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서울, 대통령을 향하여 날아온 수류탄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발췌] ⑨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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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이 대통령의 차를 앞세우도록 지시하려 하자 대통령은 “오늘은 개선장군이 먼저 환영을 받아야 합니다. 장군의 차를 앞세우시오. 이것은 한국 국민 전체의 뜻입니다!”라면서 우리 차가 장군의 차를 뒤따르게 했다.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발췌]

 

<1950929>

 

우리는 부산 수영비행장에 도착하여 환송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통령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조봉암(曺奉巖) 국회부의장과 김병로(金炳魯) 대법원장도 함께 탔다. 한 시간반 이상의 비행 후 우리는 인천 앞바다에 줄지어 있는 전함들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시종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군데가 파괴된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앙상하게 파괴되었고 여기저기 포탄에 맞은 자취가 드러났다.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나는 뒤에 타고 있는 황 비서에게 맥아더 장군에게 수여할 훈장을 잘 챙기도록 당부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탈 차는 맥아더 장군이 마련해 준 카키색 세단이라고 노블 참가관이 가르쳐주었다. 눈에 익은 몇몇 특파원과 기자들이 대통령의 서울 환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 곁에는 워커 장군, 아몬드 장군, 조이 장군 등이 서 있었다.

 대통령은 트랩을 내려온 다음 맥아더 장군과 악수를 나눈 뒤 감격적으로 껴 안았다. 그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 대통령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어 맥아더 장군이 미소를 지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 부인의 안부를 전했다. 맥아더 장군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동양인을 제대로 이해하며 존경하는 겸허한 인품과 솔직한 태도 때문에 대통령이 무척 그를 좋아 했다. 공적으로 자기 나라 이익에 관계되는 일에 관하여 의견이 다를 경우, 두 사람이 모두 강한 성격을 드러내고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사적으로 장군과 대통령은 샘이 날 정도로 항상 서로 다정했다. 언제가 격의 없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했고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었다.

  맥아더 장군이 대통령의 차를 앞세우도록 지시하려 하자 대통령은 오늘은 개선장군이 먼저 환영을 받아야 합니다. 장군의 차를 앞세우시오. 이것은 한국 국민 전체의 뜻입니다!”라면서 우리 차가 장군의 차를 뒤따르게 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길을 서울로 향해 달렸다. 먼지 사이로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 얼마나 한 맺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강인가.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고 한강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는 폭격으로 모두 부서져있었다. 차는 한강을 건너서 강둑으로 올러가자 마포를 지나서 서대문 쪽으로 달렸다. 서울시가는 무참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전쟁이 할퀴고 간 도로변에는 영양실조로 수척해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통령의 차를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부르고 손을 흔들어 환영했다. 대통령도 나도 감격에 겨워서 눈물을 흘렸다. 교차로마다 모래주머니로 방여벽을 만들어 놓았는데 굶주린 서울시민들를 북괴군이 총칼로 위협하고 강제 동원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시가지로 들어설수록 공산군들의 살육(殺戮)과 방화와 파괴의 흔적이 더욱 심하게 드러났다. 중앙청 역시 검게 그을고 유리창은 모두 박살이 났으며 아직도 매연(煤煙)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멀리서는 아직도 포성(砲聲)과 총소리가 들려왔고 시내에는 게릴라들이 숨어서 가끔 기습을 해 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중앙청 현관을 지나서 중앙홀로 들어갔다. 아직도 연기 냄새가 사방에서 났다. 구리로 된둥근 돔은 찌그러져 있었고 가끔 천장에서는 작은 유리조각들이 떨어져 내려왔다. 군인들과 남자들은 모자가 있었지만 우리 쪽으로 떨어지면 안전할 수 없었다. 식이 거행되는 동안도 유리 파편이 계속 떨어져서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지만 다친 사람이 없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맥아더 장군은 수도 서울의 기능과 권한을 한국정부에 돌려준다는 요지의 훌륭한 연설을 감격적인 어조로 했다. 대통령도 감동하여 연합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전사한 장병의 유가족에게 위로를 보내며 적에게는 승리자로서의 관용을 보이기를 바란다는 연설을 했다. 대통령은 비범한 군 복무의 기나긴 생이를 통하여 장군이 이룩한 모든 업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역사는 국제연합군을 이끌어온 장군의 통솔력을 기로할 것으로 본인은 확신합니다라고 맥아더 장군을 찬양했다. 맥아더 장군은 주기도문으로 엄숙하게 식을 끝냈는데 우리도 주기도문을 따라서 외었다. 악대도, 의장대도 없었지만 참으로 감격적이고 의미 있는 환도식이었다 

중앙청에서 식이 끝난 뒤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이제 지체없이 북진해야 합니다. 그들은 편성할 시간이 없어서 저항도 못 할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국제연합이 자기에게 38선을 넘을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서 난색을 보였다. 대통령은 장군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결정할 때까지 장군은 휘하부대를 대기시킬 수 있겠지만 한국군이 밀고 올라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오. 여기는 한국군의 나라입니다. 장군이 우리에게 공중지원만 제공해 주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명령을 따로 내리지 않아도 한국군을 스스로 알아서 북진할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앙청 식이 끝난 뒤 대구로 내려온 대통령은 929일 오후 2시 그곳 육군본부를 방문하여 정일권 참모총장과 그 밖의 참모 장군들(강문봉, 양국진, 황헌친, 최경록, 김형일)에게 38선의 존재 여부를 물었다.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자신의 뜻과 같이 이미 38선의 존재는 사라졌다는 답변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정 참모총장에게 국군의 북진을 명령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714일 편의상 맥아더 장군에게 넘겨주었던 우리의 작전권은 우리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대통령의 권한으로 회수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또 대통령은 정 장군에게 평양은 반드시 우리 국군이 먼저 입성(入城)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도 유엔군에 앞서서 국군이 먼저 진격하여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용 식사로 점심을 때운 뒤 우리는 경무대로 향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선발대가 도착했을 때 경무대는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가운데 악취(惡臭)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이선영 경사는 그곳에서 남일(南日)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고급 양복 저고리가 걸려 옷거리에 걸려 있고 바닥에는 양말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시던 소련제 양주(洋酒)를 궤짝 채 남겨두고 황급하게 도망쳤다. 나는 이 전리품을 승전 선물로 여기저기 보냈다. 무쵸 대사에게는 보드카 2병과 백포도주인 부르고뉴 2병을 선사했고 노블 참사관과 워커 장군에게도 몇 병을 보내주었다 

워커 장군은 밤에는 경무대가 아직 위험하니 자는 것은 필동에 있는 한국의 집에서 주무시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대통령은 내켜 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 건의를 받아드려 한국의 집을 임시 숙소롤 이용하는데 동의했다.

  <101> 

우리는 필동 한국의 집에서 일박(一泊)한 뒤 경무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해피’(Happy)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경호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행방불명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해피가 현관으로부터 달려 왔다. ‘해피는 쏜살 같이 대통령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분명한 해피였다. 비쩍 마르고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해피였다. 워낙 갑작스런 피난길에 오르느라고 그를 버리고 떠났던 일이 생각났다. 영리한 녀석이 그 동안 그 험난했던 나날을 어디에서 보내고 무엇을 먹고 버티었는지 이제는 다시 만난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저렇게 대통령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가 그토록 반가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진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오늘 대통령은 서울 거리로 민정시찰을 나갔다. 우리는 태평로를 지나 남대문 쪽으로 차를 몰았다. 거리에는 시민들이 나와서 어질러진 길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있었다. 남대문 근처에 이르자 대통령을 알아본 시민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대통령을 차를 멈추라고 한뒤 차 밖으로 나섰다. 삽시간에 시민들이 모여들어 대통령을 얼싸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대통령은 자동차 범퍼를 발판으로 디디고 서서 앞에 선 경호관에게 몸음 의지한 채 시민들에게 한 바탕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이때 갑지가 이선영 경사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어서 황 비서관 수류탄!”이라고 외쳤다. 나는 황급하게 대통령을 끌어내려 자동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또 한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서울에는 아직도 적군의 게릴라들이 남아 있었다. 이때 대통령 쪽으로 날아 온 수류탄은 다행히 불발이었다 

저녁에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으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그는 오늘 오전 6시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던 국군 제3사단의 김종순 연대장 휘하의 부대가 38선 북쪽에 있는 기사문 고지를 점령했으며 국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이 보고에 크게 만족해 하면서 치하했다. (101일은 뒤에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다.) [다음에 계속]

 

 

 

[ 2014-07-15, 23: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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