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 미련한 늙은이에게..."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⑪한밤중에 침대에 엎드려 “하나님, 이 미련한 늙은이에게 보다 큰 능력을 허락하시어 고통받는 내 민족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대통렁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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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1950108>

 

대통령은 오전에 김광섭, 고재봉 비서관을 대동하고 서울시민들의 생활상태와 복구사업 상황을 돌아본 뒤 서울시청에 들려서 이기붕(李起鵬) 시장으로부터 市政 보고를 들었다. 서울시에서는 시민들의 월동용 연료 마련에 부심하고 있었다. 일단 다량의 토탄(土炭) 확보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울시의 戰災民 구호식량은 뉴질랜드(New Zealand)와 필리핀(The Philippines)에서 원조해 준 식량 5만톤이 이미 인천에 도착해 있다. 서울시장은 군용물자 수송이 긴급한 관계로 반입이 다소 늦어지고 있으나 민간 트럭을 동원하여 문제 해결 방도를 찾고 있다고 보고했다. 쌀값을 걱정하는 대통령에게 서울시장은 현재 구호미(救護米)만으로는 시장 쌀값을 조절하기 곤란하므로 각자가 市外에서 쌀을 반입해올 수 있도록 필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具 보건장관으로부터 유엔에서 보낸 350만 달러 상당의 구호 의약품 및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예방주사약과 DDT가 인천항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보건장관은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제부터 오는 14일까지 시민 전부가 예방주사를 맞도록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우리 이화장이 위치한 낙산(駱山)에서도 공산당원들이 달아나기 전에 학살한 90여구의 민간인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김장흥 총경이 보고했다.

대통령이 오늘 외국기자와 만났는데 그가 남북한을 통털어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것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유엔이 유엔 감시 하에 실시된 5·10 총선거가 합법적이며 공정했다고 판단했고 이 때 우리 국회는 북한에서 유엔 감시 하의 자유선거가 실시될 때에 대비하여 1백석의 빈 자리를 남겨 두었다면서 그 시기가 이제 급속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답변했다. 얼마 전에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각 도지사를 임명, 부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나는 점심 식사 후 쉴 사이 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외국으로 보낼 電文과 편지들을 타이핑하느라고 바쁜 오후를 보냈다. 한창 차례로 편지들을 타이핑하고 있는데 창 밖에서 장미꽃 한 송이가 휙 날아들어 내 앞의 타자기 위에 떨어졌다. 깜짝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대통령이 저편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이 와중에도 잊지 않고 한 송이 꽃을 던져주는 대통령의 포근한 마음씨에 나는 행복감에 젖었다. 16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통해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내게 돈을 주고 산 선물을 준 적이 없다. 그러나, 한 송이 꽃이나 한 개의 사과 같은 것을 주더라도 그때마다 방법이 신기롭고 걸맞아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해주곤 한다 

결혼 당시만 해도 한국의 민족지도자가 서양여자와 결혼한다는 데 대해 독립운동을 함께 하던 동지들이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동포들의 실망과 반발이 대단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신랑의 호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었다. 결혼비용은 모두 신부인 내가 부담했었고 심지어 결혼반지도, 친정식구들이 알았다면 기절했겠지만, 내 돈으로 샀었다. 다만,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녹두알만한 제주도産 진주 알 한 개를 결혼선물로 나에게 주었을 뿐이다. 나는 그것으로 반지를 만들어서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데 경사스런 때든지 파티에 갈 때만 이 반지를 낀다 

결혼 후에도 외국여자인 나를 아내로 맞은 대통령의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었다. 결혼 직후 하와이 교포들이 대통령을 초청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독립운동 동지들이 대통령에게 서양 아내는 동반하지 말고 혼자만 오라는 전보를 두 차례나 보내 왔다. 나는 남 몰래 많이 울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때 하와이 여행에 나를 동반했다. 하와이에 가까워지자 대통령은 배 위에서 나에게 아마도 이번에는 우리를 환영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배가 하와이에 도착한 후 우리를 맞아들인 동지회에서 3,700여명의 동포들을 불러 모아 당시의 한인 집회 사상 가장 큰 잔치가 되었다 

그날 이처럼 많은 동포들이 모이게 된 것은 우리 부부를 환영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서양인 신부인 나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 컸을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한국인의 아내로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내 마음 속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상이장병을 위해 보내준 의류와 통조림 및 비누 등 1만 상자가 도착했는데 수송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사회부장관이 보고했다. 수송 트럭이 부족해서 서울시에서는 인천에서 구호미를 서울로 반입하는 데 우마차(牛馬車)까지 동원했다고 사회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교통부장관은 鐵路복구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경부선과 호남선이 곧 개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내일은 한글날이다. 내일 우리는 청량리 밖에 있는 조지 루 박사가 경영하는 안식교회 병원과 우리 전쟁고아들이 수용되어 있는 고아원을 찾아볼 예정이다. 내 책상 위에는 아직도 타이핑해야 할 많은 서신과 써보내야 할 답장들이 산적해 있다 

<1012> 

대통령은 미국에 가 있는 임병직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국은 4,300년의 역사를 가진 독립국이고 主權국가이므로 한국의 운명은 한국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유엔 회원국들에게 인식시키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한국과 유엔의 공동목표인 공산침략을 분쇄하고 공산당에 의한 북한지배를 종식시킴과 동시에 유엔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이 통일한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또한 “1948510일 실시된 총선거를 통하여 전체 한국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정부가 유엔 감시 하에 탄생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상기시키라고 지시했다 

서북청년회 리더인 문봉제(文鳳濟) 씨가 찾아와서 대통령에게 북한지역 인원 배치와 여러 가지 대비책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진격부대 후방에서 민심을 수습하고 행정을 담당하기 위하여 북한 각지의 신망있는 인사들을 가능한 한 빨리 연고지(緣故地)에 배치할 것을 趙 내무에게 지시했었다. 이제 문봉제 씨는 특명(特命)을 받아 도, , 군마다 21명씩의 책임자를 인선, 배치하는 임무를 띄고 있다. 대통령은 조만식 씨의 안부를 몸씨 걱정하면서 정인보(鄭寅普) 씨 등 납북된 많은 인사들을 구출해 내는 데 힘쓰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신 국방과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北進 중인 우리 아이들이 어떠한 겅우에도 북한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대통령은 趙 내무로부터 남한 각지역의 치안상태에 관한 보고를 듣고 북한지역의 치안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한 조치와 함께 만전을 기하라고 신신당부했다趙 내무는 북한지역 책임을 담당할 경찰관을 모집 중이라고 보고했다.

대통령의 지시로 이기붕 서울시장이 전재민들에게 배급하고 있는 모든 양곡들을 조금씩 경무대로 가져왔다. 나는 그 구호 양곡으로 조밥을 지어서 대통령의 저녁식탁에 내놓았다. 안남미라는 이 쌀은 우리나라 쌀처럼 끈기는 없고 약간의 냄새가 났지만 대통령은 두부찌개와 함께 맛있게 들었다. 이갑수 씨 부인이 황해도 기장쌀을 대통령에게 드리라고 몇 되 가져왔다. 그것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언젠가 대통령은 어릴 때 어머니가 건강에 좋다면서 기장쌀을 섞어서 밥을 지어 주곤 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 준 적이 있었다 

요즘은 잠자리에 누우면 전쟁고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어른거리고 부상병들의 신음 소리가 귓전을 맴돌아 통 잠을 이루기 힘든다. 서울시의 구호 대상 전재민 수만 해도 40만명이 넘는데다가 건장한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불구의 몸이 되어서 몸부림치고 있다. 전쟁미망인 수도 늘어만 가는 이 엄청난 비극 속에서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의 잠자리는 오죽하겠는가. 한밤중에 침대에 엎드려 하나님, 이 미련한 늙은이에게 보다 큰 능력을 허락하시어 고통받는 내 민족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대통렁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서울대학병원에 있는 중환자들을 위문하고 학교 구내를 지나서 이화장에 들렀는데 집이 가까워지자 이웃사람들이 대통령을 보고 손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불렀다. 나도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솟구쳐 고개를 숙인 채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과 얼싸 안기도 하고 악수도 했다 

대통령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밤새워 타이핑했던 5통의 편지를 파우치 편으로 발송했다. 유엔과 뉴욕, 하와이, 워싱턴에서 활약 중인 임병직 외무장관과 장면 대사, 필립 안, 올리버 박사 및 데이비드 남궁 뉴욕주재 총영사에게 각각 보내는 대통령의 기밀서한이었다. 데이비드 남궁은 일찍이 대통령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 좋고 성실한 동지였다. 그의 부인 조앤 남궁은 우리가 결혼할 당시 한국 풍속에 어두웠던 나를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김치와 물김치 담그는 법, 콩나물 자르는 법, 한국 요리는 물론 한국의 예의범절과 명절풍습, 생일날에는 쌀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는 것까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대통령의 생일 아침상에 미역국, 잡채, 콩나, 물김치와 함께 쌀밥을 차려 놓았다. 이를 본 대통령이 무척 놀라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십년간 해외에서 홀몸으로 독립운동을 하며 줄곧 어려운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대통령은 생일날 굶는 때도 있었다고 했다. 때로는 뉴욕의 중국 요리집에서 일하며 고학했던 최용진 씨와 함께 울면 두 그릇을 놓고 생일파티를 하며 고향 이야기로 마음을 달랜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올리버 박사에게 보낸 대통령의 편지는 한국 정치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설명한 것이었다. 또한 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한 다음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것인지에 관한 대통령의 신념과 정책의 근본원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표방하는 일민주의(一民主義)는 온 국민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지도이념으로 전통사회의 반상(班常), 빈부, 남녀, 남북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평등하며 모든 국민이 지지할 만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데 토대를 두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 2014-07-23, 00: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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