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船長(1)
육지사람들이 잘 모르는 바다, 배, 선원들의 세계: 쿠웨이트에서 울산항까지 슈퍼탱커를 타고 오일로드를 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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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 2호, 울산항을 떠나다
  
  
   325미터의 海壁
  
   크다. 한참 길다. 수평선의 한 토막을 가로막고 길다랗게 누워있는 쇳덩어리. 거대한 자석에 빨려들 듯 그 길쭉한 陰影(음영)을 향해 작은 통선은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울산만의 파도와 아침의 부연 바다공기를 가르며 달려갔다. 20분쯤 뒤 우리는 흰 거품이 이는 파도를 맞고 있는 길이 325미터의 海壁(해벽)과 마주했다. 그 벽에 가로 걸쳐진 "A"LINE이란 글자가 海面線(해면선) 바로 위에서 찰랑찰랑 넘실대고 있었다.
   "한참 걸리는군요."
   나는 배 꽁무니에서 뱃머리까지를 한눈으로 다 잡을 수 없었다. 160도쯤 고개를 '한참' 돌려야 했다. 크기를 비교할 다른 물체가 옆에 없었지만, 고도 성장 시대를 살면서 크고 높고 빠른 데는 이력이 난 나의 눈이지만 이 유조선이 엄청나게 크다는 판단을 내리는 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 제일 작게 보일 때지요. 몸통의 90퍼센트쯤은 물밑에 잠겨 있으니까요. 기름을 다 뽑고 몸통이 쑥 올라오면 영 다르게 보입니다. 배에 올라가 보면 또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지요."
   같이 통선을 탄 아세아 상선(주) 진재록 이사가 말했다. 20톤짜리 제2 진성호는 유조선에 바짝 붙어 그 둘레를 두 바퀴 돌았다. 한물 빠진 청바지 색깔의 선체, 그 드러난 선체를 자르고 있는 해면 바로 밑에서 진홍색의 또 다른 船體(선체)가 투명한 바닷물과 함께 아른거리고 있었다. 통선은 배 꽁무니의 그늘 아래서 유조선의 선체로 다가갔다. 진 이사, 김중근 감독, 윤주영 포트·캡틴(port captain)이 통선의 앞 갑판으로 몰려가 유조선의 닻을 요모조모 살핀다. 누렇게 녹슨 두 개의 닻이 우현 좌현에 하나씩 바짝 당겨진 채 매달려 있었다.
   왼쪽 닻이 문제였다. 남지나 해의 파도를 거푸 맞은 충격으로 닻이 선체를 긁으면서 철판을 한 뼘 가량 찢어 놓았다는 것이다. 닻도 약간 헐렁해졌다.
   "저놈을 용접해야 출항할 수 있습니다. 용접은 기름을 다 부린 뒤에라야 할 수 있지요."
   "저 닻이 몇 톤쯤 됩니까?"
   "하나가 이십오 톤이에요. 버스 여덟 대 무게죠. 그렇게 큰 것 같아 보이지 않지요?" 두 개의 무게를 합치면 50톤, 닻줄의 중량까지 계산하면 200톤은 실히 넘으리라. 그러나 이날 이 유조선, 동해 2호는 오만하게도 닻의 힘을 빌지 않고서 황파 위에서 육지처럼 버티고 있었다. 순전히 자신의 덩치와 몸무게를 믿고서 그는 꿈쩍 않고 떠 있었다.
  
   重量 25만 톤
  
   쿠웨이트의 미나 알아하마디 항에서 싣고 원 원유가 20만5000톤, 여기에다가 순수한 선체 무게 3만 톤과 연료로 쓰이는 벙커시유(약 3000톤) 및 밸러스트 물, 그리고 서른 네 명의 선원들 몸무게(약 2톤)를 더해 총 25만 톤쯤의 중량. 이에 의지하여 동해 2호는 파도가 치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자신을 맡겨두고 있었다. 우리는 피칭과 롤링을 거듭하는 통선을 떠나 사다리를 기어 올라 동해 2호의 굳건한 갑판 위로 '상륙'했다. 초록색 갑판이 평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거미줄 같은 송유관들. 뱃머리 쪽에서 우뚝 솟은 7, 8층 높이의 우윳빛 선교에는 'NO SMOKING'이란 붉은 표지가 상호간판처럼 큼직하게 걸쳐져 있었다. 동해 2호는 이제 막 繫船(계선) 작업을 끝낸 참이었다.
   동해 2호와 같은 VLCC(Very Large Crude Carrier:20만∼30만 톤급 유조선)나 그보다 더 큰 ULCC(Ultra Large Crude Carrier:30만 톤 이상의 유조선)에는 접안이란 절차, 곧 뱃전을 부두의 포근한 품에 안겨 주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항구는 너무 얕다. 그들은 멀리 항구의 불빛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外港(외항)에 그 둔중한 몸뚱이를 잠시 쉬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너무 큰 덩치로 해서 항구의 안온하고 흥청대는 분위기와는 평생 한 번 접해 보지 못하고, 뭍의 품에 그 강철덩어리를 한 번도 접촉시켜 보지도 못하고 大洋(대양)과 大洋 사이를 숨가쁘게 오가다가 古鐵(고철)로 화해버리는 것이 초대형 유조선들의 예정된 운명인 것이다.
   1981년 11월 초순 울산항을 떠났던 동해 2호는 쿠웨이트의 미나 알아하마디에 12월 초순 도착했다. 24시간 만에 후딱 기름을 실은 이 배는 다음날 알아하마디를 떠나 이날-12월 말의 어느 아침 울산항에 돌아왔다. 50일 만의 귀항. 동해 2호를 맞은 것은 선원 가족들의 환호가 아니라 두 척의 땅똥한 예인선이었다. 작지만 엄청난 힘(두 척을 합쳐 2600마력)을 가진 두 예인선은 前進(전진) 엔진을 미리 꺼버린 동해2호를 울산 외항의 부이 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동해 2호와 같은 VLCC는 전진 엔진을 끄고 스톱을 걸어도 몸길이의 스무 배쯤, 약 7킬로미터는 절로 미끄러져 나간다. 부이와 접촉하는 속도가 초속 15센티만 넘어도 부이는 박살난다.
   그래서 동해 2호는 예인선이 부이 근처까지 밀어다 주길 기다릴 뿐이다. 부이에 50미터쯤 접근하면 '무어링 로프'(Mooring Rope)라고 불리는 길이 백 미터쯤의 전봇대만한 나일론 줄을 부이로 던져 그곳에 얽어맨다. 이것이 유조선의 정박이란 것이다. 울산항의 부이는 원통꼴로 생겼다. 지름 15미터 높이 4미터쯤. 연안에서 십 리쯤 떨어진 외항에 띄워져 있는 무게 200톤쯤의 이 부이는 유조선을 매어 두는 일 외에 해저 송유관에 유조선의 송유 호스를 연결, 기름을 부리게 하는 중계 기지 구실을 한다.
   네 가닥의 신축성 있는 닻줄에 의해 해저와 이어져 있는 부이는 부딪치는 힘이나 당기는 힘에 고무처럼 여유 있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날 오전 10시 동해 2호는 부이에 계선되었다. 세 시간 뒤부터 시커먼 쿠웨이트 원유는 두 줄기의 호스를 통해 지름 90센티짜리 해저 송유관으로 쏟아져 들어가 울산 정유 공장의 저유 탱크를 향해 줄달음쳐 갔다.
  
   세로로 세우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이 책의 무대가 될 동해 2호는 열네 살 먹은 고참 VLCC다. VLCC의 첫 세대로 불릴 만한 이 배의 관록은 뱃전과 갑판의 수많은 흉터들이 증언하고 있다. 파도와 싸운 상처들이다. 페인트칠과 철판 껍질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누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동해 2호는 1968년 6월 일본의 가와사키(川崎)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 노르웨이 해운 회사가 몰던 이 배를 아세아 상선이 사들인 것이 1979년. 이 배는 곧 중동과 울산을 오가는 원유 항로에 얹혀졌다. 이 배의 적재 톤수는 20만6525톤. 부산 시민들의 몸무게를 합친 것과 거의 같은 무게다. 이 배가 가득 실은 기름을 유조차들이 나눠 운반한다면 그 대열은 서울에서 대구까지 이를 것이다.
   군함의 크기는 배수 톤, 화물선이나 여객선은 총 톤수로 가늠하는 데 대해 유조선은 적재 톤수(Dead Weight Tonnage)로 따진다. 동해 2호의 총 톤수는 10만4548톤으로 퀸 엘리자베스호보다도 훨씬 무겁고 크다. 이 배의 길이는 325미터. 너비는 47미터, 높이는 24.5미터. 부피로 따진다면 대우빌딩보다도 훨씬 크다. 이 배를 세로로 세워 놓으면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엇비슷해질 것이다. 다섯 개의 센터 탱크, 아홉 개의 윙 탱크에 기름이 꽉 차면 동해 2호는 높이 24.5미터의 뱃전 가운데 19미터쯤을 물 밑으로 담게 된다. 그러면 5.5미터쯤의 船體가 물 위로 드러난다. 기름을 가득 실으면 판자가 떠 있는 것처럼 납작하게 보이고 空船(공선)일 때는 20층 높이(해면에서 브리지까지)의 해상성채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滿船(만선) 상태의 유조선은 몸통의 대부분을 숨기고 있는 氷山(빙산)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 巨體(거체)를 움직이는 터빈은 분당 85번씩 돌면서 2만8000마력의 추진력을 낸다. 작은 화력 발전소의 발전력과 맞먹는 힘. 말 2만8000마리의 힘으로 터빈이 스크류를 돌리면 이 巨船은 15노트. 곧 시속 약 30킬로미터로 바다를 헤쳐 나간다. 스크류는 버스 열대 무게와 거의 같은 약 45톤. 이 터빈과 스크류를 돌리는 힘은 벙커시유에서 나온다. 동해 2호는 1항차에 약 5000톤의 연료유를 소비한다. 연료비만 해도 6억 원(운임 수입은 10억 원쯤). 잠실 아파트 단지의 한 달 난방비와 맞먹을 정도다.
  
   인간이 일찍이 움직여 본 적이 없는 무게
  
   동해 2호는 울산에서 기름을 부리고 중동으로 갈 때 밸러스트 탱크에 4만 톤쯤의 물을 채운다. 이 물은 빈 배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것이다. 이 물은 中東에서 기름을 실을 때 버린다. 우리가 동해 2호 갑판에 올라섰을 때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한 선원은 브리지로 이방인들의 도착을 보고하느라 분주했다. 그의 통신 수단은 워키토키였다. 300미터나 떨어져 있는 船橋(선교)로 고함을 칠 수도 없는 노릇. 동해 2호에선 쓰지 않고 있지만 갑판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순찰용 자전거를 돌리는 유조선도 많다. 브리지에서 내려와 유조선을 한 바퀴 돌려면 1킬로미터는 걸어야 한다. 船級(선급) 검사를 하는 사람은 동해 2호의 구석구석을 점검하기 위해 적어도 10킬로미터는 걷는다. 이 배에 붙은 철판의 용접 거리는 경부 고속도로보다도 더 길다. 배를 덮은 페인트 무게만도 수백 톤에 이른다.
   동해 2호와 같은 초대형 유조선의 무게와 덩치를 가장 가깝게 느껴 아는 사람은 아마도 울산 정유 공장의 港長(항장) 최준용 씨(44세)일 것이다. 그는 지난 16년 동안 울산항에 들어온 1000여 척의 VLCC와 씨름을 해온 사람이다. 崔 항장의 일은 입항하는 VLCC에 올라 선장 및 도선사와 함께 유조선을 부이(Buoy)에 갖다 붙이고 기름을 부린 다음 출항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崔 항장은 이, 삼십만 톤짜리 강철 덩어리를 얌전하게 다루는 조련사인 셈이다. 초대형 유조선은 그 무게로 해서 본의 아니게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崔 항장의 임무는 유조선의 이 힘을 인간의 지식 아래서 평화롭게 관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일찍이 그렇게 무거운 물체를 움직여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탱커를 요리조리 몰아 부이에 접근시켜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탱커가 통 말을 듣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렇게 밀면 저렇게 움직여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을 잡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수십만 톤짜리 물체의 운동방식에 대한 법칙이 밝혀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바다는 고체가 아니라 流體(유체) 아닙니까?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는 달리 유체 위에 얹힌 탱커는 유체의 상태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조류, 해류, 바람, 파도, 해저의 지질 등등 탱커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수십 가지나 됩니다. 울산만의 경우, 믿을 만한 海流(해류)나 潮流(조류) 측정 자료도 없어 초창기에는 그저 運(운)만 믿고 일했지요. 그래도 큰 유출 사고는 없었으니 기적이지요."
   탱커의 키를 잡은 사람은 300미터나 떨어진 배 꼬리를 생각하며 배를 움직여야 하니 전달과 반응의 시간 차, 방향 감각의 차이, 탱커의 무서운 관성 등등 인간의 적응력을 해치는 요소가 숱하게 깔려 있다. 슈퍼 탱커는 인간이 과학적으로 통제하기엔 너무 큰 물체인 듯한 기분도 든다고 한다. 더구나 울산 외항의 수심은 23미터. 이 해저에는 높이 약 1미터의 송유관이 깔려 있다. 이 송유관을 덮어씌우고 있는 콘크리트 보호관과 거기에 붙은 시설물의 높이를 합치면 실제 가동 수심은 21미터쯤밖에 안 된다.
   여기에 19미터(동해2호)∼20.76미터(코리어선, 코리어 배너, 코리어스타호)의 홀수를 가진 유조선이 들어온다. 유조선 바닥과 해저 사이엔 50 센티 남짓의 여유밖에 없다. 큰 파도가 유조선을 때리면 선체가 진동, 바닥이 해저에 닿아 구멍이 날 위험성도 있다. 그래서 27만 톤의 기름을 실을 수 있는 코리어 배너호는 24만 톤만 싣는다. 선체의 흘수깊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동해 2호, 울산항을 떠나다
  
   선체와 기름을 합쳐 약 1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이덕인 선장이 지휘하는 서른 세 명의 선원들. 동해 2호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이삼천 톤급의 화물선보다도 오히려 선원숫자가 적다. 이것은 유조선의 자동화와 화물이 싣고 부리기 편한 액체인 덕분이다. 41세인 李 선장은 지난 1963년 한국 해양대학 항해과를 졸업. 19년 동안 줄곧 배를 탄 사람이다. 이날 그는 호텔의 특실을 방불케 하는 선장실에서 우리를 맞았다. 깨끗한 융단이 깔려 있고 목욕탕이 붙은 침실과, 서른 평은 될 듯한 집무실은 바깥의 강철덩어리와는 걸맞지 않는 격리감과 포근함을 풍기고 있었다. 李 선장은 1981년 들어 한 번 휴가는 갔지만 300일 이상을 바다 위에서 보냈다.
   입이 무겁지만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李 선장은 곧 진 이사, 윤 감독 등 아세아 상선의 울산 현장 기술진과 함께 닻 수리 문제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다. 李 선장은 이미 入港(입항) 1주일을 앞두고 닻의 고장 상태를 텔렉스 및 SSB 통신으로 울산에 상세히 보고했었다. 이를 받은 진 이사팀은 도상 연습을 끝낸 뒤 수리방법에 대한 복안을 가지고 이 회의에 임한 것이었다. 이처럼 일을 서둘지 않으면 몇 천만, 몇 억 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닻 수리로 출항이 하루 연기되거나 계선 작업이 늦어져 탱크가 하루를 대기한다면 약 3만 달러, 곧 2100만 원쯤의 손해를 보게 된다. 배는 계속 돌려야 하며 머물러 있는 기간만큼 손해다. 정박일수를 줄이고 항해일수를 늘리는 것. 이것이 해운업의 요체이다.
   동해 2호가 울산항을 떠난 것은 1982년 1월 초순. 아침이었다. 닻 수선작업이 길어져 처음 예정보다도 출항이 이틀 늦추어진 것이었다. 우리, '마당' 취재반 두 사람(조갑제, 박상원 기자)이 김포공항을 떠난 것도 같은 날 오후 4시50분. 대한항공 615편이었다. 대만의 타이페이를 거쳐 그날 밤 홍콩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날 섭씨 25도를 오르내리는 1월의 '더위' 속에서 '콘크리트의 정글'로 불리는 이 도시의 북새통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운회사와 세계에서 가장 큰 배를 갖고있는 회사를 취재한 뒤 싱가포르로 가는 싱가포르 항공사 점보기에 오른 것은 5일 오전 10시45분.
  
   이란 上空에서
  
   슈퍼 탱커 항로의 길목을 누르고 있는 깔끔한 항도 국가 싱가포르에서 닷새를 보내며 우리는 해운·석유·조선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 '작은 巨人'의 진면목을 실감했고 그 힘이 바다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했다. 9일 '마당' 취재반은 육로를 따라 말레이시아의 가장 오랜 도시 말래카로 들어갔다. 말래카 해협의 이름이 유래된 古都(고도), 동서양의 열강들이 차례로 뺏고 빼앗기고 했던 바다의 요충,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 주는 이 항구에서 우리는 18년 동안 유조선 항공 사진만 3만 장을 찍었다는 뉴질랜드 노인을 만났다. 최동원 투수의 강속구보다도 더 빨리 달리는 특공대 택시를 타고 이 나라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 우리는 세계 최대의 고무, 주석, 팜 오일 수출국인 이 나라가 요즘엔 해저 석유에 힘입어 자원大國으로 팽창하고 있는 열기를 보았다.
   이 나라의 가장 큰 항구인 포트 클랭에서 우리는 말래카 해협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해적들의 피해자들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방콕 공항에 이른 것은 12일. 사흘 동안 취재팀은 '江上市場'(강상시장)을 헤집고 다녔다. 동남아주민들에게 있어서는 바다와 강이 일찍부터 삶터의 연장이었음을, '떠 있는 시장'은 싱싱한 생명력과 가지각색의 얼굴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동해 2호의 항로와 나란히 여정을 잡고 이들 항구를 뒤지고 다닌 까닭이 있었다. 중동∼한국 원유 항로의 주변 국가들을 찾아가 그들의 문명과 삶이 이 항로와 바다와 기름과 어떻게 엮이어져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이 항로의 참모습을 바다·땅·하늘의 3面에서 관찰, 입체적인 기사로 재구성하려는 것이 '마당'의 뜻이었다.
   취재반은 1월14일 저녁 6시30분 방콕 국제 공항을 떴다. 타이 항공사의 DC-8기는 얼굴이 검은 인도네시아, 타이 노무자들과 넥타이를 맨 한국 상사원들과 흰 보자기를 머리에 눌러 쓴 아랍사람들로 꽉 메워졌다. 고도 10킬로미터에서 서쪽으로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야간 비행은 밤 열차처럼 단조로웠다. 음악 방송용 리시버를 끼웠다가 벗었다가 하다가 잠에 빠져버리는 승객들이 많았다. 뒷자리에서는 강인하게 생긴 아랍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유행가를 부르고 있었다.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창 쪽에 앉기를 좋아하는 나는 비행기 날개 위로 가깝게 당겨져 보이는 어슴프레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약간의 불안과 큰 호기심으로 미지의 도착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칠흑의 야경이 깨어진 것은 이륙 뒤 네 시간쯤이 흐른 이란 남부 상공에서부터였다. 저 아래 암흑의 캔버스 위에서 불빛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희뿌연 불빛과 함께 붉은 색이 많이 도는 화염이 나타났다. 그 불빛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불꽃. 한 시간쯤 흐르자 바다가 나타났다. 아라비안 걸프. 그 바다 위에서도 불빛이 나타나 거울 같은 海面(해면)을 조명하고 있었다. 그 불빛도 두 가지. 형광등 불빛처럼 흰색이 많은 것, 그리고 붉은 색이 진한 불빛, 前者(전자)가 유조선의 불빛, 後者(후자)가 해상 유전의 불꽃이라고 우리는 단정했다. 사막, 바다, 암흑의 화폭 위에서 간간이 타오르는 기름의 불꽃. 저것이 이 메마른 熱砂(열사)의 힘, 이 세계의 문명을 돌리고 있는 동력, 한국인들의 애를 태운 마력의 광물이 아닌가.
  
  
[ 2014-05-06, 2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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