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社說의 너무나 난폭한 (타성적) 海警 비방
해경이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고? 해경이 船室 유리창을 깨고 여러 사람들을 끌어내는 동영상도 안 보았나? 이런 글은 가슴에 못을 박아 원한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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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 社說(사설) 제목은 <검·경의 無能, 숱한 괴담 낳고 '정부 不信' 키운다>였다. 유병언 씨 사망을 놓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비판한 글이다. 이런 대목이 걸린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제 발로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실종자 숫자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했다.>
  
  쓴 대로 해경은 제발로 걸어 나온 사람을 다 구했다. 배가 절벽처럼 기울어지고 있어 구조 가능 시간이 40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제 발로 船室(선실) 바깥으로 걸어나온 사람을 다 구한 것은 욕할 일이 아니라 칭찬할 일이다. 문제는 해경이 제발로 걸어나온 사람 말고도 제발로 걸어나올 수 없는 사람들, 예컨대 船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유리창을 깨고 여러 명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고 동영상에도 잡혀 있는 사실이다.
  
  사실이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제 발로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라고 호통을 친다. 언론의 생명인 사실확인을 소홀히 하고, 잘못된 판단을 근거로 과격한 주장을 한 것이다. 해경은 동네북이니 사실확인을 할 수고도 필요 없이 마구 때려도 된다는 안이한 태도가 느껴진다. 아니면 언론의 誤報(오보) 선풍에 언론이 스스로 넘어간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직무 태도를 가진 언론인이 검사, 경찰이라면 유병언 수사를 지금보다 잘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요컨대 조선일보는 검찰과 경찰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職務(직무)가 범죄용의자를 잡는 일이든 사설을 쓰는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직무집행이다. <해경이 제 발로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라는 誤報는, 경찰이 유병언 屍身(시신)을 단순 변사체로 처리한 것과 같은 직무집행의 부정확성을 드러낸 것이다. 남을 비판할 때는 특히 사실확인을 정확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중의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피해자가 발생한다. 사실 誤認(오인)과 이에 기초한 誤判(오판)과 誤斷(오단)에는 구체적 피해가 따른다. 별 생각 없이 타성적으로 쓴 것 같은 이런 문장 하나가 海警人(해경인)의 가슴에 못을 박아 원한을 산다. 조선일보의 신뢰성에 먹칠을 한다.
  
  뉴욕타임스라면 다음 날에 이런 訂正(정정)을 했을 것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제 발로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라는 어제 문장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해경 구조대는 제 발로 걸어나오지 못한 乘船者(승선자) 여러 사람들을 구출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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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조타실로 진입했던 海警(해경) 朴相旭 경장: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李東昱(조갑제닷컴 편집위원)
  
  
   ■ 조타실로 진입 성공했던 海警 朴相旭 경장의 이야기
  
  
   “텅 빈 조타실 내부엔 붙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영웅처럼 써 주지 마시고 부디 사실 그대로만 써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 총성이 울리는 戰鬪(전투)나 범죄 혹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보통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그곳에서 도망치지만 오히려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 경찰, 구조대원,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記者(기자)도 포함된다. 그들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他人(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지키기 위해 惡(악)과의 싸움을 마다 않는 善(선)한 戰士(전사)들이다. 우리는 이런 戰士들을 얼마나 키우고 어떻게 대접해 왔는가.
  
   ○ 언론들은 목숨 걸고 조타실로 진입한 海警(해경)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기 바빴다. ‘왜 조타실만 들어가고 선체 내부진입은 못했냐’는 것이다. 사실 확인 없는 의심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언비어는 머지않아 ‘선원만 구하고 승객을 방치했다’는 ‘海警과 船主(선주)간 유착설’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123정 승무원들과 헬기 승무원들은 그 후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현장을 무시한 채 책상머리에서 이론을 만들고 유포시킨 조작 전문가들이 용감한 戰士를 파렴치犯(범)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목숨 걸고 조타실로 진입에 성공했던 朴相旭(박상욱) 경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정리: 李東昱 편집위원
  
  
   “경사진 철판바닥을 젖은 구둣발로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海警 (공채) 216기에 2009년 7월76일자로 임용된 해병대 출신의 朴相旭 경장(37)은 기자에게 자신이 겪었던 구조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몇 번의 조사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기억이 많이 정리되었다고도 했다. 다음은 박 경장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몇 시인지도 모릅니다. 123정으로 급하게 달려가다 보니 큰 배가 기울어져 있는 이상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겁니다. 파도는 안 치는데 배는 기울어져 있었고 간간이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큰 여객선 치고는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컨테이너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123정에서 세월호의 船首(선수)쪽으로 접안시켜 제가 세월호로 올라탔습니다. 123정에서 발진한 고무보트로 이형래 경사도 세월호로 올라왓습니다. 근무복에 단화를 신은 채였지요. 좌현 쪽으로 기울어진 세월호의 3층인지 4층인지 모르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물이 차 오지는 않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조타실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 李 경사는 난간에 설치된 구명벌을 발로 차 두 개를 떨어뜨렸는데 한 개만 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구명벌을 떼내지 못할 정도로 기울었습니다. 즉시 李 경사가 5m 정도 위의 船內(선내)로 진입하려 했지만 얼마 못 버티고 아래 난간 쪽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그 때 李 경사가 진입 시도하려던 곳이 조타실입니다. 제가 있던 船首 쪽에서 조타실 정면이 잘 보였습니다. 분명 몇 사람이 보였습니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두어 명이 있는 것 같았고요. 그런데 배가 左舷(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붙잡고 오를 만한 것이 안 보였습니다. 제가 오를 곳을 찾고 있을 때 李 경사가 좌현 쪽에서 접근하려다가 실패한 거지요. 경사진 철판 바닥을 젖은 구두를 신고 오른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었다면 완력(腕力)으로 매달리기라도 하면서 오를 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
  
   그러는 사이에 저는 기울어진 조타실 창문으로 어떤 아주머니를 봤습니다.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았는데 완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 사색(死色) 그대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는데 이 아주머니는 저와 눈이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소리 쳤지요.
  
   “내려오세요.” “내려오세요.” “그냥 내려오세요.”...
  
   고함을 질렀지만 아주머니는 꼼짝을 못해요. 처음엔 답답했다가 나중엔 어떤 감정이 솟구치더군요. 화가 났다는 표현은 안 맞는 거 같고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제가 옆에 있었다면 그냥 확 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게 낫지, 저대로 가만있다가는 침몰하는 배와 함께 익사할 게 뻔했거든요.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고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다시 외국인들이 보이는데 마치 공중에 사람들이 붕 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울어진 조타실 창문으로 사람들을 봐서 그럴 겁니다.
  
   우리로서는 조타실에 보이는 사람들이 선원인지 승객인지 구분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배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었으니 구해야 했고요. 어떻게든 사람들을 빨리 구해내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조금 전 이형래 경사가 조타실로 올라가다 주루룩 미끄러지는 걸 지켜보던 123정에서 계류삭(繫留索)인 ‘홋줄’을 건냈습니다. ‘홋줄’은 배를 부두에 정박시킬 때 육지의 ‘비트’라 불리는 쇠기둥과 배의 ‘비트’끼리 연결하는 두터운 밧줄인데 우리 ‘홋줄’은 직경이 약 5cm 정도 됩니다. 이걸 李 경사가 받아서 아래에서 조타실로 던져 올렸지요. 다행히 조타실 내 승객 중 한 사람이 이 줄을 받아서 문 짝 어딘가에 고정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李 경사를 보며 이제 곧 올라가겠구나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조타실과 연결된 ‘홋줄’에서 줄줄이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李 경사는 오르던 걸 포기한 채 조타실에서 탈출해 내려오는 사람들을 받아서 123정으로 옮겨 타도록 도와주는 일에 전념합니다. 저도 그 일에 몰입했지요.
  
   기억나는 것이, 123정으로 옮겨 타려면 발판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데 여자들이 근력(筋力)이 없어서인지 자기 신체를 지탱할 힘이 없더군요. 제가 발 하나 하나를 발판에 옮겨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123정과 세월호와의 높이가 달라져 가더니 세월호가 너무 낮아지는 겁니다. 이 장면이 동영상에 나오던데 우리는 그 때까지 123정에 옮겨 타는 사람들이 선원인지 승객인지 구분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 과정에서 선원들이 옮겨 탄 듯합니다.
  
   “텅 빈 조타실에서 홋줄 매듭은 끝나고…”
  
   이렇게 옮겨 태우고 나니까 더 이상 승객들이 안 내려 오는 겁니다. 그 때 저는 세월호에 타고 있었는데 123정에 승선하고 있던 대원들이 저더러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를 치는 겁니다. 헬기 소리 때문에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는데 하도 긴박하게들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했지요.
  
   ‘아, 조타실로 들어가서 남은 승객들에 대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라고 지시하는 모양이구나.’
  
   저는 조타실 아래쪽으로 이동해 승객들이 타고 내려 온 밧줄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그게 조타실 左舷 측문입니다. 머리 위로 기울어진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이미 바닥은 벽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진 採證을 한 어떤 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 때 바닥이 적어도 70도에서 80도는 돼 보였다고 했지만 저로서는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줄을 잡아야만 겨우 두 발을 바닥에 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줄을 단단히 잡은 채 조타실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타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문 안쪽에서 ‘홋줄’ 매듭은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었더라면 그걸 잡고 船室 내부로 더 들어갈 수 있었을 테지만 船室 벽은 대부분 두꺼운 철판이거나 합성수지계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둘 다 표면이 매끄럽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게다가 더 이상 잡을 것이 안보이니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예 줄을 놔 버렸습니다. 몸이 거의 선 채로 미끄러져 내려갔지요. 아래 난간 쪽에 몸이 부딪히면서 정지할 수 있었지만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보통 저희 같은 구조대원이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근육을 많이 키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웬만한 충격을 견디기 위해서 입니다. 충격으로 근육이 파열되면 타박상은 입게 되지만 임무는 완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한 근육을 가지면 충격을 근육이 막지 못해 골절상을 입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임무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구조대상이 돼 버립니다. 그날 저희 대원 모두가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지만 우리로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조사받을 때 보니까 저희가 일부러 선체 내부 진입을 안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지 안 들어가겠습니까? 매끈한 바닥이 벽으로 변하고 있는데, 손톱이라도 걸 데가 있다면 모를까 잡을 곳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의심나면 船體 비슷한 걸 세워두고 한 번 올라가 보라고 해 보세요. 하여간 저는 더 이상 어떻게 버틸 수도 없어서 줄을 놓고 미끄러져 내려 온 겁니다.
  
   “눈에 안 보이는 거대한 힘과 싸우는 중”
  
   그때 ‘윙 브릿지’라 부르는 左舷 날개 쪽에서 승객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구명조끼도 없이 난간을 붙잡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급히 제 구명조끼를 벗어 입혔습니다. 저는 맨몸으로 수영해 갈 자신이 있었거든요.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뭐든 잡으면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는 거지요. 구명복을 입히려 하는데 난간을 붙잡고 놓질 않으니 무척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겨우 제걸 입히면서 보니까 비닐봉지가 뜯어지지도 않은 세월호 승객용 구명조끼 한 벌이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겁니다. 얼른 이걸 집어서 뜯고 제가 걸쳤습니다. 그리고 승객에게 말했지요.
  
   “자, 같이 뛰어 내립시다.”
  
   우리는 그렇게 해상투신(海上投身)을 한 겁니다. 나중에 뉴스 영상을 보는데 바다로 뛰어내리는 승객이라고 설명하던데 그게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승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바닷물로 뛰어들었지만 솔직히 물이 찬지 뜨거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걸 느낄 만한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물속에서 구두를 벗어버리고 승객의 호흡을 유지한 채 수영을 하려다 보니까 옆에 단원고 학생 세 명이 떠 있는 겁니다.
  
   침몰 중에 있는 큰 배 옆으로 작은 배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法이 아니라 自然의 힘을 아는 사람들의 經驗입니다. 큰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 웬만한 어선들도 빨려들거든요. 그러면 세탁기 속의 소용돌이처럼 물살이 생겨서 매우 위험해집니다. 123정 같은 110톤급 함정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어선들도 구조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가까이 근접하지 못한 겁니다. 모두 공포에 질린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장을 모르고 방송만 보면 구조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과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에 걸리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행히 그 상황이 오기 전에 123정의 고무보트가 신속하게 다가와서 학생들과 우리를 건져 올렸습니다.
  
   고무보트에서 123정으로 옮겨 탄 뒤에 저는 신발을 대신할 운동화를 찾아 신었습니다. 그리고 승객용 구명조끼를 벗고 배에 있던 해경용 구명조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고무보트가 쉴 새 없이 승객들을 건져 날랐습니다. 고무보트가 이때부터 어선에도 승객들을 나눠 태웠을 겁니다.
  
   우리는 고무보트에서 123정으로 승객들이 올라오도록 잡아당기곤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배에 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요. 무조건 실어야 했습니다. 시시각각 침몰 순간은 다가오니까 이탈 시간을 놓치면 우리 배도 침몰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호흡이 정지된 승객이 실려 왔습니다. 먼저 온 승객은 젊은 남자였는데 李 경사가 저와 같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습니다. 그때 우리 배에서 근무중이던 義警 중 하나가 환자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 오 분 정도 했을까요? 갑자기 구토를 하면서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소생(蘇生)한 겁니다.
  
   잠시 뒤에 또 한 사람이 의식불명인 채로 배로 옮겨졌습니다. 학생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이름표가 ‘정찬웅’이었을 겁니다. 이형래 경사와 제가 즉각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떠 있어 건졌는데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고 구조대원 중 누군가가 전해 주었습니다. 뇌진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의 神이 끌어가기 전에 제가 살려내야 한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해도 이 친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폐 소생술이 예상외로 무척 힘이 듭니다. 제가 지치면 李 경사가 시도하는 식으로 교대로 했지만 더 이상 바이탈 사인(Vital sign·호흡, 맥박, 체온, 혈압 등 活力 징후-注)이 생기질 않아서 헬기로 후송시켜야 했습니다. 그럴 때의 절망감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들으니 사망했더군요.
  
   유리창 부수고 구조하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가 “선실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배가 船首 쪽으로 돌면서 발견한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급히 망치를 들고 세월호로 옮겨 탔습니다. 이형래 경사와 이종훈 경사 그리고 제 곁의 한 분은 구조된 승객이라 기억하는데 그 분도 저와 같이 유리창 깨는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30cm 정도 되는 나무자루에 주먹 만한 쇠뭉치가 달린 망치였는데 이걸로 몇 번 가격해도 유리창이 멀쩡했습니다. 아마 가격할 때 자세가 불안정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기울어진 바닥에서는 망치질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종운 경사가 망치를 들고 저는 123정에서 전해준 쇠파이프 지주봉을 들고 때렸습니다. 지켜보던 123정에서 鐵製 지주봉을 뽑아 저에게 전해 준 겁니다. 함정에 추락방지용으로 설치한 鐵製 봉이었지요. 제 옆에 서 있던 승객도 망치를 건네 받은 뒤에 같이 몇 번을 내리 쳤습니다. 그래도 유리창은 멀쩡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있던 승객이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퍽’ 하고 유리창이 깨져 나갔습니다. 거의 동시에 船室에서 두 손이 번쩍 올라왔습니다. ‘만세 자세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오는 손 마다 잡고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도 두 사람이 끝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부터는 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배가 더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손이 유리창 부근으로 다가오질 않는 겁니다. 이번에도 123정에서 ‘홋줄’을 건네 주었습니다. 이걸 내려주어 사람들이 줄을 잡고 올랐습니다. 이들을 끌어올리면서 오른 손등에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보니 피가 제법 나오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을 깨면서 파편에 베인 줄 알았습니다. 다음날 퉁퉁 붓기 시작해서 병원엘 갔더니 부분 근육 파열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기억해 보니 유리창을 깨던 도중에 123정과 세월호 사이에 제 손이 끼었던 겁니다. 경황이 워낙 없어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데도 시간이 걸린 모양입니다.
  
   나중에 조사받으면서 다른 쪽 유리창을 안 깼냐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인원은 제한돼 있었고, 그래서 視覺도 제한됩니다. 더구나 유리창 위로 물결이 일렁이면 뻘물이어서 잘 안보이게 되는데다가 전반사(全反射)로 인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만 비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유리창을 깨고 선실에서 승객을 구출해 낼 무렵에 배의 기울기가 점 점 더 심해져 갔습니다.
   船首쪽으로는 컨테이너들이 계속해서 물위로 떨어지고 있었고요. 이때쯤 123정에 탄 구조자들을 다른 어선으로 분산해서 진도 팽목항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123정 정장님의 지시대로 낚싯배 한 척을 맡아 28명의 구조자들을 옮겨 태운 뒤 팽목항으로 인솔하는 임무로 전환했습니다.
  
   부모 잃은 여섯 살바기 少女
  
   팽목항으로 가는 도중에 구조자들을 보니 모두가 혼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체온이 떨어져 입술이 진한 보라색으로 변한 채 벌벌 떨고 있었고 노인 한 분은 기진해서 일어나 앉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픈 장면은 6살짜리 여자아이였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는 구조되었지만 부모님의 生死가 그 순간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를 찾는 그 아이의 우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한 채로 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제가 그날 시계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팽목항에 도착한 뒤엔 기자 4명을 태우고 다시 123정으로 복귀합니다. 다시 돌아온 바다에 세월호는 이미 배를 벌렁 뒤집은 채 가라앉고 있었고 인근 해역에는 수많은 경비정과 해군 함정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더 이상 水上 구조는 없었던 겁니다. 이제부터 탁한 물속을 더듬어서 찾아야 하는 水中 수색이 남아있을 겁니다. 잠수요원들의 분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첫 날 구조에 참여했던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조갑제닷컴 기자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영웅처럼 써 주지 마시고, 부디 있는 사실 그대로만 써 달라는 겁니다. 전부 구조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海警이 해체된다니까, 그래서 제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제발 사실 그대로만 알려 주셔도 저희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정말 사실 그대로만 전해질 수 있는지,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2014-07-23, 2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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