한 꽃제비만 가득하여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이리도 저미게 하는가.
  
   왜 이런 건 따지지 않는가.
   얻음이 아홉이고 잃음이 하나인 정부는 잃음만 죽자 사자 물고 늘어지고,
   얻음이 하나이고 잃음이 아홉인 정부는 얻음만 붕붕 띄우는가.
  
   남을 헐뜯음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려는 자는 깊은 땅 속에 제 무덤을 파는 자이다.
   배심원인 국민은 어리석은 듯 슬기로우니까.
   언젠가는 심판자인 시간이 모든 진실과 거짓을 밝혀 주니까.
  
   (2005. 1. 21.)
  
  
[ 2005-01-22, 01: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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