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最大 불간 油田 탐험
陸地 사람은 잘 모르는 바다와 船長 이야기(5)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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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의 都心地(도심지)는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 주변 넓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심부를 여섯 겹의 고리모양 도로(RING ROAD)가 감싸고 있고 방사선 모양으로 뻗은 도로가 도심과 교외,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도심지에 있는 '알무나크'라는 빌딩의 1층 13평이 31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평당 가격이 17억5000만 원이란 얘기다. 쿠웨이트가 좁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 취재반은 오늘 하루 동안 세 사람의 안면 있는 쿠웨이트 사람과 '우연히' 부딪혔다. 메리디안 호텔에서 루미씨, 공보부 청사에서 책방주인, 사하라 호텔 앞 공터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던 백화점 심부름 소년. 모두 이 며칠 사이 알게 된 사람들이다.
  
   이렇게 좁디좁은 땅에 기름의 축복이 없었다면 쿠웨이트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한 해에 300달러도 안 되는 기아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리란 계산도 있다. 쿠웨이트에 기름이 매장돼 있다는 것은 1910년대부터 유럽에 알려져 있었다. 불간 지역에선 기름이 땅거죽에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시추가 시작된 것은 영국계 BP와 걸프가 KOC(KUWAIT OIL COMPANY)를 합작 설립, 租鑛權(조광권)을 얻은 3년 뒤인 1936년이었다. 첫 구멍은 지하 2500미터까지 들어갔으나 허탕이었다. 두 번째 시추는 1938년에 남쪽 사막에서 착수되었다.
  
   그 해 2월26일 시추봉이 지하 1200미터에 이르렀을 때 구멍난 풍선처럼 무지무지한 가스압력이 검은 액체를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시추반은 폭발적인 분출을 억제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첫 구멍으로는 유전의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KOC는 그 뒤 4년 동안 여덟 구멍을 더 뚫었다. 불간 유전으로 이름 붙여진 이 엄청난 기름밭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났다. 불간 유전의 평면적은 약 100평방 킬로미터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석유를 품고 있는 沙岩層(사암층)과 석회암 층의 두께가 300미터를 넘었다. 지층의 내부 압력도 굉장하여 기름을 수월하게 분출시켰다. 뒤에 이 유전의 매장량은 700억 배럴쯤으로 밝혀졌다. 700억 배럴! 한국의 약 350년 소비량에 해당한다.
  
   쿠웨이트의 약 800배 면적을 가진 소련의 확인 매장량보다도 많은 양이다. 중국의 세 배쯤 되는 매장량이다. 이 유전은 발견 당시 세계 최대였다. 몇 년 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와르 유전이 발견됐는데 매장량이 800억 배럴, 불간은 2위로 밀려났지만 불간을 아직도 세계 최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불간은 단일 오일풀인 데 가와르는 여러 개가 합쳐진 복합 유전이기 때문이다. 불간 유전 하나가 쿠웨이트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다음가는 석유 大國(대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불간의 매장량과 산유량은 쿠웨이트 전체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40년 동안 기름을 퍼냈는데도 아직 30퍼센트밖에 축을 못 내고 있는 기름 못이 불간이다. 이 유전의 기름은 세계에서도 가장 채굴 原價(원가)가 싸다. 油層(유층)의 깊이가 지하 1000∼1400미터로 매우 얕은 데다가 평면적이 좁고 지층 압력이 높아 채굴 작업에 경비가 적게 들고 원유 積出港(적출항)까지의 거리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지금 원유 수출가격이 배럴당 32.3달러지만 채굴 원가는 1달러 안팎일 것이다. 이 원가는 북해의 10퍼센트도 안 된다. 전문가들은 불간 유전의 유층에서 더 깊이 뚫고 내려가면 또 다른 유층이나 가스층이 발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심도 6000미터 시추 결과로 가스층이 深部(심부)에 발달해 있음이 확인되었다. 불간 유전의 수직적인 확장이 계속되면 매장량은 더욱 늘 것 같다.
  
   쿠웨이트의 석유 센터는 쿠웨이트市 남쪽 65킬로미터 지점에 자리잡은 아하마디市에 있다. 원유생산, 정제, 적출의 중추신경이 여기에 있다. 이 소도시는 불간 유전의 북쪽 가장자리에 속한다. 영국석유(BP)가 건설한 이 도시엔 나무가 많고 건물이나 길이 깨끗하게 가다듬어져 있어 유럽의 작은 도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곳에는 석유 탐사 생산 및 수출을 맡고 있는 KOC본사와 사택들이 있다. KOC 직원은 5000여 명. 그중 290여 명은 서양기술자들. 이곳 KOC 공보실의 안내로 우리는 불간 유전 지역으로 들어갔다. 석유시설 중에서도 유전시설은 가장 중요하며 통제가 매우 엄격하다.
  
   우리는 KPC의 루미 상무 소개로 이례적인 사진 촬영 허가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 기자로는 첫 취재다. 불간 유전은 한국과도 관계가 깊다. 울산 정유공장이 1964년 봄에 준공돼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 이 유전의 기름이었다. 1960년대에 한국인이 사용한 대부분의 기름이 API(미국 석유 협회 제정 원유비중 등급) 31도의 불간 원유였다. 이 원유는 벙커시유 등 重質油(중질유)를 많이 정제해 내는 데 적당, 한국의 산업 구조와 잘 어울렸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한국이 고도경제 성장을 줄기차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 불간 원유였다. 불간 원유는 높은 유황 농도가 한국의 환경을 더럽히는 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는 것도 기억해 둘 만하다.
  
   오일 로드의 시발점이기도 한 불간 유전에 들어선 것은 정오경. 아하마디시에서 약 4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이곳은 황량한 사막. 청명한 하늘 아래 끝없이 뻗어 간 이 모래밭 밑은 바로 기름의 바다이리라. 'AH-IO-NBT'란 글자와 빨간 해골 표지가 함께 붙은 은빛 나는 油井(유정)의 坑口(갱구) 장치 앞에 섰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았다 하여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이 坑口 장치는 지하 1250미터에서 기름을 뽑아 올리고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기술자들이 油井 내부의 압력을 재고 있었다. 坑內(항내) 압력은 기름을 분출시키는 원동력이므로 석유 채굴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석유를 많이 뽑아 내면 이 압력이 약해져 종국에는 유전의 수명이 끊어진다.
  
   작업반장 이삭 라시드 씨는 '압력이 아직도 600 PSI(POUND PER SQUARE INCH)나 된다'고 자랑했다. 불간유전의 지층 압력이 이렇게 센 것은 석유에 천연가스가 많이 녹아 있기 때문. 기름 1리터가 분출하면 가스가 800리터 꼴로 따라 나오는 것이 이 유전의 특징. 이 유전에서는 또 기름에 물이 거의 섞여 나오지 않아 채굴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그러니 불간유전은 최상의 조건만 구비한 기름밭이다. 이 유정에서 분출된 기름과 가스는 지름 20센티쯤의 송유관을 통해 集油(집유) 센터로 몰려간다. 이 송유관을 약 1킬로미터쯤 좇아 우리는 'G·C 22'라고 쓰인 집유 센터에 도착했다. 아하마디 유전(불간 유전이란 불간, 마그와, 아하마디 3大 유전을 총괄하는 뜻으로 쓰인다)의 22번 집유 센터란 뜻.
  
   이 센터에는 서른일곱 가닥의 송유관이 집중돼 있었다. 서른일곱 개 유정에서 뻗쳐 온 송유관들. 집유 센터에서 기름과 가스는 분리된다. 가스는 액화를 위해 별도의 센터로 다시 보내지고 일부는 집유 센터 바로 옆 굴뚝을 통해 태워지고 있었다. 쿠웨이트에는 750개의 유정이 있는데 350개는 불간 지역에 있다. 집유 센터는 30∼37개의 유정 분포지역 맨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이 센터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송유관이 거미줄처럼 사막 위를 수놓고 있는 장관이 눈에 확 들어와 희대의 대유전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유 센터에서 가스를 떨어버린 기름은 5만 배럴 용량의 저유 탱크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쉰 뒤 2만5000리 떨어진 한국의 울산을 향해 原油(원유)는 다시 이동을 시작한다. 저유 탱크에서 다시 혼합 지점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우리를 불간으로 안내해 준 사람은 32세의 알 나쉬트 여사. '백 퍼센트 쿠웨이트 인이다'고 자랑한 나쉬트 여사는 카이로 대학에서 아랍문학을 전공. 13년째 KOC에서 홍보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여덟 달짜리 아기를 두고도 부부 맞벌이를 한다는 나쉬트 여사는 오일 로드 기사가 실린 '마당' 잡지를 꼭 보내달라고 주소를 적어 주었다.
  
   쿠웨이트의 여덟 개 유전에서 퍼 올려진 기름은 송유관을 통해 알 아하마디의 과힐 지구 근처에 있는 혼합 지점(MIXING POINT)으로 모여든다. 이곳은 로터리와 같은 데다. 이 로터리로 몰려든 기름은 서로 섞인 뒤 '매니폴드'라는 분리 장치를 거쳐 남쪽 저유탱크군(群)과 북쪽 탱크군(群)으로 갈라져 흘러간다. 이곳은 말하자면 원유의 교통정리를 해주는 시설인 것이다. 원유를 이렇게 섞어도 별 탈이 없는 것은 쿠웨이트의 원유는 어느 유전 것이든 비중이나 성분이 거의 균일하기 때문이다. KOC에서는 저유탱크群을 '탱크 팜', 곧 '탱크농장'이라고 부른다. 거대한 백색 탱크들이 양떼처럼 몰려 있어 비행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곳이다.
  
   남쪽 탱크 농장에는 35개의 탱크가 있는데 네 개는 물탱크, 큰 저유탱크엔 57만 배럴이 들어간다. 북쪽 탱크 농장엔 열 여섯 개의 탱크가 있다. 두 탱크 농장의 저유능력은 약 1000만 배럴. 이 탱크 농장은 해발 약 100미터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높이 덕분으로 저유 탱크의 밸브를 열면 원유는 중력의 작용에 따라 송유관을 타고 저절로 약 10킬로미터쯤 떨어진 알 아하마디 항구의 부두로 미끄러져 흘러내린다. 남쪽 탱크 농장은 일곱 가닥의 송유관을 통해 남쪽 부두로, 북쪽 농장은 북쪽 부두로 이어진다. 사우스 피어로 갔다.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KOTC의 베루티 영감. 요르단의 웨스트 뱅크에 살다가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나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나는 두 번 난민이 되었지요, 1947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웨스트 뱅크로 쫓겨났고 1967년 3차 중동 전쟁 때는 다얀에 의해 웨스트 뱅크가 점령되는 바람에 또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유감이 많겠다'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남쪽 부두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세 번 검문을 받았다. 담배와 라이터는 맡겨야 했다. 사진기의 플래시도 쓰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물론 폭발사고 방지를 위한 예방조치였다. 부두는 1949년에 만들어졌다. 쿠웨이트가 원유를 처음 수출한 것도 1946년 6월, 부두 근처에서 당시의 아하마드 국왕이 영국 유조선으로 송유관 밸브를 열어 원유를 실으면서부터였다.
  
   T자 모양으로 바다로 돌출한 접안 시설(제티)의 길이는 1킬로미터쯤. 여덟 척의 8만 톤급 이하 유조선이 동시 接岸(접안)할 수 있다. 은빛 송유관이 제티를 따라 직선으로 뻗어 있었고 송유관을 유조선에 연결시키는 '칙산 유닛'(CHICKSAN UNIT)이 장거리 대포처럼 하늘로 향해 꺾이어진 채 쉬고 있었다. 왼쪽 저편 해안에선 日産(일산) 30만 배럴짜리 알아하마디 정유 공장 소각탑에서 내뿜는 두 개의 불꽃이 날름거리고 있었다. 오른쪽 사막 지평선에선 불간 유전이 토해내는 흰 연기가 衝天(충천)한다.
  
   부두엔 유조선이 한 척도 없이 한가했다. 통제관 라시드 파와스 씨(30세)는 '여기서는 시간당 6000톤, 북쪽 부두에선 시간당 1만2000톤의 원유를 실을 수 있다'고 했다. 접안한 배에 송유관의 끝을 연결한 뒤 아하마디 시내에 있는 통제실로 연락하면 원유 적재가 시작된다. 통제실에서는 어느 탱크의 마개를 열까를 결정, 스위치만 누르면 탱크와 유조선은 송유관을 통해 자동 연결되고 유정→집유 센터→혼합지점→탱크농장→부두→유조선으로 이어진 기름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통제실에서는 팔레스타인 관제사들이 공항의 관제사들처럼 계기로 메워진 상황판 앞에서 원유가 탱크에서 흘러 나가는 상황을 시시각각 점검하고 있었다. 이 통제실은 컴퓨터로 더욱 자동화될 예정이다.
  
   사우스 피어 약 6킬로미터 북쪽에는 '노스 피어'가 있었다. 이 부두는 15만 톤까지의 중급 탱커를 다루는 곳이다. 우리가 배를 탈 '시 아일랜드'(SEA ISLAND)의 모습이 이곳에선 수평선 위에서 가물가물 보였다. '시 아일랜드'는 초대형 유조선을 위해 1968년에 만들어졌다. 해안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이 인공섬까지는 북쪽 탱크 농장에서 뻗어 나온 직경 120센티의 해저 송유관이 깔려 있다. 인공섬 주변의 水深(수심)은 28미터. 인공섬에서 기름을 싣고 간 가장 큰 배는 쉘의 벨라미야호였다. 적재 톤수가 55만3662톤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배다.
  
   인공섬 옆 5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엔 1979년에 만들어진 부이가 떠 있었다. 이 부이에는 인공섬에서 갈라진 해저 송유관이 연결되어 있다. 20만 톤 이상의 초대형 유조선은 인공섬의 접안 시설이나 이 부이를 이용, 기름을 싣는다. 여기서는 펌프를 돌려 기름을 부어 넣는다. 시간당 1만5000톤의 기름이 쏟아져 들어가니 기름의 폭포수라고나 할까? 우리는 원유 적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KOC의 책임자들도 만났다. 원유 수출 담당관 칼리드·M·호마이드, 원유 저장부장 압둘·라힘·알·아와디, 감독 선장 바라크씨는 쿠웨이트 기름의 선박 출구룰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들의 가장 큰 고객중의 하나인 한국에서 온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 설명해 주었다. 바라크 선장은 '이제는 덩치 큰 배만 다루다가 보니 재미가 붙어 작은 배는 흥미가 없다'면서 걸프(아라비아灣을 줄여서 보통 걸프라고 부름)는 强風(강풍)과 강한 조류가 없는 곳이라 유조선 통제엔 쉬운 곳이라고 했다.
  
   "한 달에 평균 150척쯤의 유조선을 받아들여 도선, 접안, 기름 적재, 출항 등의 뒷바라지를 해 주지요. 우리는 사고 예방을 위해 우수한 도선사의 양성에 가장 큰 신경을 씁니다. 우리 도선사들은 최저 8년 이상의 선원생활을 한 사람들로서 평균 연령은 37∼38세, 2년마다 한 번씩 정밀 신체 검사를 받습니다. 이 검사에서 안경을 낄 정도로 눈이 나빠졌다든지 반사 신경이 무디어졌다든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면 그만두게 하지요. 도선사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시 아일랜드를 맡고 있습니다. 걸프는 세계에서도 가장 맑은 바다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의무지요."
  
   쿠웨이트 정부는 1964년에 벌써 해양 오염방지법을 제정, 유조선의 기름 누출 사고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있다. 100PPM 이상의 기름을 누출시킨 책임자에겐 최고 4만 디나, 즉 약 1억 원의 벌금을 물림과 동시에 오염 제거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기계의 불가항력적인 고장으로 일어난 사고는 면책된다.
  
   이런 규제 덕분인지 미나·알·아하마디(미나는 아랍어로 항구란 뜻) 원유 적출항에서 우리는 한 방울의 기름도 海面(해면)에서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루 평균 백만 배럴의 기름이 실려지고 하루 평균 세 척이 유조선이 기름을 싣는 바다가 明鏡(명경)처럼 깨끗하였다. 북쪽 부두에서는 아랍인이 송유관 밑으로 낚시질을 하고 있었고 물고기떼가 몰려다니는 것을 잔교(JETTY)에서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 제티의 송유관 위에는 갈매기떼가 모여 앉아 한가로운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베루티 영감이 "멋진 사진을 찍으라!" 면서 나무토막을 갈매기떼를 향해 던졌다. 갈매기들이 구름처럼 날아올랐다.
[ 2014-05-07, 10: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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