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조종보다 어려운 유조선 조종
陸地사람은 잘 모르는 바다와 船長 이야기(7)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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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2호는 오전 10시쯤 시 아일랜드 통제실의 지시에 따라 닻을 올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3해리쯤 기어가 시 아일랜드 북동쪽 1킬로미터 해상에 도착, 뱃머리를 다시 시 아일랜드 쪽으로 돌리고 잠시 멈추었다. 착륙 준비에 들어간 비행기처럼. 사우디 씨를 대신하여 아침 6시에 근무 교대를 한 도선사는 이라크인 나딤 마나실씨(42세). 그는 몇년 전 선장 시절 자기 배를 울산 미포 조선소에 집어넣어 정기점검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얻었다는 현대 그룹의 푸른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마나실 씨는 알 파히아호에 올라 출항을 유도해 주고 통선 편으로 동해 2호로 향했다. 우리는 사방이 유리창인 통제실에서 이제 막 펼쳐지려는 슈퍼 탱커 접안 작전을 관람키로 했다.
  
   당찬 모습의 터그 보트 두 척이 동해 2호의 오른쪽 뱃전에 붙어 수백 배나 되는 괴물을 시 아일랜드 쪽으로 서서히 밀기 시작했다. 동해2호는 도선사의 지시에 따라 스크류 회전을 조정하며 시 아일랜드 진입로를 살금살금 더듬어 나갔다. 동해 2호의 이동속도는 너무나 느려 현미경이라도 들여대야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해 2호가 1킬로미터를 남진하여 시 아일랜드와 약 500미터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기까지 40분이나 걸렸다. 낮은 포복 정도의 이동속도라고나 할까. 이제 터그 보트는 선체 길이가 3분의1킬로미터나 되는 동해 2호를 가로로 밀어 시 아일랜드 쪽으로 접근시키기 시작했다. 선체와 해면이 닿은 띠를 따라 하얀 거품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 조류는 시 아일랜드에서 동해 2호 쪽으로, 그러니 동해2호를 멀리 떠내는 방향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도선사는 그런 조류 방향을 기다려 접안 유도에 나선 것이었다. 이 조류가 11만 톤(선체 무게와 밸러스트 물을 합친 것)이나 되는 동해 2호와 시아일랜드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고 있었다. 만약 조류가 동해 2호를 시 아일랜드로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유조선의 고삐를 잡을 수 없어 탱커와 잔교의 충돌 위험이 생기게 된다. 동해 2호의 거대한 철벽은 이제 우리의 視野(시야)를 점점 더 크게 가로막으며 시 아일랜드로 엉금엉금 다가오고 있었다. 갑판 위에서 왔다갔다 하는 선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 꼬리에서는 스크류가 반쯤 물위로 날개를 드러낸 채 白波(백파)를 일으키고 그 주위에는 갈매기떼가 하얗게 모여들어 파도타기에 열중했다.
  
   이 500미터의 간격을 좁히는 데 약 50분. 드디어 동해 2호의 왼쪽 뱃전이 슬그머니 잔교에 붙었다. 찌징 찡, 끼깅낑, 끄긍 끙…. 강철과 강철, 강철과 나무가 부대끼는 마찰음이 海面(해면)을 찢었다. 시 아일랜드의 접안 시설에서 탱커의 육중한 무게를 받아내는 손은 넙적한 나무판 뒤에 굵은 용수철을 붙여 완충력을 준 것이다. 그래도 동해 2호가 시 아일랜드에 착륙하는 충격을 우리는 활주로에 닿은 항공기의 승객처럼 느낄 수 있었다. 접안으로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 괴물을 단단히 붙들어매야 한다. 갑판원들이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줄잡이'가 시작됐다. 도선사는 선교에서 '헤드라인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뱃머리에서 워키토키로 받은 1등 항해사 최명기씨(29세)는 팔뚝만한 나일론 로프를 船首(선수)에서 시 아일랜드로 던지게 했다.
  
   시 아일랜드의 쿠웨이트측 일꾼들이 받아 잔교에 붙들어매었다. 첫줄이 부두에 매어지는 시각은 'First Line to Sea Island : 13 : 30'식으로 기록되어 입항 시간으로 잡혀지고 마지막 줄이 풀려지는 시각은 출항시간으로 기록되므로 해운 업계에선 이를 매우 중요하게 취급한다. 첫줄에 이어 모두 열 여섯 개의 와이어로프와 나일론 로프가 시 아일랜드로 던져졌다. 이 줄들을 고삐로 삼고 예인선과 동해 2호의 스크류를 채찍으로 하여 도선사는 동해 2호의 정밀한 위치조정에 들어갔다. 동해 2호는 시 아일랜드의 잔교를 비벼대는 쇳소리를 내면서 앞뒤로 나갔다가 물렀다가를 되풀이했다. 이것은 동해2호의 파이프라인 입 구멍과 시 아일랜드의 送油管(송유관) 입 구멍이 정확하게 포개어질 수 있도록 '입맞춤 위치'로 좁혀 가는 작업이다.
  
   이런 줄잡이 작업에서 간혹 줄이 터지는 수가 있다. 그러면 대포소리가 난다. 야구방망이처럼 굵은 쇠줄이나 삼 줄은 끊어진 충격으로 코브라같이 ㄹ자로 흔들리며 튕겨난다. 이 줄에 맞아 선원의 머리가 동강나 7, 8미터나 날아가거나 가슴뼈가 으스러져 즉사한 사고의 목격담을 필자는 숱하게 들었다. 다행히 동해 2호는 그런 사고 없이 잔교에 단단하게 붙들어매어졌다. 동해 2호는 空船(공선) 상태에서 붕 떠 있었기 때문에 나지막한 시 아일랜드를 왼쪽 옆구리에 차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잔교와 동해 2호 사이에 사다리가 걸쳐지자마자 '떠다니는 작은 대한민국'으로 넘어갔다.
  
   이덕인 선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직접 우리를 船室(선실)로 안내, 船內(선내) 생활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적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李 선장은 불조심을 되풀이되풀이 강조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선장은 3층 방을 두 개 비워두고 있었다. 방 차림은 중급호텔의 독실 정도. 소파, 책상, 옷장, 침대, 양변기, 샤워시설, 세면대 따위가 튼튼하게 붙박혀 있었다. 면적은 5평쯤. 우리는 앞으로 한 달쯤 우리의 생활공간이 될 선실의 구조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흔히 브리지(Bridge:선교)라고 뭉뚱거려 부르는 船室 및 항해실 건물은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배 끝머리에 솟아 있다.
  
   동해 2호에서는 이 船尾(선미) 구조물이 11층으로 구획되어 있다. 갑판을 지면에 비교한다면 그것은 지상 6층, 지하 5층, 연건평만도 3500평을 넘는 건물이다. 지하 5층은 기관실이 거의 몽땅 차지하고 지상 6층은 거주 및 항해실로 쓰여지고 있었다. 승강기는 지하 2층에서 5층까지 움직인다. 제6층은 브리지, 곧 항해실. 제5층은 캡틴 데크(Captin Deck)로 불리는데 실제로는 선장, 기관장, 도선사 실이 들어 있다. 선장과 기관장실은 각각 넓이가 22평쯤. 집무실, 응접실, 침실로 3등분되어 있고 냉장고는 물론이고 융단이 깨끗하게 깔려 있다. 대기업체의 회장실에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의 품위가 유지되고 있었다.
  
   4층에는 기관사 항해사 통신장 등 일반 사관들의 방. 사무실과 침실이 붙어 있는데 면적은 10평쯤. 3층은 조기장 갑판장 조타수 기관수 등 이른바 수직장(首職長)급의 침실, 사무실은 붙어 있지 않았다. 2층은 식당, 휴게실, 탁구장, 당구장, 조리장. 휴게실과 식당은 사관용과 보통선원용으로 구분되어 보통 선원식당은 다시 수직 식당과 일반선원 식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휴게실에는 영사시설, 텔레비전, 전축, 장기판, 바둑판 따위가 비치되어 있고 지금은 쓰지 않고 있지만 '코스모스 바'라는 주점도 한 구석에 붙어 있었다. 조리시설은 상당히 기계화되어 있었다.
  
   고기, 생선, 채소, 곡물실로 구분된 냉장고는 스무 평짜리 아파트만큼이나 컸다. 고기 뼈를 자르는 기계, 고기를 가루로 만드는 기계, 감자 껍질 깎는 기계, 닭고기와 빵 찌는 기계도 비치되어 있었다. 1층은 일반 선원숙소. 1층은 갑판과 같은 층이고 그 밑이 기관실이라 약간 더운 것 같았다.
  
   이상은 대충 살펴본 선실구조이고 이밖에도 의무실, 약방, 세탁장, 체육실, 야외 수영장 따위가 있다. 李 선장은 '우리 배의 초대 선주가 쉘이라서 그런지 船室은 서양인들의 생활에 맞게 넓고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면서 船室만은 국내 선박들 가운데 최고급이라고 자랑했다.
  
   이 거주 구역은 70개 남짓한 방들로 구성되어 있는 완결된 공동생활 구역으로서 작은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켰다. 선원들은 이 해상 성곽 안에서 매일 기관실, 갑판, 항해실로 출근하고 船室로 퇴근하며, 식당이나 휴게실로 외출하여 하루하루를 보내어야 하는 것이다. 중동의 원유 적출항에 배가 닿으면 가장 분주해지는 사람이 있다.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초사'라고 불리는 1등 항해사. 상선에서는 1항사가 화물을 싣고 부림을 책임지고 있다. 1항사 최영기 씨는 숫기가 많은 총각. 이발할 시간이 없어 장발을 아예 여자처럼 '퍼머'해버린 그는 가냘픈 몸매에 예쁜 웃음을 자주 짓는 청년이었다.
  
   '초사'라고 하면 하급 선원들을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야성적인 사나이라는 선입감이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는 굳어져 있으나 崔 초사의 인상은 '양순하고 꼼꼼한' 청년이었다. 그는 미나 알 아하마디 입항을 앞두고 오만灣(만) 근처에서 두 번이나 꿈을 꾸었다고 했다. 모두 기름을 싣는 꿈이었다. 최영기 씨는 1주일 전에 아세아 상선 본사로부터 원유 적재 명령을 받았다. 그날 뒤로는 신경이 곤두서고 잠자리도 편하지 않았다. 중동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그런 불안감을 씻기 위해 그는 원유 적재 명령서를 바탕으로 줄곧 세부적인 적재 계획을 머리 속에서 구상하며 혼자서 도상 연습까지 하곤 했다.
  
   쿠웨이트까지의 지루한 항해도 따지고 보면 오직 원유 적재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동해 2호는 울산에서 기름을 풀고 쿠웨이트를 향해 출항할 때 7만3000톤의 밸러스트 물을 싣고 있었다. 밸러스트 물은 배가 중심을 잡고 안정성 있게 항해할 수 있도록 배를 적당히 잠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해 2호의 선미 스크류가 완전히 잠기려면 선체가 약 11미터 내려가야 한다 7만3000톤 가운데 3만5000톤은 기름을 싣는 법이 없는 깨끗한 밸러스트 전용 탱크 다섯 개 속에 들어 갔다. 나머지 3만8000톤은 기름기가 많이 묻어 있는 1번, 4번 중앙 탱크 안에 주입되었다.
  
   골칫거리는 이 기름 탱크 안에 들어간 '더티 밸러스트' 3만8000톤. 원유 적출항에 들어가면 이 밸러스트 물을 뽑고 대신 기름을 실어야 하는데 기름기가 섞인 밸러스트 물을 배출했다가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동해 2호 갑판 부원들은 1항사의 지휘에 따라 남지나海를 지날 때 빈 기름탱크 4개를 청소하여 기름기를 제거했다. 그리고는 더티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 물을 뽑는 것과 동시에 청소된 네 탱크 안에 같은 양의 해수를 집어넣었다. '더티 밸러스트'를 '클린 밸러스트 물'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기름기가 뒤섞인 더티 밸러스트 물을 배출하면 기름이 섞여 나가지 않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탱크 안에서 기름은 물 위에 뜨기 때문에 밑의 물만 배출하고 위의 기름은 따로 남겨 잔류 기름 탱크로 모아 보관하였으므로 해상 오염은 크게 없었다.
  
   배가 시 아일랜드에 접안하자마자 쿠웨이트 측의 '로딩 마스터'(Loading Master), 곧 적재 감독이 동해 2호를 찾아와 1항사와 적재 계획을 의논했다. 적재 감독이 돌아갈 때 동해2호에서는 맥주 두 상자를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적재 감독은 원유를 싣는 일뿐만 아니라 원유 유출사고가 났을 때 현장 적발 및 유조선 내부의 안전 점검 권한까지 갖고 있어 탱커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음주가 금지된 쿠웨이트 안에서 그것이 터놓고 가능한 곳은 시 아일랜드뿐이고 그 술은 거의 전부가 외국 탱커 선원들이 도선사와 감독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동해 2호는 곧 클린 밸러스트 물 3만8000톤의 배출에 들어갔다. 이 물이 배출되기 시작하면 1항사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시 아일랜드의 쿠웨이트 근무자들은 감시의 눈을 번득인다.
  
   "혹시나 기름기가 묻어 나오지 않나?" "청소는 제대로 했지만 그래도…"
  
   몇달 전 한국 탱커 한 척이 이곳 시 아일랜드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라스 타누라에서 연거푸 두 번 기름 유출 사고를 빚어 약 1억 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 것을 기억하는 동해 2호 선원들은 재판 받는 기분이 되어 배 주위의 해면을 걱정스럽게 둘러보고 있었다. 동해 2호의 船體는 밸러스트의 배출로 더욱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녁 6시50분 3만8000톤의 水量(수량)이 다 빠져나갔을 때 동해 2호의 船體는 가장 높고 크게 보였다. 海面(해면)에서 갑판까지가 약 20미터, 해면에서 船橋(선교)까지가 약 34미터. 이 무렵 앳되게 생긴 말레이시아-포르투갈 혼혈 청년이 동해 2호를 찾아왔다. 이름이 맬컴 브로이어라는 이 청년은 세이볼트 검정 회사의 직원으로서 화주 측, 그러니 대한석유공사를 대표하여 기름의 적재량을 재는 임무를 띠었다. 그는 빈 기름 탱크 열 다섯 개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그 깊이를 측정해 놓았다. 기름을 다 실은 뒤에 실시하는 적재량 계산의 근거로 삼기 위함이었다. 저녁 7시35분 드디어 쿠웨이트의 검은 황금이 동해 2호의 복부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쿠웨이트 사막 밑 1천 수백 미터 바위 층 속에서 수백, 수천만 년간 잠들어 있었던 끈끈한 액체는 油井(유정)-집유소-저유탱크 기지-해저송유관을 지나 네 가락의 은빛 나는 注油(주유)철관을 통해 우르릉 하는 굉음을 내면서 한국의 유조선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최 1항사는 처음 30분 동안은 원유의 흐름을 초당 0.5톤으로 통제했다. 처음부터 원유의 유속을 높이면 원유와 탱크바닥, 또는 원유와 船內(선내) 파이프의 마찰로 정전기 스파크가 일어나 석유가스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 이 배의 빈 탱크 안에는 약 33만 입방미터의 가스가 섞인 공기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엄청난 폭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원유가 흘러들면 이 기체는 환기탑을 통해 밀려 나간다.
  
   뱃머리에 우뚝한 환기탑 꼭대기에서 가스가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뿜어져 나가는 것을 대낮에는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 기름이 들어오고 可燃性(가연성) 가스가 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폭발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몇년 전 사우디에서 한국의 어느 초대형 유조선 환기탑에 벼락이 떨어져 불기둥이 치솟았으나 기민한 대응으로 아슬아슬하게 대폭발을 모면한 일도 있었다. 30분쯤 지나면서 원유의 流量(유량)은 서서히 높아져 곧 초당 2톤, 곧 시간당 1만1500톤 수준으로 올라가 고정되었다. 갑판 위의 파이프라인에 귀를 대어 보았더니 쿵쿵, 쏴하는 소리가 울려 왔다. 동해 2호는 원유를 받아들이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3만5000톤의 밸러스트 물까지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조선은 원유의 最多(최다) 적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기름 이외의 물질에 한 치의 공간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밤을 새워 가며 원유적재 작업은 계속되었다. 1 항사는 갑판 중앙에 현장 지휘소를 설치했다. 갑판원들은 各(각) 탱크에 배치되었다. 지휘소의 칠판에는 15개의 기름 탱크 油面(유면)깊이가 수시로 고쳐 적혀지고 있었다. 1항사는 워키토키로 갑판원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시 아일랜드의 통제실과 연락, 기름의 流量(유량)을 점검, 조절해 갔다. 최 1항사는 말했다.
  
   "우리 배에는 세로로 세 줄, 가로로 다섯 줄씩 열 다섯 개의 기름 탱크가 구획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무턱대고 기름을 부어 넣으면 될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죠. 만약 기름을 앞과 뒷 탱크에만 잔뜩 실었다고 합시다. 긴 너울이 와서 배의 중앙이 너울의 꼭대기에 얹히면 배가 활처럼 휘어져 가운데서 부러질 것입니다. 실제 그런 사고가 많이 났습니다. 탱커에 최대의 항해 안정성을 주겠금, 그러면서 또 最多의 원유를 최소의 시간에 싣도록 원유 적재 설계를 해야 합니다. 열 다섯 개의 변수를 이리저리 끼워 맞추어 그런 최대 공약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1항사의 일입니다. 요즘 만든 배는 그런 조정과 통제를 기계가 대신해 주는데 이 배는 고참이라서 저렇게 칠판까지 내놓고 직접 암산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간과 流量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기름은 강물처럼 흘러 들어온다. 이 엄청난 기름을 한정된 시간 안에서 열 다섯 개의 탱크에 어떤 비율로, 어떤 순서로 배분해야 하는가의 해답을 1항사는 퀴즈를 풀듯 즉석에서 수시로 내려야 한다. 그것은 둑을 넘는 강물을 어떻게 빼돌려야 농경지의 침수를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급박한 문제와도 흡사하다. 다음날 갑판에 나가니 오른쪽이 눈에 띄게 낮게 기울어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니 갑판은 다시 평형을 되찾았다. 현장 지휘본부엔 여전히 긴박함이 넘쳐 있었다.
  
   "5번 센터 50프로 오픈!"(5번 중앙탱크의 파이프라인 마개를 반만 열어라!)
   "2번 윙 20프로 오픈!"(2번 날개 탱크 마개 20퍼센트만 열어라!).
   "3번 스타보드 탱크 얼레이지 체크!"(3번 오른쪽 날개 탱크의 유면을 측정하라!)
  
   1항사와 그를 보조하는 펌프 맨 김무씨(45세)는 워키토키에서 입을 뗄 여가가 없는 것 같았다. 油面(해면)의 높이는 가로 세로로 거의 평준하게 맞춰지고 있었다. 2번, 3번 중앙 탱크만은 최종조절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름을 적게 싣고 있었다. 정오 무렵부터 동해 2호는 토핑 작업에 들어갔다. 탱크의 여유 깊이, 곧 갑판과 유면 사이의 깊이가 3미터를 밑돌면서부터 현장은 비상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갑판원들은 탱크 밸브 스탠드에 정 위치, 30분 만에 한 번씩 유면 높이를 점검, 본부에 보고했다. 열 다섯 개 탱크의 油面(유면)이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도록 밸브의 開閉(개폐)비율을 조정하면서 시 아일랜드에 연락, 송유량을 시간당 7000톤 수준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때부터 이덕인 선장도 현장에 걸상을 내어놓고 작업진행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 최종 마무리 작업은 토핑(Topping)이라 불리는데 원유 유출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것도 이 때다. 이 날에도 위기가 있었다. 워키토키를 들고 지시를 내리고 있던 최1항사가 갑자기 '어, 어!'라고 중얼거리며 새하얗게 질리더니 왼쪽 船尾(선미) 쪽으로 뛰어갔다. 그 뒤를 따라 펌프 맨 김씨 등 서너 명이 어지러운 파이프라인 가닥들을 뛰어넘으며 달려갔다. '밸브 닫으라!'는 고함소리가 허둥대는 갑판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문제는 오른쪽 맨 끝 탱크에서 일어났다. 갑판과 유면 사이의 여유가 3미터나 남아 있었는데도 갑자기 기름 방울이 탱크 입구로 튀어 오른 것이었다. 다행히 밸브를 빨리 잠근 덕분으로 기름은 갑판을 넘지 않았다. 사고원인은 갑판원이 밸브를 너무 많이 열어 갑자기 다량으로 쏟아져 들어온 기름의 충격이 유면을 높이 3미터나 퉁겼기 때문이다. 원유는 시 아일랜드에서 탱커로 평방 센티미터당 80킬로그램이란 큰 압력으로 밀고 들어오므로 그 흐름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분출, 파열 따위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더구나 적재 최종 단계에 가면 원유가 특정 탱크로 집중 유입되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피지 않으면 수천만 원, 수억 원짜리 유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3피트 8인치." "3피트 6인치." "3피트. 밸브 셧 다운"
   오후 2시가 넘자 우주선 발사 시간 카운트다운처럼 油面(유면)의 초읽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탱크는 滿潮(만조) 수위를 기록하며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탱크는 1분에 10센티씩 유면이 쑥쑥 올라가더니 오후 3시에 '만재 유면 3피트'를 기록했다. 이제 원유적재는 20시간 만에 모두 끝난 것이었다. 원유는 갑판 밑 90센티에서 찰랑찰랑했다. 강철판으로 포장된 이 기름의 호수는 수심이 23미터나 됐다. 이 호수의 저유량은 동해 2호의 계산으로는 20만2290톤, 쿠웨이트 측의 계산으로는 20만1556톤이었다. 보낸 양과 받은 양이 700톤 가까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실물의 차이가 아니라 계산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동해 2호는 원유와 함께 자체 연료유 벙커C도 받았다. 쿠웨이트는 벙커C를 한국 내 가격보다 톤당 70달러나 싼 톤당 200달러에 팔고 있어 거의 모든 한국 유조선들이 이곳에서 연료를 산다. 동해 2호가 받은 벙커C의 양은 기관부의 계산으로는 3956톤이었다. 그러나 시 아일랜드에서는 4040톤을 송유한 것으로 기록해 놓고 있었다. 윤구웅 기관장이 시 아일랜드 통제실에 따지러 갔다. 쿠웨이트 담당자는 윤 기관장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맥주 있느냐'고 불쑥 물었다. 감을 잡은 윤 기관장이 '지금 두 상자 갖고 오는 중이다'고 받아넘겼다. 쿠웨이트 인은 '빨리 가지고 오라'고 중얼거리면서 4040톤을 3956톤으로 금방 고쳐주었다. 1만1천 원짜리 깡통 맥주 두 상자로 86톤의 기름, 그러니 1200만 원어치를 요리한 셈이 됐다. 중동의 원유수출 담당자들은 기름에 대해서는 과연 통이 크다. 말만 잘하면 이, 삼십 톤의 벙커시유를 공짜로 더 주는 것도 예사라고 한다.
[ 2014-05-07, 11: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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