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관심병사’ 출신 최근 제대병의 手記(中)
*최전방 부대 제외하곤 실탄 대신 공포탄 들고 경계근무…사단장 관사를 지키는 것은 적외선 센서뿐…敵(적) 1개 소대가 기습하면 대대가 전멸할 것.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 보느라, 好戰性(호전성) 잃어버린 軍…남하하는 敵을 보고 인접 사단장이 ‘즉각대기砲’ 준비하자, 군단장이 ‘왜 敵을 자극하느냐’며 면박.

李庚勳(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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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사단 임 병장 체포 작전에도 관심병사 투입>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인 임 병장. 그는 A급 관심병사라고 합니다. 군 당국은 임 병장 체포 당시 관심병사를 투입해, 언론으로부터 “관심병사를 체포하는데, 관심병사를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타를 받았습니다. 관심병사가 총기 난사를 한 뒤 탈영했는데, 이 작전에 관심병사를 투입한 것입니다.
  
   관심병사라고 해서 모두가 문제 있는 병사는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非합리적인 사유, 간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도 관심병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부대에서도 관심병사를 투입하는 데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체포 작전에 투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군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병사를 관심병사로 지정하지만, 실제 부대 운영에는 소수의 ‘관심병사’가 큰 문제일 뿐 다수의 ‘관심병사’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관심병사 지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후임이 관심병사가 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후임은 대학원을 다니다 늦은 나이에 입대했습니다. 저희 부대는 행정 부대여서, 야전 체험이라는 취지로, 자대로 전입한 뒤, 전방 GOP 체험을 2~4주 정도 다녀와야 합니다. 이 병사는 GOP 소초의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습니다. 이 때문에 체험을 그만두고 일찍 복귀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 GOP 소초의 소초장은 저희 부대에 “이 병사가 GOP 체험을 하기 싫어해 꾀병을 부리는 것 같으니 관심병사로 지정해 달라”고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 서신을 본 해당 병사는 부대 지휘관에게 “정말로 아파서 그런 것이다. 관심병사로 지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대 지휘관은 “알겠다”고 한 뒤 며칠 지나서 이 병사를 B급 관심병사로 지정했습니다. 이 병사가 꾀병인지 여부는 본인만 알 수 있지만, 관심병사가 되는 과정이 恣意的(자의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심병사도 계급이 올라가면 괜찮아져>
  
   부대 전입 초기에는 적응 문제로 관심병사라는 꼬리를 달고 군 생활을 시작하지만, 계급이 올라갈수록 부대에 적응해 관심병사라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오고, 무사히 제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관심병사’는 제대할 때까지 주변의 우려 속에서 ‘관심병사’로 생활하다가 제대합니다. 부대 적응에 힘들어하는 ‘진정한 관심병사’에게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많은 수의 관심병사를 다루다 보니 정작 ‘관심이 필요한 관심병사’는 관심을 적게 받는 것입니다.
  
  
  <임 병장 사건의 뿌리는 下剋上(하극상)일 것>
  
   관심병사도 시간이 흐르면 웬만큼 부대에 적응합니다. 이 때문에 임 병장이 A급 관심병사였음에도 GOP 근무에 투입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대에서는 곧 있으면 제대하는 임 병장이 사고를 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것입니다. 병장쯤 되면, 대다수의 병사는 ‘조금만 있으면 제대이니,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제대하자’는 생각을 합니다.
  
   임 병장은 평소 자신이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임 병장의 주장대로라면, 임 병장에게 가혹행위를 한 가해자들도 임 병장이 한순간에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 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임 병장이 우리한테 당하고 말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임 병장이 전우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게 된 직접적인 사유는 자신의 계급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고, 下剋上(하극상)을 비롯한 가혹행위로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실행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임 병장이 자신의 계급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느낀 부분은, 사건 당일 근무를 같은 계급인 병장과 함께 섰다는 점입니다. 2인 1조 근무의 경우, 상급자와 하급자로 구분돼 근무를 섭니다. 흔히 말해 사수(상급자)와 부사수(하급자)의 개념입니다. 통상 근무 組(조)는 병장(사수)+일병(부사수), 상병(사수)+이병(부사수)과 같은 식으로 구성돼 투입됩니다.
  
   같은 계급이 근무에 들어갔다는 것은, 임 병장의 계급을 병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하극상의 성격이 담겨 있습니다. 임 병장은 ‘해골로 자신을 비하한 그림을 본 뒤 범행 결심했다’고 언론 보도됐는데, 이것이 범행 실행에 導火線(도화선)이 된 것 같습니다. 2011년 강화 해병 2사단 총기 난사 사건도 원인은 하극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
  
   우리 군에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민간 상담 전문가가 부대 적응에 문제를 보이는 병사와 상담한 뒤, 해당 지휘관에게 발전적인 조언을 해 병사들의 부대 적응을 돕는 제도입니다. 저도 육군훈련소와 자대에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 사단에도 네 명의 상담관이 있었는데, 세 명이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담당하는 부대가 정해져 있습니다. 부대에서 병사들이 적응에 문제를 보이면, 간부는 상담관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권유합니다. 병사 본인이 직접 상담 신청을 하기도 합니다. 상담관은 일종의 카운슬러(counselor) 역할을 했는데, 간부가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로 女(여) 간부가 신청했습니다. 상담관은 해당 부대 간부보다는 병사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제 후임도 ‘상담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병사는 사단의 인사 담당부서의 행정병이었습니다. 해당 부서에서도 가장 바쁜 자리였습니다. 이 병사는 부대 생활이 너무 힘들어 ‘상담관’에게 고충을 설명했고, 보직을 변경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상담관은 상담 결과를 종합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해당 부대 지휘관에게 전달합니다. 상담관이 제시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간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간부도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상담관은, ‘외부인’처럼 보였습니다. 부대에서는 충분한 대우를 해줬지만, 이들의 활동이 부대에 반영되는 부분은 적어보였습니다.
  
  
  <실탄 대신 공포탄 들고 경계 근무>
  
   GOP, GP 등 최전방을 경계하는 부대는 실탄을 장전 또는 보유하고 경계 근무를 섭니다. 제가 소속된 후방의 예하 부대들은 실탄 대신 공포탄을 장전하고 경계 근무를 섰습니다. 저는 사단 사령부를 경계하는 근무를 섰습니다. 실탄이 장전된 총 대신 공포탄이 장전된, 일종의 ‘소리 나는 몽둥이’를 들고 경계 근무를 한 것입니다. 경계 근무 중 위급할 경우 공중을 향해 공포탄을 쏠 뿐입니다. 공포탄을 들고 경계를 서는 주된 이유는, 다소 후방에 주둔해 있기 때문에 적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과 실탄을 사용할 경우 총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부대의 모 중사와 공포탄 근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도 실탄 대신 공포탄을 들고 경계 근무 서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군대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이 곱지 않기 때문에 공포탄을 들 수밖에 없다. 괜히 실탄 들고 근무 섰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벌떼같이 달려들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게 오늘날 우리 軍의 현실입니다.
  
  
  <사단장 관사를 지키는 것은 적외선 센서뿐>
  
   사단 사령부에는 사령부 건물 이외에도 지휘부 공관(관사)이 있습니다. 사단장, 부사단장, 참모장 등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부대의 경계 행태를 보면서, 만일 敵(적)이 기습할 경우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기습 당한지도 모른 채, 지휘부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부대의 경계가 철통같지 않습니다. 사단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사단장입니다. 사단장 공관을 지키는 것은 철조망에 설치된 적외선 센서뿐이었습니다. 공관을 지키는 경계병도 없었고, 공관에서부터 공포탄을 든 경계병과의 거리는 약 300m 정도 됐습니다. 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敵 1개 소대가 기습하면 대대가 전멸할 것>
  
   한 번은 적이 우리 주둔지를 습격할 경우,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병사들은 자신의 총을 내무반(생활관) 총기함에 보관합니다. 이 총기함은 평소 자물쇠로 잠가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있는 총기 교체 시간에만 이 총기함을 잠깐씩 엽니다. 경계 근무가 있으면, 총기 교체 시간에 자신의 총을 大隊(대대) 지휘통제실 무기고에 보관합니다. 경계 근무 시간이 되면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서 근무를 서고, 끝나면 다시 무기고에 총을 보관한 뒤 총기 교체 시간에 다시 생활관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적이 기습해 급박한 상황이 터지면, 총기함 자물쇠를 따고 실탄을 분배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습격을 받게 되면 손도 못 써보고 全滅(전멸)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내부에서 바라본 우리 군의 경계는 허술했고,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스스로 싸울 무기를 걸어 잠갔기 때문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로는 敵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외부 사회가 군을 바라보는 시각에 우리 군대가 굴종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실탄은 실제 사격 훈련 때만 사용을 했습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총을 쐈는데, 100m, 200m, 250m의 고정된 표적을 맞히는 것이었습니다. 2012년 말에 공군 헌병 병사로 제대한 지인은, “실제 전쟁이 나면 적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격 훈련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외부인이 취사장에 제 맘대로 들어와 사진 촬영>
  
   저희 부대 취사장에는 A회사의 식기세척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B회사의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게 됐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A회사의 직원이 신원을 숨긴 채 부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B회사의 것이 세척을 제대로 못 해 잔류 세제가 식판에 남는다는 증거를 잡아내고 사진 촬영을 한 것입니다. A회사는 이 증거를 바탕으로 육군본부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령부에서 계약 담당하는 업무를 보는 제 후임들이 고생을 했습니다.
  
   외부인을 함부로 들여보내 준다면서 부대 출입 통제가 제대로 안 된다고 ‘잠깐’ 시끄러웠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B회사의 식기세척기 대신 새로운 식기세척기가 들어왔는데, 이것이 A회사 제품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실무 담당자들이 조금만 확인해봤으면 B회사의 제품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병사들도 A회사의 제품은 애용했지만, B회사의 제품은 성능이 좋지 않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방치된 캐비넷을 열어보니 2·3급 기밀문서가 뭉텅이 채>
  
   저희 부대는 오래된 사령부 건물을 대신해 新廳舍(신청사)를 지었습니다. 새로운 건물에 입주하면서 사무기기 등도 모두 새롭게 바꿨습니다. 舊건물에서 사용하던 사무기기는 폐기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놓았습니다. 하루는 폐기된 사무기기를 고물상에 팔기 위해 저희 소대가 모두 투입돼 해체 작업을 했습니다. 철제 캐비넷을 비롯한 무거운 사무기기가 방치돼 있었습니다. 캐비넷을 열어보니, 2·3급 기밀문서가 뭉텅이 채로 발견됐습니다. 이 문서를 생산한 곳은 부대의 보안을 담당하는 정보참모처였습니다. 이것을 보곤 이 부서에 속한 선임병이 피식 웃으며, 후임들에게 기밀문서를 細切(세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이러한 기밀문서를 매일 보니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인근 기무부대에 연락하려고 했지만, 괜히 병사들이 피곤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방치된 문서의 양은 A4용지 약 1000장 정도로, 비를 맞아 퉁퉁 불어있었습니다. 軍 복무하면서 보안 의식이 결여된 행동을 너무 많이 봐 어느 순간부터는 저 또한 무감각해졌습니다.
  
   정보를 생산하고 보호해야 할 부서에서 보안 의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면, 간부들은 분명 해당 부서의 병사에게 탓을 돌렸을 것입니다. “사무기기 폐기하기 전에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고 버렸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무기기 폐기할 때 간부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결국 책임은 병사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병사는 제대하면 그만이지만, 간부들은 직업이기 때문에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했을 땐, “네가 그렇게 잘났냐?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는 말을,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만 했을 땐, “넌 왜 이렇게 애가 수동적이냐? 시키는 것밖에 못하느냐?”는 말을 듣습니다.
  
   軍에서 기밀로 지정된 문서는 평범한 민간인이 봐도 뭔지 잘 모르는 내용이 많습니다. 워낙 지엽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소한 문건도 기밀로 지정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기밀문서의 양은 늘어나고, 정작 중요한 기밀문서 관리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부들의 保安 의식은 엉망>
  
   간부들의 保安(보안) 의식은 매우 취약합니다. 보안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습니다. 간부들과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병사들은 주기별로 보안 평가 시험을 치르지만, 암기형 문제가 출제돼 몇십 분 반짝 외우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보안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인터넷과는 다른, 단독망 방식의 인트라넷을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 軍에서만 사용하는 인터넷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트라넷과 인터넷은 분리돼 인터넷으로 인트라넷 접속이 불가능하고, 반대의 경우도 안 됩니다. 또 군에서는 허가된 USB만 사용해야 합니다. 일부 간부들은 이 때문에 문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로 보내곤 합니다. 보안에 문제가 있는 행동입니다.
  
   군에서 생산된 문서에는 흔히 말하는 워터마크가 찍혀서 인쇄됩니다. 이 문서를 누가 생산했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인쇄된 종이 정중앙에는 등록된 아이피를 바탕으로 컴퓨터 실사용자의 관등성명이 ‘중령 XXX’라는 식으로 찍혀 나옵니다. 군에서 생산한 문서를 폐기할 때는 세절기를 통해 細切(세절)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규정도 제멋대로 어기는 일부 간부들>
  
   경계 근무 중에는 사단 지휘통제실의 출입을 통제하는 근무가 있습니다. 사단 지휘통제실은 사단의 모든 부대를 통제하고 상급 부대의 통제를 받는 곳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장군들이 부스에 들어가 회의를 하고, 그 밑에는 군인들이 컴퓨터 앞에서 명령을 듣고 지시하는, 작전이 펼쳐지는 그런 곳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이곳에는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반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전자기기 반입 여부를 확인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을 했습니다. 2시간 동안 공포탄이 든 총을 옆에 휴대한 채 출입자들의 신원을 적고, 확인 후 들여 보내주는 일을 합니다. 일부 간부들은 휴대 전화를 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못 들은 척 휴대한 채 들어가곤 합니다.
  
   한 번은 軍전투지휘검열(軍指檢) 훈련 때 일입니다. 軍사령부에서 파견 온 검열관인 화학병과의 소령에게 관등 성명과 출입 목적을 적고, 휴대 전화를 맡겨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교는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짓더니 “이런 절차가 있는 게 맞느냐”면서 오히려 따졌습니다. 그리곤 지휘통제실 출입을 통제하는 담당 간부와 함께 검열관실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대위 계급인 담당 간부한테 말하니, 표정이 안 좋아지면서, 제게 “네가 말실수한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검열관이 그렇게 말을 하니 담당 간부도 흔히 말해 쫄았나 봅니다. 저도 당시에는 이른바 FM으로 했는데, 검열관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담당 간부에게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말하곤 함께 그 검열관을 찾아갔습니다. 막상 찾아가니 검열관도 머쓱했는지, 별말 없이 저희에게 “됐으니 가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했던 절차가 맞았음에도 당시에는 “괜히 검열관 통과 안 시켜줘서 똥 밟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부 간부들은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사소한 규정을 어기고 병사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말한 검열관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검열을 받는 부대는 상급 부대의 검열관에게 잘 보이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대 평가라는 것이 객관적이기보다는, 검열관 주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검열관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추는지도 해당 부대에는 관심사입니다. 이들은 일종의 칙사 대접을 비슷하게 받습니다.
  
  
  <이민복 씨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지휘통제실>
  
   지휘통제실 경계 근무를 서면 가끔 對北傳單(대북전단), 일명 ‘삐라’ 때문에 지휘통제실이 시끄러워집니다. 대북전단을 날리는 脫北者(탈북자) 이민복 씨 때문입니다. 군 당국은 이민복 씨가 대북전단을 날리는 것에 민감합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날리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자칫 도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통제실에서는 상황일지라는 것을 작성하는데, 그것을 보면 이민복 씨가 어디서 몇 개의 풍선을 띄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지를 보니, 조금 전만 해도 경기 XX에 있었는데, 바람을 보고 제가 근무하는 곳까지 이동한 것입니다. XX에서 제가 있는 곳까지는 직선거리로만 약 50여 km 정도 됩니다. 묵묵히 열심히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종 이민복 씨 때문에 고요했던 지휘통제실이 시끄러워지곤 합니다. 간부들은 이민복 씨가 대북전단을 날리는 것을 좋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시끄러워지고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라는 호칭>
  
   군대에서는 중대가 다른 병사를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중대를 이루는 병력은 부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0명 안팎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1개의 중대는 3~4개의 소대로 구성되고, 1개 소대는 4개의 분대로 구성되는데, 1개 분대는 약 10명 내외입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대략 1990년대 중후반부터 사용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軍 將星(장성)들은 병사들이 서로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소령급 정훈 장교는 ‘아저씨’라는 용어 사용을, ‘북괴군의 한국군 와해전술’이라고 말했습니다.
  
   군에서는 ‘아저씨’라는 표현 대신 ‘전우님’이라고 말할 것을 권장합니다. 의무대나 군 병원에서는 의무병이 환자를 부를 때, ‘XXX 전우님’이라고 합니다.
  
   아저씨라는 표현을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은, 계급에 따른 구분을 하지 않고 군인으로서의 소속감을 약화시키지 않느냐는 관점입니다. 거의 모든 병사가 아저씨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中隊(중대)가 다르면 ‘남’이기 때문입니다. 병사들 간의 선후임 관계는 자신이 소속된 중대에서만 맺습니다. 중대가 다르면, A중대 병장이 B중대 이병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고 서로 존칭을 쓰며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간부의 경우, 부대가 다르더라도 계급의 차가 그리 크지 않거나 계급이 같더라도 호봉 차를 알 수 없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他(타)중대 병사를 계급에 따라 XXX 상병, 000 병장님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병사들은 같은 계급이라도, 주로 호봉에 따라 한 달 간격으로 선후임 관계를 맺고 壓尊法(압존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 같은 중대의 100명 정도의 서열만 알면 되는데, 他중대 병사의 계급을 부르게 되면 같은 계급의 같은 호봉인데, 반말하기도, 존칭을 사용하기도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중대 병사들의 서열까지 외우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항상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는 것이 아니기에 아저씨라는 표현은 병사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특성이 반영된 용어입니다. 아저씨라는 용어가 옳은 표현은 아니지만, 마땅히 병사들 입장에선 대체할 용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병사들은 아저씨라는 표현이 편합니다. ‘전우님’이라는 표현은 왠지 뒤에 ‘님’자가 들어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낯 뜨겁다고들 말합니다.
  
  
  <敵(적)이 도발하면 신속 정확 과감하게 대응?>
  
   뉴스를 보면 軍 고위 관계자가 부대를 방문해 “‘쏠까요? 말까요?’라는 말을 하지 말고 과감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先조치 後보고’입니다. 그러면서 “도발원점을 무력화시키라”고 나옵니다. 막사나 건물 입구에는 <적이 도발하면 신속·정확·충분히 응징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습니다. 저는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니, 적이 도발하면 당연히 신속·정확·충분하게 응징해야 하는데, 굳이 플래카드까지 걸어놔야 하나. 美軍(미군)들도 저런 걸 걸어 놓나? 부모 말 안 듣는 초등학생이, ‘앞으로는 부모님 말 잘 듣겠다’고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응 시나리오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북괴군이 아군에게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 우리 군에는 대응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敵이 小火器(소화기)로 공격하면, 우리 군도 소화기 위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적이 重火器(중화기)로 도발하면 그때서야 우리도 중화기로 반격을 가합니다. 이 ‘대응 매뉴얼’을 본 적이 있습니다.
  
   敵이 A라는 강도로 도발하면 X화기 300발, Y화기 30발, J화기 5발을 사용해 대응합니다. ‘적의 도발에 비례해서 몇 배’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아니, 적이 몇 발 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우리도 몇 발 쐈는지 계산하면서 대응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을 동기에게 말하자 이 동기도 웃었습니다.
  
   朴定仁(박정인) 장군의 3사단 백골부대 式(식)의 대응은 옛이야기가 됐습니다. 대응 매뉴얼 이상으로 적에게 반격하면, 그 지휘관은 ‘과잉 대응’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사단장이 옷을 벗어야 하는데, 누가 수십, 수백 배의 보복을 하겠습니까? ‘적이 도발하면 적이 굴복할 때까지 대응하겠다’는 말은 修辭(수사)에 불과합니다. 남북 대치 하의 안정적 위기관리와 평화라는 美名(미명) 아래, 우리 군은 정치권의 눈치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好戰性(호전성)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군에서는 북괴군의 도발에 대응해 ‘도발 原點(원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적이 도발하면 도발 원점과 지휘 세력까지 응징하겠다.’ 군 복무를 하면서, 군 지휘부가 말한 ‘도발 원점’과 ‘지휘 세력’의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적의 군단급 부대를 도발 지휘 세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도발 지휘 세력’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괴군의 首魁(수괴)인 金正恩(김정은)이 도발 원점이자 도발 지휘 세력이지, 김정은의 명령을 받은 예하 부대를 도발 지휘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우리를 협박할 때 “O군단을 타격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북괴군은 우리 군의 대응 태세를 확인하기 위해 의도적인 도발을 합니다. ‘의도적 도발’란, 군사분계선을 넘지는 않지만, 인근 부근까지 내려와 우리의 대응을 시험해보고 골탕을 먹이려는 시도입니다. 북괴군이 휴전선 인근으로 남하하면, 우리 부대는 비상이 걸려 위기조치대응반을 소집합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은 적은 北上(북상)하고 위기조치는 해제됩니다. 전방에선 적의 의도적인 도발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남하하는 敵을 보고 인접 사단장이 즉각대기砲(포) 준비시키자, 군단장, ‘왜 敵을 자극하느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괴군이 남하하자, 인접 부대의 사단장이 즉각대기砲(포)를 준비시켰습니다. 즉각대기砲란, GOP나 GP에 투입된 병력을 지원하는 포병부대입니다. 군단장은 ‘왜 적을 자극해 도발할 빌미를 줬느냐’는 취지로 이 사단장에게 면박을 줬다고 합니다. 사단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한 동기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생각했던 군인은 실제와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도가 들어올 것을 대비해 야구 방망이를 준비해 놨는데, 이 야구 방망이가 강도를 자극했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 군단장도 상급 부대로부터 ‘위기관리를 잘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습니다. 우리 軍의 ‘위기관리’란, ‘敵(적)을 자극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투형 군대? PPT 잘 만들고, 보고서 잘 만들어야 유능한 군인>
  
   李明博(이명박) 정부 초기 국방장관이었던 李相憙(이상희) 장관은 취임 직후 “행정 군대를 버리고 전투형 군대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軍에 오니, 왜 국방장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실감했습니다. 사단의 행정병이어서 더 다가왔습니다.
  
   제가 경험한 우리 군은, 보고서를 보기 좋게 만들고, PPT를 잘 만드는 사람을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戰鬪的(전투적), 戰術的(전술적) 사고를 견지하는 군인이 유능한 군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용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올릴 때, 어떻게 하면 윗사람에게 잘 보일지를 고민했습니다.
  
   한 번은 저희 부서의 간부가 “사단장님한테 결재 맡을 것이니 0000 용지 구해 오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軍에서 보급받는 A4용지 대신 고급 용지를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보급으로 나오는 A4용지는 일반 A4용지보다 質(질)이 떨어집니다. 내용, 본질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일까’, 겉모습이 중요했습니다.
  
  
  <지휘관 영향을 받는 군대>
  
   軍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해당 부대의 지휘관이 문책을 받습니다. 이번 22사단, 28사에서도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까지 보직해임을 당했습니다. 일각에선 징계의 범위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일개 병사의 행위에 사단장까지 책임지는 것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저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군 생활을 하면서 지휘관이 부대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저희 사단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희는 세 개 보병연대와 한 개의 포병연대, 십여 개의 직할부대(중·대대급)로 구성됐습니다. 병력은 대략 1만여 명. 이중 세 개의 보병연대 중 두 개의 보병연대(A, B연대)가 GOP에 투입됩니다. 1개 연대는 3개의 대대로 구성돼 있는데, GOP를 맡는 연대는 1개의 대대를 6~8개월 단위로 번갈아가며 GOP 경계에 투입합니다.
  
   A연대에서는 작년 한 해에 5명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인명 사고는 자살, 순직, 사고사 등을 말합니다. A연대 예하 GP에서 부사관이 총기 자살을, 관심병사가 보직 문제로 자살을, 차량 사고로 부사관이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B연대에서는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도 일종의 사회이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兵家之常事(병가지상사)라고 말하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A연대의 연대장이 병력의 인명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不德(부덕)의 所致(소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李庚勳(자유기고가)
  19500625k@gmail.com
  
[ 2014-08-06, 11: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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