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한국인 만나는 게 가장 겁난다."
육지사람이 잘 모르는 바다와 船長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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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경에 알 아하마디 항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던 동해 2호가 좀 늦게 입항할 것이란 電文(전문)이 KOTC로 들어왔다. 이유는 원유가 한국 안에서 넘치고 있어 유조선의 속도를 더욱 줄여야 하게 되었기 때문인 듯.
  
   KPC 경영층 및 중견 관리층과 면담했다. KPC는 쿠웨이트 재정 수입의 90퍼센트 이상을 맡고 있는 사실상의 국가 그 자체다. '아밀'(국왕)이란 단어 다음으로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 'KPC'인 것 같다. 중간 관리층과 경영층은 거의가 순수 쿠웨이트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늘 아랍복장으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머리는 서구화된 것 같은 깔끔한 엘리트들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의 나이. 거의가 30대 초반이었다.
  
   석유 장관 겸 KPC 회장 세이크·알리·알·칼리파 씨는 34세, 루미 상무는 32세, 원유 및 석유 제품 판매부장 후세인-알·샴마 씨는 31세, 선박연료 판매부장 압둘·아미즈·알·나즈디 씨는 26세. 석유장관은 하버드대 출신 등등 많은 관리층 직원들이 서구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석유의 혜택을 흠뻑 받고 자란 세대이며 쿠웨이트 정부가 의도적으로 양성한 젊은 지도층이다. 이들은 통 겁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들은 예절바르면서도 그들이 입안한 석유정책에 대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샴마 부장은 '우리는 직책의 상하를 떠나 격의 없이 토론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나이와 경험과 교육에서의 동질성이 이들 젊은 오일맨에게 강력한 팀웍을 주고 있는 듯했다.
  
   나즈디 부장은 '쿠웨이트인의 기질적 특성은 신축성과 단순성에 있다'고 말하면서 천성적인 예민한 현실 감각을 자랑하기도 했다. 쿠웨이트는 이 순수 원주민 출신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이 나라의 고민이 있다. 쿠웨이트의 인종 및 사회구조는 이중적이다. 42퍼센트의 쿠웨이트 원주민들이 노른자위를 누리고 있고 58퍼센트의 非(비)쿠웨이트인들이 富(부)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생활하고 있다. 정부는 58퍼센트의 非쿠웨이트인에겐 시민권을 주지 않고 있다. 이들은 따라서 사회보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非쿠웨이트 외국인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쿠웨이트인과 손잡지 않고는 회사도 차릴 수 없으며 증권시장에서도 영업할 수 없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 나라에서 수십 년간 대대로 산 외국인에게만 시민권을 주고 있어 순수 쿠웨이트인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머리수에선 소수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순수 쿠웨이트인들의 출산을 장려, 이 逆轉(역전) 현상을 바로잡아 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아들 딸 적게 낳기 풍조에 젖어 있어 정부에선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외국인에게도 공무원이 될 수 있게 했다. KPC나 공보부 청사에선 팔레스타인 여자들이 쿠웨이트 상관의 비서로 많이 일하고 있었다. 외국인 공무원들은 그러나 승진에서 큰 제한을 받고 있다. 지금 쿠웨이트 관공서나 실업계의 실무진은 거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데 이들은 결코 수뇌부로 뛸 수 없다.
  
   쿠웨이트 정부는 進退兩難(진퇴양난)의 처지다. 지금 정책대로 쿠웨이트인의 순수성과 특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시민권의 문호를 닫아 둔다면 비록 정부가 외국인에 대한 장기 거주를 지금처럼 계속 제한한다 하더라도 순수 쿠웨이트인과 외국인수의 격차는 자꾸만 넓어져 갈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의 불만도 쌓여 갈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인들을 쿠웨이트 국민으로 흡수한다면 富의 배분과 정치, 사회적 주도권의 문제가 대두되게 마련이다. 석유 고갈 이상으로 쿠웨이트의 장래에 큰 문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다수파가 된 외국인의 문제다.
  
   쿠웨이트 시장에 갔더니 상인들이 '여보세요' '어서오세요' '딱 잘라 깎아 줍니다' '안녕하세요' 등 짧은 한국말을 하면서 우리를 불렀다. 공보부 건물 뒤에 있는 이 시장은 남대문 시장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물건값도 싼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상인들이 화끈하고 털털했다. 눈만 내어놓은 여자 상인들도 좌판 위에 앉아 옷가지들을 팔고 있었다. 값도 20∼30퍼센트쯤 예사로 깎아 주었다. 어떤 상점에서 양가죽 하나를 놓고 주인은 7KD를 내라, 우리는 6KD로 하자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때 키 큰 팔레스타인 상인이 오더니 우리를 끌어 당겨 자기 상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똑같은 양가죽을 6KD에 내놓았다. 그래도 고객을 빼앗긴 주인은 어깨를 으쓱할 뿐 그만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다. 쿠웨이트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계층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한다. 이 시장 한구석에 가니 수십 명의 아랍인들이 종이쪽지를 몇 장씩 들고 웅성대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엔 증권 시장인 줄 알았으나 종이쪽지가 채권을 닮아 한국에서처럼 전화국 앞에서 채권들을 사 모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까 대여섯 명이 우루루 우리를 에워쌌다. '꼬레아, 꼬레아' 라고 말하며 그들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짧은 영어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들이 들고 있는 쪽지가 物票(물표)임을 알게 되었다. '닭 4만 마리' '식용유 5000갤런' '시멘트 5000푸대' 따위로 적혀 있는 물표를 서로 주고받으며 팔고 있는 미국의 상품거래소와 닮은 시장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자기들 가운데 코가 납짝한 상인을 가리키며 '꼬레아와 닮았다'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이 시장엔 금요일만 되면 한국인 건설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한국인들과는 어떤 동양인보다도 친숙한 그들이다. 쿠웨이트 인구의 약 1퍼센트에 해당하는 1만여 명이 한국인이다. 거의가 서른 세 군데 건설 공사장의 노동자들.
  
   열세 곳의 상사 지사원들도 한 몫을 차지한다. 몇 군데 상사에서는 정보와 교통의 요충이며 분위기가 퍽 자유스러운 이곳에 中東(중동) 본부를 두고 있다. 왕궁에서부터 슝아이바 항만, 제6환상도로, 시바·알·살렘 주택단지, 도하 발전소, 도하 상수도 급수시설 등등 한국인들이 만든 시설물만 밟고 보며 시내를 종일 돌아다닐 수가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에 대한 쿠웨이트인의 평가는 과하다고 생각될 만큼 대단하다. 일을 맡겨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외국인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것이 거의 일치된 견해다. 능력에서뿐 아니라 '착함과 준법정신'에 있어서도 높은 점수를 따고 있다.
  
   한국인들은 최근에 死刑(사형)을 당한 태국 사람들처럼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나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대한 이런 평가는 오로지 건실한 노동자들의 克己(극기) 덕분이라 하겠다. 술 도박 여자가 없는, 남자의 본능적 욕망을 모두 거세해버린 것 같은 금욕적인 사회 분위기 아래에서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으면서도 모두가 나라의 체면을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위대성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쿠웨이트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선경(주)의 김용성 지사장이나 아세아 상선의 장석용 주재원은 늘 팽팽한 긴장감과 자신감에 차 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쿠웨이트인을 대하는 태도, 현지 고용인을 부리는 태도, 쿠웨이트 관공서를 출입하는 자세는 '겁이 없다'고 할 만큼 당돌하고 매끈했다. 적극성, 자신감, 그리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몸에 익은 이들은 이곳의 한국 상사원들의 평균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외국에 나오면 자신의 잠재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데 놀란다는 것이다. 이들을 그토록 날쌔게 만들고 있는 것은 항상 그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강박 관념-수출실적이다. 선경(주)의 중동 본부장 노영우 이사의 말 : "실적이 안 오르면, 목표액에 미달하면 잠이 안 옵니다. 상사원 한 사람 앞으로 한 달에 쓰여지는 돈이 5000∼6000달러라는 것을 압니다. 영업실적이 이런 회사 경비도 못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속이 탑니다. 그래서 샘플 가방 하나만 들고 생면부지의 사막이나 오지로 바이어들을 찾아 나서는 겁니다. 생활환경이 좀 나빠도 영업이 잘 되는 지사로 나가야 몸은 고달프지만 속은 편하지요."
  
   지난해 현대 종합상사의 쿠웨이트 지사는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쿠웨이트에 본부가 있는 아랍 연합 해운회사(UASC)로부터 세계조선 역사상 단일 주문으로는 가장 큰 4억 달러짜리 주문을 따낸 것이다. 현대 울산조선소에 아홉 척의 2만5000톤급 컨테이너 전용선 주문이 떨어진 것이다. 이 주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1년 반 동안 공작을 했다는 쿠웨이트 지사장 서영길 씨는 말했다.
  
   "모두 열다섯 개 조선소에서 입찰에 응했지요. 1차 심사에서 네 회사가 합격했습니다. 값을 깎으려는 것이죠. '저쪽은 이렇게 건조비를 내렸으니 당신 회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식으로 수주단가를 깎아 가는 것이 아랍인들의 특유한 상술입니다. 이때는 정보 싸움이지요. 경합 회사가 얼마를 불렀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행히 UASC의 수위에서 회장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친면을 익혀 놓았습니다. 마지막엔 히다치 조선과 우리가 남았는데 히다치에서는 양쪽이 갈라 먹자고 제의하더군요. 이때는 정말 판단이 안 서더군요. 우리는 결국 히다치의 제의를 거부, 주문을 송두리째 먹었습니다. 울산에선 아예 도크를 비워 놓고 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수주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날 취재반은 수웨이크 부두에 정박한 신한 해운의 제1 해정호(적재 톤수 2만5600 톤)를 찾아갔다. 철근 등 건축 자재를 부리고 있었다. 쿠웨이트를 거쳐 이라크의 한국 공사장으로 들어갈 물건들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의 아라비아灣(만) 방면 항구가 이란 공군의 폭격으로 부서지고 이란 해군에 의해 봉쇄되었다. 이라크는 우호국인 쿠웨이트를 통해 물자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라크로 들어가는 물자들이 지난해부터 쿠웨이트 항구에 몰려들고 있다. 항구에 부려진 물자는 트럭으로 옮겨 실어져 陸路(육로)를 통해 이라크로 들어간다. 이 陸路는 왕복 2차선인데 요즘은 차량 행렬로 큰 교통 체증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쪽으로 들어가는 車線(차선)은 화물 만재 트럭의 무게에 눌려 반대 차선보다 몇 센티나 내려앉았다고 할 정도이다.
  
   한국 건설회사들은 이라크를 큰 시장으로 지목, 맹렬한 수주 활동을 펴 이제는 사우디 다음 가는 건설 시장으로 부각되었다. 현대건설 한 회사가 따 놓은 공사계약고가 28억 달러나 된다. 이에 따라 쿠웨이트의 한국회사 지사들은 이라크의 후방 보급 지원 기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해정호는 한국 국산엔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최초의 국산 신조선. 선장 황사근 씨(48세)는 우리를 만나자 하소연부터 했다. 어제 쿠웨이트 시내로 외출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마침 한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을 발견, 28달러를 주고 이탈리아製(제) 와이셔츠를 하나 샀다고 했다. 배로 돌아와 자세히 보니 그것은 국산 와이셔츠였다. 국산 상표를 뜯어내고 그 위에 이탈리아상표를 붙인 것이더라고 했다.
  
   "외국에 나가면 누가 제일 무서운지 압니까? 한국 사람 만나는 게 제일 겁이 난단 말입니다. 반가운 생각보다는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부터 생겨요. 그 주인이 한국 사람한테만 그런 짓을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람 사는 곳에 착한 사람만 있을 수는 없지만 극소수의 양식 없는 한국인들은 대다수의 성실한 한국인들이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술을 밀매하여 치부한 식당 주인이나 남의 운전면허를 빌어 차를 모는(현지 경찰관은 동양사람의 얼굴을 사진 대조로는 구별해 내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 사람이나 덤핑 입찰로 우리 회사들끼리 出血(출혈)경쟁을 벌이는 건설회사들을 현지 공관에서 철저하게 감독, 선도해야 한다는 얘기를 우리는 여러 번 들었다.
  
   해정 1호에서 하역 작업을 구경했다. 기중기의 줄을 끌어내려 철근을 묶다가 말고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하역 인부가 종종 눈에 뜨인다. 장석용 씨는 아랍 인부들이 순박하기 짝이 없다고 칭찬한다. 담배를 피우라고 한 갑째로 주면 한 개비만 뽑고 나머지는 꼭 돌려준다는 것이다. 갑째 가지라고 하면 악착같이 사양하는 그들이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는 그런 자세는 이슬람 종교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고 장씨는 말했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손발을 맞추어 가며 일을 해야 하는 데서는 속이 답답할 만큼 소질이 없는 것이 아랍 인부들이라고 했다. 심성은 착하지만 능률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랍인들이라는 인상을 많은 현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듯했고 이스라엘한테 계속 당하는 까닭을 그런 非조직성에 돌리는 이들도 있다.
  
   쿠웨이트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세계최고가 아니다 1979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8500달러. 같은 해 아랍에미레이트 연방의 아부다비는 1인당 국민소득 3만1502달러를 기록,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쿠웨이트가 아직도 세계 제1이라고 자랑하는 부문이 있다. 그것은 국민 1인당으로 계산한 저개발 국가 원조 금액이다. 지난 1974년(이것이 최근 통계) 집계에 따르면 쿠웨이트는 국민 1인당 501달러 꼴로 원조를 했다. 이 액수는 스웨덴의 50달러, 프랑스의 30달러, 미국의 13달러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서 쿠웨이트가 '세계에서 가장 積善(적선)을 많이 하는 나라'임을 입증하고 있다.
  
   1970년대에 쿠웨이트는 총 국민생산의 13퍼센트를 원조로 썼다니 그 '선심'의 통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겠다. 쿠웨이트가 1961년에 독립한 뒤 79년까지 한 외국원조는 110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 원조는 또 이자도 낮고 상환기간도 긴 '관대한 조건'이었다. 쿠웨이트 원조의 대부분은 인근 아랍 국가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크에 원조를 많이 하고 있다. 이라크는 한때 쿠웨이트와 국경 분쟁을 벌이기도 했던 앙숙이었으나 이란 혁명 이후에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쿠웨이트는 국가안보를 위해 이런 원조를 물쓰듯 하고 있는 셈이다. 쿠웨이트는 군사력으로는 자신의 영토를 이웃 강대국, 즉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로부터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쿠웨이트의 안보는 주변 국가에 잘 보이는 방법으로써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인 것 같다.
  
   이라크에 대한 막대한 원조는 호랑이 같은 형님을 달래려는 동생의 상납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쿠웨이트는 몇 년 전 의회를 해산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자유화 물결의 영향을 겁낸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쿠웨이트는 또 아랍 국가 가운데 소련 및 동구권과 가장 사이가 좋은 나라이다. 요컨대 이 나라는 모두를 친구로 만드는 길만이 국가안보의 첩경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경찰과 군대의 편성에서 드러난다. 쿠웨이트 국민이 아니면 경찰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非쿠웨이트인, 곧 외국인도 군인이 될 수는 있다. 이것은 치안 유지를 국가안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쿠웨이트인은 무역과 금융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예민한 현실 감각을 국방외교의 줄타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머리수가 몇 안 되는 사람들, 그것도 가지각색의 민족으로 구성된 복합 종족 국가에 엄청난 富가 안겨졌다는 것은 큰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 2014-05-07, 10: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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