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관심병사’ 출신 최근 제대병의 手記(上)
*自隊(자대) 전입 초기에 소대장과의 면담에서 ‘軍병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소대장은 ‘軍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다’고 생활지도부에 써넣어.*四肢(사지) 멀쩡하고 생각이 바르더라도 가정환경이 안 좋으면 관심병사. 관심병사 선정 제도 자체가 형식적, 관심병사 10명 중 진정한 관심병사는 2~3명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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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육군 입대>
  
  저는 2012년 10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해 2014년 7월에 제대한 대학생입니다. 강원도 모 常備(상비) 사단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상비 사단은 GOP와 같은 철책 경계 근무를 맡는 부대를 뜻합니다.
  
   어릴 적부터 6·25 참전 용사이신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脫北(탈북) 국군포로를 구출해 대한민국으로 모시고 싶었다는 꿈이 있었으나, 꿈으로만 그쳤습니다.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입대를 했습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軍門(군문)을 밟았지만, 군 생활은 기대와 달리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제 軍생활을 한 번 정리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관심병사로서의 제 軍생활과 우리 군의 현실과 문제점을 알리고자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소속됐던 부대의 명예를 훼손하게 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 軍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가 경험한 내용과 느낀 점을 적었습니다. 당사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훈련소에서부터 꼬인 軍생활>
  
   저는 대한민국 남성의 40%가 거쳐 간다는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던 중, 2주차에 유행성 질환에 걸렸습니다. 육군훈련소 내에 있는 군 병원(육군훈련소 지구병원)에 입원했지만, 병원은 誤診(오진)을 했고, 이후 합병증이 발생했습니다. 군 병원을 신뢰한 저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집으로 전화를 자주 하면서도, 입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됐고, 직접 육군훈련소로 찾아와 저를 데리고 “민간 병원에서 自費(자비)로 치료받게 하겠다”고 하곤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30여 일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저의 입원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렇습니다. 육군훈련소는 매주 훈련병들의 모습을 촬영해 陸訓所(육훈소)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1주차에는 단체 사진에 제가 나왔는데, 2주차 사진에는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소속 중대에 전화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XXX 훈련병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문의했고, 중대에서는 “화장실에 가서 사진 촬영을 못 했을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재차 어머니는 “단체 생활을 하는 군대에서 훈련병이 화장실 가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자 그때서야 訓育(훈육) 담당 소대장 H모 중사는 “전염병으로 입원했다.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군 병원에 입원한 저를 민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군 병원 실무자 C모 중위와 훈육 소대장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왜 병사가 전염병으로 입원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소대장은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다른 병사랑 착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군 병원 실무자는 “입원할 당시 병사가 부모님 연락처를 몰라서 적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을 못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훈육 소대장은 제가 전염병으로 인해 군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또 입원 절차를 거칠 때 원무과에서 제 인적 사항과 부모님의 전화번호도 함께 적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 병원과 훈육 중대 간에 책임회피가 벌어졌습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병사가 부모님의 연락처를 몰라 연락을 못 드렸다’는 말이 떠오르면 화를 내십니다. 그리곤 “부모 연락처, 집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를 어떻게 훈련시킨다는 말이냐”고 하십니다.
  
  
  <책임 회피와 허위 보고의 희생양이 되다>
  
   저는 입대 2주 만에 우리 軍의 비겁한 전통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하나는 ‘허위보고’였고, 또 하나는 ‘책임회피’였습니다. 군을 신뢰했던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30여 일간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훈련소로 돌아왔습니다.
  
   육군훈련소 내 지구병원 원무과로 가서 퇴원 절차를 밟을 때였습니다. 원무과장은 제게 A4용지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육군훈련소 지구병원은 위 병사의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해당 병사는 추후 이에 대해 절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습니다.
  
   저와 동행한 형은 “빨리 적고 나가자”면서 유심히 살펴보지 않고 그 문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저는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이 이상해 계속 의문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내민 일종의 ‘각서’에는 날짜도 적혀있지 않은, 급조된 문서였습니다. 제가 나중에 문제 제기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종이가 이상하지 않냐”고 형에게 물으니, 그제야 제출한 종이를 다시 받아낸 뒤 병원 담당자에게 “육군 규정이나 의무사령부 규정에 이러한 문서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병원 담당자는 확인하는 척 했고, 형은 “나중에 직접 확인한 후 직접 써주겠다”고 하곤, 병원을 나오면서 그 종이를 찢어버렸습니다.
  
   저는 병가를 통해 민간 병원에서 30여 일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인데, 병사는 병가를 최초 10일 이내로 시행한 뒤, 10일을 초과할 경우 군 병원에서 심의를 거친 뒤 연간 30일 이내로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병원은 저를 심의도 하지도 않고, 규정도 어긴 채 30일을 몽땅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는 흔치 않은 경우라고 했습니다. 자대 배치받은 뒤에는 군 병원에서 병가를 받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훈련병 2週차부터 관심병사가 되다>
  
   저는 질병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병 신분으로 훈련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관심병사’로서의 군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군에 입대하기 전, 우스갯소리로 ‘관심병사’라는 용어를 말했지만, 실제로 제가 관심병사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 때문에 위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은 훈육 소대장은 저를 굉장히 못 마땅해했습니다. 제가 배속된 교육 대대[육군훈련소는 크게 일곱 개의 교육 聯隊(연대)가 있고, 교육 연대에는 세 개 교육 大隊(대대)가 있다. 교육 대대에는 네 개의 훈육 中隊(중대)가 있다]에서는 저를 하루빨리 수료시켜 野戰(야전)으로 방출시키는 게 목표가 됐습니다. 저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도 않았음에도, ‘훈련 참관’이라는 명목으로 훈련을 받은 것처럼 했습니다.
  
   군대는 투표율이 100%에 가깝다고 합니다. 부재자 투표를 하는 군인들 때문입니다. 부재자 투표를 하기 위해 훈련소 바로 앞 임시 투표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때 노란색 겉표지의 생활지도기록부(生指簿)라는 것을 들고 가 신분증을 대신했습니다. 이 生指簿(생지부)는 자기소개서와 같은 것으로, 이것을 바탕으로 병사의 신상을 파악하고, 관심병사의 등급을 매기는 데 활용합니다. 생지부에는 자신의 인적사항과 가족 관계 등을 적고,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적도록 하는 자기소개서와 같은 것입니다. 훈련소에 처음 입소하면 약 이틀간 이 생지부만 작성하도록 합니다.
  
   이 생지부를 보니, 종전에 저를 평가했던 내용은 지워져 있고, 새로운 종이가 덧붙여 있었습니다. 새 종이에는 저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가 있었습니다. <‘모든 훈련을 열외하려고 한다’, ‘남이 무슨 피해를 입건 신경 쓰지 않는다’>. 덧붙인 종이 밑에 있던 기존의 평가에는 < ‘교육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이 깊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관심 요망 A급 관심병사’라는 문구가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제 몸 상태가 허용하는 범위에선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제가 소속된 훈육 중대는, “너는 훈련 안 받아도 수료시켜줄 것이니 훈련 받지 말라”면서 오히려 열외를 권유했습니다.
  
   훈련소 시절이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함께 생활하는 훈련병 동기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5주를 보냈습니다. 저는 이때 ‘밥을 세 번 먹으면 하루가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나머지 기간을 채웠습니다.
  
   5주간의 훈련병 교육 수료일이 다가오자, 육군훈련소 차원의 설문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 설문조사는 모든 훈련병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훈련 중 받은 부조리, 건의 사항 등을 적어내는 것입니다. 소대장은 설문조사가 있기 전날, 훈련병 중 몇 명을 뽑아서 훈육 중대에 불리한 내용을 적지 못하도록 서로를 감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소대장은 제가 이 설문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조교를 통해 저를 다른 곳으로 불러내곤 했습니다.
  
  <전방 사단으로 自隊 배치>
  
   육군훈련소는 5주차 수료식 날 부모님 면회를 하게 합니다. 이날 自隊(자대) 배치 결과도 알려줍니다. 육군훈련소를 거친 병사들은 많은 수가 후방으로 자대 배치를 받습니다. 저는 전방 모 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수료식을 하고 며칠 뒤, 훈련병들은 자대 배치를 받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생전 처음 만나 5주간 부대끼며 함께 했던 동기들은 작별할 때 많이들 아쉬워했습니다. 5주간의 시한부 만남, 다시는 보지 못할, 이별을 하는 셈입니다. 헤어질 때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기도 하지만, 자대 배치를 받으면 자대 생활하기에 바빠 훈련소 때의 동기들은 자연스럽게 잊히곤 합니다.
  
   자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병사들은 육군훈련소 인근에 있는 연무대驛(역)에서 군 열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語學兵(어학병)이나 카투사로 선발된 일부 병사들은 서울에서 내리곤 했습니다. 청량리역을 지날 때에는 ‘집까지 30분도 안 걸리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차창만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남춘천역까지 오는 길이 참 멀었습니다. 남춘천역에 내린 병사들은 각 사단으로 흩어졌습니다.
  
   102보충대(춘천, 강원 권역)나 306보충대(의정부, 경기 권역)를 통해 입영하는 병사들은 각 사단의 신병교육대를 통해 훈련병 교육을 받고 주로 훈련받았던 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습니다. 육군훈련소를 통해 전방 사단으로 가는 경우는 흔히 말해 ‘운이 없다’고들 표현합니다.
  
  <강원도의 겨울>
  
   강원도의 겨울은 추웠습니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내복이란, 어린이와 노인들이나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오니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껴입고, 틀어막으려고 했습니다. 아침 점호를 위해 연병장으로 나갈 때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죽으면 추위라도 못 느끼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많은 병사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계급이 낮은 순으로 먼저 나가서 점호를 기다립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강추위도 조금만 버티면 금방 적응을 해, 버틸만해집니다.
  
   제가 자대에 온 해에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그것도 주말에만 눈이 몰아서 왔습니다. 제설 도구는 초록색 플라스틱 싸리빗자루와 넉가래, 파란색 플라스틱 삽뿐이었습니다. 한 번 눈을 치우면, 넉가래는 깨져 있고, 삽은 갈라지고, 싸리비는 이가 빠졌습니다. 제설 도구가 항상 부족했습니다. 염화칼슘은 아깝기도 하고, 뿌리면 아스팔트 도로가 파인다면서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우스갯소리로, ‘염화칼슘보다 병사들 인건비가 싸니까 염화칼슘을 안 쓰는 거야’라곤 했습니다. 병사들의 평균 월급이 13만 원인데, 이는 時給(시급) 180원에 해당합니다.
  
   겨울에 입대한 군번과 그렇지 않은 군번은 눈 치우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군인들은 눈이 내리면,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눈이 지면에 쌓여 결빙되기 전부터 除雪(제설)합니다. 제설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넉가래로 덮인 눈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면에 쌓여 결빙된 얼음 같은 눈을 싸리비로 ‘긁어’내고, 삽이나 넉가래로 퍼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잘 긁히지 않는 잔설을, 싸리비로 ‘파내서’ 흩날리는 것입니다. 해가 뜨면 흩날린 잔설은 녹게 됩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눈에 대해 좋은 추억이 많이들 없습니다.
  
  <건강 문제로 제대를 시도하다>
  
   저는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개인 휴가를 써서 민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민간 병원에서는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의병 제대와 같은 형식으로 제대를 하려고 했지만, 간부들은 모두 저를 꾀병으로 치부했습니다. 제대만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걱정해주는 척을 했지만, 뒤에서는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무대에서 한 달 정도를 보냈습니다. 의무대에서도 저를 꾀병으로 보았고, 더 있을 수 없어서 자대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속한 부대는 모두 선발된 병사들로 구성된 행정병 小隊(소대)로, 일반 야전 부대보다는 온화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고생했지만, 저를 같이 끌고 가려고 노력해줬고, 早期(조기) 제대를 할 수 있다면 도와주려고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대원들도 저를 꾀병으로 알고 있었지만, 분대장의 노력으로 소대에서 저를 걱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분대장은 약 10명으로 구성되는 분대의 장으로, 해당 분대의 최선임 병사가 맡습니다. 일반적으로 네 개의 분대가 모여 한 개의 소대를 구성하고, 소대장은 주로 소위가 맡습니다. 저는 건강 문제로 인한 제대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다소 수월한 보직을 받고 군 생활을 계속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자대 배치를 받자 소대장은 저와 형식적인 면담을 했습니다. 제 生指簿(생지부)를 보고,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소대장은 ‘군 병원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고 했고, 저는 형식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면담 이후 ‘건강 문제로 인한 B급 관심병사’로 자대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초반의 건강 문제로 군 생활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군 생활에 적응할 때였습니다. 행정병 컴퓨터에 있는 관심병사 파일을 열어보니 저를 비롯한 부대의 관심병사들의 등급과 사유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훈련소 때부터 겪어왔던 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관심병사가 된 사유는 이렇습니다. <훈련소 때 겪은 질병으로 인해 신체활동이 제한되며, 軍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다>. 저는 자대 전입 초기에 소대장과의 면담에서 ‘군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소대장은 ‘군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다’고 써놓은 것입니다. 이후에도 소대장은 가끔 저를 호출해 면담했는데, 모두 관심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형식적인 면담이었습니다. 관심병사는 일정 주기로 간부와 면담을 하고 이 면담 내용을 기록하게 돼 있습니다. 이 면담은 형식적인 것으로, 만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차원의 방어용 성격이 짙습니다.
  
   22사단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자, 군 당국은 全軍의 관심병사를 대상으로 면담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도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합니다. 윗선에서 내린 지시가 일선 부대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 위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아마 관심병사들을 대상으로 면담 한 번씩 하고 그쳤을 것입니다.
  
  <四肢(사지) 멀쩡하고 생각이 바르더라도 가정환경이 안 좋으면 관심병사>
  
   관심병사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저희 부대의 경우, 부대 전입 100일 미만의 병사는 C급, 건강이나 부대 부적응, 구타 유발 등의 사유가 있으면 B급, 부대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제대를 목적으로 부대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에는 A급으로 지정합니다. A급은 저희 부대에 없었습니다.
  
   편부, 편모의 가정이나, 가정환경이 불우해도 관심병사에 지정이 됩니다. 부대마다 등급 차가 있지만 주로 B~C급에 지정됩니다. 이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지 멀쩡하고 생각하는 것도 바르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이유로,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관심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관심병사를 지정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근거는 훈련소 때 작성한 생활지도기록부(生指簿)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개발한 신인성검사 프로그램, 자대에서 간부들과 하는 면담입니다. 생지부에는 가족의 학력, 소득 등 개인 신상을 적는 부분과 약물 복용, 가족에 대한 평소 생각,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을 적는 50개의 문항으로 된 일종의 자기소개서와 같은 곳, 훈련병 시절의 생활 태도를 적는 곳으로 나뉩니다. 신인성검사 프로그램은, 전군의 병사가 6개월 단위로 실시하는 컴퓨터 설문 조사입니다. 간부는 생지부와 신인성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병사와 면담을 한 뒤 관심병사 지정을 결정합니다.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냈음에도, 부대에서는 이를 병사의 약점으로 잡고 선입견에 근거해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부들이 작성한 병사의 면담 기록을 보면, 과장되고 악의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이를 실제로 보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관심병사 제도를 좋은 취지로 만들었지만,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대 생활을 하다 보면 누가 관심병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희 부대도 관심병사가 있었지만, 큰 신경을 안 썼습니다. 그만큼 관심병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형식적인 면담 한 번 하고 끝내는 게 지금의 관심병사 제도입니다.
  
   저도 관심병사였지만, 저와 함께 생활한 병사 중에는 누구도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몸이 안 좋을 뿐이라고 생각들 했습니다. 중사로 제대한 친구에게 관심병사에 관해 물으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심병사 제도 자체가 형식적이다. 관심병사는 어느 부대에나 있지만, 관심병사 10명 중 진정한 관심병사는 2~3명 정도이다.”
  
  <관심병사들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
  
   육군에서는 부대 적응에 문제를 겪고 있는 병사들을 한데 모아, 적응을 돕는 4박 5일 분량의 ‘비전캠프’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각 사단에서 이를 운영하고, 교육은 주로 사단의 軍宗(군종) 장교가 맡습니다. 저도 건강 문제로 인한 부대 적응 문제로 이 캠프에 입소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꾀병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캠프에 가니 건강문제, 부대적응 문제 등으로 사단 예하 부대의 병사들이 입소했습니다. 이곳에는 관심병사라고 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병사 중에서도 부대 운영에 부담되는 병사들이 옵니다. 이들은 4박5일간 심리 검사, 상담, 봉사 활동 등을 체험한 후 부대로 돌아갑니다.
  
   이곳에는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병사, 이해력이 떨어져 부대원들과 마찰이 있는 병사, 건강에 문제가 있는 병사들이 왔습니다. 또 결손 가정 출신이 많았습니다. 관심병사로서 관심병사들과 4박5일간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언론에서 그리는 것처럼 이상한 관심병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관심병사가 속한 자대에서는, 비전캠프 입소 건의서를 작성하는데, 해당 병사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했습니다. 입소 건의서를 해당 병사는 함부로 읽어볼 수 없습니다. 읽어본다면 모두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다수의 병사는 부대에서 자신들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부대에서는 관심병사들을 관리하기 귀찮아 이곳에 보내 부담을 덜어보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GOP에서 근무했던 한 관심병사는 부모님이 모두 외교관이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됐는데, 관심병사에 지정됐다고 합니다. 한 병사는 너무 여성스러워서 남성 중심의 문화인 군대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 힘들어했습니다. 한 병사는 피부염 때문에 군 생활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 피부염 때문에 고생한 병사는 저와 같은 곳에서 근무한 타(他) 부대 병사인데, 이 병사의 군 생활을 제가 관찰한 결과, 피부염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제가 있는 병사가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맡은 군종 장교는 “스무 살이 넘는 성인이 돼 생활 방식이 정해진 애들이 4박5일 교육받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면서 효과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캠프를 다녀온 전·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비전캠프를 다녀온 한 병사가 부대 적응을 하지 못해 자대를 여러 번 옮겨 다녔습니다. 지휘관에게 상대적으로 군 생활이 편한 PX병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는데, PX병이 안 되자 자살을 했습니다.
  
   군 복무 중 가정의 문제가 있는 병사는 ‘依家事(의가사) 제대’를, 질병으로 인해 군 생활을 할 수 없으면 ‘依病(의병) 제대’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의병 제대’를 ‘의가사 제대’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외의 경우에는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통해 군대를 나올 수 있습니다.
  
   병사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부대 운영에 부담만 된다면,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거쳐 제대를 시킵니다. 제대를 하기 위한 관문으로 ‘비전캠프’를 거치곤 합니다. ‘현역복무부적합심의’는 해당 부대 지휘관이 문제 병사를 사단에서 열리는 심사에 회부해 제대시키는 제도입니다. 이 심의위원회는 사단의 중령급 참모들이 참석해 동의 여부를 투표한 뒤 결정합니다. 이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통한 제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당 부대도 피곤해합니다.(계속)
  
  李庚勳(이경훈)
  19500625k@gmail.com
  
  
  (계속)
[ 2014-08-05, 18: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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